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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책 제목유혜자수필문학상 2026년 8월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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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서랍 깊은 곳에서 작은 저금통 하나를 발견했다. 플라스틱 통의 윗부분이 절반쯤 잘려 있었다. 중풍으로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던 아내가 돈을 쉽게 넣고 꺼낼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오랜 병상 생활 속에서도 아내는 인지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돈을 관리하며 하루를 이어갔다.
그 저금통에는 내가 매달 조금씩 넣어둔 돈과 명절이나 가끔 찾아온 두 아들이 “맛있는 것 사 드시라”며 건넨 지폐들이 함께 들어 있었다. 아내는 그 돈으로 가끔 팥죽이나 피자, 아귀찜 같은 음식을 시켜 먹었다. 입맛이 없는 날에는 통닭이나 족발을, 아주 드문 날에는 내 내의까지 사주곤 했다. 요양보호사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손에 쥐여 주는 돈도 그 속에서 나왔다.
아내는 저금통의 잔액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가끔 세어 보라며 물으면 거의 틀리지 않았다. 그 숫자는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아내의 의식이 아직 또렷하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때마다 ‘아직은 괜찮다’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저금통을 열자 57만 원이 들어 있었다. 생각보다 큰돈이었다. 얼마 전 큰아이가 다녀가며 넉넉히 넣어둔 돈이었다. 지폐는 몇 번이고 접혀 있었고, 아내가 보기 편하도록 한쪽으로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돈을 내려다보는 순간 목 안이 뜨겁게 메었다. ‘이것이라도 마음껏 쓰고 떠났더라면.’ 그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와 오래 머물렀다.
아내는 22년을 병상에서 보냈다. 그중 2년은 병원에서, 나머지 20년은 집에서였다. 퇴원하던 날 나는 아내를 집에서 돌보기로 마음먹었다. 가까운 요양원을 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병원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이 그 이유였다.
낮에는 간호사가, 밤에는 간병인이 환자를 돌보는 병동의 풍경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보호자의 시선이 닿지 않는 밤이면 환자는 쉽게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처리의 대상이 되었다. 식사는 밀어넣듯 이루어졌고, 조금만 늦어도 짜증이 먼저 돌아왔다. 움직이지 못하는 몸은 사람이라기보다 처리해야 할 물건처럼 다뤄졌다. 그 장면들을 나는 끝내 잊지 못했다. 그래서 아내를 맡길 수 없었다.
집에서의 간병도 쉽지 않았다. 방문 요양보호사들은 팔다리를 쓰지 못하는 아내의 작은 부탁조차 힘겨워했다. 휠체어에 옮기는 일도 버거워했고, 결국 대부분의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사람은 바뀌었고, 나는 점점 더 고립되었다.
그러나 22년 동안 단 한 번도 대소변 처리를 남에게 맡기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여겼다. 귀찮음의 문제가 아니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책임감이자 마지막 존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내를 돌본 시간이 알려진 것은 오래 지나서였다. 한 복지 공무원이 조용히 연락해 왔다. 누군가가 “지극정성으로 간병하는 이에게 표창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표창장 하나를 받았다. 지금도 그것을 가장의 의무가 남긴 작은 흔적처럼 간직하고 있다.
장례지도사는 오랜 병상 생활을 한 분의 몸치고는 욕창 하나 없이 깨끗하다고 말했다. 아들은 “어머니는 아버지 덕분에 10년은 더 사셨어요”라고 했다. 그 말이 위로인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래 마음에 남았다.
아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을 기다렸다. 멀리 있던 자식들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13시간을 조용히 버텼다. 그리고 마치 잠이 들듯 아무 말 없이 세상을 떠났다.
유품을 정리하며 옷과 신발은 하나씩 떠나보냈다. 그러나 저금통만은 차마 비울 수 없었다. 쓰지 못한 돈보다 더 무거운 것은 쓰게 하지 못한 시간들이었다. 반쯤 잘린 플라스틱 저금통 하나가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비어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가득 찬 채로.

 

 

 

[작품평 보기]
오늘은 어제 죽은 이의 간절한 내일——임병식 수필집 『아내의 저금통』
박덕규(문학평론가, 단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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