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여름호 2025년 6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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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났는데 왜 이렇게 추운지 계속 내린 눈으로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은 온통 하얗다. 아파트 뒷길 외진 곳은 꽁꽁 얼어붙어 미끄럽다. 아이젠을 준비해서 신발에 비끄러맸다. 조심히 둘레길을 따라 냥이 1처소에 다다랐다. 눈밭에 오밀조밀 냥이 발자국이 보인다. 따뜻한 핫팩 두 개를 물그릇 아래 겹쳐 놓았다. 잠자리에도 넣어 주었다. 사료를 채워 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 뒤에서 살짝 얼굴을 내민 사월이가 야옹 인사한다. 오월이는 어디 있을까? 가무스름 호피무늬의 사월이는 원래 학교 뒤 연립주택 근처에 살았다. 그곳 주민 할아버지와 심하게 다투고 1처소로 어렵게 데리고 왔다. 연립주택 지하실에 고양이들이 잠자고 오줌 싸서 냄새 난다며 먹이 주지 마, 하고 심하게 나를 을러댔다.
“많이 먹어, 사월아!”
사월이와 오월이가 밥 먹는 것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 자리를 떴다. 경사가 좀 심한 공원 뒷길은 더 미끄럽다. 길 옆에 냥이 집을 놓으면 좋으련만 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한다. 신고 들어가 냥이 집채로 없어진 일이 여러 번이다. 옮기고 또 더 먼 곳으로 옮긴다. 그들과 맞서 싸워 보았다. 나 나름대로 동물보호법을 외쳤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2처소에는 냥이 3마리가 있다. 아픈 냥이가 있어 습식 캔을 따서 약을 섞어 먹인다.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릇을 걷어 온다. 주위가 지저분하면 또 신고 들어간다. 사료를 넉넉히 주고 물도 가득 채워 준다. 핫팩을 물그릇 밑에 넣어 얼지 않게 한다. 공원 깊숙한 곳에 위치한 3처소는 대장냥이가 살고 있다. 2마리의 성묘와 2마리의 어린 냥이 함께 산다. 대장냥이는 이들을 잘 보살핀다. 외부에서 낯선 냥이가 오면 결투해서 쫓아낸다. 가끔 콧등을 긁혀 피가 날 때도 있다. 대장냥이 옆에는 항상 점박이가 따라다닌다. 내게 부비부비 인사하며 잘 지키고 있다고 한다. 대장냥이의 이름은 장고이다. 나의 어머니가 감명 깊게 보았다고 들려준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이다. 1964년에 개봉한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에 나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배우의 이름이다. 강인함이 인상적이어서 장고라는 이름을 대장냥이에게 주었다. ‘장고’, 비록 발치를 해서 이빨 전부가 없지만 그런대로 덩치가 크다. 잘 버티고 또 곁의 다른 냥이들하고도 잘 어울린다. 장고는 어렵게 우리 아파트 단지에 왔다. 이웃 동네인 양주에서 왔다.
어느 날, 캣맘 카페에 글이 올라왔다. 아픈 냥이에 대해 자세히 적은 글이다. 그곳 동물보호센터에서 아픈 냥이를 구조해 치료했는데 다른 냥이들이 심하게 구박해 밥도 잘 못 먹는다고 한다. 계속 약을 투여하며 돌봐야 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간절한 글이었다. 3살 정도 된 사내 냥이다. 이곳 캣맘들이 모두 찬성해 우리 곁에 왔다. 황금빛 색깔을 가진 냥이는 덩치가 좋았다. 구내염을 심하게 앓아 침을 많이 흘린다. 약 처방을 받고 3처소에 놓아 주었다. 이튿날, 밥 주러 나갔을 때 장고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다. 근처에 숨어서 날 보고 있었는지 딴 냥이들이 밥 먹고 떠나자 슬금슬금 다가왔다. 도망가지 않고 있어 주어서 반가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다른 냥이를 잘 보살핀다.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나는 40대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을 운영한다. 1남 3녀의 막내이며 크리스천이다. 결혼 10년 차이다. 아기가 없어 모두들 딩크족인 줄 알고 걱정한다. 자연 임신이 안 되고 있다. 그런대로 남편이 서둘지 않아 나도 애써 병원을 찾지 않는다. 노심초사 양쪽 부모의 손자를 향한 기다림에 죄송할 따름이다. 결혼 2주년 되었을 때 남편과 상의해서 예쁜 아기 고양이를 입양했다. 페르시안 친칠라라는 품종묘로 솜뭉치처럼 예쁘다. 반대가 심할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했다. 아기 가질 생각 않고 뭔 고양이냐며 펄펄 뛸 모습이 훤히 보였다. 이름을 ‘나디아’라고 지었다. 나디아는 아랍어로 ‘부드러운’ ‘섬세한’ ‘이슬에 젖어 있는’ 뜻을 가진 여자 이름이다. 나디아는 우리 내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1년쯤 되자 발정기가 왔다. 아기 같아 그냥 넘겼다. 3개월이 지나자 또 발정이 왔다. 어쩔 것인가? 중성화 수술을 해 줄 것인가? 아니면 예쁜 아기 냥이를 낳게 할 것인가? 딱 한 번만 아기 냥이를 낳도록 하자고 남편과 상의했다. 며칠 후, 나디아는 건강한 신랑을 맞으러 떠났다. 닷새쯤 후 데리러 와 달라는 말을 듣고 집에 왔다. 자식과 헤어진 것처럼 허전하고 약간 슬프기까지 했다.
