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6년 6월 178호
10
0
15년 전, 막차를 타고 부평 남부역에 내렸을 때, 은빛 개찰대 옆에 낯익은 얼굴이 발끝을 세우고 서 있었다. 잠시 한국에 들른 마흔이 넘은 막내딸의 늦은 귀가가 걱정된 아버지는 여름밤의 무거운 습기를 온몸으로 견디며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다. 계단을 올라온 딸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아버지의 얼굴에는 골목길 파란 대문 앞에서 고등학생 딸을 기다리던 사십대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역 앞에 서서 딸을 맞을 수 없게 되었다. 혼자서는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게 된 아버지. 누군가 온다고 하면 전날부터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신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의 걸음소리를 들은 것은 그날 밤이었다. 슥- 스슥- 스스슥. 점선을 잇듯 발을 끄는 소리. 거실에서 자는 딸의 얼굴을 보러 새벽녘에 찾아와, 혹여 감기라도 걸릴까 선풍기를 끄고는, 다시 먼 길을 되돌아 방으로 향하는 그 아득한 걸음이 밤새 내 귓가에 머물렀다.
22년간 타국에서 부초처럼 살다 돌아온 내게, 언어는 되찾은 선(線)이었다. 점선과 파선이 만나고, 생각과 마음이 만나 글을 이루는 감격을 모국어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닿지 않던 그 긴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크나큰 행운이었다. 낯선 언어 속에서 점선처럼 끊겼던 내 말이, 이제 비로소 온전한 실선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월간문학이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었다. 부족한 글에 귀를 기울여 손을 잡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아버지의 방이 내게 뿌리이며 기둥이듯, 점선을 잇는 아버지의 걸음은 나의 죄책감이자 출발점이었다. 이제 나는 그 방 앞에 선다-끊겼던 점선을 실선으로 이으며,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나만의 언어로 써 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