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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연재 25 - 한미동맹과 한국의 무뇌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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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작성일시2026.10.02

조회수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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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보 사회가 있다.

손끝 하나로

지구 반대편이 보이고,

스마트폰 하나로 우주의 진리를 검색하며,

몇 번의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의 정상을 찍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나라에서 감춰진 진실이 있다.

교과서에도 오르지 못하고,

신문 1면에도, 방송 헤드라인에도,

국회 본회의장에도, 대통령 연설문에도

단 한 줄 새어 나오지 못한 이야기.

"한미동맹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시민혁명을 두 번이나 치른 광장의 민족이

왜 이 하나는 묻지 못하는가.

청와대 참모도 모르는 척하고,

여의도 의원들도 입을 다물고 산다.

약속이나 한 듯.

그들은 모두

같은 꿈을 꾸는 것일까.

아니면

같은 침묵을 나누는 것일까.

정보의 바다 위에 세워진 나라에서

단 하나의 정보만이

금기의 영역에 갇혀 있다.

국권이 미국의 손에 장악된

준 식민지 상태라는 사실

이것은 음모론의 결과물이 아니다.

국제 정치학의 상식이고

세계가 손가락질하는 국치다.

그런데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교과서에도, 참고서에도,

신문과 방송에도,

외교부 백서에도

한미동맹의 예속성은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외교부의 중간관리층조차

한미동맹의 진짜 구조를 모른다.

그들은 배운 대로 말하고 행동할 뿐,

배우지 못한 것은 말할 수 없다.

투명사회라 하고,

몇 번의 시민혁명을 겪으면서

민주주의가 선진국 수준 이라는데

국권이 미국의 손에 쥐어진

준 식민지 상태라는 사실에

국민은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다.

"미국이 베풀었고,

한국이 신세 졌다."

이 한 줄의 가짜뉴스가

칠십 년 동안

국민의 뇌리에 대못처럼 박혔다.

진실은 무엇인가.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여한 것도

미국의 국익을 위한 선택이었고,

주한미군을 주둔 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타국을 위해 봉사하는

외교 국방정책을 가진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결코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 지배층이 바보라서 모르는 게 아니다.

알면서 침묵한다.

그 침묵이

그들의 밥그릇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으로

미국이 부당 이익을 취해가는 것에

침묵하면서

개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체질

이것이 한국 지배층의 만성 질환이다.

미국이

철군과 감군으로 위협하면 정치와 언론이 합창한다.

"큰일 납니다.

미국이 떠나면 어떻게 됩니까."

과천에서부터 기는 그 모습,

자동으로 반복되는 그 굴욕,

보수 정권도 진보 정권도 한 치 다르지 않다.

어느 누구도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미국은 무엇을 잃는가?"

이 질문 하나가

칠십 년 동안 금지되어 왔다.

영토와 국권, 그리고 군사 작전의 운명이

외세의 손에 장악된 국치를

어째서 이 땅의 영혼들은 깨닫지 못하거나 눈을 감는가.

그것은

가짜 뉴스의 유령들이 교실의 교과서를 채우고

방송과 신문의 마이크를 장악하여

"미국이 은혜를 베풀고 우리는 신세만 진다"는

비열한 집단 세뇌의 주문을 70년 동안 읊어댔기 때문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조차

기울어진 운동장인 동맹을 마땅한 운명이라 여긴다.

투명한 사회라는 허울 좋은 간판 아래

가장 치명적인 진실만이 철저히 매장된 아이러니,

그 거짓의 성전 위에

한국 민주주의는 미완성의 계곡에서 허덕이고 있다.

침묵하는 지성은

역사 앞의 직무유기 아닌가.

시대의 나팔을 불어야 할

지성들은 자주의 성 앞에 나서지 않는다.

