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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영

책 제목신라문학대상 당선작 발표 2026년 2월 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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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묻던 날이었다. 전통 장례식을 고집하던 아빠 뜻에 따라 매장을 결정했고, 오빠 친구 셋과 상여꾼 셋을 구해 산을 올랐다. 이미 굴삭기로 다 헤집은 땅인데도 삽으로 흙을 뜨는 손은 더뎠다. 돌담에 앉아 흘러내린 머리핀을 고쳐 다시 맸다. 검은 머리 위 하얀 나비가 팔랑거렸다. 지리한 기다림 끝에 상여가 구덩이에 들어갔다. 상여꾼 중 제일 나이 많아 보이는 치가 고인의 명복으로 시작하는 사토문을 짧게 읊조렸다. 상여가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우리를 향해 말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들 있으면 하슈.”
넋 놓고 돌담에 앉아 있던 엄마가 구덩이 근처로 다가가 잘 가라고 나도 금방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오빠는 엄마 옆에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섭섭하다는 말이라도 한마디 할 줄 알았더니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양 하나 없는 관에 흙이 덮였다. 엄마는 때맞춰 오열했다. 오빠는 엄마가 쓰러지지 않도록 팔을 붙들었다. 엄마는 온전히 오빠에게 몸을 의지했다. 올케언니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눈살을 찌푸릴 장면이었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도, 장례를 치를 때도 오늘까지도 자꾸 마지막 인사를 하라 했다. 언제가 마지막 인사일까. 그나마 산소호흡기를 붙들고 기계에 규칙적인 맥박을 그리고 있을 때가 마지막이었을까,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혼이 아직 구천을 맴돌고 있는 장례 때가 혼령과의 마지막이었을까, 땅에 묻혀 비석으로 남는 지금이 마지막일까. 비석에 새겨진 아빠 이름 세 글자가 낯설었다.
구덩이가 봉긋한 무덤으로 바뀌었다. 사토문을 읽었던 치가 소리쳤다.
“한두 번 해? 용미를 그런 식으로 짧게 빼면 어디 승천하겄냐!” 
삽으로 내리치는 시늉을 하자 제일 나이 어려 보이는, 그래도 나보다 스무 살은 많아 보이는 이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한 삽씩 모여 꼬리가 길고 도톰해졌다. 용미가 완성되었다. 저 꼬리를 흔들어대며 하늘로 승천하는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이무기로만 살다가 이제야 승천하시네요. 지금이라도 아빠처럼 살아보세요.’
마지막 인사를 하며 하늘을 봤다. 먹구름 사이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졌다. 남은 차례가 빨리 감기를 하듯 이뤄졌다. 산을 내려가는 발걸음도 재빨랐다. 뒤를 돌아보는 이가 없었다. 무심결에 무리를 따라가다가 내가 따라가지 않아도 없어진 걸 모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을 알아챘는지 오빠가 때맞춰 뒤를 돌아보았다. 고갯짓으로 빨리 오라 눈치를 줬다. 오늘은 이렇게 인상을 구기고, 내일은 민원실에 웃으며 앉아 있어야지. 아빠가 용이 되었다면 오늘도 인상을 구길 일이 아니라 다 같이 웃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해피엔딩인데 다들 왜 어깨가 축 늘어져 있을까. 상여꾼의 주머니에도 오빠의 친구들에게도 현금 봉투가 다 돌아갔는데, 대체 왜.

 

