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6년 3월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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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농부 생활 1년이 되어 간다. 아버지 세상 떠난 후 어머니가 홀로 시골에 계신 것이, 큰 이유였다. 주말 농부의 시간은 아버지를 떠나보냈지만, 비로소 아버지를 제대로 만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아버지가 농사 장비를 두고 쓰던 헛간을 손질하는 일. 아버지를 되새김질하듯 만나는 일이 될 줄이야.
어린 시절 아버지와 큰방을 썼다. 윗목은 고구마 가득한 수숫단 통가리가 놓였고, 아버지와 내가 간신히 다리를 뻗을 수 있던 공간은 저녁 노을 검붉게 지나간 아랫목이었다.
어머니와 누이 셋은 부엌이 가까운 작은 방에서 그야말로 아웅다웅 강아지들처럼 굼실굼실 부대끼며 살았다. 아버지가 새벽같이 일을 나간 방 안에서, 언제나 나는 자욱한 담배 연기를 피난 가듯 아침을 맞았다.
작두 물 한 바가지에 고양이 세수 흉내 내듯 하는 아침 세수는 왜 그리도 하기 싫었을까. 어머니의 잔소리가 몇 번은 이어지고 나서야 간신히 끝낼 수 있었다. 책보 둘러메고 실뱀 같은 다랑이 논길과 고구마밭 사잇길, 제법 우거진 멧갓 숲길 한참을 뛰어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하굣길의 수박밭 참외밭은 옷소매 땟국 절은 동네 친구들과의 서리로 몸살을 앓았다. 소똥구리 뱀 종달새 꿩들도 우리의 호기심에 성할 날이 없었다. 밀치고 씨름하다 둔치를 구르는 바람에 얼굴이며 옷이며 온통 흙탕물 뒤집어쓰고 나서야 간신히 모롱이를 돌았고, 비로소 멀리 동네가 보일 때쯤 약속이나 한 듯 우르르 집을 향해 뛰었다.
책보를 마루에 던지기 무섭게 우리만의 고샅 아지트로 다시 모여들었다. 어머니 숙제하라는 벼락같은 소리는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딱지, 구슬, 오징어 게임, 비석 치기. 누군가의 어머니가 빗자루 들고 쫓아와서야 간신히 끝이 났다.
유년의 기억들은 언제나 아버지 담배 연기처럼 칼칼하게 목이 메어 온다. 지금까지도 내 꿈속 대부분을 차지하는 떫은 감 맛 같은 추억들이다. 멧갓 동산의 사이사이를 달리며 연을 날리고 눈썰매를 타던 그 기억들. 밤하늘 흩뿌려진 별빛 받으며 뛰놀던 구불구불한 동네 고샅은 내 삶의 숨겨 둔 보석이다.
땅거미가 어둑해질 무렵에야 외양간 공부방에 아버지 몰래 용케도 숨어들어와 책을 펴는 일은 나름의 작전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의 날벼락 같은 꾸짖음을 피하고 보자는 속임수랄까.
해가 어둑해지고 헛간 한쪽의 희미한 백열전등이 바람인 듯 흔들거리면, 아버지가 들어왔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낫 괭이 장화 벗어 던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가 짊어진 지친 하루도 그렇게 헛간에 부려졌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를 떠나보낼 때도 오랜 병상 생활처럼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이라 여겼다. 늘 그렇듯 그날도, 소나무 가득한 멧갓 너머로 검붉은 황혼 흩뿌리며 해는 졌으니까.
아버지의 헛간은 조립식 창고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싫어하던 바둑판과 기타도 여전히 창고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말 농부가 이어질수록 아버지의 헛간은 내 보물창고가 되고 있다. 창고를 사용하는 날들이 쌓여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회한들이 하나하나 실핏줄처럼 터져 나왔다.
아버지 묻는 말에 공손히 대답했던 기억이 없다. 퉁명스럽거나 심지어 신경질적이었다. 툭하면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식이었으니까.
한번은 아버지가 지나가듯 산에 가자고 했다. 고개만 돌려도 온통 산인 것을, 이 핑계 저 핑계로 함께 산에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 아프고 난 뒤에야 등산화를 사뒀지만 끝내 건강은 돌아오지 못했다.
어느 날 힘겨운 모습의 아버지는 컴퓨터도 배우고, 바다도 보고 싶다고…. 무슨 컴퓨터냐고, 걷기운동이라도 하라며 퉁명스럽게 반응했던 일은, 지금까지도 가슴 한쪽에 가시처럼 박혀 있다. 바닷가를 지날 때면 아버지가 그토록 갈망하던 그 바다를 본다는 생각이 나를 아프게 한다.
맛있는 식사에 변변한 선물도 제대로 해 드리지 못했고, 여행 한번 모시고 가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런 죄책감 때문일까. 지금 나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받지 않는다. 나중에 더 늙어지면 그때 하라고.
쇠젓가락처럼 병상에 누웠을 때까지도 그냥 아버지가 조금 더 늙으신 거라고만 여겼다. 다시 또 좋아지시겠지, 늘 그런 식으로 넘겼다. 돌이켜보니 나를 위한 변명과 위안 같은 생각뿐이었다.
아버지라는 단어만으로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것. 그토록 공부를 원했건만 왜 그리도 하기 싫었던지, 그 시절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미어진다. 공부 안 해서 미안하다는 말, 꿈에서라도 꼭 전할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 하염없이 밀려드는 그리움,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까.
헛간에 우두커니 앉아 죄송하단 혼잣말도,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도 많아졌다. 밤하늘이 유독 어두운 날, 그리움은 더 사무치게 밀려온다.
세월이 약일까. 그새 1년이 흘렀다. 아버지가 끝내 신어보지 못했던 등산화는 마을 앞산을 거니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 주고 있다.
어머니 눈에 아들의 농사일은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아 보인다. 일이 더딘 내게 영락없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싫지 않다. 나도 그렇게 아버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겠지.
오늘도 속절없는 해는 여전히 아버지의 헛간 깊숙이 그림자로 기울고, 여태껏 철없는 자식의 장화 한 켤레, 헛간에 벗어 던져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