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5년 6월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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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덤하게 닭 모가지를 비트는 김성갑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이틀 연속 계속되는 강도 높은 살처분 노동에 김성갑의 체력은 서서히 꺼져 가고 있었다. 고작 밥을 먹고 30분 정도 쪽잠만 자며 닭을 몇 마리나 죽였는지 김성갑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어서 집으로 돌아가 마음 놓고 푹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저녁 먹고 합시다.”
현장에 배달되어 온 도시락을 보며 김성갑은 들고 있던 닭을 바닥에 던지고 모여드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성갑의 작업복은 씻기지도 지워지지도 않는 핏자국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원래 옷의 색깔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커다란 공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작업을 하고 있던 작업자들이 모두 한곳에 둥글게 모여 앉자 역겨운 피비린내가 흠씬 김성갑의 코에 들어왔다. 김성갑은 멈칫, 잠깐 동안 숨을 참았다 내뱉었다. 아무리 현장에 오래 있어도 피비린내만큼은 도통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도시락을 하나씩 할당받고 나서 모두 밥을 먹으려고 할 때 여기저기서 아! 하는 단말마의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김성갑 역시 도시락 뚜껑을 뜯었고 이내 다른 이들이 탄성을 터트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닭과 씨름을 한 그들에게 주어진 저녁 식사는 치킨 도시락이었다.
“우리가 잡은 닭으로 만든 거냐!”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얇은 비닐 몇 겹을 덧대어 기둥에 걸쳐 놓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져 버릴 것 같은 공터에는 누군가의 마지막 말이 만들어낸 울림만 공연히 진동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오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출입구로는 시린 바람이 세차게 들이닥치고 있었다. 김성갑과 마주 앉은 무하마드는 추위에 입술을 떨면서도 도시락 뚜껑을 덮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라도 먹어라, 아직 한참 남았다.”
무하마드는 묵묵히 밥을 떠먹으며 말을 건네는 김성갑을 조금은 경멸에 찬 표정으로 쳐다봤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무하마드는 조금 전 크레인에 부딪혀 접질린 다리를 어루만졌다. 급하게 나무 막대 하나만 덧대어 붕대로 감아 놓은 주변에 통증이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를 이리저리 돌려 보던 무하마드는 마침 딱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른 것처럼 불쑥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하루만 일하려고 했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그래.”
건조한 김성갑의 대답에 무하마드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렇지 않게 치킨을 소스에 찍어 밥과 함께 꿀꺽 넘기는 김성갑의 목울대를 보다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느라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발목이 더욱 시큰거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무하마드는 자신의 상황을 곱씹어 생각하며 견디고 있었다.
무하마드는 불법 체류자다. 게다가 한 냉동식품 창고에서 일을 하다 위장병을 앓게 되어 그동안 벌어 놓은 돈도 거의 다 써버리고 회사에서 해고까지 되었다. 그런 자신의 상황을 별 검증 없이 받아준 유일한 일자리였다. 그동안 수없이 등을 돌리고 외면만 해왔던 한국은 이 순간만큼은 무하마드에게 너무나도 너그러웠다. 무하마드는 꼬박 밤을 새우며 일을 하면 손에 쥐어지는 그 돈을 무시하고 이곳을 뛰쳐나갈 용기가 없었다. 이번 작업을 끝내고 나서도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하마드는 와야만 했다.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안 먹으면 내가 먹는다.”
김성갑이 무하마드 앞에 그대로 놓여 있는 도시락을 들고 가며 말했다. 현장에 있는 내내 흐트러짐 없이 작업에만 열중하는 김성갑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이 일의 프로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김성갑이 닭을 비트는 모습은 마치 기계와 같이 거리낌이 없었다. 무하마드는 며칠만 참아 내면 자신도 김성갑과 같이 아무 느낌도 들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자신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김성갑의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닭고기를 볼 때마다 조금 전 자신이 발로 밟아 댔던 닭의 비명이 귀에서 넘실거렸다. 무하마드는 아직 비닐에 덮인 채로 죽어 있는 많은 닭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개중에는 질긴 생명력으로 아직도 버티고 있는 닭이 있을 것이었다. 살아 있는 짐승을 마주한다는 것이 이토록 끔찍한 적은 처음이었다. 무하마드는 김성갑의 옆에서 닭을 옮기며 제발 닭이 죽어만 있기를 바랐다. 이산화탄소로 질식을 시키고도 살아남은 것들은 포크레인으로 내리찍히거나 발로 몇 번을 밟아 죽인다. 그럼에도 살아남는 녀석이 있었다. 이곳에선 살아남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오히려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야만 했다. 그렇게 처절하게 살아남으려 하는 것들이 무하마드를 힘들게 했다.
처음 닭의 목을 비틀었을 때 몇백 개의 작은 뼈들이 틀어지는 느낌에 무하마드의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목이 반쯤 돌아가서 파드득거리는 날갯짓에 흠칫 놀라 몸이 굳어버린 무하마드의 손에서 닭을 뺏어 간 김성갑은 단숨에 닭의 모가지를 완전히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그 후로 김성갑은 살아 있는 닭을 직접 비틀어 렌더링 기계로 넣었다. 아주 가끔은 목이 비틀린 채로도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갈리는 닭들도 있었다.
