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고승우 연재 10- 세계 최장 '정전'의 잔혹한 비망록

한국문인협회 로고

고승우

작성일시2026.07.08

조회수149

좋아요0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총성이 멎은 지 칠십 여 년,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의 사슬에 묶여있다.

정전(停戰)은 했으나, 평화(平和)는 오지 않았고,

서명된 종이는 철벽이 되어 남과 북을 갈라 놓았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 제 159차 휴전 회담장

펜 촉 끝에서 멈춘 것은

전쟁이 아니라 단지 방아쇠였다

중국이 발을 빼고

W.K. 해리슨과 남일이

세 통의 협정서에 서명을 한 순간,

3년 1개월 2일 동안 흐르던 피는 간신히 멈추었다.

비무장지대가 만들어지고 앞뒤로 2km 간격으로

군사 분계선이 그어졌다.

철조망이 세워져 한반도의 허리를 끊었다.

그날 이후 한반도는 평화가 아닌

정지된 폭발 속에 살아야 했다

그것은 완전한 종전이 아닌 전쟁의 잠정 중단,

전투의 총성만을 유예한

위태로운 불완전한 평화였다.

군사정전위원회가 꾸려지고 중립국감시위원단이

더 이상의 군비 증강과

무력 행동을 감시하려 했으나,

휴전의 서약은 태생부터 깨지기 쉬운 유리 그릇 이었다.

협정서 제 60항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3개월 이내에 정치적 회담을 열어 평화협정을 맺으라고.

1954년 4월 제네바에서 첫 회의가 열린 뒤

이듬해 봄까지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대륙과 해양의 동상이몽 속에

합의가 없었다.

결국 정전협정은 70 여 년 동안

차가운 화약고 위에 방치된 채

세계 최장의 기록을 매일 갈아 치우고 있다.

왜인가.

미국이 원치 않았다.

미은 자국의 국익이 손상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있어야 할 명분이 약해지고

주한미군이 없어지면

중국의 목을 겨누는 칼이 사라진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 한반도는

분단 상태가 지속돼야 했다.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전쟁이 나는 것도 미국은 원치 않는다.

그것은 한반도가 다시 국제전이 되어

6.25 전쟁처럼 승패가 가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까지 가지 않는 긴장상태의 지속을 위해

미국은 지난 세월 동안 남북을 관리했다.

남한에 대해서는 1954년 20세기 최악의 불평등 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발효시켰다.

이 조약은 미국도 원했고 이승만이 원한 한미합작품이었다.

이승만이 정전협정 체결의 대가로

미국이 침략을 받으면 즉각 개입한다는

조항을 요구했다..

그러나 관철하지 못했다.

대신 얻은 것은.

주한미군의 남한 배치를 '권리'로 인정.

미군기지와 시설 무상으로 제공.

그리고 미국이 원하는 무기는

언제든 반입할 수 있는 권리

이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었다.

미국 쪽으로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미국이 국익을 위해 원하던 최상의 조약이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남한 보호를 빙자한

미국 군대 배치의 권리장전이었다.

미국 군대는 치외법권적 특권 속에

영구 주둔이 가능해졌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세 개의 사령부의 모자를 쓰고 군림했다.

유엔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이라는 기괴한 겸직 체제.

일제 조선주둔군 총사령관이 물러난 뒤

새로운 형태의 점령군 대장이었다.

한국에서 발생할 모든 군사적 돌발 사태의 통제권은

워싱턴 정부의 명령을 받는

미군 사령부에게 있었다.

미국이 원하면 이 땅의 어디든 군사기지로 내어주어야 했고,

부지와 시설, 천문학적인 주둔 비용까지 퍼주는

불평등한 예속의 이정표가 동맹의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한국의 지역개발에서 미군기지의 권익이 최우선이었다.

이승만은 한국군의 작전권도 미국에 넘기면서

군사적 자주권을 송두리 채 미국에 바쳤다.

군사적 식민지를 자청한 것이다.

