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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

책 제목신라문학대상 당선작 발표 2026년 2월 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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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몸을 맡긴다. 저만치 물러났다가 다시 들어오는 밀물을 붙잡고 말을 걸듯 자연의 숨결에 리듬을 탄다. 바다 어귀에서 썰물과 밀물의 풍세(風勢)를 온몸으로 읽어 간다. 덕장에 내걸린 조기는 그렇게 기다린다. 바닷속을 유영하던 나날을 되새기며 스스로 농도를 터득하는 중이다.
작은 포구에 여러 척의 배가 닻을 내리고 머문다. 간조로 드러난 갯벌에는 은빛 볕들이 눈을 부릅뜬 채 수런거린다. 갯둑 따라 물건을 파는 사람과 물건을 사려는 사람, 여행객만이 뜨문뜨문 찾아든다. 경매를 막 끝낸 조기가 금빛 휘장을 두른 비늘 사이로 간기를 머금고, 뼈마디마다 생이 도사린다. 둥글넓적한 고무통에 생물들이 부려지자, 갯내와 뭍바람이 뒤섞인다.
바다를 잊지 못하는 것일까. 조기가 아가미를 벌룽거리고 지느러미를 파닥거린다. 내게도 한때 바닥을 치는 저 몸짓이 있었다. 지느러미를 펼치고 헤엄치던 시절엔 어디든 떠나고, 무엇이든 부딪쳐 보고 싶었다. 넘어지고 터져도 좋으니 더 멀리 더 깊이 나아가면 모든 게 이루어질 줄 알았다. 계절을 수겹이나 넘기는 동안, 나를 지켜 준 건 바깥이 아니라 안쪽의 간이었다.
굴비로 가는 그 시작은 소금 세례다. 바다를 품은 조기는 바다를 품은 소금 위에서 다시 길을 찾는다. 바닷바람에 젖은 손이 은빛 몸에 천일염 한 움큼 뿌린다. 양쪽 아가미를 벌려서 소금을 한 꼬집 넣는다. 비닐 깔개 위에 조기를 한 마리 한 마리 포갠다.
섶간은 손질한 수산물에 천일염을 쳐서 자연 해풍으로 수개월 동안 말리는 전통 염장이다. 절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더하는 일이라며 주인장이 한마디 거든다. 짜면 살이 굳고, 약하면 맛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해진 공식이나 정답이 없다. 손끝으로 짐작하고 바람으로 감각을 조율해야 한단다.
서로 닿을 듯 말 듯 닿지 않는다. 배를 가르지 않아 내장으로 볼록한 그쯤에 노란 끈이 지나간다. 다시 뒤에서 앞으로 비틀어 당긴다. 먼저 자리 잡은 조기의 등과 뒤따라 누운 녀석의 배가 맞닿지 않도록 끈을 두르며 줄줄이 엮는다. 너무 가까우면 상하고, 멀면 의미가 사라지는 걸까. 엮걸이를 마친 풍경이 관계의 섶간처럼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를 둔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디까지가 배려고 어디부터 간섭인지 그 경계가 늘 헷갈린다.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면 저항하고 뭉근하게 지켜보면 어긋나고 만다. 대놓고 말하면 마음을 다치겠고 빗대어 말하면 자칫 비아냥거린다고 느낀다. 조기가 굴비로 건너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 섶간을 다시 생각한다.
아들의 자취방은 질서가 없었다. 아무렇게나 쌓인 책더미, 여기저기서 날아든 고지서, 잡동사니가 뒤섞인 채 어질러진 서랍, 윗도리 아랫도리가 마구 뒤섞인 옷장, 보다 못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내친김에 신발장과 싱크대까지 뒤집었다. 집 안 구석구석을 정돈하는 데는 몇 시간이나 걸렸다.
퇴근한 아들이 방을 휘둘러보았을 시간이 지났다. 말끔하게 정리했으니 고생했다는 말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아들은 늦은 밤까지 공치사는커녕 옳다 그르다는 말이 없다.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 일상의 질서까지 건드린, 지나친 간섭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바쁜 일상이 저지른 뒤죽박죽을 정돈해 주었을 뿐인데…. 아들의 심사가 야속하지만, 그 속을 풀어 주어야 어미다.
이럴 때는 아들이 좋아하는 파김치가 약이다. 알싸한 맛의 청양고춧가루를 넉넉하게 두르고, 곰삭은 갈치를 통째로 갈아 넣어 구수한 맛을 낸다. 가시를 발라 주면 신나 하던 얼굴이 떠올라 조기도 몇 마리 굽고, 장조림까지 골고루 챙겨 택배로 보냈다. 아직 덜 익은 아들이 멀리서 지켜보는 사랑이 가장 사려 깊은 간임을 알아줄까.
덕장으로 가기 전 조기는 소금으로 절인 몸을 씻는다. 한 두름 한 두름씩 엮은 조기를 맑은 물에 헹군 다음 걸대에 건다. 토도독 토도독 물방울이 떨어지고 이제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어떤 건 소금이 깊이 배어 짭짜름하고, 어떤 건 겉도는 간에 물로 씻은 맛이 먼저 느껴질 것 같다. 본래 가진 품성이 드러나면 다 다를 성싶다.
삶도 간 맞추기다. 지나치게 욕심내면 너무 짜서 거리를 두고, 인생 경험이 없으면 싱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단맛 짠맛에 절여 본 사람은 적정한 삶의 농도를 안다. 간이 너무 강하면 물에 잠시 담가 소금기를 빼고, 싱거운 인연은 정으로 시나브로 맛을 들인다. 그렇게 삶도 사람도 맛을 찾으면서 마음의 염도도 엇비슷해진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뎠을까. 덕장에 걸린 굴비가 꾸둑꾸둑 단단하다. 하루아침에 숙성되지 않았을 터. 진눈깨비와 폭설, 한파가 몰아쳐도 자신을 내어주며 하루하루를 다스리며 쌓아 온 결과다. 맛을 들이는 건 한순간의 햇볕이 아닌 날마다 스며드는 바람도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
나도 그런 시간에 앉아 있다. 처음 글을 세상에 내보였을 땐 설렘은 잠시, 금세 눅눅한 날들로 이어졌다.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말에 힘을 주다 보면 풋내가 나고, 욕심을 꾹꾹 눌러 담아 감정에 빠진 말은 비린내가 났다. 지나친 말은 치기가 넘치고 꾸며 낸 말은 읽는 맛이 느끼했다.
해가 뜨면 밝음의 언어를 배우고, 달이 뜨면 달의 고요를 느낀다. 바람이 불면 바람의 언어를 받아쓰고, 비가 오면 마음속에 고이는 촉촉한 감성을 일깨운다. 매일 써 내고 지우고 다시 써 내는 동안, 말과 말의 간격과 말맛에 알맞은 간을 더한다. 글줄 하나, 묶음글 하나하나 생의 뭍바람에 널어 시간을 먹인다. 그러는 동안 내 글도 자연의 섶간이 나릿나릿 스며든다.
누군가의 마음 밥상에 놓일 수 있는 내 글, 삶이 싱거운 이에게 간을 맞춰 주는 소금이면, 쫀득해서 오래오래 입 안에서 씹히면, 그 문향이 지친 하루를 그윽하게 다독이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문향으로 독자에게 섶간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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