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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정원 내 죽음을 기억할 사람의 범위에 대하여

검색해 보니 있다. 비록 뉴스레터긴 하지만, 인터넷 시대라 찾을 수 있었다. ROTC 동문회가 추모행사를 개최했다는 한양대 동문회보의 기사다. 추모되는 분은 고 이인희. 순직 당시 계급은 중위.

‘1966년 5월 18일 강원도 양구 송청교 복구공사 중 기중기 고장으로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부하들을 구하고 승화했다’고 한다. 추모비는 그해 11월 11일 건립됐고. 추모행사에는 ROTC동문회장, 학군단장, 후보생들이 참석했단다.

이인희라는 이름은 전혀 몰랐다. 한양여대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캠퍼스를 같이 쓰는 한양대 교정을 다니다 발견한 추모비에서 처음 보았다. 사실 자주 지나다녔어도 이름까지 기억되지는 않았다.

추모비에서 뚜렷이 남는 이름은 조지훈이다. 학창시절 국어시험에서 스트레스 받았던 이름 중 하나. 비문을 지었다고 한다. 조지훈 정도 되면 나름, 아니 상당히, 역사적 인물 아닌가? 고 이인희 중위는 내가 태어나기 6년 전에 유명을 달리했는데, 당시 조지훈은 교수였던 모양이다.

이제 삶의 반환점이 가까워지고 있어서일까? 남은 삶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뜬 뒤 누가 나를 기억할지 궁금하다. 반백 년을 살아오는 동안 내가 조지훈만한 역사적 인물과 인연이 있던가? 내가 죽게 되면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인물이 추모의 비문을 써줄까? 아니 글을 새길 만한 비석 하나 서지 않겠구나. 봉분 묘역은 납골당으로 대체된 지 오래라 비석을 세울 일도 없는 시대인데 ….

언제 전화번호부가 없어졌는지 돌아본다. 휴대폰이 대중화될 때 집 전화를 쓰지 않게 될 줄 몰랐다. 몇 년은 집과 휴대폰 번호를 같이 적었는데, 곧 자택은 빈칸이 되었다. 뭐라도 반드시 채워야 하는 온라인 서식에는 111에 2222 같은 아무 숫자나 넣곤 했다.

그나마 내 이름이 남을 역사 기록으로 거의 유일했을 전화번호부. 좀 아쉬웠다. 어릴 때 가끔 전화번호부에서 아버지 이름을 확인하곤 했다. 요즘처럼 개인정보 보호를 중시하는 시대엔 전혀 생각하기 힘든 야만(?)의 시절에 가진 추억이다.

어머니 두 분이 지병으로 60대에 일찍 세상을 떴다. 궂긴 소식을 전하며 언론사에도 보냈다. ㄷ일보에서 두 분 부고를 모두 실어주었다. 역사 기록으로 신문 한 귀퉁이에 이름 석 자 정도라도 새겨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딘가에 묻혀 있다면, 자손들 말고도 누군가 지나다 보기라도 할 테다. 의식은 벌써 꺼지고 몸도 썩어버렸을 텐데, 정작 나는 알지도 못할, 죽음 뒤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이 마음은 도대체 뭘까?

그래도 자식들과 아이들은 한 번씩 찾아주겠지. 세상을 뜨기 전 제사는 지낼 필요 없다고 할 생각인데, 그러면 아예 찾아오지 않으려나? 아마 가끔, 아주 띄엄띄엄, 몇 년에 한 번씩은 찾겠지? 제사를 안 지내면 장례가 끝나면 끝이려나.

