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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연재 13 - 박정희도 비판한 한미상호방위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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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작성일시2026.07.21

조회수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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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대한민국 대통령가운데

불평등 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은

박정희가 유일하다.

이승만이 1953년 미국과 합의한 이 조약에 대해

박정희는 1966년 국회, 국방부를 통해

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미국을 겨냥, 압박하려한 정치적 행위였다.

협상은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노려

상대를 코너로 몰아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것으로

바둑을 두는 것과 흡사하다.

급소에 착점 하면 판을

유리하게 몰고 갈 수 있다.

박정희가 미국과 협상과정에서

그렇게 했다.

정치 큰 머슴인 이재명 대통령도

박정희의 대미 협상정치력은 배우는 게 좋겠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전쟁을 막아선

방패의 이름이지만

동시에 21세기 문명국가 중 유일무이한

군사적 예속과 불평등의 굴레를 품고 있어

주한미군에게

마치 점령군과 흡사한

치외법권적 특권을 주는 장치다.

미군이 깃발을 꽂은 주한미군 기지는

대한민국의 주권과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거대한 미국의 성역이다.

그 뿐인가.

주한미군이 미 본토 수호를 위해

중국과 소련, 러시아를 상대로

정찰, 감시, 임전태세 등의

비밀군사 작전을 24시간, 365일

전개하면서 한국 정부도 SOFA에 묶여

침묵해 결과적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짓밟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산, 군산 미군기지 주변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자칫 강대국간 군사적 충돌로

전쟁에 휩쓸려 들어가는

위험이 상존하지만 이에 대한 대비는 전무하다.

한국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모르쇠 하는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고

민주주의의 공간을 좁게한다.

그 뿐 아니다.

주한미군이 중국과 대만에서 충돌하면

한국은 국제법적으로 미국과 함께

전쟁 책임을 면키 어려운데

이는 미국과 이란 전쟁에서

이란 군이

미군이 주둔한 걸프국가들을

공격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사례다.

중국이 경북 성주 사드를 이유로

한국에 대해 경제적 보복 조치를

10년째 취하고 있는 배경도

사드가 중국 군사력을 정탐하는

것에 대한 대응이라 하지만

미국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국내 기업 등만 혼자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으로 인한

예속성, 위험성에 대해

국내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정치권

모두가 미국 눈치를 살피며

선거를 의식해 표를 잃을까봐 침묵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와 민주주의 정치가

좁혀지고 짓밟히는데도

정치 머슴들이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고 정치적 과실을

따 처먹는 데만 혈안이 된 모습이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경제와 군사력 선진국,

K- 컬쳐, 정보 강국이라는 한국의 정치권은

물론 언론, 학계 등 기득권 세력 모두가

이 조약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숭배하며 전쟁위험,

국제법적 책임문제조차 외면하고 침묵한다.

워싱턴의 심기를 살피느라

주권을 포기하고

주종관계에서 안주하는 것을

지구촌이 속으로 비웃는 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

하지만

군사독재의 수장

박정희 정권은 달랐다.

1965년 월남 파병 등을 둘러싼

대미 협상장에서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압박 카드로 활용해

실리를 뜯어내기 위해 싸움을 시작했다.

1965년, 미국이 월남의 정글 속으로

한국 청년들을 증파하라고 요구하자,

박정희는 덥석 제안을 수락하는 대신

맹방의 요구를 들어주되, 동맹의 판을 흔들어

더 많은 달러와 무기 등을 챙길 기회로 삼고자 했다.

박정희는 밀실로 자신의 가장 충성스러운

심복이자 공작정치의 칼잡이를

불러들였으니,

그가 바로 그림자처럼 정권을 보좌하던

차지철이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 등을 철권통치 하던

박정희는 유정희 의원 차지철에게

비밀 지시를 내렸다.

“지철아, 한미상호방위조약 문제를 부각시켜라.

파병과 관련해 미국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네가 국회에 횃불을 들어라.”

박정희의 특급 지령을 받은 차지철은

맹렬한 투사가 되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노예적 성격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66년 3월 12일

차지철을 비롯한 55인의 의원들이

'한미상호방위조약 보완개정 촉구 건의안'을

국회 외무위원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발칵 뒤집히고,

언론은 정권의 보도지침에 따라

이를 대서특필했다.

