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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숙

책 제목제17회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당선작 2024년 12월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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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제시간에 불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기상 캐스터는 태평양 남쪽에서 발달된 저기압이 세력을 키워 가며 북상하고 있다고 연일 보도했다. 다만 중앙아시아 쪽에서 내려오는 고기압과 마주쳐 우리나라와 일본 열도,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태풍은 한반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는 논두렁 사이에 어정쩡하니 서서 이번 태풍은 바람과 함께 많은 비를 뿌릴 예정이니 농작물 관리에 만전을 기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가 입고 있는 우비만 아니라면 들판을 배경으로 청량한 가을 날씨를 알리러 야외로 나온 것처럼 보였다. 제법 고개를 숙인 벼 이삭들로 가득 찬 들판은 연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디에도 태풍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남쪽 해안으로 태풍이 상륙할 것으로 기상 캐스터가 예상한 시간은 내일 새벽이었다. 태풍의 속도가 얼마라고 했더라. 초속 30km라고 하던가, 35km라고 하던가. 아무튼 초속으로 내달리는 태풍의 속도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중형급 태풍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속도가 붙을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것도 생각났다. 자영은 어차피 태풍의 속도를 계산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풍이 제주를 거쳐 부산 앞바다로 상륙해 동북 방향으로 올라온다면 그녀가 살고 있는 울산 외곽까지는 한두 시간 남짓일 터였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후 태풍은 한 해도 빠짐없이 불어왔고, 대부분 이번과 같은 경로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일찍이 안방에서 잠이 들었고, 남편은 며칠간 출장 중이었다. 자영은 읽던 책을 덮었다.

그녀는 베란다로 나가 창문의 잠금장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단단히 잠긴 창문 틈으로 물비린내가 실린 묵직한 공기가 흘러들었다. 춥지는 않았지만, 묘한 한기가 느껴졌다. 팔짱을 낀 채 어깨를 한 번 부르르 떨고 들어와 수면양말을 찾아 신었다. 그러고 담요를 덮고 소파에 몸을 뉘었다. 거실에서 보초를 서야 할 것만 같은 밤이었다. 자영이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고 눈을 뜬 것은 세 시경이었다. 거친 빗줄기가 폭포수처럼 유리창 아래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안방 천장에서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땀방울처럼 몽글거리던 물방울들이 졸졸 물길을 이루며 흘러내렸다. 침대에 누워 있던 경호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났다. 급한 대로 부엌에서 가져온 의자 위에 올라가 수건으로 물구멍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그 구멍이 더 커지며 이번에는 흙탕물이 콸콸 흐르는 것이 아닌가. 그 흙탕물을 뒤집어쓰면서 경호는 땀을 뻘뻘 흘렸다. 안방에 고인 물이 의자 다리를 넘어 무릎께에서 넘실거리다가 가슴팍까지 올라왔다. 가끔 보는 벌건 황토물이었다. 경호는 한껏 눈꺼풀에 힘을 주며 이를 박박 갈았다. 꿈속에서도 이게 꿈이라는 것을 안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깨어나야만 해. 이를 악물고 발끝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오른쪽 발목에서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발목이 잘려 나가는 것 같은 명징한 환상이 찾아왔다. 경호는 숨을 들이켜며 눈을 떴다.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온몸에서 흘린 땀으로 시트가 축축했다. 그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과연 침대는 과학이었다. 옆자리에는 아내 혜숙이 여전히 가는 코를 골며 숙면에 들어있었다. 악몽을 꾸며 여러 번 몸을 뒤척였을 텐데 과학적 스프링들이 그 충격을 다 흡수해 주었나 보았다. 아니면 꿈을 꾸는 동안 마치 결박이라도 당한 듯이 경호의 몸이 굳어 있었는지도. 