언젠가 유명한 물리학자가 이순신 장군 숨결 계산법을 설명했다. 50년 넘게 장군이 내쉰 숨은 수억 톤이 넘는다. 균질하게 지구상에 분포된다고 가정한다. 몇백 년이 지났지만 지금 우리가 이순신의 숨결을 말 그대로 함께 들이마실 수 있다. 황당무계해 보이지만 대학자께서 물리학적으로 고찰해 주시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같은 이치로 나의 숨결도 그대로 남게 되겠다. 흙으로 돌아간 내 몸도 어딘가에 그대로 머무를 테다. 그렇다면 나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아니 지구가 남아 있는 한 영속할 테다. 굳이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아니다. 지구가 사라져도 우주의 한 줌 먼지로는 계속 남을 테니, 나는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된다. 영원히 ‘산다’가 틀렸다면 적어도 영원히 ‘존재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정리가 된다. 죽은 뒤 나를 누군가 기억해 주기를 바랄 필요도 없다. 어차피 영속하는 존재인데, 몇 사람 더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그런데도 가슴 속의 어딘가에서는 이순신이 부럽다. 직계 혈족 후손 이외에 몇 사람이라도 나를 더 기억하기를 바란다.

삶은 언제든 끝나기 마련이고 나라는 존재는 우주 어딘가에서 영속한다. 평생 많이 공부해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가족을 넘어 사회적으로 기려지는 이인희 중위가 부럽다.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추할까? 얘들아! 아빠가 죽으면 신문사에 부고를 꼭 보내다오. 이제는 전화번호부도 없잖니? 할머니 두 분은 아빠가 신문사에 연락했단다. 이순신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누군가 한 명이라도 더, 아빠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렴. 부탁한다. 아, 이왕이면 금방 망할 신문 말고 큰 데다 해 다우.

권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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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026.03.17
창작정원 할머니의 밀주

나는 어린시절을 외할머니 곁에서 보냈다.

비록 한 집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늘 걸어서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할머니가 계셨다.

평택과 인천, 광주로 흩어져 지내던 이모들과는 달리, 외할머니는 언제나 우리 가족과 함께 머물렀다.

나는 종종 할머니집에서 할머니의 젖을 만지며 잠들곤 했다.

그 시절 가정에서 술을 담그는 일은 ‘밀주’라 불리며 법의 눈길을 피해 이루어져야 했지만, 할머니에게 술 빚기는 그저 삶의 연장이었다. 

몇 번이고 쌀을 씻고, 고두밥을 짓던 그 분주한 손길은 금지와 단속을 초월한 생활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에게 술은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자 위로였고, 아버지에게는 장모가 보내는 무언의 사랑이었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단속 공무원이 들러 “어머니, 이번 술은 향이 참 좋네요.”하고 웃던 장면은 지금도 희미한 영화처럼 남아 있다.

그 웃음 속에는 법보다 정이 조금 더 가까웠던 시절의 느슨한 온기가 있었다.

술을 빚는 날이면 할머니는 밤새 쌀을 씻고 또 씻으셨다.

그러면 나는 떡보다 더 맛있었던 ‘고두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밤새 침을 삼키곤 했다.

늦잠에서 깨어나면 달큼한 고두밥이 익고 있었다.

할머니는 고두밥을 주먹으로 꼭꼭 뭉쳐서는 콩고물에 묻혀 내 입에 넣어 주시곤 했다.

눈곱도 떼지 않고 오물거리며 맛보던 그 따뜻한 고두밥 맛은 지금도 내 향수의 깊은 자리에서 꺼내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누룩을 딛던 기억도 있다.

대접에 면포를 깔고 밀기울을 채운 후 발로 꼭꼭 딛던 할머니의 모습.

그 누룩은 마치 한 해를 품은 된장처럼, 할머니가 한 해를 점검하는 의식이었다.

그렇게 삼복의 항아리를 풍성하게 채우며 또 다른 계절을 기다렸다.

술을 담그시던 날이면, 할머니는 새벽 공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목욕을 하셨고, 물을 끓여 항아리를 닦으셨다.

돌이켜보면, 그건 단순한 정결함이 아니라 할머니가 술을 대하는 존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고두밥과 누룩을 정성스레 버무렸다. 

그렇게 항아리에는 밑술이 앉혀졌다.