“다시 하자. 시간이 얼마 없어.”
밥을 먹은 작업자들이 슬슬 다시 짝을 지어 작업대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무하마드와 짝을 이루어 작업을 하던 김성갑은 무하마드의 도시락까지 모두 비운 뒤 엉덩이를 몇 번 털어내고 일어섰다. 그리곤 재빠르게 렌더링 기계 앞에 서서 다시 기계를 작동시켰다. 작업을 내일 아침까지 마무리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일당은 배로 뛰었다. 그렇기에 잠을 잘 시간도,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에겐 따라야 하는 의무만 있을 뿐이었다. 무하마드는 다시 김성갑의 옆으로 가서 닭들을 나르기 위한 준비를 했다. 무하마드가 닭을 운반하기 위해 막 수레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 김성갑이 그를 렌더링 기계 앞으로 끌고 갔다.
“이제 네가 해라.”
끈끈한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렌더링 기계 앞에서 무하마드는 어쩔 줄 몰라 난감한 표정으로 김성갑을 쳐다봤다. 김성갑은 무하마드의 다리를 힐끔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일 아침까지 그 다리론 못 버틴다.”
“그래도….”
무하마드는 말끝을 흐렸다.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의 통증이 심해지고 있었다. 수레를 계속해서 끌고 다녀야 하는 작업을 아침까지 할 수는 없었다. 무하마드는 닭의 사체를 잡아 올렸다. 위이이잉.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하는 렌더링 기계에서 죽은 것의 냄새가 진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이미 죽어 있는 닭의 사체라 할지라도 사지가 갈리는 모습을 볼 자신이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무하마드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움씬 움켜문 채 닭의 사체를 기계에 욱여넣었다. 옆에서 들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굉장히 크고 강하게 닭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머릿속을 온통 채우는 그 소리에 몸에 현기증이 올라왔지만, 무하마드는 손을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김성갑은 말없이 수레를 옮겨 가며 무하마드의 옆에 닭의 사체를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있었다. 인상을 찡그리는 무하마드를 보며 김성갑은 생각보다 잘 버티네, 라는 생각을 했다. 이곳은 도망자가 많은 곳이었다. 작업 현장에 들어오자마자 도저히 못 하겠다며 도망가는 사람, 죽은 동물들의 냄새에 구역질을 하다가 도망가는 사람, 병든 닭의 내장이 터지는 것을 보며 눈물을 훔치며 도망가는 사람. 이곳에서 버티는 사람들은 모두 삶이 절실한 사람들이었고 김성갑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5년 전 정년퇴직을 한 김성갑은 생활비를 벌 생각으로 한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그러나 젊고 싱싱한 남자들이 가득 찬 곳에서 김성갑은 늘 버려지기 마련이었다. 급하게 인력이 필요하다든가 대규모로 인원을 필요로 하는 현장에만 투입될 수 있었다. 그렇게 세상에서 버려진 것 같은 김성갑을 이곳에선 쌍수를 들고 환영해 주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뿌리치지 않고 일을 한 후에는 이제 구제역이 터지면 인력사무소에선 가장 먼저 김성갑을 찾았다. 김성갑은 자신이 다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음에, 그리고 어느 곳에서 다시 필요한 사람이 되었음에 감사했다.
수레에 가득 실린 닭의 사체를 보며 김성갑은 자신이라고 이것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은 버려진 존재였다. 그럼에도 김성갑은 살기 위해 산 것들을 죽여야 했다. 모든 산 것들이 죽어갈 때는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멈춰버리는 동공과 죽음의 빛을 가득 품은 그 눈동자가 김성갑은 싫었다. 자신이 죽을 때도 그런 눈을 하게 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김성갑은 남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 혹은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곧잘 기억해 냈다. 예를 들어 중학교 1학년 때 김성갑의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의 목덜미에는 점이 너무 많아 북두칠성처럼 보였다는 것이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조금 굽어 있는 손톱 모양이 꼭 하트의 반쪽 모양 같았다는 것, 혹은 처음으로 만난 여자의 배꼽에 나 있던 털이 너무 굵어 성기의 털을 연상시키게 한다는 것 등등 사소하고 부질없는 것들 말이다. 그래서 김성갑은 죽어가는 수많은 닭 중 오늘 58번째로 렌더링 기계에 들어간 닭은 한쪽 눈이 함몰되어 있었다거나 103번째로 집어넣었던 닭의 벼는 다른 닭들보다 살짝 돌출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피가 너무 많이 튀어요.”
렌더링 기계 앞에서 한참을 닭을 쑤셔 넣던 무하마드가 말했다.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생김새를 잘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김성갑은 수건에 생수를 부어 적신 후 무하마드에게 건넸다.
“깊숙하게 집어넣어야 피가 덜 튀긴다.”
