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0월 6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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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서울 토박이인 나는 정직하고 깔끔한 시를 써야겠다는 신념으로 다작은 못하지만 떠올리는 시어를 잘 주워 담아야겠다고 마음 다졌다. 시를 배우러 다닐 때 서로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순수한 성격인 나는 농담을 싫어했다. 누구의 말이든 진실이라고 믿고 지내왔다. 어쩌다 의견 충돌로 마음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순수문학을 하면서 지낸 35여 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시인은 시대의 증언자라지만 시를 짓는 동기는 하루저녁 메모지를 꽉 채운다. 후에 열어보곤 발표할 때 다시 다듬어 낸다. 문단에 30대에 입문하여 어눌한 메모가 시라고 하기엔 너무 여린 상태, 그래도 열심히 다독다습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김수영의 시를 좋아했고 박재삼의 시도 참 좋아했다. 잡지를 하며 시에 열중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월간지는 돌아서면 한 달, 한 달이 코앞에 닥친다.
모든 영업에는 돈이 있어야 지탱할 수 있다. 처음 출판사를 시작할 때 APT를 매매한 돈으로 종이를 창고 가득 채웠다. 종이는 현금이다. 싸게 살 수 있는 계기는 현금과 바꾸는 것이다.
창간호를 만들고 입원을 한 적이 있다. 너무 기진맥진해서 쓰러진 것이다. 그러나 시작을 했으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버텨 보며 노력했다.
1년, 12권을 내면서 지금 통권 383권 결호 없이 발행하였다. 그동안 희로애락, 어르신들과의 만남, 나이 어린, 문단 경험도 풍부하지 않은 삼십 대, 버텨 나간다는 게 하루하루의 고통으로 적지 않은 고배도 마시고, 주변 어르신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그러다 1995년 영랑 김윤식의 자제 김현태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할 때, 月刊 『순수문학』에서 영랑문학상을 하는데 허락을 받았다. 그때 김 교수와 충무로의 술집에서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신 것이 지금 생각난다.
1995년 제1회 영랑문학상에 동국대 교수인 장호 시인이 수상, 제2회 추은희 교수님이 수상, 시상식에는 김현태 교수와 김남조 교수님이 축사를 해 주셨다. 그 후 지속적으로 시상해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수상의 영광을 가지고 지금 제30회를 시상식을 시행했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지면이 허락하질 않을 것이다. 상금도 수백만 원을 드리면서 심사위원들이 그간 출간된 시집들을 가지고 심사에 임했다. 그뿐인가, 대상은 문단 경력 40여 년 이상 되는 분으로 결정하고 지금도 그 뜻은 변함이 없다.
1993년 순수문학상을 제정, 제1회 조병화 시인을 비롯 홍완기, 박태진, 장윤우, 공덕용, 이수화, 채수영 등 수많은 원로 시인들이 수상, 순수문학은 글자 그대로 순수하게 운영해 왔다. 25년, 올해로 제33회 시상식을 앞두고 있다. 시간이 흘러 초창기에 등단한 30대들이 60대 후반에 닿았다. 지금이야 100세 시대라 등단하는 분들도 70대가 태반이지만 35∼6년 전에는 30대, 40대들이 대부분 문학에 관심을 둔 젊은 문학도들이 등단을 했다.
한국문인협회 감사, 이사를 지내며 제28대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장에 당선했다. 천도교회관에서 열린 국제 PEN 한국본부 총회에서 감사 인준을 받을 때 몇백 명의 회원들이 만장일치로 감사에 이의 없다는 허락을 받고 인준되었다.
문단 어르신들의 신뢰를 받으며 순탄한 문단 생활을 지금껏 해왔다. 잊지 못할 분들을 열거하자면 고 구인환, 윤병로, 신동한, 김양수 선생님은 내 생전 잊지 못할 분들이다.
고 박태진, 윤병로 선생님은 이북이 고향이시다. 망향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시는 두 분의 심연 깊은 곳의 아픔을 잘 알고 있어 자주 뵙고 충무로 근처의 이북 음식을 잡숩곤 했다. 선배를 깍듯이 모시는 윤병로 교수님!
문단 생활 40여 년 동안 참 많은 어르신들과의 만남과 추억은 잊지 못한다. 내게 도움 되는 곳이면 꼭 데리고 가신다. 많은 분들과의 교류를 하며 문단의 탄탄대로를 가야 한다고…. 창작할 때도 큰 도움을 주신 어르신을 기억하며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 번 추모를 드린다.
2023년 제28대 시분과 회장에 당선되어 김호운 이사장님 외 부이사장단을 모시고 분과회장단의 일원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렇듯 나의 문단 생활은 순수문학이다. 내 인생의 반 이상을 바친 지금 무엇을 대신하며 말할 수 있나. 그간 만난 문인들만도 수천 명 이상 된다. 당선 후 사업의 일환으로 2023년 사화집 『집』, 2024년 사화집 『시의 사계』, 2025년 사화집 『춘하추동』의 발간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연간 사화집을 탄생시키는 사업을 해내고 문단 어르신들을 모시고 조촐한 식사 대접을 해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시분과에서는 국내외 문학 기행을 기획하고 있다. 2023년 강원도 강릉과 제주도를 찾아 세미나를 하고, 2025년 8월 23일 일본 북해도로 3박 4일 문학 기행을 김호운 이사장님을 모시고 다녀왔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님과 임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과를 소화해 내며 봉사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 28대가 그 어느 때보다 잘했다는 평점을 듣고 싶다.
반대 진영에서 시분과 회장만 당선되었기에 은근 걱정도 있었지만 문단을 지나온 40여 년이란 시간은 결코 작은 시간이 아니듯 모든 범사에 자신감도 있었다. 다행히 문단의 선·후배님들이기에 안심이 되었고 잘 지내며 28대는 임원들과의 화합으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시분과 회장도 역시 바쁘고 할 일이 많다. 앞으로의 바람은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안팎으로 일을 잘 소화해 내고 문단의 보람 있는 일들을 잘 해내고 싶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
문단의 수로를 터 주는 시원한 선배로 문단사에 남고 싶다. 선·후배님들이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시기를 바라며, 28대 임원님들의 건강 건필하시기를 소원합니다.
[박영하]
서울 출생. 한성대 교육대학원 교육행정학과 졸업. 1987년 『의식의 바다』로 문단 입문. 『이름 없는 풀꽃의 마을』 『다시 오는 아침』 『여행은 나의 삶과 꿈』(시, 사진첩) 외 공저 일백여 권. 한국문인협회 28대 시분과 회장, 『순수문학』 편집주간, 국제 PEN 한국본부 심의위원장,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한국현대시협·가톨릭문인회 회원. 순수문학상, 영랑문학상 운영위원장. 한국시문학상, 국제 PEN 한국본부 공로상, 제34회 한국평론가협의회 최우수문학상, 2024 대한민국예술문화공로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