“백삼십육 번 고객님. 백삼십육 번 고객님.”
의례적으로 두 번 더 외치고 다음 번호를 누르려는 순간, 이상하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다음 호출 번호를 눌렀다.
백삼십육 번과 백삼십칠 번이 함께 번호표를 내밀었다. 백삼십육 번에서 진한 알코올 냄새가 났다. 어젯밤에 마신 술인지 지금까지 마신 술인지 냄새가 역했다. 백삼십칠 번은 검은 정장을 입고 여유롭게 백삼십육 번 번호표를 밀어내며 자신의 번호표를 들이밀었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백삼십육 번은 백삼십칠 번의 멱살을 붙잡았다.
“어린 노므 새끼가 눈에 뵈는 게 없나? 어디서 새치기야?”
백삼십칠 번은 한 손으로 멱살을 치우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백삼십육 번은 중심을 잡지 못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앞자리에 앉아 기다리던 이들이 입꼬리를 단속했다. 백삼십육 번은 아까와 달리 잽싸게 달려들어 더욱 단단하게 백삼십칠 번의 멱살을 붙들었다. 나는 투명막 안쪽에서 바깥으로 돌아나와 싸움을 말렸다.
“제가 금방 다 처리해 드릴 테니….”
힘에서 밀리던 백삼십육 번의 손바닥이 내 왼뺨으로 향했다.
“이 년이 미친년이지, 다 너 때문이잖아.”
찰싹. 파스를 붙였다 뗀 것처럼 화끈거리고 아팠다. 아픔 뒤에 창피함이 따라왔다. 실룩거리던 입꼬리들이 놀란 눈으로 나와 백삼십육 번을 번갈아 보았다. 백삼십육 번은 이제야 기분이 좀 풀리는지 허리띠를 가슴께까지 올리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니가 잘못했으니까 이걸로 퉁치자고.”
학창 시절에 지각했다고 엉덩이를 맞은 적이 있었다. 시험을 망치면 손바닥도 몇 번 맞았다. 뺨을 맞는다는 건 엉덩이나 손바닥을 맞는 것과 달랐다. 내 안에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눈에 불꽃이 일었다. 불꽃을 감추려 눈을 감았다. 당장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다. 두 주먹을 쥐고 온몸을 부들거리며 떨었다. 떨고 있는 나에게 김 과장이 다가와 안쪽으로 끌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도 민원실 앉아 있을 때 몇 번 당했었어.” 
“신고할래요.”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김 과장이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커피를 내 손에 억지로 쥐어주었다.
“민원실에서 별별 일 다 일어나는 거 알잖아. 그래서 6개월 순환 근무로 돌린 거고,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는데 꼭 그런 식으로 사달을 만들어야겠어? 경찰 조사 하면 우리도 며칠씩 불려가 조사받는다고. 안 그래도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우리가 땜빵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두 손에 들린 커피를 얼굴에 쏟아버리고 싶었다. 아쉽게도 커피가 화상을 입을 만큼 뜨겁지 않았다. 맞은 뺨보다 김 과장의 말들이 갈퀴 달린 채찍처럼 아팠다. 아픔을 느끼지 않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빠의 봉긋한 무덤이 떠올랐다.
조퇴하고 집에 가서 쉬라는 김 과장의 말에도 여섯 시까지 근무 시간을 모두 채웠다. 나 때문에 다들 힘들었다는데 또 힘들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여섯 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접힌 상자가 보였다. 플라스틱 서랍장이라도 들어 있었는지 사람 두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상자를 집으로 가져왔다. 테이프로 바닥을 붙였다. 상자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머리 위 불빛이 신경 쓰였다. 상자 윗부분을 덮었지만 가느다란 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상자에서 걸어 나와 불을 끄고 다시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야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침대보다 안락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던 날들이 모여 한 달을 채웠다. 민원실 배치 기간이 내일이면 끝이 났다. 한 달 동안 상자와 나도 많이 친숙해졌다. 상자를 눕혀 그 안에 베개와 이불을 가져가 잠자는 방법을 터득했다. 새우처럼 구부려 잠을 자다가 상자 밖으로 다리가 나올 때면 화들짝 놀라며 깼다. 신발장 검은 비닐에 신발보다 많은 맥주 캔들이 쌓여 갔다.
민원실 마지막 근무날, 인터넷에서 사직서를 검색하고 나의 이름을 입력했다. 김 과장에게 내밀었다.
“여기.”
김 과장은 양쪽 눈썹을 산 모양을 만들어 말했다.
“양식이 이게 아닌데. 총무팀에 가서 양식 다시 받고 제출해.”
왜 만류할 거란 생각을 했을까. 무기계약직 자리를 얻기 위해 이십대를 갈아 넣었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다른 사람들 일도 도우려 했다. 새로 들어온 서기보가 결혼해서 특별휴가를 쓰면 내가 먼저 그 일을 분담했고, 육아휴직 쓰는 언니들의 일도 내가 육아휴직을 쓰게 되면 받을 혜택이라 생각하며 도왔다.