아마도 후자일 경우가 맞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요즘 들어 부쩍 잦아진 악몽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깬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아내는 언제나 뽀송한 시트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경호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애초 경호가 혜숙을 선택한 것은 그녀의 뽀송함 때문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붉은 편이었으므로 경호를 만나러 나올 때마다 흰 분을 듬뿍 발랐다. 나이 스물셋이었으나 그녀의 얼굴에는 그때까지 솜털들이 나 있었다. 흰 분을 뚫고 돋아 있는 오소소한 솜털들을 경호는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빗방울도 그 얼굴을 적시지 못하고 또르르 굴러갈 것 같았다. 혜숙은 그런 경호의 눈길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눈꼬리를 올리며 배시시 웃을 때마다 그녀의 눈에서는 작은 전구가 불을 밝혔다. 마치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것처럼 따뜻하고 밝은 눈이었다. 옷차림 또한 언제나 화사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여형제가 많은 집안이었다. 무리지어 피는 꽃들은 밝은 법이다. 알록달록한 옷에 뽀얀 화장을 하는 그녀를 경호는 마음에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의 몸을 품었을 때 경호는 자신의 습기가 그녀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혜숙의 생년월일 시를 들고 철학관을 다녀온 경호의 어머니는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쉬는 것은 그녀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아니 한숨이야말로 그녀가 쉴 수 있는 유일한 숨인지도 몰랐다. 굴뚝이 막혀 버린 아궁이의 그을음처럼 그녀의 한숨은 집안 곳곳에 내려앉았다가 장마철 대책 없는 습기에 눌어붙어 허연 얼룩으로 남았다. 얼룩진 벽지를 뒤로 하고 그녀는 철학관 사주쟁이가 한 말을 기억해 내느라고 골몰하는 눈치였다. 글을 읽지는 못했지만, 기억력만큼은 비상했다.

“니 사주에 수기가 꽉 차 있다는 것은 니도 알고 있제?”

경호는 어머니 머리 위 벽지에 난 얼룩을 바라보며 문득 고래 같기도 하고 잠수함 같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하긴 고래나 잠수함이나 경호에게는 바늘 같은 구멍으로 밭은 숨을 쉬는 존재들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경호가 아무 대답이 없자 어머니가 한 쪽 무릎을 세우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라니 니 각시 될 아가씨 사주에는 화기가 많아야 되는 기라. 안 그러면 니 아비 짝 나는 기라.”

경호는 며칠 전 꾼 꿈에서 거친 물살에 떠내려가는 아버지를 굳이 구하려 하지 않은 자신을 떠올렸다. 아니 구하려 했으나 두 발에 큰 돌멩이가 달아 놓은 듯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뛰어갔지만 이미 아버지가 저만치 떠내려간 뒤였던가. 생각하면 할수록 경호의 꿈은 모호해졌다. 아버지는 떠내려가면서도 경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는 살짝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도 마 그 정도면 아쉬운 대로 개안타 카더라. 토기가 좀 부족해도 아궁이에 불 때는 형국이라 더운 물 끓이고 살 궁합이라 카네. 말년에는 수기가 좀 든다 카는데, 그때야 아들 딸 나 놓고 살낀데 별일이야 있겠나. 함 댈꼬 와 봐라.”
마지막 말을 하며 어머니는 버선을 당겨 벗었다. 절이나 철학관 갈 때 그녀는 꼭 한복을 챙겨 입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궁합을 본 몇 명의 처녀가 사주에 수기가 있다는 말로 이유 없는 원망을 들은 후였다.
직접 만나보고 난 뒤로 경호의 어머니는 혜숙을 더욱 마음에 들어 했다. 혜숙은 어머니에게 인사를 올 때에도 뽀얀 분칠을 잊지 않았다.

자영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태풍은 밤새 베란다 창문을 격렬하게 두드렸다. 금방이라도 집 안으로 들이찰 것처럼 빗줄기가 퍼부었다. 자영은 베란다 창을 쪽문으로 해 단 것에 다시금 안도했다. 북동진하면서 반경을 키웠는지 비바람이 그치기까지 족히 서너 시간이 걸렸다. 날이 밝자 남부 해안지역 학교들이 하루 휴학을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자영은 아이들이 잠든 방 방문을 살며시 열어보고 다시 닫았다. 깨우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한참 더 단꿈을 꿀 것이다. 쓰러진 가로수들과 덜렁거리는 간판들이 즐비한 거리와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어시장이 전파를 탔다.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물을 퍼내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자 물에 잠긴 들판이 나타났다. 기상 캐스터의 뒤로 겨우 끝부분만 드러난 벼들이 흙탕물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자영은 그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눈을 뗄 수는 없었다. 그 화면 위로 물에 잠긴 수미산 골짜기의 잔영이 투영되었다.