이어 두 달 뒤인 그 해 5월,

정일권 총리는 브라운 미국 대사에게

강조했다.

“파병안 국회 동의를 얻으려면

한미상호방위조약 수정 보장이 필요하다!”

월남에 국군을 증파하는 파병안이 국회에서 상정되자

개정 요구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7월 8일 국회는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한국 방위 문제와 한미 군사 제휴,

재한 외국군 지위에 관한 모든 조약을

재검토하라.

시국 변화에 따라 현실성 있고 주권이 보전되는

내용으로 보완·개폐하라!”

역사적인 국회 건의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뒤

박정희는 국방부와 외무부에게

각자 제 역할을 하도록 지시했다.

청와대의 각본에 따라

1966년 10월 국방부는 조약을

깊이 분석해 작성한 기밀문서를

외무부 등 정부 부처에 보내

조약의 전면 개정이 필요함을 통렬하게 지적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야 제4조의

주한미군 주둔 권리는 목적도 책임도 불분명하여,

미군의 독자적인 군사행동이

한국의 안보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다!

미국이 우리 생각과 달리

중국을 겨냥한 전략무기를 배치해도

우리는 막을 길이 없으니,

당장 사전협의제를 도입하라!"

당시 국방부의 분석은

미국이 유럽연합 등 다른 외국과 맺은

군사관계 등을 참고할 때

나올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었다.

오늘날 제기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은 것으로

정교하고 치밀했다.

그러자 미국이 반응했다.

워싱턴은 한국군의 월남 증파에 대해

한국 정부에 ‘성의’를 보였고

박정희는 미국 부통령 험프리의

타협안을 수용하며

차지철이 벌이던 개정의 깃발을

슬그머니 내리게 만들었다.

공작의 마지막 수순인

소방수 역할은 외교부가 맡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나

한미간 중요현안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가 더 나아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실리를 챙긴 박정희는

자신이 휘둘렀던 자주의 칼을 칼집에 넣었고,

충복 차지철을 앞세운 공작정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후 박정희는 한층 지독한

독재의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한미동맹 수호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목소리를

국가보안법의 이적행위로 묶어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했으니,

이때 심어진 공포의 뿌리가

수십 년 간 동맹을 성역화 하는 족쇄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한미동맹을

정면에서 다루기를 겁내는

체질은

박정희 공포정치의

후유증에 감염된 결과라 할 것이다.

2026년 현재 민주주의 공간이

시민사회의 거듭된 혁명적 투쟁으로

넓어진 상황을 직시할 때

두 국가론이후 등장한

자주 회복은

한미동맹의 문제를 정밀하게 분석해

문제를 해소하는

작업이 우선이어야 하지만

양키 고우 홈이라는 구호와

미국의 솜털하나 자극하지 못하는

구호, 성명서를

수십 년째 반복하는 실정이다.

60,70년대 군사정권의 탄압이

자심하던 때의 모습과 흡사해

윤동력이나 파급력을 키우기 위해

연대하는 것을 주저하고

대중화는 큰 관심이 없이

자기들만의 리그에 매몰되어

양의 창자처럼 뒤얽혀 한국을 구속하는

한미군사관계에 대해

그 실체를 방치한 채

수박 겉핥기식의 전략전숙에

매달리거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미맹(미맹)이 지배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한미동맹은 우군관계라 하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간으로

수많은 법적·행정적 끈으로 얽혀

미국이 슈퍼갑, 한국이 을인

거미줄로 얽힌 촘촘한 구조다.

미국은 후발제국주의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한국을 동북아 대륙국가에

대처할 최전방 기지로

만들어 미국익을 위해 써먹기 위해

가능한 모든 변수에

대처한다는 목적으로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를 통제할 장치를

한미동맹이라는

거미줄로 얽어놓은 것이다.

이 거미줄은 미국을 절대시하는

방패가 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은

국제적인 자주에 대한 상식에 비춰보면 자명하다.