 

폭주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술을 한꺼번에 많이 마심, 한곳으로 많이 몰려듦, 이런 뜻이 나온다. 내 삶에 적합한 단어였다. 신발장 앞 맥주캔들처럼 바글거리며 일들이 내 앞으로 몰려들었다. 나한테 미리 부탁하지도 않은 파일철들이 책상에 놓인 적도 많았다. 무기계약직이 확정되었을 때 아빠는 나보다 더 기뻐했다. 이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무기계약직은 정규직과도 같으니 이제는 그렇게 힘들게 늦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아빠는 말했다.
내가 무기계약직이 된 게 자기들 덕분이라는 듯, 찾을 빚이라도 있는 것처럼 내게 일이 몰렸다. 육 개월이면 끝나는 민원실 순환 근무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일을 나누다가 남는 자투리 일은 당연히 내 일이 되었고, 결재 라인에 내 이름이 없는데도 문서에 오탈자라도 있으면 나를 찾아와 길길이 날뛰었다.
많은 일을 떠맡고 있던 내가 떠나면 조금은 아쉬워할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한 명이라도 붙잡을 줄 알았다. 내가 김 과장에게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문은 총무팀에서 새로운 양식을 받아 제출하기도 전에 부서에 퍼졌다. 무기계약직에 아는 사람을 넣어보려는 이해들이 맞물려 사직서는 3일 만에 수리되었다. 진즉 해치워야 할 숙제를 지금에야 끝낸 기분이었다.

 

아빠의 사십구제가 모두 끝나고 엄마랑 집을 합쳐야 하나 고민이 됐다. 합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혼자 사는 오빠는 가게 하나 돌보기도 버거워 엄마를 나에게 떠맡기려고 했고,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육촌들은 혼자 사는 내가 당연히 엄마를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 역시 은근히 자기를 돌봐주길 바랐다. 그 눈치들이 나를 부동산으로 떠밀었다. 제발 팔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투룸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요즘은 아파트나 매매가 있지, 투룸은 영 인기가….”
투룸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부동산 중개인이 퍽 마음에 들었다. 고맙기까지 했다.
“전세, 월세도 가능하니까 빨리 좀 알아봐 주세요.”
내 마음과 전혀 다른 말들이 술술 나왔다. 전세, 월세가 가능하다는 말에 중개인은 혹시 이상한 물건을 떠맡게 되는 게 아닐지 의심했다.
“직장이 보건소면 바로 옆이구만, 결혼이라도 해?”
“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엄마 곁에 있으려구요.”
“아이구 효녀네, 효녀.”
이 말이 나올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사표 낸 직장을 밝히며 말을 섞었다, 켕기는 매물과 다르다는 확신도 줄 겸. 한 달이 지나도록 집을 보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사회 초년생 일인 가구에게 투룸은 너무 컸고, 가족 단위는 투룸이 너무 작다고 했다.

 

