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0월 680호
35
0
나의 산실은 중구 충무로 月刊 『순수문학』 사무실이다.
박영하를 말하자면 『순수문학』을 빼고는 할 말이 없다. 일단 1987년 『의식의 바다』 시집으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평소에 좋은 문학지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1993년 『순수문학』을 창간하였다. 창간호를 낼 때 고생은 평생의 고통을 다 받은 경험을 했다. 고 一中 김충현 서예가께 휘호를 받으러 인사동 빌딩으로 갔다. 월간문학을 끝으로 더 이상 문학지에게는 휘호를 안 쓰시겠다고 하며 거절을 하시어, 당시 부장판사로 계신 오빠의 힘을 빌어 힘들게 받았다. 철없는 시절 시작한 월간, 지금 생각해도 이 어려운 일을 왜 하려 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매월 한 호도 거르지 않고 383호를 발간했다.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을 하든 시작과 끝은 같으리라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서울 태생인 나는 중구에서 태어나 『순수문학』 사무실도 중구에서 떠나 본 적이 없다. 서울 지리를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는 토박이 서울 출생이다. 교육 행정을 전공하며 교직에도 잠깐 있었다. 허나 마음이 다른 곳 잡지로 향하는 바람에 접고 순수문학에 몰두했다. 돌아서면 한 달이 돌아오는, 길고도 먼 길을 택했지만 힘들어도 행복했다.
문단의 기라성 같은 선생님들을 만나 사랑받고 문단 생활에 큰 지장 없이 지냈다. 문단 생활 근 40여 년, 볼 거 못 볼 거 다 보면서 좋은 점만 배우고 열심히 나와의 약속을 지키며 지금도 잘 보내고 있다.
해마다 시 동인회를 만들어 20여 개의 동인회를 조직, 지금도 초창기 동인회 ‘갈대’ 시 동인회가 동인시집을 내어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그들은 마치 큰아들 격, 믿고 의지가 되는 시인들이다. 젊은 시절에 만나 교직에 있던 분들도 정년한 지 수년이 되어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희어 가는 모습을 보며 서로 늙어 가는 중이다. 참 많은 추억들을 다 열거하자면 소설집 한 권을 탄생시킬 수 있다.
순수문학에서는 매년 순수문학인협회 세미나와 불우 이웃, 고아원, 양로원을 방문, 그들과 함께 아파하며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해외 세미나를 개최하며 수십여 명의 시인들과 해외 문학 기행도 하고 매월 시낭송회도 하였다.
문단의 원로 문인들도 꼭 참석하는 등 수십 명이 참여하는 거리 시화전. 지하철역에 시인들의 화보와 시를 액자로 꾸며 전시하는 등 열심히 맡은 바 일에 몰두하며 지금도 충무로 사무실에서 졸작이지만 최선을 다해 시 짓는 일과 『순수문학』 편집을 열심히 하고 있다.
지옥과 천당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우리들은 무슨 꿈을 꾸고 살 수 있을까
가족이 함께 모여 오순도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웃을 사랑하며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까
내가 살고 있는 삶에도 계단이 있어
그 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오늘날의 삶
하루에도 몇 번씩 희망과 허무를
오르락내리락 멀리 뜬 구름 타고
하늘을 날고 또는 낭떠러지로 한없이 구르는
오늘의 삶 너와 나의 현실 속에 갇혀서
우리들은 무슨 꿈을 꾸며 살 수 있을까
—졸시, 「현실 속에서」 전문
이 시를 발표할 때가 1995년도였다. 잡지가 너무 힘이 들어 푸념 같은 시를 쓴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들과 딸을 둔 엄마로서 시를 쓰려고 방황을 했던 시간들이 아이들에게는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훌륭하게 커서 본인들 앞가림을 하며 잘 살고 있다. 일하는 엄마, 시 쓰는 엄마, 아이들 뒷바라지해 가며 두 자녀를 모두 유학도 보냈다.
머리 위에
책상 위에
위에 위에
십자가 고상이 있고
성당 미사안내 시간표가 있다.
—「행복으로 가는 길」 전문
천주교인인 나는 다른 일보다 열심히 신자로 살아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호세아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다. 일찍이 영세를 받아 가톨릭문인회에 1991년에 가입하고 한국시인협회에도 그때쯤 가입하여 한국시인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두루 문단에서 어르신들이 잘 챙겨 주시어 국제 PEN 한국본부 감사, 이사, 심의위원장까지 지냈다. 배우는 곳, 약속한 곳은 거르지 않고 잘 다니고 지키며 기라성 같은 문단의 어르신들을 어버이 모시듯 깍듯이 모시는 박영하로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이제 문단 생활 40여 년을 지나며 최선을 다해 박영하의 이미지를 굳히려 한다.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구부러지지 않을 자존심을 지키며 오늘을 마감하며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박영하]
서울 출생. 한성대 교육대학원 교육행정학과 졸업. 1987년 『의식의 바다』로 문단 입문. 『이름 없는 풀꽃의 마을』 『다시 오는 아침』 『여행은 나의 삶과 꿈』(시, 사진첩) 외 공저 일백여 권. 한국문인협회 28대 시분과 회장, 『순수문학』 편집주간, 국제 PEN 한국본부 심의위원장,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한국현대시협·가톨릭문인회 회원. 순수문학상, 영랑문학상 운영위원장. 한국시문학상, 국제 PEN 한국본부 공로상, 제34회 한국평론가협의회 최우수문학상, 2024 대한민국예술문화공로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