나는 모태신앙이다. 어머니는 항상 내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줬다고 했다. 거짓말인 줄 후일 알았지만 싫지 않았다. 온 식구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나는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았다. 어려움이 있어도 잘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헤쳐 나갔다. 내가 결혼했을 때 어머니의 바람은 5년 안에 집을 사는 것이었다. 전세금 1억 원 정도인데 어떻게 집을 살 수 있을까?
나와 남편은 지독한 구두쇠도 아니다. 지금 당장 가능성 없는 일에 골똘히 매이지도 않는다. 쓸 거 쓰고 즐길 거 즐긴다. 남편은 무엇이든 신중하게 생각하며 지출한다. 결혼하면서 새 차로 바꿀 때도 모아 놓은 돈으로 샀다. 이런 남편을 알뜰하고 좋은 사위라며 어머니는 좋아했다.
친구가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이사했다. 집들이로 초대받았을 때 맘껏 예쁘게 꾸민 집을 구경하고 살짝 샘이 났다. 아! 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부지런히 저축한다면 가능할까? 주택청약저축은 착실히 부어 가고 있다.
남편은 외국계 회사를 다니고 있다. 해외 출장이 잦은 편이며 항공회사에 쌓인 마일리지가 많다. 혼자 해외 출장 갈 때면 나도 따라간다. 돈 모아 집 살 생각 안 하고 쓸데없이 여행만 다니느냐며 어머니의 근심이 크다.
“언제 집 사려고 그렇게 돌아다니니?”
“엄마, 비행기표 공짜예요.”
이해할 수 없다는 어머니를 설득해야 했다. 사실 내가 현지에서 쓰는 돈은 꽤 많았다.
휴일이다. 늦게 잠이 깬 우리 부부는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TV 뉴스에서 특종 뉴스가 나오고 있다. 눈이 동그래져 고개를 쭉 내밀었다. 신혼부부를 위한 정부 정책 하나로 내 집 마련을 위한 프로젝트이다. 시중 W 은행에서 시행한다. 조건이 부합된 제한된 상품이다. 월요일 일찍 은행을 찾아갔다. 집 구매를 대출해 주고 2년이 지난 후 매각할 경우, 발생되는 이익을 절반으로 나눈다는 조건이다. 2년 되기 전이라면 이익을 나누지 않아도 된다. 조건은 좋지만 내가 구입하고자 하는 집이 아파트여야 하고 은행에서 인정할 수 있어야 된다. 마음이 급해졌다.
어머니와 함께 부지런히 집을 보러 다녔다. 며칠째, 이곳저곳을 헤맸다. 날마다 지쳐서 들어오는 나를 바라보고 남편은 말했다. 우리가 무리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남편은 성격이 차분하다. 준비가 안 된 일을 무리하게 시행하지 않는다. 그대로라면 주택청약으로 당첨되어 순서대로 치러 나가기를 원한다. 나는 다르다. 가능성이 있으면 밀고 나간다. 정부에서 주겠다는 혜택을 힘껏 노력해서 받아보자는 신념이다. 될 것이라는 믿음을 두고 행동한다. 집 계약서만 얹으면 은행에서 준비하라는 대출 서류는 완성된다. 마음이 바쁘다. 금융권의 한정된 지원이라 마감될까 봐 더욱 불안하다. 이 나라에 집을 구하고자 하는 신혼부부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게 이 행운이 올까? 나는 간절히 기도한다. 해가 뉘엇 넘어갈 무렵 미리 봐둔 집을 보기 위해 어머니와 동행했다. 부동산에 들러 중랑천가에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를 보았다. 건너편에는 수락산이 보인다. 연식도 오래되었지만 집 주인의 다급함이 더 커 주변 시세보다 싸게 내놓았다. 어머니도 나도 마음에 들었다. 수리만 예쁘게 하면 산과 개천이 어우러져 전망이 멋질 것 같았다. 이 집으로 정했다. 계약금 준비해서 내일 오겠다고 하니 있는 대로 내라고 한다. 2십만 원을 걸고 2억 조금 넘는 집을 계약했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 바라보며 이게 가능한 일인가라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은행에서 결정이 나는 일주일 후 중도금을 치른다고 했다. 흔쾌히 승낙한다. 숨 막히는 일주일이 지났다. 결정이 되었다는 문자가 은행으로부터 왔을 때 뛸 듯이 기뻤다. 내게 행운이 찾아왔다. 계약에서부터 은행 일까지 순조롭다.