지피지기를 철저히 하면

예속구조를 타파할 방법이 보인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한국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과 국익에

한국을 정밀하게 조율시키는 장치다.

한국은 이 거미줄 속에서

안보를 보장받는다는 거대 담론 속에서

미국이 '위협'으로 규정하는

대상에게는 함께 맞서야 하고,

미국이 '금지'하는 기술이나 전략은

추구하지 못하는 구조적 구속에 갇혀 있다.

이 동맹에 포함된 조약, 협정법률들은

한국의 손발을 묶고, 합의들은

한국의 시야를 가리며,

회담들은 한국의 결정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런 구조는 그 출발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점에서

이 조약이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가 이 조약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미국에 들이댄 것은 참고할 만하다.

당시 박정희가 일견 통 크게

미국과 한 판 벌인 것은,

미국이 한국군의 월남 증파를 요구하면서

주한미군주둔군 협정(SOFA)에 대한

협의를 질질 끌면서 합의를 미루고 있는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박정희는 두 마리의 토끼를 노리기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국회 등에서 지적토록 만들어

미국이 요구한 한국군 5만 명의

월남 증파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반대급부를 더 얻어내고

십여 년째 지연되고 있는 SOFA 타결을

시도한 것이라 한다.

그가 한미상호방위조약 6조의 폐기 선언을

염두에 둔 듯한 기세로

다수의 정부 기구를 동원해

일사불란한 정치 행위를 펼치자

미국이 놀랐는지 월남 국군 증파 반대급부로

박정희가 요구한 경제원조 등을 수락하고

SOFA에 즉각 합의했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외국과 맺은 조약이나 협정 파기, 변경 등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체질인 것을 알고

박정희는 국회를 맨 먼저 동원했고

국방부를 앞세웠으며

최종 수습도 외교부의 건의에 따르는 형식을 취했다.

장기집권 속 독재를 자행한 장본인이지만

통 크게 미국과

한판 승부를 벌인 것은 인정할 만하다.

박정희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 미국의 간담을 서늘케 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그 문제점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1966년 3월 12일 차지철 의원 등

55인이 국회에 제출한

‘한미상호방위조약 보완개정 촉구 건의안’과

1966년 7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결의안’의 핵심 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보완개정 촉구 건의안은

차지철 의원을 비롯한 55명의 국회의원이

국군의 월남파병 상황에 발맞추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을 지적하고

정부에 개정 협상을 촉구하며

국회외무위원회에 제출했는데

그 주문과 제안이유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주문】

정부는 대한민국 안보의 완벽을 기하고

한·미 양국의 긴밀한 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의 권리 부여 조항 및

제3조의 발동 요건을 시국 변화에 적응하도록

현실성 있고 주권이 보전되는 내용으로

보완·개정할 것을 미국 정부와 시급히 교섭할 것을 건의한다.

【제안이유】

조약을 맺은 지 10년이 지나면서

극동 및 국제 정세는 다변화되었으며,

특히 한국군의 해외 파병 등으로

한·미 군사 제휴의 양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현행 조약 제4조의 미군 배치 '권리(Right)' 조항은

그 목적과 책임 한계가 불분명하여

미국의 독자적 행동에 의한 주권 침해 우려가 있고,

급변하는 안보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우므로,

상호 '사전 협의제도'를 도입하는 등

불평등한 요소를 제거하고

국가 주권을 보전할 수 있도록

조속히 보완·개정되어야 한다.

이 건의안은 국회 외무위원회의 심사를 거쳤고

이어 1966년 7월 8일 제57회 국회 본회의(임시회)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보완개정 촉구에 관한

공식 결의문이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공식 결의안에 담긴 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국회는 한국의 방위 문제와

한·미 군사 제휴 및 재한 외국군의 지위에 관한

모든 조약과 협정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여,

시국의 변화에 적응하고 현실성 있으며

국가의 주권과 안전보전이

확고히 구현되는 내용으로 보완·개폐하도록

정부가 미국 정부와 적극적인 교섭에

나설 것을 엄숙히 결의한다.