상자를 주워 온 다음 날부터 투룸은 나에게 불필요하게 너무 큰 공간이 되었다. 상자 하나면 충분했다. 낮이면 상자를 세우고 그 안에 들어앉아서 핸드폰 영상을 봤고, 밤이면 상자를 눕혀 잠을 청했다. 다리가 빠져나오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자주 보는 영상은 구덩이 파는 영상이었다. 구덩이를 파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인터뷰를 스크랩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구덩이를 되도록 깊게 파 화장실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파는 구덩이들은 농사에 쓰이는 구덩이가 대부분이었다.
‘이게 아닌데.’
영상 속의 사람들이 삽질할 때마다 아드레날린이 돌다가도 구덩이에 호박을 심거나 대파를 심는 순간 기운이 쭈욱 빠졌다. 구덩이는 어떤 목적으로 파는 게 아니라고 달려가 알려주고 싶었다. 가끔 기운이 뻗치는 날이면 오픈 채팅방에 구덩이를 파는 사람을 검색했다. 같이 모여 구덩이를 파고 싶었다. 구덩이를 파겠다는 사람들은 없었다. 줄임말로 구사모를 검색했더니 명품을 사랑하는 모임이 검색될 뿐이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오빠가 벌초하러 갔으니 먹을 걸 챙겨 아빠한테 다녀오라고 했다. 의외로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두근거렸다. 구덩이가 있는 곳에 간다는 생각만으로 온몸에 활력이 넘치는 착각이 들었다.
상자 밖으로 나와 자동차 키를 챙기고 엄마에게 갔다. 분홍색 보따리가 부엌에 놓여 있었다. 엄마는 아침부터 음식 만드느라 진을 뺐는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분홍 보따리를 조수석에 싣고 가족 묘지로 향했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았다. 구름이 장난치듯 모습을 자꾸 바꾸었다. 주변을 살폈더니 엄마 말대로 식당 하나 없었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덩그러니 ‘천마농기구’라는 간판이 보였다. 저 건물이 언제부터 있었지 싶었다.
산소에 도착하니 풀이 무성했다. 오빠는 예초기를 다 분해해 하나씩 다시 조립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놀란 오빠가 인사일지 감탄일지 모르는 소리를 뱉어냈다.
“어.”
“엄마가.”
분홍 보따리를 건넸다. 오빠 옆에 생수 한 병이 보였다. 식당 하나 없는 곳에 물 한 병 들고 온 모양이었다. 보따리를 풀었더니 제사 음식이었다. 생선, 과일, 산적까지. 아침부터 이걸 다 장만했으니, 엄마가 이 시간에 침대에 드러누울 만했다. 아빠가 좋아하는 소주도 한 병 있었다. 플라스틱 접시에 음식을 주섬주섬 담고 오빠를 팔꿈치로 찔렀더니 소주병을 열어 잔을 올렸다. 축문도 생략하고 돗자리도 없이 큰절을 두 번 했다. 손바닥을 짚고 일어서다가 잡초에 찔려 빨간 핏방울이 맺혔다. 한 번도 껴보지 못한 루비 반지처럼 영롱했다. 남은 술을 무덤 주변에 골고루 뿌렸다. 술 냄새가 확 끼쳤다. 주린 배보다 술이 더 고팠다. 간단한 제사를 마치고 오빠는 다시 예초기를 고쳤다. 오빠에게 다가가 예초기 칼날을 집어 들었다. 누가 봐도 풀 하나 못 벨 만큼 부실한 플라스틱 칼날이었다. 오빠가 칼날을 조립하고 전원 스위치를 누르길 반복해도 예초기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정원 가꿀 때나 쓰는 예초기를 돌덩이 가득한 산에 벌초하겠다고 가져온 오빠의 미련스러움에 짜증이 났다.
오빠는 똑같은 과정을 몇 번을 반복하고서야 트렁크에 예초기를 실었다. 보따리를 뒷자리에 싣고 떠나기 전에 나를 흘깃 보았다.
“차는?”
“저기.”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내려가기도 전에 하얀 SUV가 돌덩이에 비틀거리며 사라졌다. 아빠 무덤을 바라봤다. 벌써 풀이 무성했다. 얼마나 됐다고 오래된 무덤처럼 풀이 자랐을까 싶었다. 오빠가 예초기를 고치던 돌담에 기대어 앉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무덤처럼 풀이 자란 아빠 무덤이 낯설었다. 그림자가 길어지자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천마농기구’가 보였다. 미닫이문을 활짝 열어 손님을 맞았다. 나한테 들어오라는 건가. 나도 모르게 그곳에 정차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띵동 소리가 났고, 한쪽 팔이 유난히 짧은 주인이 느릿하게 나왔다. 허름한 남방에 까무잡잡한 얼굴, 그 위에 ‘풍농비료’라 쓰인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를 이상한 눈으로 훑었다. 살 것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삽이 수북했다.