한국군이 주한미군을 상전으로 모시는

예속적 현상 속에서

정치군인들이 날뛰고

5.16쿠데타, 광주학살 속에 정권 찬탈이 자행되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방위조약으로 묶고

일본의 일곱 개 항구에 가동 중인 유엔사 후방기지를 엮어

동북아 3각 군사동맹 체제를 만들어

동북아 전략 구도를 완성했다.

이 거대한 삼각의 군사 구조 속에서

한국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자주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미국의 군사 허브를 떠받치는 주춧돌 하나로 전락했다.

유엔사 후방기지는 제2의 한국전쟁이 터지면

다국적군을 실어 나를 중간기지 시스템으로 예비 되어 있다.

그곳은 지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을 감시하는

외국 군함들의 기착지다.

지구촌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미국의 군사적 식민지에 불과했다.

한국 정부는 한미군사관계에 대해

국민에게 거짓말을 일삼았다.

“한미는 피로 맺어진 동맹이다.”

독재정부는 한미동맹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국보법을 적용해 이적행위, 반국가행위로 처벌했다.

수십 년 동안 그랬다.

그 결과 한미동맹은 불가침의 영역이 되었고

한국 사회의 미맹은 치유불가능의 상태로 심각하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앞세워

한국의 군사적 주권을 장악한 채

미국익을 챙기는 것을 한국 국민 거의 모두가 모른다.

주한미군은 대북 방어용일 뿐 이라고 70 여 년간 합창한

한미 두 정부의 대 국민 심리전이

지대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미국이 중국, 소련과 러시아 핵보유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북아에 박아 놓은 최전선 부대라는 점을

한미 두 정부는 철저히 숨기고 있다.

한미동맹이 국보법과 함께 한국의 민주주의 공간을

심각하게 좁히고 있는 것도 방치되고 있다.

한국의 진정한 민주주의, 평화통일을 막고 있는

두 개의 쇠말뚝이 한미동맹, 국보법이라는 사실을

일부만이 말할 뿐이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주적이고

이들의 핵무기로 부터 본토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을 주한미군 등을 통해

2차 대전이후 계속 수행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미 대통령 등 미 정부의 책무다.

그들은 법치의 이름으로

한국에서 동북아 방어 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남한 보호, 북한 방어는 미국 법에 의해

신경 써야 할 책무가 없다.

미국의 외교국방 정책 제 1순위는 미 국익이고

평화와 정의 등 고상한 가치는 그 이후다.

미국은 국익을 위해 동북아 전략을 수행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한반도 분단을 이용하고 있다.

분단이 지속되어야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수 있고

가까운 거리에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은 분단 유지를 위해

남북한을 관리하고 있다.

전쟁이 나지 않을 정도의 긴장이 유지가 되는 것이

주한미군 주둔에 가장 유리한 조건이 된다.

우선 미국의 남한 관리부터 살펴보자.

미국의 남한 관리는 1945년 미군정 때부터 시작됐다.

미국이 남한을 미국의 51번째 주 정도의

친미 공동체로 만들려 시도한 것이다.

미국은 이승만과 친일세력을

친미권력집단으로 만들어

한미동맹을 철저히 이행토록 하고

국보법 등으로 미국 비판 등을

봉쇄하게 만드는 것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한반도 분단체제에는

일본의 전쟁 범죄를 심판, 청산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조약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한국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는

샌프란시스코의 조약은 평화의 선언이 아니라

일본을 미국의 동북아 기지로 만들기 위한

미일 야합 이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질서 속에서

일본에 의해 가장 오랫동안 식민지 침탈을 당한

한반도는 조약 심의 과정에서부터 배제되고

조약 서명국에서도 제외됐다.

미국은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배상액의 수배가 되는 경제적 혜택을 남겼다는 식의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일본을 도왔고

오늘날 뉴 라이트들의 식민지기여론의 주문이 되었다.

그 뿐 아니었다.

독도는 분쟁의 씨앗이 되었고,

일본의 경제 기적을 위한 디딤돌은,

조선인들의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강제 노역과 성노예 위에 놓였다.

이승만은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오직 ‘북진통일’에 꽂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거대한 밀실 속에서 미일이 속닥일 때

일제 최대의 피해자인 남과 북의 자리는 없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썩은 유령이 다시 살아나

성노예의 눈물도, 강제징용의 사슬도 배상 없이 지워졌고,

홀로 남은 독도는 한일의 분쟁지로 버려져 미래의 전쟁을 잉태했다.

