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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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을 개시했다.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한 지역으로 진격하자,
중국은 1950년 10월 19일 팽덕회가 지휘하는
'중국인민지원군' 20여만 명을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투입해 전쟁에 본격 개입했다.
중공군은 10월 25일 1차 공세를 개시하며
유엔군 후방을 위협했고,
기만전술로 유엔군을 유인한 뒤 자취를 감췄다.
맥아더 사령관이 중공군의 개입 규모를
과소평가한 채 '크리스마스 공세'를 명령하자,
중공군은 11월 25일 2차 대공세를 펼쳤다.
동부전선에서는 11월 27일부터
장진호 전투가 벌어져,
미 해병 1사단이 중공군 제9병단 7개 사단의 포위 속에서
2주간 혹독한 추위 속에 격전을 벌였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 1사단은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흥남 지역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했으나,
유엔군은 동부전선에서 대대적인 후퇴를 피할 수 없었다.
중공군의 공세로 전황이 급변하자,
유엔군과 국군은 1951년 1월 4일
서울을 다시 내주고
38선 이남으로 대규모 철수를 단행했다.
중공군과 북한군은 서울을 재점령했지만,
유엔군은 곧바로 반격에 나서
1951년 3월 서울을 재수복했다.
이후 양측은 38선 부근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진격과 후퇴를 반복했다.
결국 1951년 6월경부터 전선은
38선 부근에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전쟁은 기동전에서 참호전과
고지전 중심의 소모전으로 바뀌었다.
같은 해 7월부터 휴전 회담이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기에 이르렀다.
한민족 최대의 비극 한국전쟁은
수많은 사연을 낳았다.
숫자가 있다.
63만 5천 톤.
그것이 1950년 6월부터 3년 동안
압록강에서 낙동강까지
미 공군의 B-29가 뿌린 불의 기록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폭탄의 무게다.
이 숫자는
2차 대전 때 일본에 퍼부은 16만 톤의
거의 4배였다.
2차 대전 당시 유럽에 떨어진 것은
106만 톤.
일본에 떨어진 것은 50만 톤.
그러나 유럽은 6500만 명의 땅이었고
일본은 7200만 명의 땅이었다.
북한은 970만 명의 땅이었다.
숫자를 나누면
진실이 드러난다.
한 명이 감당한 폭탄의 무게
한반도가 세계 어느 전쟁보다
무거웠다.
북한의 22개 도시는
60%에서 95%까지 사라졌다.
한 종군기자가 적었다.
“압록강과 평양 사이는 철저히 파괴되어
도회지는 보이지 않았다.
빨래판처럼 판판했다.
사람이 살았던 곳은 굴뚝만 남아 있어
마치 달나라를 여행하는 것 같았다.”
도시와 마을의 밤은
한 번이 아니라 수없이 불탔고,
평양, 강계와 신의주와
이름 없는 마을들까지
불길은 경계를 모르고 번졌다.
네이팜은 살을 삼켰고
소이탄은 집과 기억과 숨결을 함께 태웠다.
네이팜은 단순한 폭탄이 아니다.
강력한 폭약으로 먼저 건물을 부순다.
그 다음 네이팜이 불을 붙인다.
소이탄이 그 불을 살린다.
단 20분 만에
도시 전체가 1500도에서 2000도의
화재폭풍에 휩싸인다.
연기가 산소를 빼앗는다.
생명체는 타거나 질식한다.
사람들은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으며
얼어붙은 겨울 강 위에
붉은 화염이 떠다녔다.
1950년대 북한 도시의 모습이었다.
2차 대전 당시 유럽에서
이 방법이 비도덕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미국도 인정했다.
그래서 정밀폭격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중공군이 참전하자
그 원칙은 폐기됐다.
1950년 11월 5일 B-29 폭격기 22대가
강계로 날아가 75%를 파괴했다.
단 하루에.
맥아더가 지시한 작전이었다.
강계, 신의주, 그리고 수 개의 작은 도회지를
화염 공격하는 명령이 내려졌다.
북한의 모든 도시와 부락.
공장.
건물.
통신 시설.
모두 파괴하라.
