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5년 12월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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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이라는 범주에서 사춘기 학생들은 특별하다. 그 또래 아이들은 비슷한 행동 패턴과 감정 변화를 표출한다. 그것은 유행이나 시류와는 상관없다. 전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인체의 대변혁기를 맞은 그들에게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점검할 여유와 의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전쟁이 나거나, 대형 트럭과 충돌해도 자신은 불사신처럼 살아남을 거라 믿는다. 야만의 시기, 인간의 성장 단계에는 그런 때가 있고 나름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들만한 악마는 세상에 없다고 저주하곤 했다. 타인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면서 패를 지어 정당화시키려는 야비함. 그것은 인간이 문명화되기 이전부터 생긴 습성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런 야만인들 속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내가 원했던 청중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갈천중학교로 부임한 이후 첫 수업은 2학년 4반이었다. 2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발령받은 학교에서의 첫 수업은 늘 떨렸다. 그런 내 마음과는 달리 처음 나를 보는 아이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스물다섯 명이 앉아 있는 교실은 의자 뒤에 걸린 점퍼들과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로 어수선했다. 영어라는 과목을 좋아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엄마라는 말과 마미라는 말을 동시에 배운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영어라면 진절머리를 냈다.
“안녕, 너희들과 영어를 공부하게 된 박수영이다.”
간결한 소개 끝에 바로 진도를 나갈 계획이었다.
“쌤, 술 먹었어요?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요?”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덕분에 교실은 왁자지껄 활기를 찾았지만 졸지에 교사로서의 내 무게감은 바닥을 쳤다. 처음 교탁에 서서 아이들을 훑어볼 때 유독 눈에 띈 남학생이었다. 아이돌이라 해도 손색없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나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짚어낸 것이다.
“야, 최기영. 또 시작이야?”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큰 소리로 핀 잔을 주었다. 수민이었다. 수민은 키가 반에서 제일 작았고, 턱이 유난히 발달한 얼굴에 여드름이 열꽃처럼 퍼져 있었다. 좁은 어깨에 비해 얼굴이 유난히 커서 언제든 머리가 무게에 눌려 몸통 속으로 침몰할 것만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민은 전체 석차 5위 안에 드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술을 먹은 건 아니고, 얼굴에 홍조가 있어서 그래. 너희들 만난다고 긴장했더니 더 빨개졌나 보다.”
가끔은 예외를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늘 반복되는 일이지만 결코 익숙해지거나 무신경해지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지만 마음은 몹시 아렸다. 오늘은 신경 써서 화장도 했는데 출근하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갱년기라 그런지 요즘은 부쩍 빈도가 잦아지고 붉은 기도 더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두 볼이 유난히 빨갰다고 했다. 카인의 표식처럼 홍조는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었다.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남자아이는 이내 책상 위로 엎드렸다. 기영이었다. 알고 보니 기영에게도 문제적 재능은 있었다. 주먹질 좀 한다는 학생이면 반드시 시비를 걸어 꺾어 놓고 자기 패거리를 앞세워 전교생 상대로 돈을 갈취했다. 들리는 얘기로는 한 달에 걷히는 돈이 내 월급보다 많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은 그런 기영이 수민만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그 이유를 수학교사인 선영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양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1학년 때도 둘이 같은 반이었거든요. 기영이 어느 날 수민에게 못생긴 뚱보년이라고 놀린 거예요. 그러자 다음 날 수민 아버지가 득달같이 찾아와서는 난리를 쳤어요. 학생 인권이 어쩌니, 학생 관리가 소홀하다느니. 교장이 보통 애먹은 게 아니에요. 학폭위를 열면 간단한 일이었는데, 그게 목적이 아니었던 거죠.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요즘 그런 학부모 있잖아요. 수민 아버지는 이 도시에서 유명한 주류회사 회장이에요. 국무총리상도 받고. 운동장 옆에 새로 지은 실내체육관, 그거 절반은 수민 아버지 돈으로 지은 거예요. 딸 하나 국제고 보내겠다고 그 정성인 거 모르는 사람 없어요. 반면에 기영인, 음, 뭐랄까?”
선영은 기영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애매하다는 투였다.
“집안 형편은 잘 모르겠는데, 암튼 부모님은 서울에 살고 기영이만 할머니와 지내요. 성적도 엉망이고 오늘만 살다 죽을 것처럼 무서움이 없는 애라는 것 정도. 암튼 그런 애는 무시하는 게 상책이에요.”
나는 전교생에게 술꾼으로 통했다. 한 번은 교사회식 자리에서 선영이 내 홍조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술기운과 동정 어린 공감에 마음이 말랑해진 나는 길고 지난한 홍조의 역사를 늘어놓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제 별명은 불타는 양파가 되었답니다. 제 얼굴형이 양파 같대요. 양파는 원래 하얀데.”
그날 이후 나는 또다시 불타는 양파가 되었다. 학생들은 굳이 줄여 불파라고 불렀다.