입담으로 정평이 나있고 말의 비수로 천하를 주름잡는

유투브의 거목들

유시민, 한동훈, 이준석, 김어준, 진중권 등등

자신의 이익과 진영의 울타리 속에서 핏대를 세우던

그 입술들은

왜 가장 본질적인 주권의 문제에 하나같이 침묵하는가!

문단의 거장

고은과 황석영 등의 붓끝은 어디로 향해 있는가,

노벨문학상 한강의

관심은 한미동맹의 실체와 그 질곡까지는 왜 미치지 못하는가.

세계의 광장을 요동치게 한

K-팝의 신화 BTS의 울림은

어째서 민족의

아픈 목줄을 푸는 일에는 다다르지 못하는가.

당신들이

한목소리로 동맹의 거대한 기만을 외쳤더라면,

21세기 지구촌의 수치는 단시간에 증발하고

자주와 주권의

선명한 아침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양지 만을 쫓을 뿐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눈앞의 안위에 연연하니,

훗날 후손들이 오늘날의 기록을 펼치며

당신들의 이름 위에 던질

손가락질과 번득이는 비판이 두렵지 않으신가.

만약 대중 매체가

진심으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대미 종속성의 현실을 외국의 정상적인 국가관계와 함께

한 달만 잘 보도하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국민주주 신문이며 진보매체라 하는

한겨레신문도

국가기간통신사로 국민의 세금 지원을 받는

연합뉴스도

공영TV라 하는 KBS, MBC도

한미동맹의 국치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한반도, 한미, 남북문제 전문가라며

단골로 TV에 나오는 정세연, 문정인 등은

한미동맹의 종속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잘 나가는 유명인사와 예술인은 물론

언론매체, 전문가들의 침묵은 언젠가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물론 정치를 보면 그들의 문제는 일견 가볍게 보인다.

헌법의 책무로 국민을 섬긴다 하면서

정작 기득권의 밥그릇을 지키려

‘무뇌아’의 탈을 쓴 여의도의 정객들이여!

당신들이 저지른

대국민 기만극은 역사의 법정에서 탄핵받아 마땅하다.

세상사 지피지기(知彼知己)라 했다.

국가관계에서는 필수 사항으로

상대를 정확히 알고 나의 위치를 직시하는 것이

국제정치 불변의 법칙.

미국이 동북아의 땅에 군화를 올린 것은

가난한 동방의 나라를 향한 자혜로운 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국의 생존과 패권을 위한

냉혹하고도 철저한 국익의 선택이었다.

보라

평택 험프리스의 거대한 인프라를!

군산과 오산의 공군기지가 품은 가공할 타격력을!

중국 베이징을 불과 수백 km 턱밑에서 겨누는

고정항공모함,

러시아의 동부 전선을 압박하는 서태평양의

최전방 거점,

주한미군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떠받치는

대체 불가능한 핵심 축이다.

미국 국방부와 의회가 국방권한법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막아서는 이유를 보라.

주한미군의 철수는

미국의 글로벌 패권과 미 본토 안보를 타격하는

치명적인 자살골이자

대중국 봉쇄망인 제1도련선이 산산조각 나는

대참사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위정자들이

철수 카드를 들먹이는 속내를 아는가?

그것은 진짜 철수가 아니라, 분단 기득권 상실의 공포에 질린

한국의 정객들을 쥐어짜

매년 수조 원의 방위비를 뜯어내고,

주한미군을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로 자유롭게 차출하려는

‘전략적 유연성’의

족쇄를 채우기 위한 추잡한 말 폭탄에 불과하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한국 방어"라 부르는 것은 외교적 수사일 뿐

진짜는

미 본토를 지키는 전략적 유연성의

최 전진기지.

한국은 매년 1조 원 이상을 방위비로 부담하고,

주한미군에 기지와 인프라를 내주고,

전략적 통제권까지 내준다.

그런데 미국은 말한다.

"미국이 한국에 은혜를 베풀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국의 해외 주둔 원칙은 일관 된다

핵심 국익 중심, 선택적 개입, 본토수호를 목적으로 한 전방 전개,

동맹 신뢰성 제고는 맨 아래다.