“저 삽 하나 주세요.”
“정원 꾸미게?”
“아, 네.”
다시 안 볼 사람에게 정원은 없지만 삽은 가지고 싶다고 말할 순 없었다. 이 삽을 품고 상자 안에서 구덩이 파는 상상을 하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하나 가져가.”
빨간 모자는 계산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도색되지 않은 강철 그대로의 삽날을 바라보았다. 번쩍이는 삽날과 사포질도 제대로 되지 않은 투박한 자루 부분의 조화가 이질적이면서 완벽했다. 경차 트렁크를 열고 삽을 실었다.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었다. 괜히 콧노래가 나왔다.
‘이 곡 이름이 뭐였더라.’
외국 곡들은 항상 그랬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후렴을 알고 있어도 전주를 들으면 모르는 노래라 생각할 때가 많았다. 투룸이 보여 속도를 줄였다. 필로티 주차장은 다행히 비어 있었다. 입구 가까운 자리에 주차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소주 한 병과 맥주 네 캔, 오늘 하루치 일용할 양식이었다. 소주는 항상 한 병이었다. 두 병을 사면 유리병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다. 현관 비번은 아빠 생일이었다. 비번을 누르고 들어왔더니, 비닐봉지에서 굴러 나온 캔이 발에 차였다. 남아 있던 맥주가 바닥에 흘렀다. 콜라가 남을 때마다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알코올과 탄산은 청소에 좋아요. 알코올은 살균 및 냄새 제거에 효과적이고 탄산은 찌든 때를 불려 주고, 오염 물질을 부드럽게 제거한다니까요.’
피자나 치킨을 시켜 먹으면 꼭 콜라가 남았다. 남은 콜라로 탕비실 냉장고나 싱크대를 닦기 전, 내가 이런 일도 하고 있으니 부디 알아 달라고 했던 말이었다. 이 말이 끝나면 칭찬이 쏟아졌다.
‘어쩜 안희 씨는 이렇게 알뜰하고 아는 것도 많아.’
‘남자들 눈이 다 삐었지, 진국을 못 알아보고. 일하는 것도 어찌나 꼼꼼한지 십 년 차인 나도 못 잡은 걸 잡아내더라니까.’
자기 땜빵 잘 하라는 부조일 뿐이었는데 박수갈채에 홀려 배고픈 배우가 다시 무대에 서듯 매번 콜라로 청소했다.
삶의 신조가 딱 하나 있었다. 세상 어떤 일이 있어도 맥주는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녹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김 빠진 맥주는 참을 수 없었다. 미지근한 맥주를 마실 때면 맥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스멀스멀 몸에서 나온 진액을 먹는 기분이었다. 텁텁하고 씁쓸하고 지저분한 분비물이라도 마시는 것 같은 그 기분은 견디기 어려웠다.
맥주를 냉장고에 넣었다. 소주와 유리컵을 가지고 상자로 들어갔다. 너덜거리는 상자 윗부분을 덮었다. 유리잔의 희미한 실루엣을 더듬으며 컵에 소주를 따랐다. 소맥을 마실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맥주를 가져오려면 상자 밖으로 걸어나가 냉장고까지 가서 문을 열고 가져와야 했다. 다섯 걸음도 안 되는 그 거리가 은하의 끝에서 끝을 가는 것처럼 아득했다. 맥주가 아직 충분히 차가워지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한몫했다. 소주를 맥주 대신 컵에 더 부었다.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생각에 김치라도 꺼낼까 하다가 김치 역시 맥주와 함께 은하의 끝에 자리 잡았음을 떠올리고 포기했다. 깡소주를 들이부었다. 아무 맛이 나지 않았다. 소주 회사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한 짝에 한 병씩 알코올이 전혀 없는 소주를 끼워 팔았다. 이 소주를 마실 때면 당연히 물처럼 느끼는데 그게 바로 소주 맛의 변화무쌍한 비밀이었다. 반병 남아 있는 소주를 유리컵 가득 따랐다.