*
부모님은 7년 전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나에게 크나큰 상실감과 함께 감당하기 버거운 대출금도 남겨 주었다. 그들은 귀촌하면서 새로운 작물을 키워보겠다며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는 말만 믿고 3억이라는 돈을 대출받았다. 두 사람이 살던 18평 아파트를 팔아선 작은 농가와 땅을 샀다. 알고 보니 그 땅도 불법 쪼개기로 토지를 판매하는 업자에게 속아서 산 것이었다. 다시 되팔 방법이 없었다. 말년을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살고 싶다는 부모님의 계획은 거대한 사기로 끝이 났고 그 뒷감당은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도 벅찼던 내 몫이 되었다.
한 달에 내야 하는 대출이자만 70만 원이 넘었다. 나는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알뜰히 모아 마련한 집을 팔고 공무원 임대 아파트로 이사했다. 대출은 갚았지만 교직 생활이 끝나면 집마저 사라질 거라는 지독한 공포가 뒤따랐다. 삶은 살아갈수록 깊어지는 동굴과 같았다. 또 어떤 것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항우울제가 홍조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먹구름을 뚫고 나온 한 줄기 빛처럼 들렸지만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정신과는 내 유일한 안식처였다. 담당 의사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쉰이 가까운 나이에 혼자 살고 있으며 홍조로 몹시 힘들어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까지,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 내 삶의 모든 찌꺼기들을 남김없이 쏟아냈다. 의사는 내 불안의 근원이 홍조라고 했다. 삶의 과정에서 그 불안이 어떻게 다져지고 강화되었는지 공감해 주었다. 그는 홍조는 불안의 신체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정신과적으로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홍조 관련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논문도 챙겨 본다면서 가끔 새로운 소식들을 알려 주었다. 홍조 치료 연고가 만들어져 FDA의 승인을 받아 미국 내에서는 처방이 되고 있으나 국내 수입은 아직 미진하다는 사실도, 이미 레이저 기계가 개발되었지만 국내 도입 시기는 미정이라는 사실도 그가 알려 준 것이었다.
직장인들을 위해 병원은 월요일마다 8시까지 진료했다. 나는 매달 첫 주 월요일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어제도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는 소금에 절여진 열무마냥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의사는 잔뜩 흥분한 표정이었다. 그는 목소리까지 살짝 떨며 드디어 국내에 레이저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근데 레이저 가격도 비싸고 유지 비용도 많이 들어서 서울의 유명 피부과 몇 곳에서만 한답니다.”
의사의 말이 끝나자 나는 무릎 위에 모았던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가 풀었다. 활짝 열리던 시선은 곧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의사는 눈치를 못 챘는지 오래 기다린 순간 아니냐며 상담부터 받아보라고 거듭 말했다.
*
나는 가정법을 좋아한다. 현재 사실의 반대를 꿈꾸는 것도, 과거를 후회할 때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 법칙은 열려라 참깨처럼 언제든 변신이 가능한 주문 같았다. 가정법을 설명한 후 아이들에게 문장 하나씩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굳이 발표를 시킬 마음은 없었다.
“만약 쌤이 불파가 아니었음 진짜 괜찮았을 텐데. 몸매 되지 머리 좋지….”
무례하다 못해 도발적인 그 말에 나는 너무 당황했다. 서서히 얼굴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온갖 증상들이 몰려올 것을 생각하니 기분마저 참담했다. 빨갛게 달아오르는 볼, 화끈거림, 열기에 눈까지 뻑뻑해질 즈음이면 정신마저 혼미했다. 수업 전에 명상을 하거나 안정제를 먹기도 하지만 돌발 상황이 닥치면 증상은 한결같았다. 나는 붉어진 얼굴을 내색하지 않으려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기영의 말을 흘려넘겼다.
“혹시 수민이 발표해 볼래?”
기영의 얼굴이 바짝 구겨졌다. 나는 유치한 감정인 줄 알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수민이 책상을 밀며 일어섰다. 텅 빈 정수리가 눈앞에 닿았다.
“If I were a tree, I could live only with water and sunlight.”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예시로서도 나무랄 데 없었다. 수민이 자리에 앉는 사이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태양을 향해 푸른 가지를 쭉 뻗은 키 큰 전나무. 나직이 스미는 바람 소리 속, 긴 가지에 산새를 받아 올린 채 고요한 숲속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 흔들림 없는 삶이 부러웠다. 의사는 실상 사람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하다고 했다. 그건 타인의 시선에 무너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의 말이었다. 어떤 동료는 홍조에 대한 내 집착을 기행이라 치부했지만 그 역시 나를 지칭할 때면 꼭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선생 있잖아. 얼굴이 늘 빨간.”
한 번 올라온 홍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수업하는 내내 기영의 말이 하릴없이 귓가에 맴돌았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마주친 아이들은 어디론가 뛰어가는 와중에도 내 얼굴을 쓱 훑고 지나갔다. 불파다. 악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아이들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노려보았다.