이승만은 정전협정 타결 저지에 사력을 다하면서 .

샌프란시스코의 평화협정은 외면했다

그가 일반상식을 가지고 미일 야합의 현장인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제 여론전을 폈다면

오늘날 반도의 운명은 다른 궤적을 그렸을 것이다.

수구의 무리들은 그를 '국부'라 칭송하며 가짜뉴스를 만들지만,

그가 남긴 것은 일제의 전방위적 수탈에 대한

배상권을 통째로 날려버린

외교적 대참사이자, 지울 수 없는 역사적 과오일 뿐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약이 체결될 때,

가장 큰 피해자인 이 땅의 민족은 초대받지 못했다.

프란시스코, 1951년 9월 태평양의 서쪽 끝에서

한국전쟁이 한창 불꽃을 튀길 때

52개국이 샌프란시스코에 모였다.

패전국 일본을 용서하는 자리였다.

아니, 그저 용서가 아니라 거래였다.

미국이 설계한 거래는

일본이 다시 강해져 소련을 막는 방패가 되는 것으로

그 거래의 내용은 이러했다.

“천황제를 유지한다.

전범처벌을 최소화한다.

배상 책임을 가볍게 한다.

피해국과 일본이 일대일로 협상하게 한다.”

베르사이유 조약처럼

패전국을 응징하는 방식은 없다.

일본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한국은 조약 서명식 참석 52개국 중에 없었다.

협의 과정에서도 없었고 서명국 명단에도 없었다.

36년간 식민지였던 나라.

일제에 의해 가장 많이 수탈당한 나라.

위안부가 있었던 나라.

강제징용이 있었던 나라.

그 나라가 없었다.

미국이 배제했고

일본도 배제에 동의했다.

이승만은 침묵했다.

북진통일에 쏟았던 그 열정의

몇 십분의 일도 여기에 쏟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늘까지 이어진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

강제징용 배상이 거부되는 이유.

독도 분쟁이 계속되는 이유.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씨앗이었다.

미국이 심은 씨앗.

이승만이 물을 주지 않은 씨앗.

그 씨앗이 자라 오늘의 가시덤불이 됐다.

미국은 전쟁을 방지해서

한반도 분단을 유지하는 방법도 써먹었다.

거기에는 남북 교류협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은 남북이 교류협력을 시도하자

분단 유지가 지속되는 것을 전제로 관리했다.

미국은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한미동맹을 앞세워

남한의 군비증강과 대북 공격태세 강화조치를 취했다.

미국 무기를 엄청 사도록 만들었다.

강력한 안보에서 평화가 보장된다면서

그렇게 했다.

남북 불가침선언, 6.15선언, 10.4선언 등이 이어지고

북한이 휴전선 부근인 개성, 금강산 두 지역을

남한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남한의 한 정치인이 휴전선 155마일을

개성공단처럼 만들어 남북 경제공동체로 가자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 정치인은 DMZ관할권이

유엔사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딴 소리를 했을까?

아니면 미국 정부가 상전인 유엔사가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기대 해서 그렇게 했을까?

유엔사는 정전이후 평화 확대를 위한

조치가 아닌 분단 유지만을 위한 행동을 했을 뿐이다.

유엔사는 인도적 물품의

DMZ통과도 불허하기도 했다.

결국 이명박, 박근혜 당시 금강산, 개성의 문이 닫혔다.

2018년 다시 기회가 오는 듯 했다.

문재인이 방북해 평양시민에게 육성으로 연설하고

남북 정상회담 3회, 백두산 남북정상 동반 등정도 했다.

남북국가연합이 가능할 정도의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뒤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미국은 문재인이 남북합의를

거의 이행치 못하게 만들었다.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폼을 잡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김정은이 2국가론을 선포하며 남측과 각을 세웠다.

북한은 핵을 탑재한 ICBM을 만들었다고 선언하고

한반도 비핵화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미국이 분단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취한

북한 관리는 어떻게 행해졌을까?