푸른 수면 위로 웃마름 언덕 위 미루나무 꼭대기가 마지막 깃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니 눈이 시려왔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번뜩이는 물비늘들이 나무 꼭대기를 삼켜버린 것처럼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물비늘처럼 보이기도 했다. 발밑 땅이 물러지며 자신도 물비늘에 밀려 미루나무 쪽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들자 자영은 소스라쳤다. 머리칼 밑을 저릿한 전율이 훑고 지나갔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었다.
저 푸른 수심 아래 그녀의 고향이 잠겨 있었다. 나고 자란 산골이었다. 그녀 존재의 시원을 품은 골짜기가 전설처럼 물에 잠겨버린 것이다. 미루나무 꼭대기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집은 없었다. 십 리 아래쪽에 건설 중이던 댐이 완공되고 삼 년 만에 아랫마름, 웃마름 두 마을은 완전히 물에 잠겼다. 저 아래 오십여 호의 집들과 그곳에 살던 인생들이 수몰되었건만, 그 징표는 겨우 한 길도 못 되게 남은 저 미루나무 꼭대기뿐이었다. 흘러드는 것이 아니고 골짜기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처럼 수면은 고요했다. 그 수면 위로 단풍 든 가을 산이 얼비치고 있었다. 고향을 삼킨 풍광이 이리도 아름답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자영은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경호를 떠올렸다.
“어쩔 수 없이 너를 잊으려고 해….”
자영은 나직이 말해 보았다. 그러나 이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경호가 아니던가.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었으나 자영이 경호를 잊을 수 없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자영의 가족이 살림살이를 실은 손수레를 밀며 웃마름을 떠난 것은 오 년 전이었다. 사실 정부가 마을에서 십 리가량 떨어진 수미산 인근을 막아 댐을 조성한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수미산은 말 그대로 흐르던 강이 꼬리처럼 그 폭을 줄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소문이 사람을 움직이기에는 그곳은 너무 산골이었다.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버스도 웃마름 뒤 재 하나를 넘어야 탈 수 있었다. 어쩐 연유로 이곳에 터를 잡았는지 알 수 없는 몇 대 조상들의 뒤를 따라 자영의 부모도 그곳에서 천수답과 수미산 자락을 누비며 살았다. 그리고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 못내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호 아버지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저수지 바닥에서였다. 익사체였으나 물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산골에 잠수부가 동원되어 발견한 것도 아니었다. 댐 건설을 위해 웃마름 재에서 건너편 산등성이로 넘어가는 도로를 닦기 시작했다. 그동안 천수답에 물을 대던 조그만 저수지의 물길을 돌리고 흙으로 메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 저수지 위쪽은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풍광이 좋았으나 경사가 심했다. 그러니 저수지를 메우고 길을 낼 수밖에 없었다. 시신은 진흙에 덮여있어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미 남편임을 직감한 경호의 어머니는 저수지 둑 위에서 실신했다. 남편이 사라진 보름 동안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그녀였다. 읍내에서 형사 둘이 나와 경호를 상대로 신원을 확인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저수지로 몰려들었다. 아버지가 사라진 뒤 밤낮없이 집으로 찾아와 악다구니를 써대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처참한 시신 앞에서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마다 고개를 돌리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자영의 아버지조차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경호 아버지의 사인은 자살로 인한 익사로 추정되었다. 시신의 오른쪽 발목에 밧줄로 매달려 있는 커다란 돌멩이가 그 증거가 되어 주었다. 수몰 예정인 마을의 보상금 일부를 착복한 혐의를 받고 있었으므로 자살 동기는 충분했다. 이틀 동안 시신은 거적에 덮인 채 둑 위에 방치되었다.
