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완성과 미완성 사이에서 갈대처럼 비틀거리는 영혼

한국문인협회 로고

임헌영

문학평론가

책 제목 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조회수 16

좋아요 0

4월_창작의산실
/

슈베르트의 교향곡 <미완성>은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도 그 고혹적인 제목, 이루지 못한 사랑이나 젊은 날의 꿈 때문에 들어보고 싶은 곡이다. 온갖 권세와 부귀와 영광을 누렸어도 결국 하직할 때면 버킷 리스트를 몇 가지 남기지 않을 수 없는 인생의 숙명적인 굴레 등등을 연상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베토벤의 <운명>이나 차이콥스키의 <비창> 다음으로 동메달 급은 따놓은 당상을 차지한 연유는 필시 ‘미완성’이란 제목 탓이리라. 내 기준으로 말하면 제목에 홀려 경청해보니 그보다 더 감동적인 교향곡이 수두룩해서 사기당했다는 허탈감이 들었대도 지나치진 않다. 음악뿐이 아니라 미술이나 문학, 연극, 영화, 조각, 유행가 등 모든 예술뿐만 아니라 필명이나 상호 등등도 제목이 지닌 중요성은 똑같다.
이런 이치를 모를 사람이 없건만 새삼스럽게 거론하는 까닭은 인생 80줄을 훌쩍 넘어서고 보니 결국 남는 것은 내 삶은 미완성인가, 아니면 그런대로 C학점은 간신히 넘어선 완성품인가의 갈림길에서 어정쩡하게 방황하는 나그네 처지임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고나기를 문창성(文昌星) 사주도 아닌 데다 금수저는커녕 은수저도 고개가 아프도록 쳐다봐야 하는 처지에 익숙해진 터라 아무리 돈이 썩어 문드러져도 사치할 줄도 모르는 촌놈인지라 내 땀만이 내 허기를 면해주기에 문학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었던 게 내 인생 외길이었다. 아내가 내 한심함에 펀치를 날리는 공격의 화살 18번은 ‘당신은 평론가가 안 됐으면 굶어 죽을 사람’이니 따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려다가 다 미끄러진 뒤 장사 안 되는 울 밑에 선 봉숭아 처지인 평론가 신세!
시인이나 소설가는 설사 일류가 아니라도 애독자가 있게 마련인데, 평론가란 직능은 일생을 수험생처럼, 전생이 좀벌레 숙명인 양 책만 파고들어야 하면서도 시인 작가로부터 쇠꼬리에 붙은 귀찮은 파리 취급을 당하는 존재 아닌가.
세계 여러 곳엘 다녀봐도 숱한 문인 유적 중 평론가로 버젓이 기념관 정도라도 있는 건 고작 19세기 영국의 대석학 매슈 아놀드와 20세기 세계 최고의 인문학적 지성이라는 게오르크 루카치 기념관이 내가 본 전부다.
더욱 놀란 건 루카치 기념관에는 그토록 많은 저작을 남긴 처지건만 미처 출간하지 못한 유고들이 좀 과장하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헝가리 국적이지만 여러 외국어에 능통했던 그였기에 행여나 영어로 된 원고가 있으면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간할 수 있을까 싶어 물어보니 안타깝게도 모국어로 쓴 게 젤 많고 독일어, 러시아어 등등이라고 해서 눈요기만 하다가 씁쓸하게 물러섰다. 미처 책으로 출간 안 됐기에 구태여 따지자면 ‘미완성’ 인생이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는 루카치가 아닌가. 그는 본업이 문학평론가였지만 철학 사상사부터 역사철학과 혁명사에도 달통하여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인문 사회과학의 통섭의 경지에 이른 지성으로 그 이후 지상에는 그를 능가할 전인적인 평론가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하물며 세계적인 지성은커녕 한국의 지성 대열에도 못 끼는 나 같은 존재가 설사 금송아지 같은 미완성(미출간) 글들을 쌓아 놓은들 누가 관심을 가지랴. 완성과 미완성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나로서는 에라 모르겠다, 하위 순서에 있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명품 먹거리나 찾아다니며 유유자적하자고 다짐하다가도 홀연히 돈오돈수(頓悟頓修)처럼 그래도 쓸 만한 건 쓰라는 죽비가 내 뇌리를 내려치곤 한다. 그런 한켠으로는 별 실력도 없으면서 단독저서 27권, 공저 31권을 내고도 미처 책으로 펴내지 못한 원고들이 언덕처럼 쌓여 있다. 그 뭉치들을 볼 때마다 그걸 책으로 꼭 내고 싶다는 버킷 리스트 몇 가지가 있다.
그래서 마음 다잡고 쓴 책들이 『임헌영의 유럽문학 기행』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문학가 임헌영과의 대화/ 대담 유성호』, 수필집 『눈동자와 입술』 『한국현대필화사』 제1권 등등이었다.
내 딴에는 멋진 책들을 연달아 냈건만 누구도 큼직한 상 하나 안 줬지만 사람들이 나를 몰라봐도 화내지 않으니 군자가 아닌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는 자세로 버틴다. 그래도 나는 내일 지구가 소멸할지라도 기어이 쓴다는 일념으로 꼭 내고 싶은 글들을 책으로 묶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돈오돈수가 밤잠을 깨운다. 우선 세계문학기행은 당장 『임헌영의 미국문학기행』이 2월 말에 나왔고, 연이어 중국, 러시아 독일까지의 기행은 이미 원고가 거의 완성되어 있다. 이것 말고도 북한문학, 해외동포문학, 시론, 작가론, 시사평론집 등등이 서재에서 자신들도 얼른 책으로 재탄생하고 싶다는 외침이 죽비처럼 내 뇌리를 스친다. 아니 어쩜 그건 죽비보다 더 앙증맞은 줄탁동시의 호소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심혈을 기울여 낸 책이 『상처와 화살,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이다.
인류 문명의 여명인 신화와 전설시대부터 고대-근대-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 등 모든 분야의 전개 과정을 소설처럼 재미있게 펼쳐내면서 보다 멋진 작품을 쓸 수 있는 내공을 길러주고자 쓴 책이 바로 『상처와 화살,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이다.
특히 창작 방법에서는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전위주의에 서야 한다는 입장에서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글쓰기의 방법론을 결론 부분에서 명쾌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이미 우리 문학이 세계문학을 앞선 지 오래라는 게 내 입장이다. 시도 소설도 오늘의 우리 문단만큼 치열한 작품들이 즐비한 경우는 없었다. 이런 우리의 문학이 범국민적인 지지를 받고자 시도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제발 이 책이 널리 읽혀 우리 문단이 줄줄이 걸작들로 이어져 노벨상을 독차지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내 인생이 미완성이든 완성이든 따지지 않겠다.

 

 

[임헌영]
경북 의성 출생. 안동사범, 중앙대 국문과, 대학원 석사 졸업. 경향신문 기자, 월간 『다리』 주간, 중앙대 출강. 1974년 유신 시기(1972∼1979)에 2차에 걸쳐 투옥, 특사로 출옥 후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도서출판 한길사 거쳐 참여사회아카데미 원장. 1998년 사면 복권, 민주화유공자로 인정(2006년). 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2010년). 세계문학기행 20여 차례, 해외동포문학 연구 및 세계유명 문인과 인문학자 유적 탐방. 2003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2026년부터 국립한국문학관 관장. 중요 저서 『임헌영의 유럽문학 기행』『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한국현대필화사』 외 단독저서 27권, 공저 31권.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