‘물인데 뭘.’
상자는 쿵 소리를 내며 눕혀졌다. 소주 회사의 비밀에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어둠이었다. 목이 타들어 갔다. 은하 끝까지 걸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차가워진 맥주 네 캔이 보였다. 냉장고 문을 닫고 싱크대 수전에 허리를 구부려 물을 마셨다. 얼굴만 젖었지 마시는 목을 축일 수 없었다. 쌓여 있는 설거지 더미에서 머그잔 손잡이가 보였다. 하루살이들이 설거지 더미 주변을 날아다녔다. 두 손으로 물을 받아 마셨다. 마실수록 갈증이 났다.
침대 옆에 덩그러니 놓인 상자를 바라보았다. 무얼 하다 잠이 들었는지 무얼 해야 할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머릿속에 번개처럼 한 단어가 떠올랐다.
구덩이.
상자 속으로 기어들어가 구덩이 파는 영상을 틀었다. 인터뷰어가 구덩이를 파는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산에서 구덩이를 파다가 보물이 나올 때도 있나요?”
“일을 하다 보면 옛날 유물이 나오거나 알지 못하는 뼈가 나올 때도 있죠.”
인터뷰이의 말을 듣고 화면을 껐다. 구덩이는 보물 따위를 찾기 위해 파는 것이 아니었다. 보물을 찾기 위해 구덩이를 파는 일은 얼마나 천박한가. 구덩이는 파는 것, 자체로 완벽했다. 안에 있는 흙을 구덩이 밖으로 던져 바깥으로 보내는 행위. 구덩이를 파는 일은 안과 밖이 뒤바뀌는 카오스 세계의 경험이었다.
더 기다릴 수 없었다. 트렁크에 실린 삽이 나를 불렀다. 차 키를 챙기고 시동을 걸었다. 새벽 어스름이 어둠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었다. 도로에 인기척도 차들도 보이지 않았다. 차창을 내리자, 폐기물 수거 차량이 금방 지나쳤는지 진원지를 알 수 없는 악취가 났다.
가속 페달을 밟았다. 땅이 아니라 하늘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불 꺼진 천마농기구를 지나 가족 묘지로 갔다. 우거진 잡초 사이,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트렁크를 열어 삽을 꺼냈다. 푸르스름한 빛이 삽자루에 어렸다. 전율이 머리끝까지 전해졌다. 첫날밤의 신부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아빠 무덤 옆으로 향했다. 최 씨 여자는 묻힐 자리가 없다는 엄마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오빠 내외가 묻힐 미래의 무덤 자리에 삽을 꽂았다. 삽은 꽂혔다가 힘없이 쓰러졌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힘 있게 삽을 꽂았다. 삽날 위에 올라타 내 무게를 실었다. 무수히 돌려보았던 영상 속의 능숙한 몸놀림이 나오지 않았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삽을 흙에 꽂을 때마다 잔돌이 자꾸 걸렸다. 맨손으로 돌들을 주워 돌담 쪽으로 던졌다. 돌을 치우고 삽으로 흙을 퍼내고, 다시 돌을 치우고 삽으로 흙을 퍼내고. 단순한 동작을 반복했다.
해가 떠서 주변이 환해졌다. 구덩이는 아직이었다. 무릎도 들어가지 못할 작은 웅덩이가 생겼을 뿐이었다. 삽자루 가시가 손에 박혔다. 손가락으로 가시를 더듬을 때마다 쓰렸다. 아빠가 바늘로 가시를 빼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 앞에 바늘도 없고, 아빠도 없었다. 가시 빼기를 포기하고 삽질을 다시 시작했다. 붉었던 자국에 물집이 잡혔다. 영상에서 모두 장갑을 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장갑 안에 붉은칠을 한 목장갑. 영상을 외울 듯이 돌려봤는데 장갑 하나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에 허탈했다.
낮에는 쓰러져 자다가 저녁 어둠이 깔리면 가족 묘지로 달려갔다. 달이 차는 것처럼 조금씩 구덩이가 깊어졌다. 조그만 웅덩이가 쪼그려 앉을 정도의 작은 구덩이가 되었다. 며칠 만에 생겼는지 뜯지 않은 달력도, 나도 알지 못했다.