어둠을 더듬으며 경호의 외삼촌이 삼베 필을 들고 집으로 들어섰을 때 경호의 어머니는 삽을 내밀었다. 그때 그녀의 눈빛에서는 한밤중 산 짐승에게서나 볼 법한 광채가 났다. 별빛마저 구름 속으로 숨은 괴괴한 밤, 경호는 외삼촌과 함께 삼베로 둘둘 만 아버지의 시신을 집 뒤 야트막한 산자락에 묻었다. 경호의 집은 아랫마름에서도 아래쪽에 있었으므로 물이 차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잠길 터였다. 그러나 그런 것을 생각할 만한 경황이 있을 리 없었다. 그날 밤 경호의 가족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마을을 떴다. 보따리를 짊어지고 웃마름 재를 넘으며 경호는 어둠 속에 서 있는 미루나무를 바라보았다. 칼로 가슴을 찢는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경호와 자영은 웃마름, 아랫마름을 통틀어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유일한 남녀 학생이었다. 자영은 친구 집에서 하숙을 했고, 경호는 작은 방 하나를 얻어 자취를 했다. 웃마름, 아랫마름으로 나뉘어는 있었으나 한 마을이나 다름없는 동네에서 함께 자란 사이였다. 게다가 둘의 아버지들은 절친한 친구 사이였으니 어쩌면 둘의 사이는 오누이라 해도 무방할 터였다. 어느 여름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자영의 얇은 웃옷이 젖고 막 봉긋해진 그녀의 젖가슴이 경호의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자영과 같이 우산을 쓰며 그 가슴이 경호의 팔뚝에 살짝 스치기 전까지는.
날이 갈수록 경호에게 자영은 특별한 아이가 되어갔다. 또래보다 풍만한 가슴을 가지게 된 자영은 책을 좋아했다. 게다가 반에서 일이 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자영이라면 산골 사람치고는 학식도 풍부하고 활동적인 아버지도 자신의 짝으로 인정해 줄 것 같았다. 자영 또한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나날이 키가 커지는 경호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경호가 운동장을 뛰는 것을 볼 때마다 자영은 가슴이 터질 듯이 뛰었다. 은근히 뒤로 다가가 그의 땀 냄새를 맡기도 했다. 그해 가을, 추수를 돕기 위한 일주일간의 휴교 기간이 되자 둘은 손을 꼭 잡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일부러 몇 정거장 앞에 내려 숲길을 걸었다. 마을 입구 미루나무는 한쪽이 비스듬한 언덕에 가려져 있었다.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웠던 경호와 자영은 그곳에서 입을 맞춰가며 서로의 가슴을 더듬었다. 미루나무 꼭대기로 산그늘에 꼬리가 잘린 가을 해가 기울고 있었다.

미루나무 아래서 자영과 헤어진 경호는 집으로 내려오며 마을 공기가 전과는 달라졌다고 느꼈다. 우연히 마주친 몇몇 어른들이 경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다음 날 해도 뜨기 전에 경호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새벽부터 경호의 집을 지켜보던 웃마름 자영의 아버지가 경호의 어머니와 한참을 두런거리고 돌아간 뒤, 그녀는 아들을 불러 앉혀 놓고 한숨부터 쉬었다.
“암만 해도 느그 아버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닌갑다. 집 나간 지 열흘째 여. 떨어져 있는 너까지 걱정할까 해서 기별을 안 한….”

경호의 어머니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한참 동안 이어진 그녀의 말은 통곡에 가까웠다. 드문드문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을 조합해 보면 사정은 이러했다. 읍장이 국토건설부에서 나온 높은 사람과 몇몇 공무원을 대동하고 마을을 찾았을 때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대표로 맞은 사람은 경호 아버지였다. 댐 건설이 확정되고 수몰지구 보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돈이 걸린 문제다 보니 너 나없이 예민했다. 시일이 가자, 그래도 말도 잘하고 글도 아는 경호 아버지에게 마을 사람들의 권리가 일임되었다. 경호 아버지는 마을 사람 중 한문을 읽고 쓸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가끔 마을을 비우고 외지로 떠돌았던 이력도 그를 넓은 세상을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댐 공사를 위한 도로 계획이 잡히자, 보상금 일부가 지급되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온갖 소문이 마을을 휩쓸었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말들이었다. 그 말들이 칼처럼 서로의 가슴을 베었다. 급기야 이면계약이 있어 보상금 일부를 경호 아버지가 착복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누군가가 시청에 투서를 넣고 경찰서에 고발도 했다. 가을 걷이도 내팽개친 마을이 뜨거워진 솥처럼 달아올랐다.