전쟁이 끝났을 때
미 공군이 스스로 평가했다.
“북한의 22개 주요 도시
목표물 파괴율 85%.”
그러나 그 ‘목표물’ 속에는
할머니, 젖먹이를 안은 어머니가 있었다.
북한의 인구는 당시 970만 명.
그중 99만 5천 명이 죽었다.
최대 150만 명이라는 추정도 있다.
비교해보라.
2차 대전, 독일의 민간인 사망자는 40~60만 명.
일본의 민간인 사망자는 33~90만 명.
한반도는 더 작았지만
더 많은 죽음을 삼켰다.
전쟁의 이름 아래 도시는 불타고
강물은 시체를 떠내려 보냈으며
밤하늘은 끝없는 화장터가 되었다.
정전협정 논의가 시작되자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미군 폭격기들이 댐을 공격했다.
독산, 자산댐, 구원가, 남시댐.
물이 터져 농지가 잠기고 작물이 사라졌다.
수백만 명이 굶주렸다.
협상 카드였다.
주민들의 굶주림이
협상 테이블 위의 카드였다.
폭격이 계속되어
마침내 목표물이 사라졌을 때
미군 폭격기들은
개천에 놓인 작은 다리를 폭격했다.
아니면 그냥 바다에 폭탄을 버렸다.
할당량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2026년 트럼프가
이란의 비군사시설을 파괴하며
지옥문이 열릴 것이라고 외치는 모습은
1950년대와 닮았다.
중국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맥아더가 요구했다.
“만주와 압록강 주변에 34개의 핵폭탄을 투하하라.
최소 60년 동안 북한의 남침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34개와 60년 그 숫자 속에
얼마나 많은 목숨이 들어있는지
그는 계산하지 않았다.
한반도와 만주가
인간이 살 수 없는 폐허가 될 뻔했다.
트루먼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가 물었다.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고 있는가.
트루먼이 대답했다.
"핵무기 사용은 미 야전 사령관의 판단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통상적 고려 사항이다."
세계가 얼어붙었다.
영국 수상이 비행기를 탔다.
프랑스 수상도 달려왔다.
워싱턴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영국과 프랑스가 말했다.
미국이 중국과 싸우는 동안
소련이 서유럽을 공격할 수 있다.
핵전쟁이 유럽으로 번질 수 있다.
그것이 핵사용을 막은 이유였다.
유럽의 안전 때문이었다.
그러나 트루먼이 비밀리에 명령했다.
전술핵무기 9발을
B-29 폭격기 부대로 옮겨라.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것이었다.
카데나와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미군이 핵폭탄을 조립했다.
마지막 부품만 빼고.
그것은 실제 투하 직전에 넣는 부품이었다.
모의 훈련도 실시했다.
B-29가 오키나와를 날아
북한 지역으로 비행했다.
모의 핵폭탄과 재래식 폭탄을 투하했다.
실전 투하의 모든 과정을 연습했다.
그러나 핵폭탄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소련이 핵으로 일본을 공격할 가능성.
유럽이 불안해할 가능성.
미래의 전례가 될 가능성.
그리고 한반도 지형적 특성으로 인한
전술적 효율성 문제.
북한, 중공군이 한 곳에 밀집하지 않아
분산된 적에게 핵폭탄은 비효율적이었다.
맥아더가 그래도 계속 핵 투하를 고집했고
트루먼은 하극상을 이유로 맥아더를 경질했다.
그러나 핵폭탄 대신
또 다른 무기가 의심받았다.
세균전 의혹이었다.
보이지 않는 죽음의 폭탄.
바람을 타고 내려온다는 병균,
곤충과 깃털 속에 숨었다는 죽음,
탄저균.
보툴리눔 독소.
한탄 바이러스.
세균전 의혹은 미국이 자초했다.
일본 항복 직후 자행된
반인륜적인 암거래 때문이었다.
일본 731부대가 만주에서
살아 있는 인간을 생체실험 해 만든
피비린내 나는 악의 자료를
미국이 면죄부를 주고 손에 넣은 것이다.
731부대에서 죽어간 3천 여 명의 희생자중
조선인이 중국인 다음으로 많았다.