*
피부과 병원은 최고급 호텔 로비 같았다. 은은한 방향제 향이 감도는 대기실은 전체적으로 모던하고 따뜻한 인상을 풍겼다. 곳곳에 놓인 하얀 화분에 심어져 있는 열대식물은 잎이 천장까지 닿았다. 커다란 가습기에서는 연신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공기 청정기 헤드가 천천히 돌고 있었다. 데스크에는 블랙 유니폼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직원들이 접수를 받느라 부산스러웠다. 대기 줄이 길었다. 넓은 공간이 사람들로 바글댔다. 그 분주함으로 병원에 대한 내 신뢰도는 급상승했다.
잠시 기다리니 실장이란 사람이 나를 상담실로 안내했다. 실장은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거뭇한 눈 밑엔 하얀 비립종이 가득했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돋보기를 들더니 내 얼굴을 여기저기 뜯어보았다. 남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는 점에서 실장과 나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시겠지만 지금 수영 님의 홍조는 선천적이라 치료도 오래 받으셔야 할 것 같고. 음, 아마 약물 복용도 병행해야 되실 거예요. 보통의 홍조는 레이저 5회만으로도 완치가 가능하지만 수영 님은 장담하기가 어렵네요.”
그녀의 목소리 톤은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피부과 상담 실장과 판박이였다. 과한 공감과 설득의 조합. 나는 이미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세안을 한 상태였다. 붉은기가 선명했고 건조함으로 얼굴이 따가웠다.
“어쨌든 치료는 가능한 거죠?”
“저희가 가지고 있는 레이저는 이미 알고 오셨겠지만 홍조 치료에 최적화된 기계예요. 치료만 꾸준히 받으신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지실 거예요. 대신 횟수를 좀 많이 늘려야겠죠.”
꾸준한 치료와 횟수가 많아야 한다는 말은 돈이 많이 든다는 뜻이었다. 교사는 은퇴 후 죽을 때까지 연금이 나오고, 학생들에게는 어떤 대우를 받든 사회적 인식은 나름 괜찮은 직업이었다. 그러나 실장이 말한 치료비는 내가 감당할 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아파트 관리비, 연금, 카드 값까지 나가고 나면 통장은 돈이 잠시 머물다 가는 정거장이라는 말이 남의 것이 아니었다. 다음 진료 예약은 하지 않았다.
*
월요일마다 첫 시간은 2학년 4반 수업이었다. 기영은 평소처럼 책상에 말미잘처럼 달라붙어 있었고, 수민은 소나기처럼 날리는 내 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이 앉아 수업을 들었다. 딴 세계에 빠져 있는 절반의 학생은 무시하고, 나는 수민의 눈길만 잡았다. 가끔 날리는 농담에도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그 분위기에 익숙해진 나도, 자는 아이를 깨우거나 멍하니 있는 시선을 모으려는 따위의 노력은 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 복도로 나서자 수민이 따라왔다. 그녀의 손에는 영어 문제집이 들려 있었다.
“선생님, 이 문제를 못 풀겠어요. 해석을 봐도 이해가 안 돼요.”
“음, 이거 혼합 가정문이네. 난이도가 있는 문제다.”
간만에 나는 신이 났다. 질문은 학생과 교사의 상호 성장이다, 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질문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내 뺨을 한 번 만져볼 수 있을지, 어쩌다 그런 홍조가 생겼는지 같은 개인적인 호기심이 훨씬 많았다. 수민은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몇 안 되는 학생 중 하나였다. 대부분 난이도가 높은 문제들이었다. 그녀는 수학과 과학에는 뛰어난 반면, 영어 성적은 약간 불안했다. 1학년 2학기 성적에 영어만 B가 나왔다. 그녀가 목표한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선 전 과목 A가 필요했다. 더구나 그 학교의 특성상 영어 실력은 기본이었다. 수민은 언제나 영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럼에도 수학이나 과학 공식은 빠르게 이해하고 암기하는 아이가, 중학 영어의 기본인 to부정사 용법은 가끔 헷갈려 했다. 흔히 뇌는 언어 영역과 과학 영역으로 나뉜다고 한다. 나는 수민을 보면 그 말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설명은 참 쉬워요. 대치동에 있었다는 지금 과외 쌤도 선생님만큼 잘 가르치진 못해요. 돈은 엄청 받으면서.”
과외라… 현직 교사의 과외는 불법이다. 학원에서의 급여를 생각하면, 왜 능력 있는 교사들이 사직서를 내고 학원가로 뛰어드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교사직을 유지하면서 암암리에 개인 과외를 하는 교사들이 꽤 있다는 사실은 내부에서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전에 있었던 학교에서도 다른 도시에서 주말 과외를 하며 교사라는 신분을 숨기고 학원에서 특강까지 뛰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아파트 잔금 치르고 아이들 학원비라도 대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가르치는 걸 잘하는 사람이 그 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민이 교실로 들어간 후에도 나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과외는 주로 토요일에 했다. 수민은 주말에도 늘 시간이 빠듯했다.