우리는 예쁘게 집수리를 하고 이사했다. 아침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온다. 중랑천의 물 흐름이 반짝인다. 제법 큰 물고기 떼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조깅을 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들이 길게 줄지어 상류 쪽을 향해 달린다.
나디아 출산일이 다가왔다. 나는 커다란 종이박스를 준비하고 옆쪽을 텄다. 신문지 위에 폭신한 패드를 깔아 주었다. 나디아는 자신을 위한 준비인 줄 알고 잘 들어가 쉬고 있다. 장갑에 가위까지 모두 꼼꼼히 소독해 놓았다. 긴장된다. 동물병원 의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나디아 뱃속에 4마리의 아기 냥이가 있다. 출산일이 가까워져 계속 우리 내외는 설잠을 자고 있다. 나는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내 얼굴을 부비는 나디아의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래, 나디아! 배 아파?”
야옹 야옹. 나디아 뒤를 따라 산실로 갔다. 평소엔 남편을 더 따르더니 자신을 위해 나를 선택한 것이다. 신기하고 놀랍다. 괴로운 듯 몸을 뒤척이는 나디아의 배를 살살 쓸어 주었다. 여러 번 힘을 주던 나디아가 첫 번째 아기 냥이를 내보내려 한다. 남편과 나는 숨소리도 죽이며 바라보았다.
“나디아, 힘내!”
물기가 흥건한 작은 꼬물이가 엄마 똑 닮은 얼룩털을 온몸에 감고 한참 만에 나왔다. 남편과 나는 산모 뒷바라지에 꼬박 밤을 새웠다. 나디아는 예쁜 아기 4마리를 낳았다. 두 마리는 엄마 닮았고 두 마리는 아빠를 닮았는지 흰 털에 약간의 노란색을 띠었다. 한 마리만 암컷이고 세 마리는 수컷이다. 쪼그만 손을 바동대며 어미 젖을 빠는 모습은 정말 귀엽다. 우리는 예쁜 꼬물이들의 귀여움에 기뻐하며 날마다 즐거웠다.
2개월이 지났다. 저희끼리 야옹거리며 싸우고 넘어지고 야단법석이다. 지켜보던 나디아가 쫓아가 ‘앙’ 하며 깨문다. 교육시키는 걸까?
꼬물이들이 솜뭉치처럼 동글동글해졌다. 그들 앞에서 나는 종종 걸으며 따라오라는 신호를 준다. 뭘 알고 오는 걸까? 뒤뚱뒤뚱 가는 꼬리를 곧게 세우고 쫓아오는 모습은 정말 귀엽다. 내가 방향을 틀어도 잘 따라온다. 거실에 놓인 다육이 화분이 뿌리째 뽑히며 나뒹군다. 태어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나디아가 수유를 거부한다.
엄마를 꼭 닮은 암컷은 언니에게 보냈다. 하얀 수컷 한 마리는 어머니에게 보냈다. 후일 언니에게 보낸 암컷이 두 마리의 아기 냥이를 출산했다. 모두 수컷이다. 한 마리는 언니가 키우고 한 마리는 큰언니를 주었다. 오빠를 제외한 우리 가족 모두는 캣맘으로 냥이의 집사가 되었다. 모이면 자신의 냥이가 제일 예쁘고 잘났다고 자랑한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주말이다. 남편과 외식을 하러 나섰다. 음식점 가까운 곳에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있다. 밥 먹고 저기 한번 가 보자고 남편에게 물었다. 큰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는데 입지 조건이 좋고 또 평당 가격이 쌌다. 공원이었던 곳을 개발하게 되어서라고 한다. 우리는 신혼부부이고 또 이곳 주민이라 청약 조건이 1순위가 된다. 고민 없이 청약하고 당첨 날짜를 기다렸다. 어머니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나도 열심히 기도했다.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발표날이다. 35평대의 남향집으로 당첨되었다. 어머니는 로또에 당첨된 것이라며 기뻐했다. 우리는 마음이 바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빨리 팔아야 한다.