그들은 실험실과 영하의 벌판에서 살해당했다.
마루타라 불렸다.
통나무.
사람이 아니라 통나무였다.
미국이 종전 직후 악마의 실험을 한 자들과 직거래했다.
맥아더 휘하의 미군 정보 대장 윌러비가
731부대총책임자 이시이 시로와 만났다.
거래의 내용은 단순했다.
자료를 주면 면죄부를 준다.
이시이는 살았다.
1959년 자연사할 때까지.
그의 부하들도 살았다.
전후 일본 의학계 유명인사로.
면죄와 거래 속에
전범들의 기록은 살아남았고
조선인과 중국인의 절규 위에
피로 적힌 자료들은
새로운 강대국,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세균전 연구소로.
그 흉악무도한 암거래의 그림자는
한국전쟁의 하늘에도 드리워졌다.
중국과 북한이 주장했다.
“미국이 세균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부인했다.
소련이 조사 기구를 만들어 사실이라고 했다.
미군 조종사들이 포로가 됐다.
세균전에 참여했다고 증언했지만
귀국 후 번복했다.
그들의 입이 어떻게 닫혔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진실은 지금도 안개 속에 있다.
의혹은 사실인지 아닌지
끝내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
731부대를 계승한 미국의 세균전에 대한 의지는
정전협정으로 굳어진 한반도에서
그 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15년 서울 용산미군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반입됐다.
주피터 프로젝트라 했다.
2013년부터 시작된 생물 대응 실험.
1g으로 100만 명을 몰살할 수 있는 보툴리눔.
탄저균.
한국 정부도 모르는 사이에.
SOFA가 통관 절차를 면제했기 때문에.
아무도 검사하지 못했다.
세계 25곳의 미군 생물무기 연구소가
자료를 한국으로 보낸다.
분석하기 위해.
왜 한국인가.
북한과 가까워서인가.
SOFA 덕분에 통제가 없어서인가.
한국 시민단체들이 외쳤다.
중단하라.
미국은 답하지 않았다.
SOFA가 있으니까.
특권이 있으니까.
용산과 오산의 주한미군 기지에서
오늘날에도 생물무기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가.
한반도의 전쟁은
국가가 어디까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승리라는 말이 어디까지 잔혹할 수 있는지,
핵과 세균과 공습이
국제적 법규와 윤리의 벽을
얼마나 쉽게 파괴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잔혹한 물음표였다.
그런데도 전쟁 뒤의 세계는
묻지 않았다.
누가 파괴했는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누가 사과해야 하는지,
누가 조사해야 하는지.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전쟁이 끝난 뒤
독일에는 1천 명의 조사단을 보내
화염공습 피해를 정밀 조사하고 배상했다.
북한에는?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다.
물론 배상도 없었다.
독일은 서방의 동맹이 될 나라였다.
북한은?
조사할 필요가 없는 나라였다.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가 말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강행된 북한에 대한 공습은
미국이 타 민족에게 가한
가장 극단적인 폭력의 하나이면서
미국인들이 그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다."
왜 모르는가?
아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자신들의 신화를 부수기 때문이다.
‘자유를 수호한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신화를.
미국인들은 모른다하고
한국인도 말하지 않는다.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몇 년 전
미국 국빈 방문에서 말했다.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말은 감사의 표시였다.
그러나 감사는 진실을 가릴 수 없다.
미국은 왜 한국전에 참전했는가?
남한 주민을 위해서였는가?
아니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였는가?
1890년대 조선과 수교한 이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일관되었다.
국익 추구였다.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한반도 강탈을 간접 승인하고
36년간의 독립운동을 외면했다.
일본 항복 후,
미국의 남한 점령은 소련 견제가 목적으로
친일파를 군과 경찰에 그대로 재활용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용으로
남한 단독정부를 강행했고
제주 4.3이 반대하자 주민 1/10을 죽였다.
1950년 1월 애치슨 라인은
미국의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전쟁이 터지자, 미국은
일본의 공산화가 두려워 개입했다.
이것이 미국의 ‘희생’의 실체다.