수민 엄마를 처음 본 날은, 시 외곽 국립공원 초입에 있는 작고 아늑한 카페에서였다. 수민 엄마는 수민과 여러모로 닮았다. 그녀는 키가 작고 각진 얼굴에, 하체보다 상체가 더 투실해 보였다. 뱃살이 겹쳐 숨 쉬기가 힘든지 말하는 중 한 번씩 긴 한숨을 쉬었다. 수민 엄마는 반지와 귀걸이, 목걸이, 외투 앞섶에 단 브로치까지 온통 다이아몬드로 치장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불빛을 받을 때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린 전구처럼 반짝거렸다. 추운 저녁, 산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카페는 산 안쪽에 있어 큰 도로에선 보이지도 않았다. 이 장소를 물색한 사람은 물론 수민 엄마였다. 처음부터 협상은 없었다. 비용, 시간, 장소는 그쪽에서 정했다. 나도 불만은 없었다. 과외비는 생각보다 많았고, 시간과 장소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민 엄마는 내 얼굴을 슬쩍슬쩍 곁눈질하며 나를 믿는다고 했다. 겨울로 접어든 추위와 건조함 때문에 보습 로션을 잔뜩 발라도 홍조는 더욱 선명했고, 턱 주위에는 하얀 각질이 때처럼 밀렸다. 수민 엄마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으레 할 법한 태도로 그런 내 얼굴을 모른 척했다.
수민과의 수업은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수학은 명징한 증명과정을 거치면 정확한 답이 도출되는데, 영어는 법칙이 존재함에도 예외가 더 많다며 불평했다.
“시험 출제하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바로 그 예외야.”
수민이 어깨를 들썩였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수학은 정직한데, 영어는 얼렁뚱땅 제멋대로인 것 같아요.”
“말이라는 게 원래 오랜 기간 관습적으로 만들어진 거니까. 인간을 닮아 변덕스러운 거겠지.”
수민과는 일주일에 하루, 두 시간씩 공부했다. 수민 엄마는 첫날부터 내신 성적에만 신경 써 달라고 했다. 그녀의 노골적인 부탁에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인간의 역사와 가치관, 속성까지도 고스란히 언어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아이들이 얼마나 흥미 있어 할까 생각하면서도, 그런 교육을 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쉬웠다. 영어에 대한 이 사회의 트라우마는 어쩌면 나 같은 교사들이 좀 더 노력하지 못한 탓은 아닐까, 가끔 자책하기도 했다.
“엄마는 방학 때마다 저와 해외 언어 연수를 가요. 그런데도 실력이 이 모양인 게 신기하죠?”
수민이 또 어깨를 들썩였다.
“문법은 약해도 발음은 괜찮잖아.”
수민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대학은 미국으로 갈 거예요. 엄마는 절대 찬성하지 않겠지만, 제가 혼자 사는 건 용납할 수 없대요.”
굳은 얼굴로 수민은 카페 창에 내려앉은 어둠을 쏘아보았다.
“아무래도 네가 외동이니까.”
말해 놓고 나니 나 역시 외동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이 때 나는 늘 미래와 돈을 한 묶음으로 생각했다.
“엄마는 원하는 건 반드시 하는 사람이에요.”
감정이 배제된 수민의 표정이 낯설었다.
*
수업이 끝나고 학교 식당으로 가는 중이었다. 카톡. 카페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는 동영상이었다. 관계사를 설명하는 내 목소리가 또렷했다.
-학교 선생이 과외하는 거 불법 아닌가?
나는 휘청이는 몸을 황급히 복도 난간에 기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요란스럽게 급식실로 뛰어가고 있었다. 원칙적으로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핸드폰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다.
-500만 원만 보내.
머릿속이 하얗다. 영상은 흐릿했지만 수업하는 장면임은 분명했다. 줌을 당기자 내 얼굴이 화면 한가운데 나타났다. 뒤돌아 앉은 학생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핸드폰을 누르는 손이 떨려 자꾸 오타가 났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 끝에 겨우 문자 하나를 보냈다.
-누구야?
-화면은 잘 받네. ㅋㅋ∼ 다음 주 월요일에 돈 보내. 계좌는 그날 알려줄게. 딴 생각은 말고.
오늘은 수요일, 다음 주 월요일이면 기말고사가 시작하는 날이다. 기영의 얼굴이 맨 먼저 떠올랐다. 지나가는 학생을 밀치며 2학년 4반 교실로 뛰어갔다. 교실은 텅 비어 있었다.
과외를 시작한 지 세 달째였다. 처음 수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수민 엄마에게 세 달치 과외비를 한꺼번에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흔쾌히 응했고, 나는 그 돈을 고스란히 피부과 치료비로 지불했다.