주한미군은

한반도 억제·대응 능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과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전략적 자산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여의도에는 친미 정상배만 가득하다.

트럼프가 철군 카드를 꺼내면

정치권은 공포에 질리고,

"절대 안 됩니다"를 외치며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왜?

미국 영향력이 약해지면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기득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국익을 외면하고,

국민의 권리를 짓밟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정치 카르텔에 안주한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어느 의원도,

한미동맹의 기울어진 현실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점령국과 피점령국을 닮은 관계를

수평적 관계인 양 포장하며

국민을 속여 온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대국민 사기이며, 탄핵 사유 아닌가.

정치는 국민에게 제공되는

공공 서비스이며,

국가의 존엄과 안위를 지키는

헌법적 행위라는 본질에 비추어 볼 때

정치권의 태도는 심각하기 짝이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66조 제2항은

대통령과 위정자에게

국가의 독립과 영토의 보전,

헌법을 수호할 엄중한 의무를 부여한다.

국가의 외교적 위신과

주권적 결단이 걸린 문제 앞에서도

표 계산과 자신의 입신출세, 진영 내 입지 확보만을

염두에 두는 것은

공공재로서의 정치를 사유화하는 처사다.

여야가

종북이라는 이념적 공세가 두려워

부당한 외교적 현실을 묵인하는

집단적 기회주의는

국민에 대한 명백한 직무유기다.

국치는 미국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치가 스스로 만든다

반대하고 반발해야 할 때 침묵하면 국치는 완성 된다

정상적인 자주국의 자세로

반대하고 반발할 때

비로소 대등한 관계가 시작 된다

주한미군이 미국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산이라면

한국은 그 사실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

조약 종료를 통고할 수 있는 조항은

단순한 파기 위협용이 아니다

미국의 과도한 수탈과 독단을

막는 최후의 강력한 카드다

6조가 발동되면

미국의 동북아 최전진기지의 합법성이 상실되고

1차 도련선이 구조적으로 붕괴되며

미국 내부에

“자국 우선주의 때문에

핵심 기지를 날렸다”는 책임론이 들끓게 된다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이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그럴까?

해외의 경우를 살펴보자.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섰던 국가들의 경우는 한 둘이 아니다.

캐나다는

트럼프가 자국산 제품에

50% 관세를 부과하자

즉각 반발했다.

"자유무역협정 정면 위반이다.

괴롭히는 자에게 굴복할 수 없다."

그러면서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캐나다 GDP는 한국보다 작다.

군사력도 한국보다 약하다.

그러나 당당했다.

멕시코의 경우

트럼프의 관세 압박에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

말했다.

"멕시코는 주권 국가다.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다."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목록을 공개했다.

필리핀은

1992년

미군기지 철수를 관철해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했다.

2014년

미국과 새 군사협정 EDCA를 합의해

미군의 필리핀 재진입을 허용했지만

조건을 달았다.

"미군의 필리핀 영구 주둔 금지,

필리핀 법 적용,

핵무기 반입 금지."

프랑스는

1966년

드골 대통령 시절

나토 군사통합사령부에서

전격 탈퇴하고

미군을 철수시켰다.

자체 핵전력을 바탕으로

자주외교를 펼친 프랑스는

43년 후인 2009년,

대등한 지위를 확보한 채

나토에 복귀했다.

독일은

나토 회원국으로

미군이 주둔한다.

그러나

독일 의회가

미군 관련 사항을

공개 토론하고

전략적 유연성에 독일이 동의해야 한다.

다른 나토 회원국들도

미국과의 군사관계는

대등한 주권국가간의

합리적인 것으로

미군의 군사력 배치, 작전 등에서

주군국과 사전협의해야 한다.

이들 국가 모두

미국과 마찰을 빚었지만

국가 존립이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국의 레버리지를 활용해

동맹 내에서

더 대등하고 유연한 협상력을

확보했다.

