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3월 6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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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겸비. 어렸을 때 머릿속에 박힌 사자성어다. 가슴까지 뿌리내린 교육 효과는 대단했다. 주변에 책이 보이면 눈치를 살폈으니까. 어떻게 하면 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빌릴 수 없으면 그 자리에서 읽어야 한다. 당시 교실 하나에 초등학교 3부로 아침, 점심, 오후반으로 교육했던 때다. 도서관이 있을 리 없다. ‘양서를 읽기 위한 조건은 악서를 읽지 않는 것이다’라고 쇼펜하우어가 말했지만 어느 것이 양서인지 악서인지 비교할 책도 없다.
사건이 생겼다. 중학교 시험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서울부터 뺑뺑이가 시행되었다. 통금이 있던 군사정권 시절이고, 누군가가 중학교 시험을 치러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자 추첨제로 바뀐 것이다. 어쨌든 시험 공부가 필요 없게 된다.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과 어찌할지 모르는 공간. 무언가 격리된 느낌이랄까. 문제는 학교생활이 점점 어색해진다. 초등학생 입장에서 하루아침에 급조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하다. 그곳에 틈이 생겼다. 학생의 신분으로 특별하게 갈 데도 없다. 그나마 수업시간에 소설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출구가 된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어색한 변화의 빈 칸을 메꾸는 방법은 그뿐이었으니까.
고립이 점점 적응력을 없게 만든다. 조용히 사고 치는 아이가 됐다. 파괴의 습성이 붙었다. 아니 파괴할 힘이 없었으므로 거부라는 표현이 맞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춘기 반항이 시작됐고 그 속에 방관과 방황을 동반한 방랑의 시간을 갖게 된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고등학교 문예반에 들어가니 액자에 ‘다독, 다작, 다상량’이 눈에 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 목표와 목적은 없지만 책 읽는 건 일과였으니, 아침에 쓰고 점심에 긁적이고, 밤새 원고지를 메꾸다 공책에 낙서하며, 상상의 세계를 글로 배설한다. 그게 하루다. 나는 이미 늙어서 존재의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자살이 뭉글뭉글 내 몸 안에 꿈꾼다. 나에게 죽음은 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다.
문예반에 있으니 좋은 게 하나 있다. 각 대학마다 열리는 백일장이다. 그때마다 공식적으로 대학 캠퍼스에서 하루를 지낸다. 참가한 김에 수상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또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수업시간에 내 손에는 항상 국어사전이 있었는데 선생님들은 영어사전이라고 매를 든다. 변명할 필요도 없다. 그냥 맞으면 되니까.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시인 유승우 선생님이 데뷔하라고 했지만 난 시가 피신의 도구였을 뿐이라 고개를 들지 못한다. 아직도 도망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구어체의 마술에 걸려든다. 희곡이라는 장르와 마주치게 되는 순간, 초등학교 때 셰익스피어 희곡을 읽으면서 답답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희곡은 어떻게 쓰죠?”
문예창작학과 다니는 선배에게 질문을 던진다. 툭, 귓가에 말이 돌아온다.
“희곡은 마지막 장르야. 시부터 열심히 써!”
그때부터 가슴 한 켠에 희곡이란 장르가 의문점 부호로 자리 잡는다.
그나마 문예반 도피생활 덕분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책으로의 도피는 끝이 난 셈이다. 눈앞에 또 부닥친 것은 진학 문제요 군대 문제다. 무엇을 해야 하나. 내 인생의 최대의 반항은 자살뿐인데.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공상만 커서 매사 우유부단이다.
책부터 끊었다. 아니 글자를 보지 않기로 맹세했다. 내 주머니에 펜도 버렸다. 그 대가로 두통과 위장병을 달고 살아야 했다. 결국, 2년도 못 버티고 극형의 시간은 종료됐다.
도미를 결심한다. 막상 ‘기회의 나라’라고 갔는데 기회는 아무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기회는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부여된다는 사실. 오히려 인종차별의 큰 벽을 체험하고 귀국한다. 비행기 안에서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 있다. 내가 왜 하필이면 대한민국에 태어났지? 하필이면 이 시기에? 내가 방황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다시 시작하자. 시집을 내고 소설과 동화책을 출판하고 마지막 쓰고 싶었던 희곡에 접근한다. 이제 배설의 고통이 아닌 산고의 아픔으로 전환된다. 희곡만큼은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었다.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보냈다. 「외등 아래」 당선. 하지만 심사평은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생각보다 화려하다. 어색하다. 아무튼 그 인연으로 (사)한국희곡작가협회에 입회하고 이사장을 거친다. 또 다른 임무다. 이제 너만을 위한 시간은 없다. 내 가슴속에서 들리는 소리. 조용히 받아들인다. 맡겨진 임무를 수행 중이다.
‘왜 하필이면 이 시기에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희곡을 쓰지?’
희곡은 인간 중심이다. 인간관계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문학이다. 희곡작가는 미래지향적인 세계를 제시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이 땅에 태어난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 뿌리를 찾는 일. 글쓰기에 앞서 익혀야 한다. 내 창작산실은 몸짓과 소리를 극문학으로 풀어내야 하는 운명적인 고행의 길이다.
[김대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1994), 제3대 학교극·청소년극 연구회 회장(1999∼2003), (사)한국희곡작가 협회 초대 이사장(1999∼2004), 강남문인협회 11대 회장(2016∼2017), 작품집 시집 『손바닥』, 소설집 『내린하늘』, 희곡집 『라구요』, 동화집 『깨비난장』. 학원문학상(1973), 한국희곡문학상 대상(1999),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2015), 대한민국예술공로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