그때 돌연 경호 아버지가 실종되었다. 가족 입장에서나 실종이지 마을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공노할 도둑놈이 보상금을 들고 도망친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경호의 집으로 찾아와 악다구니를 써댔다. 그들 중 몇몇은 평소 형제같이 지냈다는 이유로 자영의 집으로 몰려가기도 했다. 경호의 식구들은 불과 보름 만에 마을 사람들의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렸다. 누구는 경호의 아버지가 그 돈을 노름에 탕진했다고도 했고, 누구는 외지에 남몰래 얻어놓은 작은 마누라와 자식들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말이 없었으니, 누구도 그 진위를 확인할 길은 없었다.
경호네가 마을에서 자취를 감춘 그해 가을걷이를 끝으로 자영네도 마을을 떠났다. 경호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고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경호네의 야반도주에 대한 소문은 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수미시에 머문 자영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학교를 졸업한 자영은 울산 근교에 있는 한 기계 부품 판매점에 취직이 되었다. 울산이 도심을 키워 가며 팽창하던 시기였다. 울산에서는 자영의 부모도 막일을 구하기가 쉬웠으니, 셋이나 되는 동생들의 학업을 위한 최선의 이주지였다.
수미댐에 다녀온 후 자영은 남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가게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듬직한 체구가 마음에 들었다. 큰 체구에 비해 달변이라 실적도 좋았다. 삶의 터전을 옮긴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기도 한 사람이었다. 자영은 이런 사람이라면 두 번 다시 디디고 선 땅이 수몰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자영의 판단이 옳았던지, 시대의 흐름이 좋았던지 자영의 남편은 승승장구하더니 드디어 자신의 가게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파트도 샀다. 자영은 지력을 받아야 건강하다는 남편의 의견을 무시하고 맨 꼭대기 아래층을 분양받았다. 남편은 자영의 고향이 수몰되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기억 때문에 자영이 높은 집을 원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높은 층이 더 재산 가치가 있다는 말에 수긍했을 뿐이다. 하기야 한 달 중 태반을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판이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자영은 입주하면서 통유리로 된 베란다 창을 뜯고 여러 개로 된 쪽창을 달았다.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쪽창은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부산 외곽에서 장의사를 하던 외삼촌의 골방으로 경호의 식구는 스며들었다. 어찌어찌 수소문 끝에 그곳까지 찾아온 마을 사람들도 있었으나 검은 글씨로 크게 쓰인 ‘장의사’라는 간판과 가게에 놓인 검은 관을 보는 순간 스스로들 발길을 돌렸다. 얼마 후 경호의 어머니는 남동생의 권유로 수의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람이 꺼리는 일이다 보니 노동에 비해 수입이 괜찮았다. 하얀 목실을 끊어 머리에 얹고 수세포 가를 공글리며 경호의 어머니는 후우 한숨을 내쉬곤 했다. 뒤늦게 경호가 전문대에서 회계학을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어머니가 만든 수의 덕분이었다.
혜숙의 부모로부터 결혼 날짜를 전해 받은 경호의 어머니는 수의 한 벌을 싼 보퉁이를 들고 집을 나섰다. 경호가 그 뒤를 따랐다. 시외버스를 타고 수미시에 내린 뒤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도 한참이나 산길을 걸었다. 비탈 나무들 사이로 푸른 수면이 보였다. 경호의 어머니는 마치 길이라도 나 있는 듯 휘적휘적 잡목을 헤치고 아래로 내려갔다. 비탈 아래 작은 바위에 이르니 발아래로 거대한 호수가 나타났다. 수미 산 어귀를 막아 생긴 수미댐이 만들어 낸 인공호수였다. 아직 그 수위를 다 채우려면 십 년이 더 걸린다고 했다. 그때가 되면 전국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가 될 터였다.
잠긴 고향이 어디쯤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다만 수미산의 모양새를 보고 어림짐작을 해볼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경호의 어머니는 한숨도 쉬지 않을뿐더러 슬픈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을 떠나던 그날 밤처럼 눈에 살짝 광채가 돌기도 했다.
“경호야. 큼지막한 돌멩이 하나 주워 오너라.”