그런데 한국만이

"반발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공포에 질려 있다.

바보 같은 짓 아닌가.

한국만 유독

존립 위기를 두려워하며

무릎을 꿇을 이유가 없다

미국에게 한국은

대체 불가능한 필수 자산이다

군산과 오산 기지가 없다면

대중국 견제 전략에

치명적인 구멍이 뚫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없이

미국의 AI 대전환은 작동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역량도

한국이 가지고 있다

스스로의 가치를 저평가한 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파트너가 아니라

식민지 하청국으로 전락하는 길이다

동맹은 국민 위에 설 수 없다

동맹도 헌법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미관계에서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동맹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국익과 주권,

국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반도에는 실제 군사적 위험이 존재하고

미국의 확장억제와 연합방위체계가

한국 안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쪽의 사실만 반복될 때 발생한다.

한국이 미국에 제공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와

산업적 가치와

기지와 인프라의 가치는 무엇인가.

미국이 주한미군을 통해 얻는

전략적 이익은 무엇인가.

이 질문까지 함께 설명해야

국민은 비로소 판단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정답을 주는 제도가 아니다.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하는 제도다.

그러나

동맹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역으로 버티고 있다.

독재시절이

시민혁명에 의해 종식되고 민주화가 진행된 뒤에도

동맹을 비판하면

반미라고 불릴까 두려하고,

미국의 요구에 의문을 제기하면

안보를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될까 두려워하며,

주한미군의 역할을 다시 묻자고 하면

한미동맹을 흔드는 사람으로 몰릴까

정치권은 조심스러워한다.

그렇게 질문은 여전히 우리 곁에 없다.

질문이 사라면 관성이 대신한다.

관성은 가장 편리한 정치다.

어제 그렇게 했으니

오늘도 그렇게 하고,

지난 정부가 그렇게 했으니

이번 정부도 그렇게 하고,

보수가 그렇게 말하면

진보도 다른 표현으로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고,

진보가 동맹을 강조하면

보수는 더 강한 동맹을 주장한다.

정권은 바뀌고

대통령도 바뀌었다.

국회의원도 바뀌고 정당의 간판도 바뀌었다.

그러나 한미관계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틀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시민은 다시 묻는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왜 외교의 질문은 바뀌지 않는가.

정치인에게는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통령에게도

헌법이 부여한 책임이 있다.

국회의원에게도

국민의 대표라는 무거운 이름이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국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가 아니다.

친미냐 반미냐의 선택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국익을 계산하는 능력이다.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한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상대방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한국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그 모든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협상하는 것이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있다.

국가에는

영원한 국익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한국의 국익을 말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한국 사회는 흔들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질문을 거꾸로 던져보자.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면

한국만 손해를 보는가.

미국도 잃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 손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계산해 보아야 한다.

주한미군의 군사적 위치.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공간.

한반도에서의 정보와 감시 능력.

미국의 공군력과 해군력의 전개 편의성.

동맹국과의 연합작전 능력.

인도·태평양 전략에서의 거점.

그리고 미국의 글로벌 군사 네트워크 속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

그렇다면

철군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한국이 무조건 두려워할 이유만 있는가.

아니면 미국이 잃는 것도

함께 계산해야 하는가.

바로 그 순간

협상의 지형이 달라진다.

미국 의회가

주한미군의 규모와 관련해

국방권한법에서 여러 제한을 둬온 사실도

이러한 논의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 대통령이 언제든

해외 주둔군을 크게 줄일 수 있도록

완전히 자유롭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은

미국 내부에서도 해외 주둔군이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는 논리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두려움으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협상의 자산으로 바라볼 것인가.

물론 그것을

단순한 협박 카드로 사용할 수도 없다.

동맹은 감정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필요를 이해하지 못하는 협상은

협상이 아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이유를 알고

한국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이유도 알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한미관계는 조금씩 대칭을 향해 간다.