미국이 맨 먼저

한 짓은 정전협정 유지였다.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은

협정문에 적혀 있었으나

그 문장을 70 여 년 동안 미완으로 머물게 만든 것이다

정전협정을 먼저 저버린 쪽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1956년 새로운 무기의 반입을 금지한

정전협정 제13항에 칼을 꽂았다.

북한이 먼저 13항을 위반했다는 핑계를 댔으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1957년 판문점에서 미국이 선언했다.

"더 이상 13항에 얽매이지 않겠다."

1958년 새해의 한파 속에서

미국의 단거리 핵미사일과 280mm 핵 발사 대포가

이 땅에 배치되었다.

이듬해에는 중국과 소련의 심장을 겨눈

크루즈 핵미사일까지

주한미군은 최고 1천기의 전술 핵무기가

대북용이라고 했다.

북한은 핵이 없는 나라인데 그렇게 했다.

그러나 진실은 따로 있었다.

주한미군 핵무기는 당시

핵무기를 보유한 중국과 소련을 겨냥한 것이었다.

주한미군은 당시 미 본토를 수호하기 위한

미국의 세계전략 SIOP를 몰래 수행하고 있었다.

베이징과 블라디보스톡은 700~800km 거리였다.

수원과 군산 미공군기지에서 폭격기가

24시간 대기하며 폭격태세를 유지했다.

미국은 그러나 공개적으로 주한미군 핵무기는

북한 남침 대비용이라고만 말했다.

한국은 침묵으로 그에 동의했다.

미국은 자국 법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모든 것을

비밀로 분류하고 SOFA 3, 26조를 만들어

한국 정부도 따르게 만들었다.

한미 두 정부의 ‘심리전’ 속에 한국 국민은

까맣게 몰랐다.

주한미군 핵무기에 의해 강대국간 핵전쟁이

한반도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을.

민족 전멸의 위기가 현실이었지만 한국 국회도

침묵했다. 언론, 학계 등도 마찬가지였다.

남한의 잘 나가는 정치인과 부자들은 미국 국적을

자신은 물론 자식도 취득했다.

한반도가 불바다가 되면 자기 가족은

미국으로 도망가 잘 살겠다고 그랬을까?

한국이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발전을 하자

한국 정치, 언론 등은 다 미국 덕택이라 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미국의 민낯은 그게 아닌데 왜 저러지?

바보인가, 정신병자인가?

삼척동자에게 물어보라.

누가 정전협정을 지속시켜 분단의 벽을 높게 만들고

핵전쟁의 위기가 24시간, 365일 일상이 되게 했는가.

북한을 손가락질하며

중국과 소련, 러시아를 지근거리에서

목에 겨눈 비수처럼 위협해 국익을 챙긴 게 누구인가.

그런데도 정전협정 70 여년이 지난 후

해외 참전용사를

한국 언론과 정부가 찾아다니며 절을 한다.

‘감사합니다.’

참전용사들은 자기 국가의 명령에 의해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싸웠으니 그들은 자기 국가에 충성한 것이다.

한국이 찾아가서 허리를 굽히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과공은 비례’라는 말이 떠오른다.

지구촌의 눈에 한국 주류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경제와 군사력 세계 상위권, K-문화선진국의

청소년이

미국의 정체, 한미관계의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광화문에 참전용사를 칭송하는

받들어 총 시설물이 거대하게 들어서고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해

대만에서 일이 생기면 참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중 전쟁이 나면 한국도 전쟁에 휩쓸리게 된다는 것을

공개리에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 언론, 학계 등 주류는 그저

한미동맹 강화만을 합창하고 있다.

21세기의 한반도의 위험지수가 높아지게 만든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의

독소조항을 미국은 꼴리는 대로 휘두르며

이 좁은 반도를 냉전기 동안 동북아에서

가장 위험한 핵 화약고로 만들었다.

정전협정은 껍데기만 남았다.

훗날 남쪽을 놀라게 한 전방의 땅굴들은

미국의 핵 공격 대비용이라 했다.

1963년 북한이 소련과 중국에 요청했다.

“핵무기 개발을 도와달라.”

두 나라가 거절했다.

