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6년 6월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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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스슥 스스슥, 슥 스슥 스스슥, 슥 스슥 스스슥….
아버지는 점선을 잇듯, 야윈 다리를 끌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 어둑한 방을 나서 거실에 놓인 의자에 이르기까지, 그 걸음에는 규칙적인 리듬이 담겨 있다. 마치 몸을 일으키기 전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한 끝에 몸이 외워버린 길처럼 놀라울 만큼 정확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겹게 모아져 마침내 의자에 닿기까지, 몸이 기억하는 걸음. 등은 새우처럼 굽고, 뼈마디마다 하얀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을 터. 그럼에도 아버지의 걸음에는 시간이 차곡차곡 모이고, 고통은 힘겹게 삼켜지며, 삶은 점선의 궤적으로 바닥 위에 남는다.
아버지의 방은 부평 만월산의 여린 아침빛이 희미하게 창문으로 스며들 때쯤 깨어난다. 또 하나의 하루. 밤새 켜 두었던 오래된 육십 와트 전구 빛이 햇빛에 밀려 물러나고, 켜켜이 먼지 쌓인 육십 년 넘은 물건들이 바랜 빛을 머금을 때, 다시 이고 가야 할 하루가 무거운 짐처럼 펼쳐진다. 아버지는 가만히 누운 채 천장을 지그시 바라보며 하루를 잠시 설계한다. 그리곤 바싹 마른 나뭇잎처럼 부스러질 듯한 몸을 천천히 일으킨다. 침대 곁 보조 난간의 차가운 금속의 냉기가 손끝을 타고 아버지의 의식을 깨운다. 오래된 협착증 탓에 전기처럼 밀려오는 허리 통증을 꾹꾹 눌러 담으며, 거친 심호흡으로 일어설 기운을 모은다. 머뭇거리는 의식이 점선처럼 이어지며, 마침내 몸을 일으킨다. 설 수 있다는 건 걸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삶이 아직 자신을 놓지 않았다는 존엄한 훈장이 된다.
방 안을 둘러보면 아버지의 시간이 화석처럼 층층이 쌓여 있다. 손때 묻은 카세트테이프들이 두꺼운 먼지를 쓰고 구석에 놓여 있다. 한때 아버지를 영어의 세계로 이끌던 목소리. 이제 세상이 고요해진 아버지에게 그것은 침묵의 테이프가 되었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더 넓은 세계를 꿈꾸던 젊은 아버지의 열망이 감겨 있다. 낡은 『기적의 영문법』, 손가락이 닿은 자리마다 갈색으로 바랜 그 책은 아메리칸드림을 품었던 시절부터 노년의 느지막한 공부까지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는다. 일기장은 하루의 일과, 복용한 약, 그리고 움직임을 적는 묵묵한 친구다. 그리고 셀 수 없는 약봉지와 병원 검사지가 손주와 자식들이 남긴 편지와 함께 쌓여 있다. 아버지의 방은 그렇게 차마 버리지 못한 기억들로 가득하다. 버린다는 것은 곧 잊는다는 것이고, 잊는다는 것은 그 시간이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1963년 5월, 인천 중구 경동 신신예식장. 낡은 흑백 결혼식 사진 속에서, 아내의 팔짱을 낀 아버지는 드넓은 바다로 나서는 항해사처럼 당당하게 우뚝 서 있다. 뒤이어 첫아들이 태어났을 때, 젊은 부부는 유모차를 밀고 시장과 거리와 동네의 흙길을 누볐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고놈 참 잘생겼다”라고 말할 때마다, 부부는 유모차 바퀴의 박자에 맞춰 덜컹덜컹 경쾌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억척스럽게 일하고 월급을 모아 작은 세 칸의 집을 마련했고, 그 집에서 두 딸이 연이어 태어났다. 인천 동구 송림동 160번지 낡은 한옥에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가득 찼다. 밤마다 빈 카세트테이프를 녹음기에 넣고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재잘거림을 소중하게 담던 시간. 아버지는 품에 파고드는 자식들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하게 웃곤 했다.
그리고 1981년 5월, 마흔두 살이 된 아내는 자신이 심고 가꾼 빨간 장미꽃 옆에 서서 허공을 응시한 채 공허하게 서 있다. 아내의 텅 빈 얼굴에는 짙은 회색빛 고뇌가 번져 있다. 그것이 아내를 찍은 마지막 사진이 되고 말았다. 그 후 홀로 남은 아버지는 어린 삼 남매를 키우며 숱한 풍랑을 건너왔다. 삶은 더 이상 잔잔한 바다가 아니었다. 쉼 없이 몰아치는 폭풍이었다. 빚쟁이들이 밤낮으로 들이닥쳤고, 사춘기 아들은 술 냄새를 풍기며 집 밖으로 겉돌았다. 아내가 있을 때 집 안의 온기를 지피던 부엌의 불도 어느새 꺼져 있었다. 돈을 벌어야 했고, 빚을 갚아야 했고, 아이들 학비를 대야 했다. 삶은 어느새 지독하고 고독한 쳇바퀴가 되어 있었다. 울 시간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저 하루하루 버티겠다는 마음으로, 물이 새는 배를 타고 끝없이 노를 저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아이들의 졸업사진과 결혼사진이 하나둘 벽에 걸렸다. 남은 벽은 어느새 손자와 손녀들의 백일과 돌, 입학과 졸업, 그리고 결혼사진으로 하나씩 채워져 갔다. 거센 파도는 지나갔고, 항해는 끝났으며, 이제 오래된 사진들만이 아버지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다.
만월산의 아침 햇살이 이제 더 많은 빛을 방 안으로 밀어 넣는다. 열자 크기 자개농에 가득한 산과 강, 대나무와 소나무, 거북이와 학, 사슴과 불로초와 봉황의 흐릿한 무늬들이 담담하게 아버지를 바라본다. 아침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청각이 사라진 아버지는, 발에 남은 감각으로 점선을 잇듯, 슥 스슥 스스슥 소리로 하루를 깨운다. 소멸하는 모든 것들은 어쩔 수가 없는 것. 빠져나가는 것들을 붙들 힘이 없다면 놓아주어야 한다. 대신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것들을 모아서 하루를 꿰매고, 그 하루를 또 다른 하루에 덧댄다.
그렇게 이어 붙인 하루가 아버지의 일기장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언젠가 그 일기장을 몰래 펼쳤다가 한 줄을 발견했다.
‘집에서 100보 걷기, 까치발 30번, 식후 자전거 30분, 천천히…. 충분하다.’
그것이 아버지의 하루 전부였다. 나는 그 페이지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지의 방에는 그렇게 엄숙한 생명이 흐른다. 어둡고 희미한 방에 햇빛이 들어오고 다시 나갈 때까지, 낡은 사진 속의 추억으로, 허무한 찬란함의 기억으로, 사별한 아내와 떠나간 자식들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93세의 아버지는 힘을 모아 슥 스슥 스스슥 점선을 만들고 그 점선을 실선으로 바꾸어 가며 하루를 지켜낸다.
그렇게 아버지의 방은 오늘도 시간을 끄는 소리로 가득하다. 슥 스슥 스스슥. 그 소리가 들리는 한, 나는 아직 누군가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