물론 그 결과 한국이 혜택을 본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혜택은
미국의 선의가 아닌,
미국의 전략적 필요의 부산물이었다.
총성이 멎은 지 70년이 넘었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없다.
정전협정이 있을 뿐이다.
주한미군이 중국과 소련, 러시아를 견제하게 위해
계속 주둔하기 위해서
한반도 분단은 필수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휴전.
그 동안 핵폭탄이 남한에 배치됐다.
중국과 소련 위협용이었지만
동시에 북한을 자극했고
결국 북한도 핵을 만들었다.
2026년 한반도에는 진화된 형태의 위협이 있다.
핵우산은 보호라 불리고
전략자산은 억제라 불리며
새로운 공포는 기이한 언어로 포장된다.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이란 날개를 달고
대만 유사시 참전하고
러시아를 견제하겠단다.
강대국간 전쟁은 주한미군 기지가 있는
한국도 전쟁터가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국제법에 저촉되기도 한다.
한국이 주한미군 기지를 통해 제3국에 대한
군사작전을 허용하는 경우
국제법상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유엔 헌장, 국제관습법, 국가책임법 원칙이다.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무력 사용 금지), 제51조(자위권)는
국가의 무력행사와 다른 국가에 대한
지원의 적법성을 판단하는 기본적인 국제법규이다.
국제관습법은 ‘국가는 자국 영토가
다른 국가에 대한 불법적인 무력공격에
이용되지 않도록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국제법위원회의 국가책임 초안제16조는
다른 국가의 국제위법행위를 알면서
원조하거나 지원한 국가의
책임에 관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2026년 이란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사우디, 오만 등에 있는
미군 기지와 함께 해당 국가시설도 공격하는 경우,
중국이 성주 사드에 대한 보복을
한국에 10년째 하고 있는
배후 요인이 무엇인지 한국 정부, 언론은 입을 열지 않는다.
최근 주한미공군기와 중국공군기가
서해상에서 대치했는데
한국 정부는 뒤늦게 알았다며 항의하자
주한미군사령관이 ‘무슨 소리냐?’며 맞받았다.
한미동맹에 의해 허용된
주한미군의 군사행동이라 했다.
전략적 유연성의 숨은 뜻에 대해
한국 정부는 국민에게 설명치 않았다.
적절한 것인가?
한국정부가 SOFA에 묶였다며
침묵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행복할 권리에 역행한다.
그것은 반헌법적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미국 대통령의 선제공격 발언에도
한국 정부는 침묵하는 것이 관행이다.
선제공격 후에는 한반도 전면전이 불가피하다.
한반도 남북이 다 죽을 수 있다.
침묵하는 정치, 언론, 학계도 무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도 침묵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바보라서 그런가? 벙어리인가?
북한핵에 대한 공포와 대처가
미국의 핵우산과 미국의
한반도 전략만으로 해소되는 것인가?
오래전부터 동서해 하늘에서
중국러시아가 합동군사훈련하고 있다.
오산, 군산의 활주로에는
전략폭격기의 그림자가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오늘도 미군기지 어딘 가에서는
탄저균 실험이 계속되고 있을지 모른다.
자살률 세계 최고, 출산율 세계 최저의
헬지옥 현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핵은 평화의 도구가 아니고
세균전은 결코 방어가 아니다.
국제법은 강자의 장식품이 아니라
약자의 마지막 방패여야 한다.
그래서 한국은 미국 대통령에게 강하게
말해야 한다.
" 이 땅에서 미 국익을 위한
전쟁은 절대 안 된다.”
지난 70 여 년간의 한미동맹을 돌아볼 때
한국의 자주권 회복이 급선무다.
미국이 하자는 대로 따라하다가
정전협정은 지속되고
주한미군의 치외법권적 지위는 더욱 강해진다.
그 결과 한국 민주주의도 쪼그라들고 있다.
평화는 망각과 의존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평화는 진실 위에만 세워진다.
언젠가 155마일 휴전선의
철조망 위에 진달래가 피고
판문점의 콘크리트 위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흐르는 날,
그날 비로소
이 땅은
미국의 전략기지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날까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