그때부터 북한이 혼자 핵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1975년 유엔 총회는 유엔사를 해체하고

평화협정을 맺으라 결의했으나,

미국은 한미연합사라는 또 다른 꼼수의

겉옷을 만들어 주한미군 주둔을 지속하려했다.

미국은 핵 위협의 수위를 높이면서

매년 팀 스피리트 훈련으로

반도의 하늘과 바다를 핵전쟁 연습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미국의 선제공격의 가능성 앞에

북한은 계속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

핵이 없던 카다피, 후세인이 미국 침략으로

살해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북한은 혼자 미 본토까지 닿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었다고 했다.

브루스 커밍스가 말했다.

북한의 핵 개발은

한국전쟁의 공습 경험과

전후 미국의 핵 위협에서 시작됐다고.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세계가 긴장하고

중국이 중재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이 시작된 뒤

2005년 9월 19일 합의가 이루어지고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북한이 핵을 파기하고 NPT와 IAEA로 복귀한다.

한반도 평화협정을 추진한다.

북미 간 신뢰를 구축한다.”

세계가 박수갈채를 보냈고 한반도 평화가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2005년 10월 단 한 달 만에

그 푸른 꿈은 산산조각 났다.

미국이 터뜨린 방코델타아시아(BDA) 위폐 사건.

미국이 발표했다.

“북한이 달러 위폐를 만들고 있다.”

달러 위폐는 전쟁 선포와 같은 중대 범죄라고 했다.

소리는 컸으나 미국은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6자회담이 중단되면서

비핵화 합의가 백지화되고 평화의 문이 닫혔다.

증거 없는 주장이 평화를 막았다.

미국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북한 비핵화 검증에 대해서도 미국은 손사래를 쳤다.

“북한이 핵을 숨기면 찾아내기 어렵다.”

현대 과학의 눈은 우주에서 모래알도 식별하고,

미국과 러시아는 위성과 현지 사찰 등을 통해

전략핵 감축을 검토하는데,

왜 북한의 비핵화 검증 앞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칼날만 들이대는가.

불신을 발명하고 현상을 유지하려는 자,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다.

분단 유지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땅의 평화를 가로막는 것은

외세의 사슬만이 아니다.

세계가 규탄하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한다.

북한은 우리와 함께 유엔에 동시 가입한

엄연한 주권국가이건만,

국내법의 현미경으로 보면

상상하거나 접촉조차 죄가 되는

반국가단체일 뿐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 악법은 수십 년 동안

평화통일을 외치는 양심들을 처벌하고

입을 막는 재갈이 되었다.

수구보수 정권은 정국이 흔들릴 때마다

간첩단을 조작했고,

공안정국의 핏빛 광풍을 일으켜

민중의 염원을 탄압했다.

평화를 말하면 친북이 되고,

자주, 주권을 말하면 반미로 몰던 야만의 시대,

그 최전선에 섰던 정보기관들은

민주화의 새벽이 온 뒤에도

자신들이 지은 죄를 반성하거나

청산하지 않은 채 유령처럼 살아 숨 쉰다.

탄압은 집단 기만을 노리는

가짜뉴스 유포가 병행했다.

사드가 들어올 때도, 패트리어트가

전방에 깔릴 때도

정치권과 언론은 우리가 반대할

권한이라도 있는 양 허상을 유포했다.

실상은 조약에 묶여 미국이 결정하면

군소리 없이 수용하고

우리는 그저 기지와 비용만 지불하는

군사 주권의 진공 상태.

그 서글픈 진실을 가린 채

오늘도 반공의 확성기는

청소년들의 눈을 가린다.

주한미군은 지난 70 여년 동안

북한을 막는 방패가 아니었다.

중국과 소련, 러시아를 상대로

정찰, 감시, 선제타격하는 세계전략의

최 전방기지 역할을 해해왔다.

미국은 이를 비밀로 하고 한국 정부도

그에 따랐다.

강대국간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 기지가 있는 한국은 전화를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전쟁의 논리다.

그런데 한국 국민은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내고 있다.

아니다. 일부 지배층은 알고 있었다.

혼자만의 비밀로 하고

일가족의 미국 국적을 챙겼다.