그러나 여기서

더 깊은 질문이 나온다.

주한미군은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가.

한반도 방어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더 넓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부인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확대된다면

한반도를 넘어 다른 지역의 분쟁에

한국 내 기지가 활용될 가능성은 어떻게 되는가.

대만해협에서 위기가 발생한다면?

남중국해에서 충돌이 발생한다면?

미국이 다른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확대한다면?

한국에 있는 미군 기지가

그 작전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면?

한국은 어떤 위험을 부담하는가.

중국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북한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한국 국민은

원하지 않았던 강대국 무력충돌의 불길 속에

어느 순간 휩쓸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은

미국을 비난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한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관한 질문이다.

그래서 전략적 유연성은

단순한 군사 용어로만 다룰 일이 아니다.

그것은 주권의 문제이고

국민의 안전에 관한 문제이며

동맹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동맹은

모든 것을 자동으로 허용하는 백지수표가 아니다.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서로의 국익이 충돌할 수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공론화와 협상이다.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회가 검토해서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안보라는 이름은

국민의 동의를 대신할 수 없다.

안보가 중요할수록 더 투명해야 한다.

왜냐하면

안보정책의 실패는

보고서 한 장의 실패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이 사라지고

도시가 파괴되며

경제가 흔들리고

미래 세대가 그 대가를 치른다.

트럼프의

광기어린 좌충우돌 속에

한미간 경제문제가 심각하다.

수천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논의될 때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달러라는 숫자 뒤에는

공장이 있고,

공장 뒤에는

노동자가 있으며,

노동자 뒤에는

가족이 있고,

그 가족 뒤에는 인간의 삶이 있다.

국가가 해외에 거대한 자금을 투자한다면

국민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 투자는 왜 필요한가.

수익은 어떻게 보장되는가.

국내 투자와 비교하면 어떤가.

한국 산업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일자리는 늘어나는가.

기술은 확보되는가.

미국 시장 접근은 개선되는가.

그 대가로 한국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위험은 누가 부담하는가.

이 질문을 하는 것은

미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 간 거래를 정상적인 거래로 만드는 것이다.

필리핀, 프랑스가

트럼프와 대치하면서 국익을 지킨

사례들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의 지정학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 교훈은 있다.

동맹국이라고 해서

국익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한미관계의 모든 이익과 비용을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누가 얼마를 부담하는가.

무엇을 얻는가.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가.

어떤 법적 권리가 있는가.

어떤 합의가 이루어졌는가.

국민이 알아야 한다.

둘째,

국회가 외교와 안보의 중요한 결정에

더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외교는 대통령의 전유물이 아니다.

안보 역시 정부만의 비밀영역일 수 없다.

헌법질서 안에서

국회와 국민의 통제가 작동해야 한다.

셋째,

한국은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스스로 낮추지 말아야 한다.

한국은 단순히

미국의 보호를 받는 공간이 아니다.

한국은 미국에도 필요한

산업국가이며

동북아의 핵심 지정학적 공간이고

세계 공급망의 중요한 축이다.

넷째,

동맹과 자주는

서로 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강한 동맹은

강한 주권국가끼리 맺을 때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한미관계가

정상화 되기위해

중요한 것은 정치만이 아니다.

시민의 질문이다.

시민이 묻지 않으면

정치는 설명하지 않는다.

시민이 검증하지 않으면

권력은 편리한 논리를 선택한다.

시민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외교는 소수의 전문가와 관료와 정치인의

영역으로 굳어질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언제나 시민이다.

광장이다.

언론이다.

토론이다.

투표다.

그리고 질문이다.

왜 그런가.

누가 결정했는가.

국민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다른 선택은 없는가.

이 다섯 가지 질문만

끊임없이 던져도

정치는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

거대한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권력이 스스로 내려오지 않을 때

시민이 광장으로 나왔다.

정치가 길을 잃었을 때

시민이 질문하고 행동했다.