술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시간을 들여 모셔지는 것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할머니가 빚던 것은 술이 아니라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다림을 견디는 법, 서두르지 않는 마음, 손으로 삶을 확인하는 방식.

그 모든 향기와 맛, 감촉과 체온 속에서 나는 비로소 배웠다.

삶에는 취하기 전에 먼저 숙성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는 언제나 할머니의 따스한 살 냄새가 배어 있었다.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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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2025.12.23
창작정원 배에 실린 것은 사람뿐이 아니었다

배에 실린 것은 사람뿐이 아니었다

 

군사학 수업에서 처음 배운 '전술적 철수(Tactical Withdrawal)'라는 단어는, 수십 년이 지난 후 내 가슴을 울렸던 '인류애(Humanity)'라는 단어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나는 흥남철수작전을 그저 지도를 펼쳐놓고 병력과 물자를 계산하는 냉철한 '철수작전의 성공적 사례'로만 배웠다. 메러디스 빅토리호(Meredith Victory)라는 작은 배가 군수물자를 바다에 버리고 피난민 14,000명을 태웠다는 이야기는 전술 교본에는 맞지 않는 '특이한 결정'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그 시절의 나는 전쟁과 군사작전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지극히 이성적으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군사 교리가 시키는 차가운 임무와, 인류의 역사가 기억하는 뜨거운 용기는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해 있었다. 그 배에 실린 이들이 느꼈을 생사의 공포와 절박한 희망까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젊었고, 인생의 고단함과 슬픔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살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작전이 단순한 군사적 후퇴가 아니라, 인류애의 위대한 상징이라는 사실은 오랫동안 나의 인식 밖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단지 '성공적인 철수율'이라는 숫자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임관 후 소령 계급을 달고 육군본부에서 근무하던 중, 워크숍 일정으로 거제도를 방문하게 되었다. 흥남철수작전을 처음 접했던 기억은 이미 오래전 일이었지만, 거제도 앞바다를 보는 순간 그 배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드넓고 차가운 해수면은 그날의 수많은 목소리를 삼킨 채 고요했다.

 이제 나는 한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피난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군사적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놓고 떠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절박한 생존이었다. 내 가족이 저 배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부모가 자식을 잃지 않으려 업고, 아내가 남편을 부르짖으며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려 했던 그 수많은 사연들이 한순간 머릿속을 덮쳤다.

 차가운 군사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 가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는 뜨거운 의지가 해수면 아래에서 밀려왔다. 이론과 숫자 뒤에 숨겨져 있던 그들의 절규가 비로소 귀에 들리는 듯했다.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진짜 전쟁의 기록은 총과 포탄이 아닌, 헤어짐과 기다림, 그리고 절박함이 남긴 눈물로 쓰인다는 것을. 거제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전쟁의 가장 깊고 인간적인 층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작전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지 많은 인원을 태웠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죽음을 피해 떠났고,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던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다섯 명의 아기가 그 배 위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전율했다. 바다 위, 좁디좁은 공간에서, 수천 명이 서 있는 틈 사이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 사람들은 죽음을 피해 배에 올랐지만, 배 위에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경이로운 아이러니였다.

 미군들은 그 아기들에게 김치원, 투, 쓰리, 포, 파이브 같은 기발한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인간의 생명을 향한 본질적인 애정은 국경과 이념을 넘는 것이었다. 그 아기들은 지금 모두 성인이 되어 그날의 유대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생애 가장 극적인 순간에 함께 태어난 인연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가족처럼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존재는 그 작전이 단지 철수가 아닌, 인류애가 승리한 배였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자꾸만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명백히 '군수물자 수송'이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을 것이다. 그것을 차가운 바다에 버리고 타국 사람들을 태운다는 결정은 일개 선장이 질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책임이자 규율 위반이었다. 눈앞의 임무와 배후의 책임, 그리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국 사람들의 절규 사이에서 그는 얼마나 긴 밤을 고뇌했을까.