새로운 아파트는 2년 후 입주한다. 매각하는 것을 서둘러야 한다. 집에 대한 문의는 자주 오고 있는데 움직임이 없어 불안하다. 3개월이 지나자 초조해진다. 2년 되기 전에 매각해야 이익금이 얼마가 되었든 은행과 나누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다급해져 시세에서 1천만 원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1천만 원을 더 내리고 난 며칠 후, 결혼할 예비 신혼부부가 찾아왔다. 이 집은 내 취향대로 인테리어를 예쁘게 했고 채 2년이 안 되어서 아주 깨끗하다. 그들이 다녀간 후 어쩐지 기분이 좋다. 이튿날, 그들이 부모와 같이 왔다. 그리고 계약이 이루어졌다. 불과 일주일의 기간을 남겨 두고 우리는 은행과 이익금을 나누지 않아도 되었다. 아슬아슬한 이 줄다리기가 결국 이루어짐은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증거라 믿고 싶다.
남편과 나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2년 동안 거주할 집을 찾기에 바빠졌다. 이곳도 저곳도 부지런히 다녀보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 집이 좋으면 교통이 나쁘고 교통도 좋고 편의시설이 좋으면 집이 형편없다. 우리 내외가 집 구하기에 지쳐갈 무렵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모든 조건이 아주 좋은데 비싸다는 것이다. 괜찮으면 보고 결정하라는 연락이 왔다. 하월곡역 Co-스타클래스이다. 이곳은 한쪽은 아파트이고 한쪽은 아파텔이다. 비싼 월세와 관리비가 마음에 걸렸지만 우리는 풀옵션이 되어 있는 아파텔을 얻기로 했다. 1억 원의 보증금은 우리의 입주 날짜에 맞추어 돌려받기로 약속했다. 한남동까지 지하철이 있어 남편의 출근이 쉬웠다. 지하엔 마트와 상가가 있어 편리했다. 운동시설도 잘 되어 있다. 손님이 오면 게스트룸을 빌릴 수 있다. 어린이 수영장이 있어 언니가 딸을 데리고 왔다. 서울 시내에 살면서도 게스트룸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침실에서 내다보이는 내부순환도로 위 자동차 불빛은 휘황찬란하다. 처음엔 신기했지만 잠을 이룰 수 없어 고통이 되었다. 안쪽으로 침실을 바꾸고부터 꿀잠을 잤다.
시간이 흘렀다. 우리가 입주해야 할 아파트가 완성되었다. 옵션으로 쓸 나만의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L 건설사 사무실에 갔다. 침실 옆에 작은 옷방과 화장대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서재도 꾸미고 다용도 창고 앞에는 작은 찻장을 넣었다. 남편은 자기 방을 따로 하나 쓰겠다고 했다. 피큐어 등 레고를 진열해 놓고 혼자 조용히 게임도 즐겨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사하는 날 어머니가 일찍 도착해 냥이 3마리를 돌봤다. 짐이라곤 별로 없다. 침대와 세탁기, 남편이 아끼는 자전거 2대 등 자잘한 것뿐이다.
나는 미리 주문한 가구들을 시간대에 맞추어 오도록 했다. 잠시 창밖을 내다본다. 27층의 맨 위층, 우리 집에 밝은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온다. 많은 차들이 외곽순환도로 위를 쌩쌩 달린다. 저 멀리 보이는 웅장한 사패산은 짙은 녹음을 가득 품고 있다. 상쾌하다. 나는 무척 기뻤다. 내가 원하는 대로 시공됐고 탁 트인 전망, 맑은 공기, 모두 흡족하고 만족스럽다. Co-스타클래스에서 햇볕을 즐기지 못한 냥이 세 마리가 평안히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햇살 속을 뒹군다. 남편 방과 서재까지 다 정리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거실 바닥재 하얀 타일이 반짝인다. 남편은 굳이 왜 이것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깨끗해서란다. 바닥 골이 반듯이 고르지 못한 곳을 지적하며 마뜩찮아 한다. 남편은 이곳저곳 공사 하자 부분을 찾아 메모한다.
나는 우연한 일로 커피 프렌차이점을 하게 되었다. 남편의 회사 동료 부인이 운영 중인 커피 프렌차이점 수입이 좋다는 자랑을 여러 번 들었다.
“우리도 해 볼까?”
남편이 말했다.
“우리가 지금 뭔 돈으로 해.”
“그렇지? 이사하느라 돈도 많이 썼는데…. 그런데 그 말이 정말인가 봐. 자기 수입보다 와이프 수입이 더 많다고 하면서 2호점을 내 볼까 알아보는 중이래.”
“글쎄, 호감은 가는데 아직 우리는 힘들지.”
우리는 이 일을 잊고 지냈다. 추석이 되어 시집에 갔다. 식구들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로 꽃을 피웠다. 시어머니 친구 분의 딸이 커피 프렌차이즈를 크게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바로 남편의 동료가 하고 있는 그 커피 프렌차이즈였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이 신기해서 눈을 크게 뜨고 어떤 상황인가를 궁금해 했다. 이렇게 해서 시어머니의 소개를 받고 커피 프렌차이점을 내게 되었다. 나는 몹시 바빠졌다. 10여 명이 넘는 아르바이트생을 관리하며 이끌어 가기에 힘들었다. 15평으로 적당한 크기의 커피 프렌차이점은 집에서도 가깝고 대단지 아파트를 접하고 있기에 그런대로 수입은 좋았다.