특별히 현행 조약 제4조에 의하여

허여된 미합중국 군대의 배치 권리는

대한민국의 안보와 영토 주권에 부합되도록

공동 협의 체제를 확립하여야 하며,

행정협정(SOFA)의 체결과 병행하여

상호방위 체제의 불균형을

시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국회의 결의안 통과 이후, 국방부가

이를 분석하여 1966년 10월 외무부로 검토 보고서를

발송해 조약 4조(미군 주둔 권리)의 모호성,

미군 독자 행동 위험,

중국 겨냥 전략 무기 배치 우려 등을 전달했다.

보고서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 한미상호방위조약 검토 결과에 관한 조치의 건

【분석 및 건의 내용】

o 시국 변화와 조약의 전면 개정 필요성:

본 조약이 체결된 지 10여 년이 경과함에 따라

극동 및 국제 정세에 막대한 변화가 초래되었는바,

현행 조약체제의 전면적 개정이 요구된다.

o 제4조(미군 배비 권리)의 모호성과 독자 행동 위험:

현행 조약 제4조는 미합중국이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을

한국 측이 '허여(Grant)'하고

미국 측은 이를 '수락(Accept)'하는 일방적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주둔 목적과

미국의 책임 한계가 불분명하며,

주한미군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안보에 유해(有害)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o 전략 무기 배치 및 주권 침해 우려:

특히 미국이 자국의 아시아 전략(대중공 전술 등)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의 동의 없이

특정 전략무기를 한반도 내에

독자 배치하거나,

주한미군 전력을 타 지역으로 기동 전개할 경우

이를 방지하거나 저지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전무하다.

o 결론(사전 협의제 도입):

따라서 미군의 배치, 기동, 무기 반입 시

대한민국 정부와의

'사전 협의제도(Prior Consultation System)'를

조약 본문 또는 부속 문서에

반드시 명문화하여 국가 주권과 안전을

확고히 보전하여야 한다.

국방부의 문건을 접수한

외무부(당시 이동원 외무부 장관 등)는

이를 깊이 검토하였으나,

당시 진행 중이던 한미행정협정(SOFA)의 비준과

베트남 파병에 따른 미국의

추가 경제·군사 원조(브라운 각서)라는

당면 과제를 고려하여

'상호방위조약 본문의 당장 개정'에는

현실적인 난제가 있음을 회신 및 부처 간

회의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외무부 검토 및 회신 요지】

o 국방부 분석의 타당성 인정:국방부가 지적한 제4조의 불평등성과

'사전 협의권' 부재가

대한민국의 영토 주권 및

안보 유해성 측면에서

중대한 결함이라는 점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o 외교적 현실과 협상 시기의 제약:그러나 미합중국 정부는

안보조약 본문의 개정

(특히 나토식 자동개입 조항 개정이나

제4조 권리 수정)에

극구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현재 13년 만에 어렵게 타결되어 비준을 앞둔

'재한미군지위협정(SOFA)' 체결 국면과

월남 파병에 따른 한미 유대 관계를 고려할 때,

조약 본문의 개정을 전면 요구하는 것은

미 행정부 및 미 연방 상원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외교적 위험이 있다.

o 대안적 조치 (우회적 확보):따라서 조약 자체를 개정하는 방향은

장기 과제로 유보하되,

당장 발효될 SOFA 협정의 운영(시설 및 구역 분과위 등)과

한미 고위급 공동성명(한미 외무·국방 회담 등)을 통하여

미군의 중대한 이동 및 무기 배치 시

'사실상의 사전 통보 및 협의 체제'를

실리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점진적으로 추진함이 타당하다.

국회에서 이 결의안이 통과된 지

딱 이틀 뒤인

1966년 7월 10일, 마침내 오랜 협상 끝에

주한미군의 지위를 규정하는

한미행정협정(SOFA)이

정식 조인되었다.

국회의 결의와

국방부·외무부의 내부 분석은

비록 당장 1966년에 상호방위조약 자체를

전면 개정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나,

미국을 압박하여

SOFA 협상을 타결 짓고

향후 한미 안보 협의 체제(현재의 SCM 등)를

구축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이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뒤

13년간 SOFA 협상을 거부했는지

그 이유를 살피면 자국 이익에

안면몰수 하는 식의

미국 민낯이 드러난다.