금요일마다 수업이 끝나는 대로 서울행 KTX를 탔다. 지금까지 3주에 한 번씩 4회를 받았다. 금요일에 치료를 받고 월요일에 출근하면 붉은 얼굴이 눈 밑까지 부어올랐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 번 더 돌아봤지만, 대놓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매사에 호기심이 많은 선영만이 끈질기게 물어왔고, 나는 마지못해 사실을 털어놓았다. 선영은 뭐든 돈이 들어가면 달라지는 법이라고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어쩐지. 홍조가 없으니 얼굴이 확 달라 보여요. 나이에 비해 주름도 없고. 완전 딴 사람 같네.”
대놓고 티를 내진 않았지만, 그녀의 말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동의한다는 듯 사회 담당 교사가 지나가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실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건 나였다. 치료를 시작한 뒤로 거울을 부쩍 자주 들여다보았다. 효과는 처음부터 놀라웠다. 레이저 횟수가 늘어날수록 홍조가 옅어졌다. 붉음이 사라지자 얼굴이 한결 산뜻해 보였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은 곧 자존감으로 이어졌다. 아직 볼 한가운데 붉은기가 남아 있지만, 실장은 5회만 더 시술받으면 깨끗이 없어질 거라 장담했다.
고지가 눈앞에 보일 때 느끼는 긴장과 불안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돈이 절실해졌다. 나는 수민의 수업에 더욱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동영상을 받은 사실을 수민과 그녀의 엄마에게 알려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대신 기영을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에 무심했고, 수업 시간 대부분은 책상에 널브러져 잤다.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수민은 예민하고 불안해했다. 협박 문자를 받은 후부터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벌써 목요일인데, 수민은 본문조차 외우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중학 영어 시험은 본문만 외워도 80점은 나온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그녀는 수학 문제를 푸느라 시간이 없다고 변명만 늘어놓았다. 왜 평소보다 집중하지 못하냐고 집요하게 물어보는 내게, 그녀는 몇 번 입을 떼려다 말았다. 혹시 집에 일이 생겼는지, 친구와 문제가 있느냐고도 물어봤지만, 오히려 그럴 때마다 내 얼굴만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과외를 계속하기 위해선 이번 시험이 중요했다. 수민에게 보충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수민은 토요일 오후에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과외가 끝나고 수민은 기다리던 차를 타고 집에 갔다.
나는 오랫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과외가 끝나면 한 대씩 피워야 머리가 비워지는 것 같았다. 길게 한 모금 빨아들인 후 어둠을 향해 연기를 내뿜는데,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잊지 않았겠지. 계좌번호 보내고 한 시간이 지나도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동영상은 바로 교육청과 갈천중 홈페이지, 그리고 당신 교장한테 보내질 거야.
-시간이 더 필요해.
-간절히 노력하다 보면 방법은 생기게 마련이야.
의미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말이었다. 노력한다고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은 깨진 지 오래였다. 오히려 간절히 원할수록 나쁜 일이 생길 거라는 예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차 시동을 켜고 내비게이션에 기영의 주소를 입력했다. 기영은 새로 개발된 아파트 단지 옆에 있는 슬럼가에서 살고 있었다. 고층 아파트들이 6차선 도로를 따라 끝도 없이 이어졌다. 밤 11시가 되었는데도 주위는 대낮처럼 밝았다. 누군가는 저 안에서 패브릭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것이고, 아기를 재우고 남편과 야식을 먹는 여자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고가다리를 건너니 분위기가 완연히 달라졌다. 단층주택들이 거북손처럼 붙어 있고, 오래된 건물 1층에 ‘임대’라고 써진 종이들이 바람에 달랑거렸다. 시는 낙후 지역의 개발을 약속했지만, 예산 부족을 핑계로 사업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집과 상가를 마구 사들인 투기꾼들은 건물을 텅 빈 채 내버려 두었고, 시간은 이곳을 서서히 유령도시로 바꿔 놓았다.
화려한 불빛에 주눅이 들었던 마음이, 황량한 동네를 지나는 동안 왠지 서글펐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다. 아파트가 바로 그런 곳이고, 그런 아파트에 사는 것이 계층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낡은 주택에 불이 켜져 있고, 도로를 따라 편의점이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네비게이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주위는 어둡고 고요했다. 창이 깨지고, 시멘트 벽에 욕설이 쓰여진 단층집은 영화 속 장면처럼 괴괴했다. 차로 천천히 주변을 돌았다. LED 간판이 눈을 찌르듯 번쩍이는 CU 편의점을 지나니, 검은 기와집 철대문 앞에 잔뜩 쌓인 쓰레기 사이에서 바싹 마른 고양이가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기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졸음이 잔뜩 밴 목소리에는 짜증과 놀라움이 묻어났다.
“영어 선생님? 불파?”
“그래, 지금 너희 집 앞이야. 잠깐 나와.”
“지금 어디라고요?”