경호가 구해온 몇 개의 돌멩이를 마다하고 어머니가 고른 돌멩이는 한 자가 넘는 비교적 납작한 돌멩이였다. 그 돌멩이를 수의 위에 얹고 단단히 보퉁이를 다시 쌌다. 경호가 그 보퉁이를 힘껏 수면 위로 던졌다. 보퉁이는 잠시 둥실 떠가는 것 같더니 한쪽이 기울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두 번 수장 당한 사람은 느그 아버지뿐일 것이다. 느그 아버지…” 보퉁이가 완전히 가라앉자, 어머니의 입에서 흐느낌이 통곡이 되어 쏟아져 나왔다. 경호는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자영의 얼굴이 보퉁이에 얹혀 함께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경호와 혜숙의 결혼 생활은 비교적 순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경호가 다니는 건설회사는 날로 번창하고 있었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혜숙은 경호의 바깥 생활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피차 부딪힐 일이 별반 없었던 셈이다. 혜숙은 크고 의미가 깊은 일보다는 작고 일상적인 것들을 즐길 줄 알았다. 늘 밝고 가벼웠다. 이런저런 어려움들은 처가 형제들을 거치면 손쉽게 해결되곤 했다. 거창한 목표나 야망도 없었다. 그러한 혜숙의 성향 덕분으로 그들의 가정에는 그늘이나 습기가 비치는 일은 없었다. 경호가 바라던 가정이었다.
경호는 혜숙에게 고향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려면 아버지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좋은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혜숙이 깊이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았다. 어차피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혜숙도 구태여 알려고 들지 않았다. 혜숙에게는 경호의 지난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보이고, 팔을 뻗어 만질 수 있는 경호가 그녀가 아는 경호였다. 그녀는 그녀에게 필요한 만큼의 경호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경호가 물에 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고향을 떠난 직후에는 간간이 집이 물에 잠기거나 누군가가 떠내려가는 꿈을 꾸기는 했다. 그러나 경호는 고향에서의 일들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아니 고향 그 자체를 잊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악착스럽게 공부했다. 그 덕분인지 시간이 흐르자 점점 잊히기도 했다. 가정을 꾸리고 직장 일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꿈도 꾸지 않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악몽이 다시 시작되었다. 조금씩 디테일은 달랐지만 주로 물이 흘러들었고, 꿈이 거듭되자 꿈속에서도 꿈이라는 자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엄습하는 두려움 속에서도 그 자각을 붙잡고 깨어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대부분 발목에 격렬한 통증을 느끼거나, 발이 땅에 붙박여 있거나, 발목이 사라지는 환상 같은 것들로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나면 아버지의 발목에 묶여 있던 돌멩이가 생각났고 회사의 회계장부가 떠올랐다.
그즈음 몸집을 불린 경호의 건설회사는 남모르게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었다. 지방에서 작은 아파트들을 지어 팔던 시대를 마감하고 처음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중이었다. 윗선으로 쓰일 돈이 만만치 않았다. 경호는 어쩔 수 없이 그 일에 깊숙이 연루되었다. 사실 건설 업계에서 그런 일들은 공공연한 비밀에 불과했다. 눈만 뜨면 아파트 가격이 오르던 시기였으므로 기실 그 돈들이 입주자 개개인의 주머니를 터는 것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만 회사의 내부 정보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부담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그것들이 회사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견고히 해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에서 경호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다. 부수입도 적지 않았다. 꼬박꼬박 뒷돈을 가져다주며 평수를 넓혀 이사 간 아파트 명의까지 혜숙의 앞으로 해주자, 그녀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나 행복했던 그녀는 남편이 자신의 옆에서 간간이 악몽을 꾸며 진땀을 흘리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비자금의 규모가 커지자, 분식회계를 통해 세탁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로 쪼개었다. 그 뭉칫돈들은 여러 개의 차명계좌로 나뉘어 관리되었다. 그러나 입이 많으면 말이 새는 법이다. 회사 내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경호의 승승장구를 시기하는 세력도 한몫을 거들었다. 누군가가 검찰청에 투서를 넣었다. 공교롭게도 윗선과 관계가 있는 첨예한 정치 사안이 대두된 시기였다. 