그리고 역사의 방향을

다시 바꾸었다.

그렇다면 그 힘을

외교와 안보에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을 미워하거나

중국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직 하나.

대한민국의 결정은

대한민국 국민이 알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원칙을 위해서다.

만약 어느 날

과도한 외교적 부담이

국민의 삶을 짓누르기 시작한다면,

국민의 일자리가 줄고

청년의 미래가 어두워지고

물가가 오르고

주거비가 상승하고

소상공인의 삶이 무너지고

복지와 교육에 쓸 재원이 줄어든다면,

그때 외교는

더 이상 외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생의 문제가 되면서

국민은 묻게 된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정부는 누구의 삶을 먼저 지키는가.”

“왜 국민에게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면서

국가의 대외적 부담은 계속 커지는가.”

그 질문이 쌓이면

시민사회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온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다.

그러므로 정치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 번의 이견을 내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국민이 정부의 설명을 믿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국민이

“저 결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고 묻기 시작했을 때,

정부가 아무리

“국익을 위한 결정이었다”고 말해도

국민이 더 이상

그 말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외교의 위기이기 전에 민주주의의 위기다.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동맹은

신뢰 위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신뢰는

침묵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설명과 검증에서

상호주의에서 만들어진다.

국민의 동의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에 당당하게 질문하는 것은

동맹을 깨뜨리는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동맹을 건강하게 만드는 과정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렵다.”

“우리는 이만큼 제공한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므로

국회의 검토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국가의 장기적 운명을 바꿀 수 있으므로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주권국가의 언어다.

그래야

한미관계가 건전한 문턱에 도달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에게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할 수 있다.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할 수도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를 요구할 수도 있다.

한국은 그때

무조건적인 수용과

무조건적인 거부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다.

제3의 길이 있다.

협상이다.

한국이 가진 것과

미국이 가진 것을 계산하며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고

서로의 레드라인을 존중하면서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국제정치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역시

영원히 손댈 수 없는 성역이 아니다.

국제법과 헌법에 따라

모든 조약은 그 자체의 법적 절차를 가진다.

따라서 조약의 존속과 변경 문제도

감정이 아니라

법률과 헌법과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당장 무엇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필요한 경우

자신의 법적 권리와 선택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협상할 수 없다.

자신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모르는 국가는

상대방의 선택만 기다리게 된다.

그것이

외교에서 가장 위험한 상태다.

대한민국은

미국을 더 잘 알아야 한다.

미국의 국익을 알아야 하고

미국 의회의 역할을 알아야 하며

미국 국방부의 전략을 알아야 하고

미국 사회의 여론과

동맹정책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동시에

한국 자신도 알아야 한다.

한국의 군사력.

한국의 산업력.

한국의 기술력.

한국의 지정학.

한국의 경제력.

한국 시민사회의 힘.

그리고 한국 국민이 가진

민주주의의 눈높이.

그 모든 것이 외교의 자산이다.

어쩌면 한국이 지금까지

가장 과소평가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전쟁 직후의 한국은

정말 약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다르다.

세계적인 기업이 있고

세계적인 기술이 있고

세계적인 문화가 있고

세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세계가 한국을 바라본다.

K-pop이 세계의 무대에 서고

한국 영화가 세계의 이야기가 되며

한국의 반도체가 세계 산업을 움직이고

한국의 조선소가 세계의 선박을 만든다.

그런 나라가

외교에서만 자신을

가난했던 시절의 나라처럼 취급한다면

그것은 현실과 인식의 간극이다.

이제는

국가의 크기를 다시 계산해야 한다.

그렇다고

미국과의 관계를 끊자는 것도 아니다.

더 오래 가는 동맹을 위해

더 대등한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쪽이 항상 주고

한쪽이 항상 요구하는 관계는

언젠가 피로가 쌓인다.

한쪽이 항상 보호자이고

한쪽이 항상 피보호자로 남는 관계도

영원히 지속되기 어렵다.