“물어볼 게 있어. 편의점 앞으로 나와. 5분 기다려서 안 나오면 내가 갈 거야.”
기영은 몹시 당황한 것 같았다. 다채로운 욕설이 전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차를 공터에 세워두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 앞에는 파란 플라스틱 원형 탁자와 하얀 등받이 플라스틱 의자가 몇 개 있었다. 탁자 위에는 소시지 포장지와 찌그러진 맥주캔이 널려 있었다. 나는 따뜻한 캔커피를 샀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멍했다. 카페인이 필요했다. 편의점에서 나오자 기영이 와 있었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려고 왔어요? 사는 꼬라지 보면서 주제 파악하라고?”
기영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씩씩거렸다. 그의 입 사이로 바람소리가 스며들었다. 11월의 밤바람은 차가웠다. 의식하지 못했던 차가움이 따뜻한 캔커피를 손에 쥐자 한꺼번에 몰려왔다. 기영의 눈초리가 칼날 같았다.
“너, 나한테 문자 보냈니?”
“무슨 문자요?”
화가 난 목소리였지만, 뜬금없다는 듯 기영은 이마를 찡그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협박문자 보낸 게 너 아니야?”
“협박 문자요? 내가 왜요?”
나는 혼란스러웠다.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는 눈을 보면 알 수 있다지만, 나는 그의 눈에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어라, 쌤 협박 받아요? 그리고 그 협박범이 나고?”
그는 한동안 나를 노려보더니 갑자기 옆에 있는 의자를 힘껏 발로 찼다. 의자가 나가떨어지면서 플라스틱이 시멘트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씨발, 내가 왜 불파한테 협박을 해요? 이게 말이 돼? 지금 몇 시인지 나 알아요?”
그의 말이 진심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시선을 허공에 두었다. 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더 면밀히 알아보지 않고 대책 없이 기영을 찾아온 게 후회되었다. 커피는 여전히 뜨거웠다.
“일단 앉자. 커피도 마시고. 생각 좀 해야겠어.”
갑자기 맥이 빠진 나는 왠지 솔직해지고 싶었다. 누구에게든 이 상황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물론 그 대상이 열다섯 살짜리 싸가지는 아니었지만. 응집해 있던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온전히 남아 있는 의자 중 하나에 털썩 주저앉았다. 두 손을 허리에 짚고 나를 쏘아보던 기영도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가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기영은 말이 없었다. 대신 나를 비스듬히 흘겨보면서 실실 웃었다.
“그러니까 누가 쌤을 협박하고 있다는 거네? 쌤은 그 협박범이 나일 거라 생각한 거고. 왜 협박을 받는데요? 뭐 잘못했어요?”
나는 두 손으로 감싸쥐고 있던 캔에 시선을 두었다. 커피는 비어 가는 공간만큼 금세 미지근해지고 있었다.
“맞아. 내가 협박을 받고 있어. 너를 의심했고.”
기영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더니 이상한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우, 역시 대단해 불파. 무슨 일로 협박을 받으실까?”
“네가 아니면 됐어. 이런 일에 엮여서 좋을 것 없다는 거 알지? 없던 일로 하자. 만약 이상한 소문이 들리면 그땐 내가 너를 정말 협박할지 몰라. 네 여자친구였던 애가 작년에 전학을 갔더라. 지속적인 폭행과 성매매. 비밀은 위험한 거야.”
“이 미친, 씨발. 누가 그래? 증거 있어?”
“네가 아니면 된 거야. 간다.”
“야, 이 씨발년아, 네가 그러고도 선생이야.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이 개 좆같은 년이 얻다 대고 협박이야.”
기영의 욕설은 차에 타서 시동을 걸 때까지도 따라왔다. 헤드라이트 불빛 속 그는 의자와 탁자를 발길질하며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안심이 되었다. 기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누구일까. 안도감도 잠시, 머리는 다시 안개 속을 헤매듯 어지러웠다. 계기판 시계는 12시 반을 가리켰다. 너무 피곤했다. 고가를 건너자 황량했던 동네는 사라지고 불빛이 가득했다. 아파트들이 폭삭 무너져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목요일 밤 기영을 보고 온 후 금요일에는 학교에서 그를 볼 수 없었다. 수업이 없음에도 쉬는 시간마다 4반 교실을 다녀왔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하교 후, 서울로 올라가 마지막 남은 레이저 치료를 받았다. 실장은 다음 예약을 잡자고 은근히 압박했지만, 나는 조만간 연락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병원을 나왔다. 발길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수민에게 보강을 해주기로 한 날이었다. 첫 수업 때만 수민엄마가 직접 운전해 데려왔고 이후에는 줄곧 기사가 딸린 차를 보내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의외로 수민엄마가 수민과 함께 카페로 들어섰다. 9시였지만 밖은 이미 한밤중이었고, 산바람은 여전히 매서웠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애를 맡겨 놓고도 얼굴 뵙는 게 소홀했네요.”
