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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레퀴엠

중학교 때 일이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명동으로 걸어오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머리가 쾅 울리며 발목이 잡혔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소리 나는 곳으로 머리를 돌리니‘대한음악사’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슴을 흔드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 멀리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가 긴 회랑을 걸어 어둠에서 환한 곳으로 나오는듯한 묘한 기분이

  • 명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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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머슴 아버지

어느 작가의 「아버지 노릇」이라는 글이 생각난다. 글 속의 아버지는 IMF 위기에서 오는 대량 해고와 조기퇴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며 발버둥치는 삶을 살아왔다. 월급날이면 얄팍한 봉투였지만 가족들의 군것질거리라도 사들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금융전산화’로 월급이 봉투째 통장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런 즐거움도 없어졌다. 크고 작은

  • 윤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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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유년의 무의식이 우리를 이끈다

첫 수필집을 출간한 작가의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녀는 2019년 3월부터 우리 수필 교실에 나온 최윤실 작가였다. 수필 공부를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신인상을 받고 4년여 만에 첫 수필집을 내었다. 그사이 남편을 떠나보내고 채 2년이 안 되었다.그간 180여 편의 글을 썼다는데 그중 삼분지 일 정도만 선하여 책으로 엮었다. 작가들 대부분이 첫 수필집에서 가

  • 김낙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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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차창

수원 평생학습관을 간다. 오목천 버스 정류장에서 700-2번을 타고 벚꽃길 황구지천 가로질러, 환승역을 거쳐 가면 옛 고등동 사무소가 보이고, 모교인 수원여자고등학교를 지난다. 17살이 된다.팔달산 서장대 길에 만나는 경기도지사 관사는 하얀 건물 그대로 시민 공간인 도담소, 근대 문화유산이다. 화서문 지나 비둘기도 놀러 나온 장안문 공원에 눈향나무가 바짝

  • 김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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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홀로 사는 사회

봄의 햇살이 눈을 간질이는 조용한 오후다. 모처럼 마음이 한가하다. 같이 사는 아들 식구가 호주에 여행 간 터라 나홀로 집에 남아서다. 책장에 꽂힌 표지가 누렇게 바랜 책에 눈길이 갔다. 오래 전에 읽은 법정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이라는 산문집이다. 집사람이 세상 뜬 후 홀로 살면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겪어온 나로서 홀로 사는 게 뭐 그리 즐겁다는 건지

  • 박종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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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효성스러운 어여쁜 공주님과 선물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섬기는 마음이나 태도를 효성(孝誠)이라 한다. 유의어로는 효심(孝心)이며, 부모님을 섬기고 공경하는 마음을 말하기도 한다.공주는 집안에서 귀하게 자라거나, 외모가 예쁜 여자를 비유적으로 말한다. 기본 의미는 정실 왕비가 낳은 임금의 딸이다. 또 여자아이를 귀엽게 이르는 말로서, “우리 예쁜 공주, 부모님 말씀 잘 들었는가?” 쓰기도 한

  • 윤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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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자배기가 있는 풍경

수돗가의 찰방거리는 물소리. 생명의 구원을 알리는 이른 아침의 작은 신호가 울린다. 담장을 둘러싼 짙푸른 잎새들은 샛눈을 뜨고 지그시 아래를 내려다본다. 저것은 신의 한 수. 고요한 그늘에 다리 없는 오작교를 세우는 일이다. 꽃과 나무들은 모두 깨어나 경건한 목례를 건넨다. 새날의 서사는 그렇게 시작된다.눈을 뜨는 새벽이면 그는 먼저 정원에 나가 한 바퀴

  • 김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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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시어머님 기일

인생을 즐길 줄 안다면 청년이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면 노인이다. 우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면 청년이지만 과거의 전통과 방법만 의지하면 참으로 고목의 노인이다. 자연 속의 푸른 잎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고 예쁜 꽃도 언젠가는 떨어진다. 세상도 인간의 생명도 영원한 것이 없다. 오늘은 시어머님 기일이다. 해마다 기일 추도식에 될 수 있는 한 참석한다.

  • 김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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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비누의 변신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빨래터에 갔다. 개울에는 빨래하는 아낙네들이 보이고 자그마한 바위 사이에는 빨래 삶는 솥이 걸려 있었다. 어머니가 옷을 세탁하실 때는 비누 대신 볏짚 태운 잿물을 사용하셨다. 이불호청은 양잿물에 삶아 빨래방망이로 두드려 가며 뽀얗게 빨아 바위에 널어 놓으셨다. 나는 어머니 곁에서 손수건을 물에 적셔 빨래하는 흉내를 내다가, 심심해지

  • 임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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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잃어버린 펭귄과 당닭들

내가 사랑하던 펭귄과 당닭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사라져버렸다.아파트를 옮겨 이사를 하다가, 오래 내 손때가 묻은 펭귄 클래식(Penguin Classic)과 밴텀 북(Bantam book) 등 3백여 권의 문고판 영문서적이 몽땅 사라져버린 것이다. 펭귄 클래식 책은 까만 날개와 하얀 배, 그리고 샛노란 발이 앙증맞은 팽귄을 상징으로 삼고 있다. 밴텀 북은

  • 한영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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