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숲속 정자에 엎드려 펑펑 울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다. 얼마나 여 기저기 헤매었는지 발 한 짝 움직일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다. 차라리 이대로 잠들어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나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한다. 자식도 낳지 말았어야 한다. 꼬물이만 없어도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고것들 꼬물거리는 걸 보면 내 빈창자라도
- 손영미
나는 숲속 정자에 엎드려 펑펑 울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다. 얼마나 여 기저기 헤매었는지 발 한 짝 움직일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다. 차라리 이대로 잠들어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나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한다. 자식도 낳지 말았어야 한다. 꼬물이만 없어도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고것들 꼬물거리는 걸 보면 내 빈창자라도
누추하고 지저분한 동네 사이 좁은 길을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꼬불꼬불 나는 차를 몰았다. 좁은 데다 길 옆에 마구잡이로 지은 조립식 주택들의 낮은 지붕 모서리가 내 이마를 칠 것 같은 조바심이 들어 운전에 집중이 안 되려는데 집들이 끝나고 길이 탁 트인다. 저 앞 막다른 곳에 낡고 초라한 바라크처럼 생긴 회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새아버지나 엄마를
“별일 없제? ”핸드폰으로 차분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토요일 오후 부산에 출장 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기 직전이었다. 고등학교 동기 동창 박상수이다. 감정원에서 평생을 일한 뒤 고위공직자로서 이십여 년 전 퇴임한 친구이다. 퇴임한 뒤에도 일을 계속했다. 나이가 여든이 넘도록 전국 구석 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감정 업무를 해 왔다. 노느니 움직인다고 말은 했
9월이 되었지만 더운 기운은 그 열기를 쉽게 내려놓지 않았다. 기상청에서는 올해의 더위가 백 년 만에 찾아온 더위라고 했다. 게다가 아주 길어서 추석 전날인데도 반소매 옷을 입고 나서야 했다. 공항 대기실에는 에어컨 바람으로 서늘하다. 새벽 6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도 여행을 떠나는 인파는 긴 행렬을 이루었다. 명절 연휴에 며느리로서 여태 꿈도 못 꾸던 해외
삼촌과 함께하는 하굣길은 언제나 즐거웠다. 3학년인 또래들보다 6 학년인 삼촌과 함께하는 하굣길 놀이가 훨씬 더 신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아버지와 어머니도 삼촌과 함께 하교하는 날은 늦어도 걱정을 덜 하셨다.“경민아, 저수지에서 멱감고 갈까? ”삼촌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도 돌아다 보지 않고 마을 앞 저수지를 향하여 달음박질쳤다.“응, 삼촌
종로3가에서 13시에 점심 약속이 있어 신설동역에서 전철 1호선을 탔다. 한낮이라 찻간이 널널하여 자리에 앉았는데, 바로 맞은 편에 양 옆에 두 딸을 앉힌 40대의 엄마가 있었다. 엄마 오른쪽에 앉은 아이는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고, 왼쪽의 아이는 서너 살로 보였는데 그 표정 이 뭐라고 표현을 못 할 만큼 이상하게 보였다. 어디가 몹시 괴로운 듯 도 싶고,
수업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들리고 담임선생님이 낯선 소녀와 함께 교실로 들어선다. 친구들이 소곤거린다. 천사처럼 이쁘다며 킥킥거리는 녀석도 있다. 소녀가 굳은 표정으로 선생님 곁에 서 있다. 반장의 구령에 따라 선생님께 인사를 올린다.“오늘은 여러분께 전학 온 친구를 소개합니다. 이름은 태미선이고 정주 시내 호남초등학교에서 전학 왔습니다. 시골은 낯설고 잘
기체가 땅에 닿았다. 은빛으로 번쩍이는 날개를 비스듬히 앞으로 기울이고, 바퀴가 지면에 닿는 순간 육중한 기체가 기우뚱했다고 소영은 생각했다.‘어쩌면 안 그랬는지도 모르지.’돌아다보니 어머니 얼굴은 그저 그래 보였다. 헤어져 공부하시던 아버지가 미국 어느 명문대학 박사학위를 따고 다니러 오신다는데도 어머니 얼굴은 아무런 감동이 없어 보인다.‘속으로만 떨고
늪이라는 젖은 말을 무릎에 올리자 귀 밝은 내 곁가지 흠뻑흠뻑 빠져든다 뒤돌아 나가는 길을 잊은 듯이 잃은 듯이그 눈빛 놓칠 때 내려 앉은 광대뼈 오십몇 년 헤아려도 아득하기 짝이 없고 문고리 소소리바람잡았다 놓고 가는어차피 홑이었을 밤을 끌어당기자 오소소 떠는소리 그도 후회하는가 순식간 들이치
푸르던 잎새들이 한때는 즐거웠지 활기찬 지난날이 그리워 생각난다 그처럼 굴러가는 게우리 인생 아닌가나뭇잎 가지마다 황홀한 색을 띠다 찬바람 불어대니 하나 둘 떨어지고 마음을 텅 비우고서살아가는 노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