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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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해 보니 있다. 비록 뉴스레터긴 하지만, 인터넷 시대라 찾을 수 있었다. ROTC 동문회가 추모행사를 개최했다는 한양대 동문회보의 기사다. 추모되는 분은 고 이인희. 순직 당시 계급은 중위.
‘1966년 5월 18일 강원도 양구 송청교 복구공사 중 기중기 고장으로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부하들을 구하고 승화했다’고 한다. 추모비는 그해 11월 11일 건립됐고. 추모행사에는 ROTC동문회장, 학군단장, 후보생들이 참석했단다.
이인희라는 이름은 전혀 몰랐다. 한양여대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캠퍼스를 같이 쓰는 한양대 교정을 다니다 발견한 추모비에서 처음 보았다. 사실 자주 지나다녔어도 이름까지 기억되지는 않았다.
추모비에서 뚜렷이 남는 이름은 조지훈이다. 학창시절 국어시험에서 스트레스 받았던 이름 중 하나. 비문을 지었다고 한다. 조지훈 정도 되면 나름, 아니 상당히, 역사적 인물 아닌가? 고 이인희 중위는 내가 태어나기 6년 전에 유명을 달리했는데, 당시 조지훈은 교수였던 모양이다.
이제 삶의 반환점이 가까워지고 있어서일까? 남은 삶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뜬 뒤 누가 나를 기억할지 궁금하다. 반백 년을 살아오는 동안 내가 조지훈만한 역사적 인물과 인연이 있던가? 내가 죽게 되면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인물이 추모의 비문을 써줄까? 아니 글을 새길 만한 비석 하나 서지 않겠구나. 봉분 묘역은 납골당으로 대체된 지 오래라 비석을 세울 일도 없는 시대인데 ….
언제 전화번호부가 없어졌는지 돌아본다. 휴대폰이 대중화될 때 집 전화를 쓰지 않게 될 줄 몰랐다. 몇 년은 집과 휴대폰 번호를 같이 적었는데, 곧 자택은 빈칸이 되었다. 뭐라도 반드시 채워야 하는 온라인 서식에는 111에 2222 같은 아무 숫자나 넣곤 했다.
그나마 내 이름이 남을 역사 기록으로 거의 유일했을 전화번호부. 좀 아쉬웠다. 어릴 때 가끔 전화번호부에서 아버지 이름을 확인하곤 했다. 요즘처럼 개인정보 보호를 중시하는 시대엔 전혀 생각하기 힘든 야만(?)의 시절에 가진 추억이다.
어머니 두 분이 지병으로 60대에 일찍 세상을 떴다. 궂긴 소식을 전하며 언론사에도 보냈다. ㄷ일보에서 두 분 부고를 모두 실어주었다. 역사 기록으로 신문 한 귀퉁이에 이름 석 자 정도라도 새겨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딘가에 묻혀 있다면, 자손들 말고도 누군가 지나다 보기라도 할 테다. 의식은 벌써 꺼지고 몸도 썩어버렸을 텐데, 정작 나는 알지도 못할, 죽음 뒤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이 마음은 도대체 뭘까?
그래도 자식들과 아이들은 한 번씩 찾아주겠지. 세상을 뜨기 전 제사는 지낼 필요 없다고 할 생각인데, 그러면 아예 찾아오지 않으려나? 아마 가끔, 아주 띄엄띄엄, 몇 년에 한 번씩은 찾겠지? 제사를 안 지내면 장례가 끝나면 끝이려나.
언젠가 유명한 물리학자가 이순신 장군 숨결 계산법을 설명했다. 50년 넘게 장군이 내쉰 숨은 수억 톤이 넘는다. 균질하게 지구상에 분포된다고 가정한다. 몇백 년이 지났지만 지금 우리가 이순신의 숨결을 말 그대로 함께 들이마실 수 있다. 황당무계해 보이지만 대학자께서 물리학적으로 고찰해 주시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같은 이치로 나의 숨결도 그대로 남게 되겠다. 흙으로 돌아간 내 몸도 어딘가에 그대로 머무를 테다. 그렇다면 나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아니 지구가 남아 있는 한 영속할 테다. 굳이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아니다. 지구가 사라져도 우주의 한 줌 먼지로는 계속 남을 테니, 나는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된다. 영원히 ‘산다’가 틀렸다면 적어도 영원히 ‘존재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정리가 된다. 죽은 뒤 나를 누군가 기억해 주기를 바랄 필요도 없다. 어차피 영속하는 존재인데, 몇 사람 더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그런데도 가슴 속의 어딘가에서는 이순신이 부럽다. 직계 혈족 후손 이외에 몇 사람이라도 나를 더 기억하기를 바란다.
삶은 언제든 끝나기 마련이고 나라는 존재는 우주 어딘가에서 영속한다. 평생 많이 공부해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가족을 넘어 사회적으로 기려지는 이인희 중위가 부럽다.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추할까? 얘들아! 아빠가 죽으면 신문사에 부고를 꼭 보내다오. 이제는 전화번호부도 없잖니? 할머니 두 분은 아빠가 신문사에 연락했단다. 이순신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누군가 한 명이라도 더, 아빠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렴. 부탁한다. 아, 이왕이면 금방 망할 신문 말고 큰 데다 해 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