수민엄마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서 다이아몬드 빛이 영롱했다. 특히 왼손 약지에 낀 반지알에 자꾸 눈이 갔다. 앵두씨만 한 다이아몬드였다.
“수민아, 엄마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테이크 아웃으로, 너 먹고 싶은 거 시키고. 선생님은?”
나는 따뜻한 홍차를 주문했다. 수민엄마는 수민에게 음료가 나올 때까지 데스크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유난히 위압적인 수민엄마의 태도에 눌려 나도 모르게 시선이 무릎 위로 갔다.
“안 줘요?”
나는 말뜻을 가늠하지 못한 채 멍하니 수민엄마만 쳐다보았다.
“일부러 순진한 척하는 거예요, 아님 밀당하자는 거예요?”
“무슨 말씀이신지….”
“영어 시험문제, 오늘 준다는 말 아니었어요?”
잔뜩 숨죽인 수민엄마의 목소리가 동굴 속 메아리처럼 울렸다. 수민엄마는 핸드백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한 모금 빨았다. 경악한 카페 직원이 여기는 금연이에요, 라고 소리쳤다. 수민엄마는 한 팔을 흔들며 시선을 나에게 꽂은 채, 어차피 사람도 없는데, 하고 맞받아쳤다.
“하필이면 김 선생이 임신을 하는 바람에, 그냥 3학년까지 쭉 갔으면 좋았는데. 과외비가 후한 이유, 한꺼번에 세 달치 준 거.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요. 시험 때마다 별도로 지급할게요.”
여전히 어리둥절한 나를 보며 수민엄마는 답답하다는 듯 피던 담배를 빼내 반으로 짓이겼다.
“지금 시험지를 유출하라는 말인가요?”
놀라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수민이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불법인 건 아시죠?”
나는 이번엔 수민엄마에게 몸을 바짝 들이대며 목소리를 한껏 내리깔았다.
“합법이면 큰돈을 주겠어요? 우리 수민이 국제고 가야 돼요. 우리 딸이 졸업할 때까지 박 선생이 맡아줘요. 대가는 충분히 할 테니. 교사 일 해서 버는 거야 뻔한데, 피부과 치료비용도 만만찮잖아요. 돌아가신 부모님 때문에 집도 팔아서 은퇴하면 갈 데도 없다면서요. 나이도 있는데, 벌 수 있을 때 열심히 모아야죠. 늙고 돈 없는 것만큼 서러운 거 없어요.”
수민엄마가 내 신상을 소상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숨이 막혔다. 얼굴은 이미 열기로 터질 듯했다. 문득 거울이 보고 싶었다. 실장은 내가 느끼는 열감만큼 붉어지진 않을 거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런지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내 신경은 얼굴에 꽂혀 있었다.
“듣고 있어요? 어째 맹한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언제까지요? 낼모레가 시험인데.”
다그치듯 몰아붙이는 수민엄마의 목소리가 표독스러웠다.
“내일 오전까지 연락드리겠습니다.”
흠, 담배로 목이 메는지 수민엄마는 셀프코너로 물을 마시러 갔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온몸으로 느끼며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시험지 유출은 드물게 있는 일이었다. 크게 뉴스를 타고 전국적으로 보도된 사건도 있지만, 학교 차원에서 무마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민이 음료를 가져와 자리에 앉자, 수민엄마는 자기가 시킨 커피를 들고 조용히 일어섰다.
“잘 생각하세요. 연락드릴게요.”
나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아득했다. 수업하는 내내 집중도 안 되고, 수민의 얼굴을 보기가 거북했다. 수민이 떠난 후에야 시험을 대비한 자료를 준다는 게 생각났다. 그 요약집은 수업 내내 탁자 위에 있었다. 수민이 보지 못했을까? 욕심 많은 아이가 그걸 놓칠 리 없을 텐데. 새삼스러운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카페 문을 열고 나오니 초겨울 산바람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찬바람에 씻겨 오히려 시원했다. 화끈거리는 볼이 가라앉기를 바라며 주차장 한 구석에 뾰족하게 솟아나온 바위에 걸터앉았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았다. 빼곡히 박힌 별들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렸다.
*
커튼이 갈라진 틈새로 햇살 한 줄기가 길게 내려앉았다. 벌써 오전 11시가 넘었다. 목이 타고 속이 쓰렸다. 머그컵에 정수기 물을 받는 동안 문자 알림이 떴다. 불안에 못 이겨 핸드폰을 열었다.