성숙한 동맹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관계다.

필요하기 때문에

존중한다.

존중하기 때문에 협상한다.

협상하기 때문에

서로의 선을 인정한다.

그 선을 넘지 않기 때문에 신뢰가 쌓인다.

그리고 그때

주한미군의 존재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한국은 한국의 주권을 지키고

미국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확보한다.

한국은 필요한 경우

자신의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미국도 그것을

동맹국의 정당한 국익 주장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관계라면

오히려 동맹은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정치인 몇 명의 결심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언론이 질문해야 한다.

학자가 연구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국회가 토론해야 한다.

청년이 질문해야 한다.

노동자가 질문해야 한다.

기업도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이 알아야 한다.

외교가

국민의 삶과 무관한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미투자 하나가

국내 산업과 일자리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방위비 하나가

국가재정과 민생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군사적 합의 하나가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외교는

결국 국민의 밥상으로 돌아온다.

안보도

결국 국민의 삶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유지할 것인가?

그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한미동맹을 만들 것인가?

이것이 더 중요한 질문이다.

일방적 동맹인가.

상호주의적 동맹인가.

침묵하는 동맹인가.

국민에게 설명하는 동맹인가.

한국의 주권을 제한하는 동맹인가.

한국의 주권을 존중하면서

공동의 안보를 추구하는 동맹인가.

이 질문은

누군가 대신 대답할 수 없다.

국민이 판단해야 한다.

정치인도

이제 시민에게 선택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언론도

한미관계, 남북관계를

선악의 구도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학계도

동맹의 이익뿐 아니라

비용과 위험과 비대칭성까지 연구해야 한다.

정부도

협상의 과정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도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맞이한 가장 중요한 외교적 과제는

미국과 중국 가운데 누구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대한민국은

자신의 국익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은

강대국과 협상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은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대한민국은

국민에게 외교의 비용과 편익을

솔직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때

한국은

진정한 의미의 주권국가로

한 단계 더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마지막에는

시민이 있다.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다.

권력자가 아니라

주권자다.

광장의 수많은 촛불.

비 내리는 거리의 우산.

차가운 겨울밤

서로의 손을 잡은 사람들.

그들은 거대한 군사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외교관도 .

대통령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옳지 않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우리는 다르게 할 수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힘.

그 힘이

민주주의를 움직였다.

그러므로 외교의 민주화도

결국 시민에게서 시작된다.

“왜?”

라는 질문 하나.

“누가 결정했는가?”

라는 질문 하나.

“국민에게 무엇이 돌아오는가?”

라는 질문 하나.

“다른 선택은 없는가?”

라는 질문 하나.

그 질문들이 모이면

정치의 막힌 벽에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빛은

미국, 중국을 향한 빛도 아니다.

그 빛은

대한민국 스스로를 비추는 빛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지킬 것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묻는 빛이다.

그 빛 아래에서

동맹, 안보와

주한미군, 대미투자와

전략적 유연성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의 역할도 다시 보게 된다.

정치는

국민을 대신하여 결정하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모아

국가의 방향을 정하는 공공의 행위다.

외교는

강대국의 요구를 전달받아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아니라

국익을 지키면서

국가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과정이다.

동맹은

국가의 주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국가가 선택한

안보협력의 수단이어야 한다.

그리고 안보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국민이 안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미동맹의 미래를 묻는 것은

어떻게 하면

한국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동맹이 되는가.

어떻게 하면

미국 국민도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두 나라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면서

동북아의 군사적 충돌 위험을 낮추고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며 행보지수가 높아질 수 있는가.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질문이다.

지난 70 여 년 동안

시민 통제를 벗어난

한미 간의 밀실·관성 외교는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국내 정치가

외교를 핑계로

국부와 안보 주권을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그것이

고물가·고금리·고용 불안이라는

민생의 위기로 이어지는 순간,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치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할 것이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고

한미동맹의 정상화를 통한

자주의 확보와

제도적·체계적 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생 외교'로의

프레임 전환과

시민사회적 공론화를 추진한다.