이중국적으로 여차 하면 미국 정부의

자국민 철수 대열에 합류하려 한 자구책이었다.

추악한 이기주의 속에 나라는 병들어 가면서

자살율과 출산율이 세계를 놀라게 할 수준이 되어버렸다.

헬 조선이라 불리면서.

외국군의 비밀 군사작전은

한국의 법치 대상이 아니다.

한국 행정부, 국회의 민주적 통제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공간을 축소, 박탈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제 국민들에 대한

헌법적 보호 조치를 외면한 결과다.

정부의 제일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

한국 정부는 이런 책무를 외면하는 직무유기를

70여 년 동안 저지르고 있다.

한미동맹만 중시했지 제 국민의 안위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미·중 패권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주한미군은 중국의 목덜미를 겨누는

가장 예리한 비수이다.

우리가 원치 않아도 미국의 대중 전략에

주한미군이 동원될 때,

대륙의 군사적 타격은

고스란히 이 땅으로 쏟아진다.

주한미군 기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화를 피할 수 없다.

미국이 한국에서 중국, 러시아를 향한

군사행동을 하는 것은

국제법위반이다.

이재명 정부도 주권정부라 하면서

주한미군의 ‘비밀’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전작권이 외국군 손에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군대를 부릴 수 없는 국가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전작권의

한국 환수에 한미가 합의했다.

2012년으로 정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를 거치면서

그 시기가 미뤄졌다.

2015년.

2020년.

그것도 조건부였다.

동북아 안보환경까지 따지는 조건은 밑 빠진 독.

시간이 가도 채워지지 않았고

채워지면 새 조건이 나온다.

미국은 주한미군사령관이 전작권을 넘긴 뒤에도

미국 대통령의 통수권 속에서

주한미군, 유엔사 지휘권을 행사하게 된다.

전작권 전환이후 한국 땅에서

두 군대에 대한 통수권이 독자적으로 발동되는 체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경우는 없다.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안위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진다는 식의 논리를 들고 나올 법하다.

한국도 동일한 논리로

맞장을 떠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

수십 년 동안 미국에 끌려 다녔고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모습만이 보이기 때뿐이다.

제대로 말하는 한국 정치인, 아니 놈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까지 외세에 끌려 다닐 것인가.

미국 대통령들이 외쳐온 대북 선제타격의 호언장담은

한반도 전면전쟁 발생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었다.

전면전이면 한민족 전멸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한국 정부는 그런데도 침묵한다.

전쟁이 나면 정치인도 죽는 것인데

왜 저런 기이한 짓을 하는 것인가?

그런 와중에 평택에 세계 최대 해외 미군기지가 생겼다.

한국이 땅을 마련해 시설 지어주고

미국이 쓴다.

주한미군은 평택과 오산에 우주전쟁 기지도 만들겠단다.

한국 정부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국민은 속이 터지는데도 침묵, 침묵, 침묵.

미국이 자국 이익을 챙기는 것에

한국 정부가 침묵하는 것을

전 세계가 손가락질하며 비아냥거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70년 동안 얼어붙은 세계 최장의 정전협정은

미국이 저지르는 위선의 증서다.

이 껍데기를 찢고 실효적인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한반도의 화약고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외세의 예속을 끊어내고, 군사적 자주의 발판을 다져

유엔 회원국에 걸맞은 온전한

주권국가로 우뚝 서야 할 시간이다.

세계 선진국 수준의 경제, 군사력과 세계가 찬탄하는

k-팝 문화의 주인공다운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

이 땅의 주인들이

자주의 깃발을 높이 들때,

겨울은 가고 진정한 평화의 봄이 찾아오리라.

모두가 떨쳐 일어나야 세상이 좋아진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군사주권 회복하고

국가보안법 폐기해야 한다.

남북이 만나 평화통일을 실천할 수 있게 해야한다.

그것이 70년 정전의 덫을 벗어나는 길이다.

덫은 스스로 끊어야 한다.

다른 누가 끊어주지 않는다.

미국이 끊어주지 않는다.

중국이 끊어주지 않는다.

당사자 스스로 끊어야 한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