부고장이었다. 김이수 모친상. 김이수면 막내고모 딸이었다. 고모는 신장병으로 수년간 투석을 받다가 얼마 전 겨우 이식을 받았지만 예후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고모는 직장을 얻을 때까지 우리 집에서 살았고, 바쁜 엄마 대신 나를 보살펴 주었다. 고모와 나는 신작이 나올 때마다 영화관에 가고, 겨울이면 하굣길에 떡볶이도 사 먹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구멍 뚫린 풍선마냥 마음이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다행히 장례식장은 서울역에서 멀지 않았다. 대학 부속 장례식장 로비엔 거대한 샹들리에가 걸려 있었다. 병원마다 최대 수익처가 장례식 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2층 4호 특실. 첫날인데도 조문객이 많았다. 홀로 영정 앞에 선 나는 국화꽃 한 송이를 단에 올렸다. 흑백사진 속의 고모는 젊고 아름다웠다. 내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였다. 영정에 두 번 절하고 유족과도 한 번 맞절을 했다. 이수가 다가와 나를 꼭 안았다. 이수는 유난히 흰 얼굴 때문인지 검은 상복이 잘 어울렸다. 화장기 하나 없는 민낯에 긴 머리는 귀 뒤로 단정히 묶고 있었다.
“언니, 와줘서 고마워. 엄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어. 응급실에 오자마자…”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이수에게 고모는 더는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 편히 쉬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죽음은 삶의 끝이자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구원으로 여긴다. 나는 아이처럼 흐느끼는 이수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식당으로 가는 대신 장례식 로비에 있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개를 한껏 젖혀 샹들리에를 올려다보았다. 화살처럼 길게 늘어진 전등에선 은은한 금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이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어 USB를 만지작거리다 기차에서 핸드폰을 꺼두었던 게 생각났다. 오후 4시 45분. 부재중 전화 25통. 문자 32개. 마지막 문자를 보았다.
-지금 어디예요? 간단한 일을 어렵게 푸시네요. 이러면 박 선생도 재미없어.
마지막 문장은 협박에 가까웠다. 동영상을 보낸 사람이 수민엄마일까?
화장실에 다녀오던 이수가 염을 시작하니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땅으로 꺼질 것 같은 몸뚱이를 간신히 일으켜 이수를 따라 나섰다. 유리 벽 너머에선 두 명의 장의사가 시신에게 수의를 입히고 있었다. 노란 빛을 띤 베옷은 화사하니 아름다웠다. 버선코가 하늘로 향한 게 유난히 앙증맞아 보였다. 수의를 입히고 시신을 반듯이 뉘인 후, 장의사 한 명이 문을 열더니 유족들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좁은 줄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던 사람들이 차례로 더 좁은 방으로 들어갔다. 수의만큼이나 말간 고모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신장이식 후 부작용으로 온몸에 털이 자라 고릴라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랜 지병으로 고생한 흔적은 눈밑의 불룩한 주름과 처진 볼, 푸석하고 윤기 없는 단발머리에 희끗희끗 올라온 흰머리 정도였다. 겁먹은 강아지마냥 늘 크게 뜨던 눈은 지금은 잠든 사람처럼 살포시 감겨 있다. 핏기가 사라진 얼굴은 달빛에 씻긴 조약돌마냥 희었다.
고인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는 말에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다. 이수가 맨 먼저 시신을 안고 오열했다. 엄마, 미안해. 그 소리가 아닌가 되어 통곡이 이어졌다. 장의사가 고모의 머리에 엄을 씌우기 직전, 나는 관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뽀얀 볼에 살며시 내 볼을 갖다 댔다. 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 냉기가 나는 좋았다. 나는 나직이 속삭였다. 예쁘다, 고모. 잘 가.
장례식장을 나와 본관에 딸린 출구로 갔다. 본관 로비에는 링거를 꽂고 휠체어에 탄 사람, 가운 주머니에 색색의 펜을 꽂고 차트를 살피며 지나가는 의사들, 서류를 들고 어디론가 바삐 뛰어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 육체와의 공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다.
저녁 7시도 안 되었는데 벌써 사위는 어둑했다.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갔다. 간신히 잡은 기차는 5분 후면 출발이었다. 긴 계단을 뛰듯 내려가 기차에 올라섰다. 흩날리는 눈발에 그새 코트 위에 눈이 쌓였다. 갈천에선 보기 드문 함박눈이었다. 올해 본 첫눈이기도 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기차 안에는 자는 사람이 많았다. 어딘가에서 핸드폰 불빛이 어른거렸다. 희미한 실내등 너머로 얕은 산들이 검게 이어지고, 종이꽃 같은 눈송이들이 창에 달라붙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 있는 USB를 만지작거렸다. 머릿속에선 다가올 미래와 지나간 일들이 춤을 추었다. 차창에 비친 내 눈동자가 시계추 마냥 댕글거렸다.
문자 한 통을 썼다.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연락하지 마세요. 써 놓은 글을 읽고 또 읽다가 보내기 버튼을 누른 후 급히 전원을 꺼버렸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보았다. 창틀 위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불안이 올라올 때는 호흡에 집중하라는 의사의 조언이 떠올랐다. 눈을 감고 아랫배가 홀쭉해질 때까지 숨을 내쉬었다. 깊이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기를 반복했다. 고요 속, 내 숨소리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