우리 아파트 단지 편의점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늘 볕을 쬐고 있다. 이곳을 지나다니며 이 냥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기에 예사롭지 않았다. 사람들이 간식을 주는지 가끔 무엇을 맛나게 먹고 있다. 길냥이치고는 참 순한 편이다. 가만히 쓰다듬어 주면 좋아한다. 날마다 이 냥이를 보기 위해 먹을 것을 갖다 주며 하릴없이 편의점에 들른다.
며칠 전부터 편의점 냥이가 보이지 않는다. 궁금해서 이곳저곳 찾아보았다. 가까운 곳에 있는 경비실 아저씨에게 부탁했다. 냥이를 보면 연락해 달라고 내 연락처를 주었다. 어느 주일날 예배를 보는 중 경비 아저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문자를 했다. 그런데 온 답은 나를 놀라게 했다. 그 냥이가 차에 치여 죽은 것 같다고 한다. 사실일까? 단지 앞 주택가도 들락이는 것 같았다.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난다. 집에 와서 다시 확인해 보니 그 냥이가 맞다. 차에 치여 누군가 지자체에 신고했다고 한다. 종일 우울하다. 배고프니까 밥 찾으러 이곳저곳 다니다 변을 당한 것이다. 너무 불쌍하다. 지자체에서 거두어 갔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이대로 두고 볼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길냥이를 돕자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편의점 앞 냥이의 사진을 올렸다. 5명의 캣맘이 동참했다. 이미 개인적으로 돕고 있는 분도 있었다. 처음엔 주 1회 정도 모여서 어떻게 운영할까 상의해 가면서 움직였다. 주 단위로 허락되는 시간을 각자 밥 주는 날로 정했다. 캣카페에는 그날 있는 특별한 일 등을 올렸다. 새로운 냥이의 소식이며 아픈 냥이가 없는지 세심히 관찰한다. 아픈 냥이는 포획하여 병원에 데리고 간다. 진료비는 나누어서 내기도 하고 형편이 좀 괜찮으면 많이 부담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나는 적극적인 캣맘이 되었다.
아래층에 사는 영미 언니도 캣맘이 되었다. 영미 언니는 우리나라 전역을 돌며 강아지 구출하는 데 참여한다. 학대 견주들과 협상해 개들을 사오기도 한다. 병원에 보내 치료하고 중성화시켜 좋은 가정으로 입양 보낸다. 국내 입양이 어려우면 해외로 보낸다. 나는 내 바쁜 일이 있어 적극적으로 이 일에 협조하지 못하지만 가끔 병원비가 생각 외로 많이 들 때 협조해 준다.
우리는 냥이들의 집을 마련하고 건강 체크를 하기 위해 한 마리씩 포획했다. 중성화 수술을 해 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래야 개체 수가 늘지 않고 또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병원비가 좀 많이 들지만 여유 있는 회원이 부담한다. 회원 중에는 대학생도 있다. 시간 내어서 고양이 밥 주며 돌보겠다는 것도 고마운데 경비를 부담시킬 수는 없다. 그들도 사료를 사서 봉사하기 때문에 충분히 고마웠다. 이곳에서 밥을 먹는 여러 마리의 냥이를 모두 중성화 수술 끝냈을 때 큰 짐을 덜어낸 것 같아 홀가분했다.
1처소에서 밥 먹는 사월이가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냥이끼리 싸움을 한 것인지, 아니면 누가 일부러 해코지를 한 것인지 뱃살이 깊게 갈라져 있다. 나는 놀라 사월이를 데리고 급히 병원에 갔다. 제법 길게 칼로 그어진 듯 깊게 패인 상처는 급히 봉합하고 며칠을 입원해야 했다. 원인도 모르고 대답도 들을 수 없어 답답하다. 또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나온다. 남편은 이 모든 병원비를 영미 언니와 함께 나누는 줄 알고 있는데 이번 일은 나 혼자서 다 부담했다. 사월이는 열흘 동안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약도 먹이고 상처도 아물지 않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남편에게는 임시 건강 회복할 때까지라고 했다.
그렇게 사월이는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우리 식구가 되었다. 어머니는 왜 내보내지 않고 키우느냐지만 어떻게 내보낼 수 있겠는가. 사월이가 측은해 도저히 내보낼 수 없다는 생각을 우리 부부는 동시에 하게 되었다. 3마리의 우리 집 냥이는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데 사월이를 내보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정도 많이 들었다. 사월이는 낯가림이 심해 하루 종일 숨어 있다. 우리 냥이 중에 서열이 제일 낮은 막내인 쟝과 살짝 어울린다. 쟝이 꼴찌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어미인 나디아는 까칠하게 사월이를 내친다. 시간이 지나 모두 잘 어우러져 행복해지길 바란다.