 

아침부터 초인종 소리가 거칠었다. 시간을 확인하려 핸드폰을 더듬었다. 핸드폰은 배터리가 없어 검은 화면이었다. 부동산에 매물로 집을 내놓은 게 떠올랐다. 싱크대는 설거지에 곰팡이가 피고 벌레들이 끓었고, 현관은 맥주캔과 소주병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알코올 냄새인지 쉰내인지 모를 냄새가 코에 훅 끼쳤다.
‘계약은 글렀다.’
문을 열었다. 부동산 중개인 대신 오빠가 서 있었다. 긴장하던 몸에 힘이 빠졌다.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악취 때문인지 오빠는 말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전화는 왜 꺼놓고.”
“아직 살아 있음.”
생존 신고를 하고 문을 닫았다. 신기하게 나는 아직 살아 있었다. 닫힌 문 너머로 엄마한테 전화하라는 외침이 들렸다. 구덩이가 완성되기 전까지 엄마에게 전화하는 일 따위는 무의미했다.
묘지로 갔다. 구덩이를 깊이 팔수록 매번 다른 벌레들이 나왔다. 처음 등장한 건 개미였다. 삽 끝에 개미가 두 동강 난 걸 보면서 이상한 희열을 느꼈다. 희열 뒤에 허리가 뻐근한 느낌도 따라붙었다.
다음 날은 공벌레였다. 처음엔 한 마리인가 했다가 한 구석에 먹다 남은 음식물이 있었는지 개미처럼 바글거리며 나왔다.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가 발발거리면서 흙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려 주었다.
다음 날은 지렁이, 다음 날은 지네, 이렇게 매일 다른 벌레들이 삽질을 할 때마다 기어 나왔다.
벌레 다음 벌레. 벌레 다음 또 벌레. 이 순서가 지나고 알 수 없는 것이 나왔다. 처음엔 왕개미인가 싶었다. 손가락 한 마디가 안 되는 것이 개미치고는 기이하게 컸다. 다리를 세어보았다.
“하나, 둘… 여덟.”
집에서 보던 거미와 달리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거미였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검색해 보니 땅거미였다. 4억 년 전, 땅거미는 인간보다 먼저 출현했다는데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돌출된 나무껍질 안에 거미줄을 치고 땅속에 살면서 벌레들을 포식했다. 몰려다니던 공벌레 중 한 마리가 거미줄에 둘둘 말렸다. 나무껍질을 들어서 펴봤더니 잡힌 벌레 말고 새하얗게 싸놓은 것이 보였다. 거미줄을 걷어 내니 노란 알들이 핏방울이 엉겨붙은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 알들을 제자리에 조심스레 두었다.
이제는 제법 굳은살이 박혀 삽질할 때마다 손이 따갑지 않았다. 삽으로 흙을 퍼낼 때마다 흙벽이 무너져 흙이 들이찼다. 더 멀리 흙을 밖으로 던졌다. 아빠의 비석에 흙이 던져졌다.

