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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바람이 분다

플라타너스 나뭇가지가 떨어뜨리는 가을의 잎새들이 툭툭 여기 하나 저기 하나 보도블록 위에 슬픔처럼 내려앉는다. 어른 손 바닥 크기보다 큰 누렇게 마른 잎을 마주하는데 바스스 누군가의 발끝에 밟히는 조락의 슬픔을 들을 수 있었다. 그토록 작열하던 2024년의 여름이 비로소 고개를 숙였다는 증거이다. 급격히 계절의 틈을 비집고 들어선 변혁의 웅비를 꿈꾸는 개척

  • 지연희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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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시우는 귀엽고 신통해

시우는 만 네 살 한국 나이로 다섯 살인 남자아이예요. 직장 맘인 엄마 대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돌봐줘요.“싫어! 오늘 유치원 안 갈 거야.”가끔 유치원에 도착해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도 해요.“어휴, 저 떼쟁이!”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합니다.어느 날부터 시우가 말끝에 꼭 ‘요’자를 붙여요.“할아버지 공원 가자요.”“할머니 나

  • 홍영숙(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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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꽃신

초인종 소리가 길고 짧게 들립니다. 소꿉놀이에 한창 떠들썩 했던 민이와 수는 후닥닥 일어납니다. 앞치마를 두르고 엄마 노릇을 하던 민이와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고 아빠 흉내를 내며 놀던 수는 장난감을 버리고 출입문으로 달려갑니다.“누구세요?”“엄마다!”“야, 신난다.”둘이는 서로 달라붙어 먼저 문을 열려고 한동안 승강이를 벌입니다. 문이 열렸습니다.“엄마,

  • 임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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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아니타 무르자니

4∼5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자신보다도 덩치가 큰 아들을 업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속리산을 오르는 장년 남성을 한 공중파 방송이 방영하고 있었다.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감이, 이들을 따라 가며 촬영하는 기사의 거친 숨소리와 중첩되며 긴장감을 증폭시켜갔다. 지나치는 등산객들이 놀라운 장면에 아연해하며 길을 터주었다. 업혀 있는 아들은 첫눈에 보아

  • 정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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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문장대와 전장연

4∼5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자신보다도 덩치가 큰 아들을 업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속리산을 오르는 장년 남성을 한 공중파 방송이 방영하고 있었다.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감이, 이들을 따라 가며 촬영하는 기사의 거친 숨소리와 중첩되며 긴장감을 증폭시켜갔다. 지나치는 등산객들이 놀라운 장면에 아연해하며 길을 터주었다. 업혀 있는 아들은 첫눈에 보아

  • 이종원(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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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택배 유감

매년 새 학기 초가 되면 학교에는 교사들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 떠나기도 하고 신입 교사가 부임하는 등의 작은 이동이 있곤 한다.짧지 않은 기간 동안 서로 마음을 열고 친밀하게 지냈던 동료가 자신이 나고 자랐던 고향 근처의 학교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급작스럽게 이별을 하게 되어 기억에 남을 만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무엇으로 할지 이런저런 고민

  • 박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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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어떤 손님

코로나19가 풀렸던 4월 중순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여느 때처럼 마을 한 바퀴를 돌고자 집을 나서는데 나이 쉰 살이 될까 말까 한 여인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균형 잡힌 갸름한 얼굴 눈가에는 우수가 맺혀 있었다. 어디서 오셨냐고 물으니 경계의 눈초리에 아무 말이 없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관광 오셨느냐며 다시 물어보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 김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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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번데기 날개를 달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고려말의 성리학자 야은 길재의 시조 한 구절이다. 옛사람들은 산천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아니다. 땅도 강도 바다까지도 변하는 시대에 우리는 산다. 그래서인가, 어느 시인은‘산천 의구란 말 옛시인의 허사로고’라고 읊기도 했다.“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 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 최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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