남편이 프랑스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마음에 맞는 직원 3명과 같이 갔다. 일정은 스위스까지 간다는 목표를 세워 한 달 전부터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렸다. 남편의 이 꿈은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고 이루어질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같이 떠날 수 있는 동료가 생겨 일정을 맞추기에 바빴다. 한꺼번에 직원 셋이 떠나야 하기에 사장의 특별 배려가 있어야 했다. 외국계 자전거 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영미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급히 구조해야 할 냥이가 있다고 빨리 나오란다. 매장에서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 교육을 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부랴부랴 앞치마를 벗고 나섰다. 집에서 키우던 냥이인 것 같은 페르시안 품종묘이다. 우리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순둥이다. 길을 잃었을 것이라며 사진을 찍어 아파트 이곳저곳에 붙였다. 2주가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는다. 유기한 것일까? 우리는 입양처를 알아보았다. 예쁜 냥이라서인지 곧 연락이 왔다. 먼저 병원에 들러 병은 없는지 이런저런 검사를 했다. 케이지에 넣어 멀리 강남까지 데리고 갔다.
며칠 후, 키우기 힘들다는 파양 소식이 왔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동물을 대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파양 의사를 접하면 지체 없이 데리고 온다. 다시 또 더 먼 남쪽 지방 김해에서 연락이 왔다. 영미 언니와 나는 파양된 냥이를 데리고 아침 일찍 떠났다. 우리의 걱정은 자신이 파양된 것을 알고 스트레스로 아플까 봐 조심스러웠다. 제발 잘 적응해 행복하게 살아주었으면 하고 기도한다.
영미 언니도 나도 이렇게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둘이 어쩌면 똑같이 보살펴야 할 자식이 없는 것이다. 영미 언니의 남편은 참 대단한 분이다. 보통 가정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이 가정에서는 다반사 일어나고 있다. 집을 비우고, 돈을 맘껏 쓰고, 삶의 우선순위가 고양이나 개로 뒤바뀌어 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영미 언니의 남편은 항상 묵묵하다. 나는 그나마 내가 돈을 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영미 언니는 비싼 휘발유값 없애며 전국을 돌아다닌다. 내가 이러면 아마 내 남편은 질색할 것이다. 가끔 농담인지 진담인지 집안에 있는 나와 냥이들 밥이나 착실히 주라고 한다.
봄이 왔다는 소식이 오래인데 날씨가 춥다. 오늘은 추적추적 진눈깨비가 내린다. 급히 캣맘한테서 전화가 왔다. 주차장 근처 수로에 아기 냥이가 빠져 울고 있다고 한다. 까만 아기 냥이가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근처를 둘러보았지만 같은 또래의 새끼 냥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어미 냥이도 없다. 추워서 차 본닛에 들어갔다가 실려 온 듯하다. 길에 어린 냥이가 혼자 있는 것은 거의 본닛 속에 들어갔다가 추락한 것이다. 이 어린 것이 어디서 실려 왔을까? 어렵게 수로에 내려갔다. 작은 냥이를 수건에 싸서 들고 올라오려다 미끄러져 넘어졌다. 툭툭 털고 일어섰지만 이튿날, 오른쪽 팔목이 아팠다. 아기 냥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 이것저것 검사했다. 예방주사를 놓고 귀 청소를 했다. 어머니에게 맡기기로 하고 우리 아파트 단지 내 임시 보호해 줄 가정을 찾아 일주일 맡겼다. 어머니 댁에 고양이가 있기 때문에 곧바로 보내지 못한다. 일주일 동안 관찰해야 한다.
남편도 없는데 팔목이 여전히 아프다. 인대가 찢어져 수술 날짜를 잡았다. 반깁스를 하고 불편한 하루하루를 지낸다. 2주일 정도 조심히 지내야 한다. 매장 알바생의 할아버지가 아픈 냥이를 구조해 병원 치료를 해주었다고 한다. 농사짓는 시골에서의 동물 병원비는 큰 부담이다. 보탬이 되라고 넉넉하게 후원금을 보냈다. 고맙다고 농사 지은 귀한 쌀을 보내왔다.
이웃 단지의 캣맘이 사진까지 보여주며 구조해야 할 냥이가 있다고 여러 번 청한다. 경기도 화성까지 이틀씩 쫓아다니고도 구조하지 못했다. 그들을 포획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계속 밥을 주며 얼굴을 익히고 목소리를 익히고 그들의 습성을 알아야 한다. 씁쓸히 불편한 마음으로 되돌아올 때 이 먼 곳까지 뭔 일이람? 내 오지랖을 나무랬다.