즉 주한미군은 1945년

한반도에 진주해 1949년 철수할 때까지

치외법권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이 치외법권적 지위가

1950년 대전협정으로 법적으로 명문화됐고,

1966년 SOFA 체결 전까지 유지됐다.

미국은 점령군 위상과 맞먹는

치외법권적 지위를 마냥 누리고 싶어

SOFA 타결을 외면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직후

곧바로 주한미군의 법적지위에 관한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의 부정적 태도와 협상 거부로

이승만 정부에서는

예비협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SOFA가 없는 상태가

미국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대전협정 하에서 미군은

어떤 한국 기관에도 복종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미국식 합리주의는 협상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한 뒤

장면 정부 시기인 1961년 4월 17일

SOFA 협상을 위한 실질적인

첫 예비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예비회담은 5 · 16군사쿠데타에 의해

좌절되었고,

결국 그 임무는 새롭게 등장한 군사정권에게 넘어갔다.

군사쿠데타 이후 새롭게 출범한 

박정희 정부는

81차에 걸친 교섭 끝에 1966년 주한미군지위협정을 체결했다.

이 주한미군지위협정은

본 협정문 이외에 합의의사록(Agreed Minutes),

합의양해사항(Agreed Understanding),

형사재판권에 관한 한국 외무장관과

주한미국대사 간의 교환서한(Exchange of Letters)의

세 가지 부속문서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본 협정은 1950년 ‘대전협정’에 비해

외형적으로는 한 · 미 간의

불평등성을 많이 개선하였으나,

나머지 3개 부속문서가

본 협정의 내용을 상당히 제한했다.

예를 들어 형사재판권 문제는

본 협정에서 한국이 원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부속문서에서 미국이 원하는 내용으로

본 협정을 제한할 수 있도록 타결되었다

1953~1966년까지

SOFA 이전 주한미군의 실제 법적 지위는

1950년 7월 12일 임시수도 대전에서

체결된 대전협정으로 사실상 치외법권 상태였다

그 결과 미군군법회의가

주한미군 구성원에 대해 전속적 형사관할권을 행사하고,

한국인이 미군 또는 그 구성원에 대하여

가해행위를 했을 때 미군은 그 한국인을 구속하며,

주한미군은 미군 이외의 여하한 기관에도

복종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미군 이외의 여하한 기관에도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 조항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가능했는가?

군사 작전·무기 배치 측면에서 보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이후

미국은 주한미군을 동북아 전략용으로 활용하면서

핵무기나 등의 한국 배치에서

미국이 실효적인 사전 협의를

한국 정부와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58년 주한미군이 핵무기를

남한에 반입할 때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

SOFA가 없었으니 통보 의무조차 없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에 의해 주한미군 기지는

대한민국의 주권과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거대한 성역이 되어

점령군이 지배하는 것과 흡사한

치외법권의 영토가 되었다.

그 결과 주한미군은

대륙을 향한 군사작전을 자국의 비밀유지법에 의거해

한국민에게 전혀 알리지 않은 채

국제법에 저촉될 소지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강행해 왔고

오늘날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앞세워

중국, 러시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공공연하게 벌이고 있다.

그 뿐인가 주한미군기지는

수십 년간 기름이 유출되어

지하수가 썩어 문드러지고

온갖 발암물질이 인근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해도,

미군은 '원상회복 의무 없음'이라는

조항 뒤에 숨어

정화 비용 한 푼 내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 언론의 주한미군 실태에 대한

해괴한 침묵 속에

기세가 오른 미국은

주둔비의 청구서를 높이 들고

갑의 위치에서 한국의 주머니를 털어가거나

미제 무기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라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

한국 정부는 제 나라 땅을 내어주고

돈까지 얹어주면서도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미국 눈치만 살피고 있어

굴욕의 역사는 언제 끝날지 안개속이다.

박정희의 한미동맹 문제제기 이후

오랜 침묵의 긴 시간 지난 뒤

2017년 가을, 마침내 한 시민이 분노하여

헌법재판소에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위헌 심판을 청구했다.