기류가 변하는 느낌이 들었다. 경호는 조만간 자신이 표적이 될 것을 예감했다. 이미 검찰에서 보낸 출두명령서가 경호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출두명령서가 도착한 날 저녁, 경호는 사표를 써서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경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절룩거리며 주방으로 가 찬물 한 잔을 마셨다. 이렇듯 선명한 꿈을 꾸고 난 뒤에는 실제로 발목이 욱신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 다리를 절었다. 창밖에는 며칠 전부터 예고된 태풍이 불고 있었다. 거실 벽에 걸려있는 전자시계가 녹색으로 깜박이며 새벽 세 시를 나타내고 있었다. 검은 하늘에서 양동이로 들이붓듯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경호는 한동안 망연히 바라보았다. 불현듯 경호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물비린내를 맡았다. 자신이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자 태풍 피해를 보도하던 화면에는 가을 단풍들이 비치기 시작했다. 북쪽에서부터 내려오는 단풍은 남쪽 지방에서 절정을 이룰 예정이었다. ‘지방시대’라는 프로에서 가족과 나들이 가기 좋은 장소들을 소개했다. 가을 단풍도 즐기고 케이블카를 타거나 번지점프도 할 수 있는 명소로 수미댐이 전파를 탔다. 완공된 지 이십 년이 된 수미댐의 인공호수는 이번 태풍이 뿌린 강수량으로 거의 만수위를 자랑하고 있었다. 다음 주 말이면 댐의 양쪽으로 하나씩 수문이 열려, 그곳으로 쏟아지는 장대한 물줄기와 포말을 볼 수도 있다고 리포터가 전하고 있었다. 수미댐 위로 조각공원을 조성하고 인공호수를 건너 수미댐 정상으로 연결되는 왕복 케이블카와 푸른 수면이 내려다보이는 번지점프대를 설치한 것은 수미시의 숙원사업이었다.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관광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출장에서 돌아와 TV를 보던 자영의 남편이 한마디를 했다.
“다음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수미댐에 놀러 갈까? 저기 당신 고향이잖아?”

경호는 채널을 돌리다 화면에 나오는 번지점프대를 언뜻 보았다. 되돌린 화면에는 발목에 밧줄을 묶고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사람이 보였다. 푸른 수면을 향해 곤두박질하더니 어느 순간 튕기듯이 위로 솟았다가 다시 출렁이며 떨어졌다. 그는 곤두박질칠 때는 마치 날개인 양 양팔을 벌리더니 튕겨 오를 때는 손으로 브이 자를 그려 보였다. 경호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동시에 오른쪽 발목에 둔중한 통증이 찾아왔다. 그 사람이 점프대에서 내려오자, 리포터가 다가가 번지점프를 한 기분이 어떤가를 물었다.
“내 발목에 묶인 밧줄을 믿고 그냥 뛰어내리는 거예요. 한 번 뛰고 나면 그 믿음이 나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죠.”

경호는 양복 안주머니에 있던 사표를 등산복 안주머니로 옮겨 넣었다. 혜숙에게는 현장 사람들과 산행을 간다고 말해 두었다. 여느 때처럼 혜숙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경호는 차에 앉아 수미댐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수의가 든 보퉁이를 들고 어머니와 함께 산길을 더듬어 찾아간 뒤로 십오 년의 세월이 흘렀다. 푸른 물속으로 가라앉던 보퉁이와 함께 자영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영을 생각하자 발목이 욱신거렸다. 경호는 번지점프대에 올라 발목에 밧줄을 묶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 밧줄을 믿고 푸른 수면 위를 한 번 날고 나면 아버지의 밧줄을 풀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까. 경호는 물끄러미 오른쪽 발목을 한 번 바라보고는 시동을 걸었다.

자영은 같이 케이블카를 타자는 남편의 권유를 끝내 뿌리쳤다. 도저히 저 시퍼런 심연을 내려다보며 호수를 가로지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아이들과 재미있게 타고 오라고 남편을 타일렀다. 아이들은 빨리 결정하라며 한 손으로 햇살을 가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매표소를 향해 걸어가는 남편과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영은 벤치에 앉아 손을 흔들었다. 청명한 하늘에 색색의 케이블카들이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이 노란색 케이블카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 무심히 번지점프대 쪽으로 눈을 돌린 자영은 비릿한 물비린내를 맡았다.

한 남자가 자영을 지나쳐 번지점프대 쪽으로 걸어갔다. 등산복 차림을 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자영은 경호를 떠올렸다. 언뜻 스친 옆모습이 경호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심장이 잠시 덜컥 멈추었다가 다시 뛰었다. 그러나 자영은 이내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남자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룩이며 번지점프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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