캣맘으로 활동한 지 5년이 지났다. 이제는 냥이의 모습을 보면 아픈지 건강한지를 가늠한다. 길냥이들의 겨울나기는 최악이다. 얼어 죽는 냥이들도 많다. 귀 진드기에 시달리고 구내염으로 제대로 소화시키지도 못하는 많은 냥이들이 밖에서의 수명은 3년이다. 집냥이의 수명이 16년 정도인데 비해 극히 짧다. 정성을 다해 밥을 주고 잠자리를 챙겨줘도 길냥이가 우리 곁에 있는 것은 잠시일 뿐이다.
나는 왜 열심을 다해 냥이들을 돌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다. 어린 나에게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켰다. 곧잘 쪼르르 움직이며 불편한 아버지의 발 역할을 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유방암을 앓았다. 완쾌 판정을 받기까지 나는 늘 어머니 모습을 살피고 긴장했다. 결혼하고 시아버지가 암으로 투병하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집이며 병원이며 정신없이 들락거렸다. 그리고 시어머니 무릎 관절 수술을 끝으로 시집이나 친정이 평온한 가운데 있다. 나는 내가 길냥이를 돌보는 것이 이 모두를 어우르는 것이라고 억지로 맞추어 생각한다. 아마 남편의 불만을 미리 차단시키는 방패막이의 언질이기도 하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무척 기쁘다. 세상에 태어난 작은 생명. 저들이 나를 기쁘게 맞으며 야옹일 때 무한한 행복을 맛본다.
어머니에게 입양 간 까만 아기 냥이는 밤이면 어머니 품에서 꾹꾹이를 하고 젖을 찾는다. 측은한 생각이 들어 불쌍하다가도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힘들다고 파양 생각까지 했다며 알려 온다. 어머니는 딸을 생각해서 견뎌 보자며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다. 까뮈.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의 피에 누아르 작가이자 언론인이며 철학자이다. 43세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멋진 냥이가 되어 달라는 어머니의 소망이 담긴 것 같다. 그런대로 어머니가 까뮈에게 위로를 받는 것은 8살 된 하얀 냥이 설이의 친구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설이는 얌전한 냥이라 활동량이 아주 적다. 늘 잠자고 있어 어머니는 설이의 건강을 항상 염려했다. 조그마한 까뮈가 겁도 없이 큰형에게 치근댄다. 귀찮고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던 설이가 함께 우당탕 뛰어다닌다. 어머니는 설이를 위해서 너를 사랑해 보도록 하겠다며 마음을 돌렸다. 이제는 개냥이처럼 졸졸 쫓아다닌다.
어머니는 까뮈 입양 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어 했다. 온수매트 호스를 물어뜯어 고쳤고 책장 위, 찻장 위, 공간이 있는 곳은 어디든 날쌔게 올라갔다. 오죽하면 문짝이 달린 주방 가구로 모두 교체했다. 식탁 위 집기들은 모두 서랍 속으로, 쓰레기통은 모두 뚜껑 달린 것으로, 화장대 위 가지런히 놓인 화장품도 모두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열대어가 있는 커다란 수족관에도 뛰어 들어가 법석을 떨어 뚜껑을 덮었다. 유별스럽고 영리하고 건강한 냥이라고 투정인지 칭찬인지 모를 푸념을 매주일 나는 들어야 했다.
주일 아침이면 어머니와 언니와 함께 내 차로 교회 간다.
“야! 그 까만 놈, 이제는 좀 귀엽다. 아직도 잘 때 품으로 파고든다.”
“에이! 이제 좀 예뻐해 줘요.”
“야! 그놈 그렇게 사부작대니까 지 엄마 잃어버린 거야.”
까맣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까뮈가 제법 컸다. 엉덩이 쪽 땅콩 두 개가 탱글탱글 익었다는 어머니 표현에 이제 중성화 수술을 할 시기가 왔구나 생각했다. 서둘러 해 줘야 집 안에 스프레이를 하지 않는다. 이 일까지가 어머니에게 분양시킨 냥이의 내 중요한 임무이다.
며칠째 대장 냥이 장고가 보이지 않는다. 심한 구내염으로 계속 약 먹으며 이제 건강해졌는데 어디 있는지 걱정이다. 가끔 하루 정도 보이지 않을 때는 있었다. 캣맘들이 장고 찾기에 온힘을 기울였다. 항상 장고 옆에서 호위무사처럼 붙어 다니던 점박이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교통사고를 당했나? 전에 편의점에서 살던 냥이 생각이 울컥 나 더 불안하다. 근처 창고 쪽에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는 제보를 받고 급히 달려갔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니 구석진 곳에 나무판자가 널브러져 있다.