 그가 짊어진 군수물자는 수많은 전력을 의미했지만, 라루 선장은 그 차가운 쇠붙이의 무게보다 14,000명의 생명이 지닌 뜨겁고 절박한 무게가 훨씬 더 무겁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결단은 명령 체계를 거스르는 것이었고, 그의 경력과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인류애라는 나침반을 따랐다.

 그는 군인이기 전에, 그리고 명령을 이행하는 선장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생명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를 따른 것이다. 그의 배는 이후 '작은 배에 가장 많은 인원을 태운 기적의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지만, 나는 그 기록보다 더 위대한 것이 라루 선장의 용기와 신념, 즉 '사람을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결정한 한 사람의 윤리적 잣대였다고 믿는다. 만약 그가 '규정대로'만 행동했다면, 흥남철수는 그저 기록 한 줄로만 남았을, 무수히 많은 작전 중 하나로 묻혔을 것이다.

 라루 선장의 결단은 '상관의 명령보다 양심의 명령을 더 두려워했다'는 성찰과도 맞닿아 있다. 라루 선장은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옳음'의 목소리를 따른 것이다. 이 결단은 군인의 '칼'과 인간의 '십자가'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민들은 배에서 내려 각자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은 채 홀로 남았고, 누군가는 낯선 땅에서 전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어릴 때 어른들이 "이북에서 온 분들은 정말 억척스러워"라고 말하곤 했다. 당시엔 단순한 성격으로만 들었지만, 이제 그것이 절박함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의 '생존 근육'이었음을 안다.

 그들은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고, 절약하며 자녀 교육에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대부분은 경제적으로도 자리 잡았고, 사회적으로도 높은 위치에 오른 이들이 많다. 척박한 땅에서도 기어이 뿌리를 내린 그들의 삶은, 절망의 끝에서 인간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였다. 그들의 억척스러움은 곧 끈기와 성실함으로 이어졌고, 이는 전후 한국 사회가 기적적인 성장을 이루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절망을 딛고 일어선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 이 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전쟁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그 아이러니한 시련 속에서 그들은 가장 강인한 삶의 의지를 단련해낸 것이다.

 이제 전쟁을 단순히 지도 위의 작전 선으로만 볼 수 없다. 그 선 너머에는 헤어진 가족,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이, 그리고 이름 없이 스러져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원히 숨 쉬고 있다. 흥남철수작전은 나에게 작전의 성공보다 더 큰 것을 가르쳐주었다. 바로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다는 '인간 연대의 힘'이다.

 나는 군인으로서 평화를 준비하며 동시에 이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고자 간절히 소망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지속되지만, 인간이 인간을 버리지 않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흥남철수작전이 바로 그 증거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단지 물자와 사람을 실어 나른 배가 아니었다. 두려움과 절망, 그 속에서 피어난 생존과 탄생,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버리지 않는 한 꺾이지 않을 인류애라는 거대한 짐이 함께 실려 있었다.

 군인의 칼이 '전술적 철수'를 명했을 때, 레너드 라루 선장은 인간의 십자가를 짊어지기로 결단했다. 그의 배는 전후 세대가 잊지 말아야 할 윤리적 나침반이다.

강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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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2025.12.21
창작정원 거짓된 사랑

처음부터 그대는 날 사랑한다 하였지만

그 말이 거짓이었음을

세월의 무게에 알았습니다

사랑의 쇠사슬에 현실의 무게가

감당 할 수 없을 정도로 짓눌러 올 때

난 숨을 쉴 수 조차 없었습니다

끝없이 주고 주어도

내가 더 이상

내 힘으로도 노력으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비참함을 울고싶은 나의 마음을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이젠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사랑도 현실의 무게도

모든 것을 놓을 때가 된 때를 알기에

뒤돌아 서려합니다

너무 힘든 사랑을 했기에

더 이상 후회는 하지 않겠습니다

세월의 무게에

나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입니다

당신은 나의 눈물을 본 적이 있나요?