 

자다 깨기를 반복했더니 꿈이 생생했다. 그녀가 나오는 꿈이었다. 새로 들어온 서기보의 앳된 얼굴. 나에게 처음으로 친절하게 굴어준 스물두 살의 얼굴. 사회 초년생이라 때가 덜 묻었을 거라 지레짐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대신 공무원 시험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선배라고 불러줄 때마다 서기보는 정규직이고 나는 계약직일 뿐인데 싶어 고맙기까지 했다. 그녀가 첫 월급을 받고 한턱내겠다고 말하자 김밥이라도 공짜로 한 줄 얻어먹고 나면 진짜 비싼 커피는 내가 사야지 싶었다. 그냥 그런 호의적인 관계 하나 정도는 이제 있을 만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언니 이번 주 금요일 반차 오케이?
서기보의 문자를 받고 데이트 신청이라도 받듯 기뻤다. 여자끼리 데이트는 무슨, 이렇게 생각하면서 옷장에서 제일 좋은 옷을 골라 입었다. 김 과장이 못마땅한 얼굴로 꼭 반차를 써야 하겠냐는 말에도 꿋꿋이 버텨 처음으로 반차를 냈다. 금요일 오후에 같이 점심을 먹을 후배가 있었고, 주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일박으로 아니면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가자고 말을 꺼내야지 싶었다.
그녀는 여기가 맛집이라며 허름한 우동집으로 내 손을 잡아끌었다. 맛집들은 원래 이렇게 허름하니까. 테이블에 사람들이 없었다. 손가락을 우동 그릇에 빠트린 채 서빙을 했다. 뜨거운 우동 국물인데 손가락이 뜨겁지 않을까 싶었다. 한 입 먹어보고 이유를 알았다. 우동은 밍밍하고 미지근했다. 그래도 후배가 맛집이라니 여기가 맛집일 거라 생각했다. 후배는 주문한 우동에 손도 대지 않았다. 후배 얼굴이 어두웠다. 우동을 먹으면서 주변 커피숍을 검색했다. 제일 비싸고 맛있는 커피숍에 가서 커피와 케이크를 살 생각이었다. 달달한 케이크와 크림이 듬뿍 올려진 커피 한 잔이면 아무리 어두운 얼굴도 밝게 바뀔 거라 생각했다.
후배는 후미진 골목의 산부인과로 들어갔다. 커피숍을 검색하면서 후배의 손에 이끌려 지저분해 보이는 병원으로 들어갔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간호사가 힐끗 보더니 진료실 문을 열고 의사에게 뭐라 말을 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후배를 쳐다봤다. 후배의 얼굴은 어둡다 못해 흙빛이 되었다. 앳된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에어컨 냉기 때문인지 이를 덜덜 떨었다.
“부탁할 사람이 언니밖에 없었어요.”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나밖에 없었다니. 친언니보다 더 언니 같다니. 결혼하겠다고 속이고 내뺀 그놈이 나쁜 놈이지 후배는 아무 잘못이 없어 보였다. 후배를 안고 어깨를 토닥였다.
“언니, 14주까지는 그래도 수술이 된대요.”
후배의 그 말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고 고개만 끄덕였다. 병원에서도 허락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내가 수술하는 건 아니니까. 후배가 들어간 수술실 밖에서 혼자 되뇌었다.
수술이 끝나고, 모텔에 가서 쉬면 된다는 후배를 굳이 집으로 데려왔다. 아기 낳은 거랑 같은 거라고 주말 내내 후배를 간호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찐친 아니면 의자매 같은 어떤 끈끈한 결속이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후배는 그날 이후로 나를 벌레 보듯 바라봤다. 나를 둘러싸고 이상한 소문들도 하나둘씩 퍼지기 시작했다.
반차를 받고 병원에 다녀온 지 석 달이 채 안 돼서 책상 위에 청첩장이 놓였다. 후배의 결혼이었다. 결혼하기로 했다던 같은 식장 같은 날에 다른 이와 결혼을 약속했다. 후배는 오히려 내 약점을 잡기라도 한 듯 더 당당하게 굴었다. 안 해 주고 어쩔 거냐는 듯 특별휴가 기간의 업무를 나에게 밀었다. 어차피 내 일이니까, 어차피 나한테 올 일이니까, 이런 말로 자조하며 야근을 버텼다.
문제는 밤이었다. 병원을 다녀온 뒤부터 매일 생생한 꿈을 꾸었다. 사지가 가위로 절단된 피투성이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후배 대신 내가 수술대에 누워 있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눈코입 없이 얼굴만 있는 의사에게 수술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후배라고 외쳤다. 의사는 내 팔과 다리를 구속대로 묶었다. 수술실의 투명한 유리 너머에 후배가 다리를 꼬고 우동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언니가 제 친언니 같아요. 이렇게 윙크하면서.
매일 밤, 같은 꿈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한밤중에 깨는 게 익숙했다. 다들 이렇게 사니까, 이렇게 말하며 다시 악몽으로 들어갔다.
악몽과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던 어느 날에 나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였다. 너무 이른 아침도 아니었기에 무심코 받은 전화 속 목소리는 울고 있었다. 아빠를 증오하는 데 생을 바친 오빠가 아빠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했다. 내 안에 쌓여 있던 돌탑이 와르르 무너졌다.

 

구덩이를 넓히는 재미가 아파트 평수를 늘리는 재미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다. 처음엔 쪼그려 앉을 정도, 다음엔 더 넓어져 새우처럼 구부리면 누울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구덩이가 완성되었다. 드디어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있었다. 구덩이에 벌렁 드러누웠다. 밤하늘에 뜬 달이 기우는 것이 보였다. 누가 와서 흙을 이불처럼 덮어주었으면 싶었다.
구덩이가 깊어질수록 구덩이에 대한 나의 사랑도 더해 갔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처음으로 하고 있었다.
어깨까지 구덩이를 팠을 때, 구덩이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구덩이 밖 세상과 이 안의 세계가 구분된 기분이었다. 구덩이 더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싶었다. 깜빡 졸고 일어났더니 나무껍질이 있었다. 언제부터 내 품에 안겼는지 배 위에 고요히 놓여 있었다. 거미줄에 싸인 알들이 별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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