“장고? 장고?”
조심스럽게 불러 보았다. 구석진 곳에서 점박이가 야옹하며 나온다. 영미 언니와 나는 점박이를 부르며 가려져 있는 합판을 치웠다. 그곳에 장고가 누워 있다. 곧 죽을 것 같았다.
“아! 어떡해.”
나는 엉엉 울었다. 빨리 병원에 가야 했다. 겨우 목숨이 붙어 있는 장고는 아무런 저항 없이 나의 품에 안겼다. 영미 언니는 나를 진정시키고 다른 캣맘에게 전화를 한다. 장고를 데리고 갈 케이지에 패드를 깔고 가져와 달라고 부탁한다. 장고의 병명은 심각했다. 오랫동안 약을 먹어 신장이 다 망가졌고 며칠 동안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어 심한 저체온증이다. 수액을 맞으며 지켜 보자고 한다. 3일째 되는 날, 의사는 내게 조심스레 의견을 물었다. 아무 차도가 없으니 다른 치료로 바꿔야 하는데 꼭 회복될 것이라 장담 못한다고 한다. 치료 중 죽을 수도 있다. 고통을 계속 받게 하느니 안락사가 최선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더 이상 장고의 고통스러움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긴급히 캣맘들과 상의했다. 모두의 의견은 지금의 상태에서 생명 연장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안락사는 장고를 먼저 잠재운 다음 주사 주입을 해서 고통 없이 보내는 것이다. 의사는 내게 이 과정을 지켜볼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며 선택권을 주었다. 마지막까지 내가 보내고 싶어 장고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그동안 내게 와 줘서 고마웠고 기뻤단다. 너의 다음 생이 있다면 부디 건강하게 태어나라. 그리고 내게 와 줘라.
잠시 후 주사약을 주입시켰다. 자는 듯 장고는 우리 곁을 떠나갔다. 화장장 계약을 하고 장고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부패를 막으려고 아이스팩을 여러 개 깔고 그 위에 장고를 눕혔다. 이제까지 장고를 지켰던 점박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하려고 데리고 나갔다. 장고가 화장장으로 떠나기 전 점박이에게 말해 주었다.
“점박아, 장고는 이제 별나라로 간다. 같이 있어 주어서 고맙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점박이가 장고에게 부비를 하고 숲으로 사라졌다. 그런 모습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장고의 장례 절차가 진행되었다. 우리는 장고가 누울 예쁜 바구니를 골랐다. 장례사가 염습을 해서 단독 추모실로 데리고 왔다. 그곳에 꽃을 뿌려 주고 간식을 넣었다. 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장고를 한 번 쓰다듬었다. 추모의 시간이 끝나고 장고는 개별 화장의 가마 속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는 동안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평시에 활발하던 영미 언니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볼 뿐이다. 30분 정도 지나 장고의 뼛가루가 담긴 한지 봉지가 예쁜 사기 단지에 담겨져 나왔다. 이곳을 들락인 것이 처음도 아닌데 장고를 보내는 것은 더 가슴이 먹먹하다. 아픈 냥이라 돌보기에 더 심혈을 기울였나 보다.
새로운 대장은 점박이가 된 것 같다. 장고를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나, 같이 있는 냥이들을 잘 다스린다. 다시 L캐슬 단지 내 길냥이들은 평화가 찾아왔다. 한 줌밖에 안 되는 장고의 뼛가루가 묻힌 3처소 소나무 밑은 냥이들이 언제나 뒹굴고 논다. 침 흘리며 다가오는 장고가 그리워진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다. 매장은 찬 음료를 찾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쉴 틈도 없이 제빙기가 돌아가고 알바생은 자신의 업무 시간이 끝날 때까지 분주한 손놀림으로 지쳐 간다. 이럴 땐 내가 들어가 도와줘야 한다. 뭐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소화를 못 시킨다. 더부룩하며 메스껍다. 늦은 시각 매장 뒷정리를 끝내고 집에 왔다. 저녁 먹을 짬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먹었다. 배는 고픈데 딱히 무엇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 냉장고를 뒤적이다 먹다 남은 피자 한 조각을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렸다. 주스와 같이 식탁 위에 놓았다. 한 입 떼어 먹으려는 순간 구토가 심하게 나온다.
“웩 웩.”
단단히 체했구먼. 먹는 걸 포기하고 그냥 잠들었다. 아침에도 심한 헛구역질에 병원을 찾았다.
“임신 같은데요.”
의사의 말에 당황했다. 전혀 생각지 못했고 너무 바빠 생리 현상까지 잊고 있었다. 산부인과에 들렀다. 정확하게 임신 4주 차라고 한다. 신기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이런 기쁨의 표현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높은 하늘의 푸름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