외교·안보 문제를

일부 엘리트나 신념의 영역에

맡겨두지 않고,

"퍼주기 외교가

내 일자리와 삶을

어떻게 위협하는가"라는

민생 문제로 일상화해야 한다.

노동계, 소상공인,

시민단체, 학계가 연대하여

대미 투자의 조건성,

방위비 분담금의 적정성,

전략적 유연성의 위험성을

데이터와 삶의 언어로 공론화해야 한다.

둘째,

국회의 외교·안보 통제권을

강화해야 한다.

통상 및 안보 합의의

국회 비준 의무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수조 원대 기업 투자 및

군사적 관할권 변경에 준하는

한미 간 주요 합의는

반드시 국회의

사전·사후 동의를 거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자국민의 생존권과

직접 결부된

전략적 유연성의 한계나

핵심 기술 자산의 유출에 대해

법률로 가이드라인을 지정함으로써

외교적 협상에서 정부의 입지를 강화해 주어야 한다.

셋째,

협상의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미국이 요구하니

들어줄 수밖에 없다"가 아니라

"한국이 제공하는 전략적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다"로 전환해야 한다.

넷째,

'민주적 선거'를 통한

외교·안보 정책의

심판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정치권이

미국 요구에 대한 저자세를

반복하는 근본 이유는

'외교 성과'를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익과 주권을 지키지 못하는 외교,

민생을 위협하는 대외 합의를 한

정치 세력은

표로 심판받는다"는 원칙을

선거를 통해 명확히 각인시켜야 한다.

다섯째,

당당한 동맹을 요구하는

'주권자 행동'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21세기 들어

두 차례 광장 혁명을 달성한

한국민의 민주주의 에너지를

이제는

"대등하고 지속 가능한 한미동맹,

국익에 기반한 당당한 자율 외교"를

요구하는

상시적 시민 행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외교의 기본은

국익과 상호주의다.

한국 정치가

해외의 당당한 외교 사례를

외면한 채

일방적 수용만을 거듭하는 것은

국치이자 민주주의의 후퇴다.

한국 정치의 위기 속에

늘 길을 찾아낸 것은

주권자 시민이었다.

과도한 대미 투자와

안보적 양보가

민생의 삶을 압박할 때

시민사회가

광장을 밝히는 빛으로 뿜어져 나올 것이다.

그 힘이야말로

정치권의 관성적 저자세 외교를

끊어내고,

한국을

'하청국'이 아닌

'대등하고 당당한 주권국가'의 위치로

올려놓을 가장 확실한 동력이 될 것이다.

먼 훗날

후손들이

오늘의 한미동맹을 평가할 때

그들은

묻지 않을 것이다.

"왜 미국은 그랬는가."

그들은

물을 것이다.

"왜 한국은 침묵했는가."

동시에 그들은

오늘의 정치인이나 영향력 있는

사회 유력 인사와

언론 등을 향해 물을 것이다.

“왜 당신은 딴전을 피웠는가?”

이들 질문에 대한 열쇠는

지금,

우리 손안에 있다.

한국사회의 21세기 구성원들이

한미동맹의 진실에 대해

한 소리로 외친다면

단시간 내에

한국 사회가 정상화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구조의 변화는

그 제약을 깨뜨리려는

개인과 집단의 결단, 의지에서 출발했다.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

눈앞의 정치와

잘 나가는 문화, 예술, 전문인들이

사회의 목탁이

공익과 공공선에

기여하도록

촉구하고 추동하는 것은

결국

깨어있는 시민사회의 몫이다.

특히 정치권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 서비스를

제공하게 만들려면,

구조적 한계를 핑계 삼아

안주하며 딴 짓하는 청와대와 여의도를 향해

시민사회가 엄중한 비판과 책임을

강하게 지속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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