나의 괴로움을 아시나요

이 모든 물음을 뒤로 한 채

이젠 "안녕" 이라 고백하고 싶은 밤입니다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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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2025.12.01
창작정원 그렇지

일출을 볼 수 없는 여운을

산책길에 만난 해송향이

마음까지 세척해 내는 기분은 뭘까?

바다경치가 있으니 그렇지.

저 구름 넘어 보름달

여전히 뜨고지겠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알아서일까?

파도소리에 묻히니 그렇지.

짙은 안개에 보슬비

가족들의 발걸음에

정을 더한 애(사랑)가 넘쳐 파도를 넘는다.

멀다않고 한자리에 모이니 그렇지.

뜨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숫자로 표현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느낄 수 있으니 그렇지.

그래서 가족인가 보다.

그러면 그렇지.

이홍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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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2025.11.19
창작정원 그림자에게 묻다

그림자에게 묻다

권준희

 

삶은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끊어진 선

그 선 위에서 흔들리는 나의 그림자

 

수풀 사이로 스며드는 빛길

낮은 구름자락에 매달린 그림자

안개로 덮힌 고된 하루가 지나고

저녁빛 그림자도 희미해진다

 

쾌락과 영혼이 뒤엉킨 세상 속

흐릿한 바람결에 감춰진 흔적 같은 그림자

가로등 아래 처진 표정없는 그늘진 허상

나의 안팎을 넘나드는 너

 

너의 정체가 무엇인가

삶의 그림자는 항상 내 발 밑에

하지만 잡히지 않는 시간처럼 나를 감싼다

그래서 가끔은 멈춰서서 묻는다

 

오늘도 나는 앞을 향해 달려왔지만

뒤엉킨 시공간 속에서 나는 누구이며

너는 나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그림자야, 오늘은 나에게 답해다오

 

때로는 멈추어 너를 들여다 보리라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내 삶의 빛을 찾으리라

https://blog.naver.com/kwonju22/223973576963

권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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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 2025.09.06
창작정원 구월의 노염(老炎)

구월의 노염(老炎)

권준희

구월의 늦더위는 인생의 축복

팔월 태풍 밀어낸 들판 위

쭉정이 벗은 이삭들 살찌우며

올게심니* 묶음이 마을 기둥을 세운다

장맛비에 넘친 둑

뿌리째 떠내려간 벼와 수수, 조

물 빠진 논밭엔

숨 가쁜 줄기 몇 가닥만 남아 있다

아침 저녁 찬이슬 맺히건만

한낮은 여전히 불의 기세

철 지난 노염의 기염 속에서

늘어진 이삭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벼와 수수, 조 이삭이 패고

고구마를 캐고 녹두를 털어

송편 속엔 청태콩과 밤이 가득

가을은 제 얼굴을 드러낸다

노염처럼 노년을 살아내리

이삭 패고 열매 맺혀

남김없이 건네주리라

구월의 늦더위는 인생의 축복이다

*올게심니-민속 추석이나 중양절을 전후하여 벼, 수수, 조 따위의 이삭을 묶어

방문이나 기둥 따위에 걸어두는 풍습. 또는 그 벼, 수수, 조 따위의 이삭.

권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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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2025.09.05
창작정원 바람 부는 강가에 서서

바람 부는 날

강물은 몸살을 앓는다

봄바람이든

가을바람이든

바람은 또 다른 바람을 몰아오고

물살이 바람에 내몰려

속내와는 달리 거꾸로 흘러도

한마디 싫은 내색도 않고

길이 높으면 머물다 가고

물길이 뒤틀리면

온몸으로 방향을 잡아

흐르던 길을 이어 나간다

바람 부는 날

강가에 서 보아라

몸살 앓는 물살이

바람 때문에 거꾸로 치닫는 듯 보이지만

강물은 큰 줄기를 이루어 몸을 풀고 있지 않던가

이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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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 202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