“박정희가 1966년 국회와 국방부 등을 통해

이 조약의 문제를 제기한 이후

60년 동안 누구도 제기하지 않은 이 조약이

국민의 존엄과 주권을 짓밟고 있다!”

“이 조약은 헌법 10조(존엄·행복추구권),

35조(환경권), 37조, 66조(대통령 주권수호),

120조(국토 균형개발)에 위배된다.”

그 시민은 국격의 상실과 영토의 오염,

전쟁의 공포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되찾겠다고 소장에서 밝혔다.

"사드 배치는 한미상호방위조약 때문에

중국의 보복을 초래했고

국내 경제는 타격을 입었으며

국민의 알 권리는 짓밟혔다."

이 시민은 동시에

한미동맹의 부당성을 다양하게 지적했다.

“SOFA 4조 1항에 따르면 미군은 기지 반환 시

원상회복 의무도, 보상도 없다.

‘키세(KISE)’ 기준으로만 책임지며,

실제 적용 사례는 전무하다.

용산 기지 오염 정화에 수조 원이 들 텐데,

그 부담을 한국 국민이 짊어진다.

방위비 분담금은 매년 1조 원 이상

불용액은 천문학적 액수로 쌓여가지만

감사원 감사조차 불가능하고

국민 혈세가 외세에게 퍼주는 구조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권리’로 고착되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제3지정재판부는

"각하"라는 차가운 결정을 내렸다.

"청구인은 간접적 이해관계자일 뿐

기본권의 현재적, 직접적 침해가 없다"며

비겁하고도 상식에 맞지 않는

법리 뒤에 숨어 심판 청구를 뭉개버렸다.

사법부마저 동맹의 신성불가침이라는

우상 앞에 고개를 숙인 셈이다.

이 시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느끼는

수치심과 심적 고통과 갈등은

충분한 증거가 아니란 말인가"라며

재심을 청구했으나

재판부는 다시 외면했다.

헌법재판소가 만약

박정희 정권이 1966년 작성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읽었다면

그런 무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미국이 다른 외국과 맺고 있는

군사조약, 협정이 주권국가간의

상식적 내용이라는 것을

헌재 재판관들이 파악하는

수고를 해서

판결에 적용했다며 어떤 하는 아쉬움은 하늘을 찌른다.

국민 세금으로 봉급을 타가는

헌재 재판관들의 해괴한 결정은

역사적으로

언젠가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헌재도 그렇지만

정보 강국이라 칭송받는 이 땅에서

정치권, 언론, 학계 등이

오늘날

한미동맹의 참상에 대해선 침묵하는 것은

정말 부끄럽고 분통터지는 일이다.

거듭된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 공간이

확장되었는데도

국내 기득권층이

보도지침이 없어도 스스로 입을 다물고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칭송하며

이 조약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양

침묵을 지키는 것을

국제사회가 비웃고 있다,

주권 국가가 자국 군사 주권을

외국에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참담한

짓인지를 필리핀, 일본의 경우에 비추면

명명백백해진다.

필리핀은 자국 기지에

미군 부대를 설치하라 규정하고

미군의 자유로운 활동에 제한을 두며

일본도 미국과 평등한 조건의 조약을 맺었다.

그런데 한국만이 유일하게 불평등을 감내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인가, 집단세뇌의 결과인가

냉전의 유산인가, 아니면 의지의 부재인가

이승만이 만든 조약이

오늘날 한국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하나

그 그늘은 너무 심각하다.

주권의 상실, 환경의 파괴, 재정의 낭비,

그리고 심각한 거대국가간의 전쟁의 위협

이 모든 것이 한미동맹의 대가라 할 것이다.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 부족

외세에 국방을 위임하는 주체성 문제

이것이 국치가 아니면 무엇인가.

미국이 한미동맹을 앞세워

남북교류협력에 개입하면서

남북한이 결국 두 국가론으로

치달았다는 사실 등을

냉정한 시각으로 직시하자.

박정희가 문제 삼았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차지철이 건의했던 이 조약에 대한 개정안을

이제는 우리 모두가 공론화하자,

침묵을 깨고 진실을 말하자.

삼척동자도 손가락질할

동맹 사수의 논리를

헌재 재판관이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이 현실을 정상화하자.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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