“볼 수가 없어요.”
마스크를 내리고 얼굴을 닦으며 무하마드는 거의 울 듯이 느린 억양으로 말했다.
“그러다가 손도 갈려. 끝까지 보면서 넣어.”
김성갑은 다시 수레를 끌었다. 처음 렌더링 기계에 오리를 넣었을 때가 기억에 스쳤다.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오리의 살점이 자신의 옷에 튀기던 풍경을 김성갑은 기억했다. 놀라 커진 눈으로 들어오던 작은 살점의 감촉을 김성갑은 기억했다. 렌더링 기계로 갈려지다 터진 오리의 창자가 사방으로 날아 땅바닥에 들러붙었다. 바닥에 질게 달라붙은 창자를 떼며 김성갑은 땀을 흠씬 흘렸다. 처음으로 살해를 했던 날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살해 또한 익숙해진다. 손에 돈을 쥐어 받으면 그까짓 죄책감쯤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날아가는 거다. 김성갑은 얼른 아침이 오기를 바라며 묵묵하게 닭을 옮겼다.
죽은 채 옮겨진 닭들을 주워 무하마드는 렌더링 기계에 넣어 갈았다. 정부는 그렇게 갈아진 닭의 사체들을 다시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기에 친환경적인 살처분 방식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가스를 주입해 이미 죽은 닭들을 렌더링 기계에 넣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말도 거듭 강조했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규칙들은 쉽게 무시되었다. 비록 친환경적일지는 몰라도, 이미 죽어 있다고 할지라도 형체도 없이 갈려지는 닭들을 보며 무하마드는 인간의 잔인함에 대한 생각을 했다. 인간을 위해 살다가 끝까지 인간을 위해 친환경적으로 소모되어야 하는 닭에 대한 죄책감이라고 할 만한 것들 말이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자신이 밟았던 닭들과 렌더링 기계에 집어넣은 수많은 닭의 울음소리만 머리에서 웅웅 울렸고 아침이 밝아올 무렵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죄책감을 느끼기엔 무하마드는 너무나도 피곤했고 작업 현장에 도착했을 때 두 발로 뛰어다녔던 수많은 생명이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소주나 한잔 하자.”
이제 막 병원에서 깁스를 하고 나온 무하마드에게 김성갑이 말했다. 무하마드는 목발을 짚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눈은 아직도 깊은 어둠에 잠겨 있는 것처럼 흐릿했다. 김성갑은 앞장서 회센터로 걸음을 옮겼다. 작업 내내 배를 굶주린 무하마드를 위한 배려였다.
전혀 입맛이 돌지 않았던 무하마드는 알탕과 오징어회를 젓가락으로 휘적거리다 오징어 몸통 하나를 가져다 입에 넣었다. 시원한 바다 향이 무하마드의 목젖을 타고 넘어갔다. 그 오징어 몸통 하나에 이제껏 주린 배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무하마드는 알탕에 밥을 말아 허겁지겁 먹어댔다. 뜨거운 알탕에 혀와 입안 살갗이 데이는 것도 같았지만 무하마드는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무하마드는 먹는다는 행동 외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알탕보다 뜨겁고 진한 눈물이 턱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눈물을 닦을 새도 없다는 듯이 무하마드는 밥을 입안 가득 넣어댔다. 뚝배기에 담긴 알탕 한 그릇을 비워냈을 때 무하마드는 눈물을 멈췄다. 말없이 소주만 홀짝이던 김성갑은 무하마드에게 잔을 건넸다.
“다 울었으면 마셔라.”
무하마드는 소주가 싫었다. 알코올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독한 술은 한국에 와서 그가 적응하지 못하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알코올 냄새가 무하마드를 안정시켜 주었다. 쓴 소주가 무하마드의 입에 들어가 입천장에 닿았고, 목울대를 지나 위에 안착했다. 그 행위가 어떤 하나의 의식 같다고 무하마드는 생각했다. 먼지 구덩이를 구르던 자신의 몸속 깊은 곳까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하마드는 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그가 이틀 내리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받은 급여였다. 꼼지락거리며 봉투를 만지고 있는 무하마드를 보며 김성갑은 픽, 하고 웃었다.
“왜? 그 돈이 더러워 보이냐?”
무하마드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저씨, 저는 돈 벌어야 해요.”
“알았다. 다음에 또 나와라.”
김성갑의 핸드폰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아무런 이름도 뜨지 않는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김성갑은 핸드폰을 들고 잠시 망설였다. 대개의 모르는 전화는 스팸 광고이거나, 이자를 잘 갚으라고 재촉하는 은행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잘못 걸려 온 전화였다. 이른 아침 텅 비어 조용한 회센터에서 김성갑의 핸드폰은 요란하게도 울려댔다. 그 요란함에 김성갑은 저도 모르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 흔한 ‘여보세요’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김성갑은 전화기를 귀에 대고 숨죽였다.
-김성갑 씨 되시나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낯선 여자였다. 김성갑은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저 너머의 상대방은 알 수도 없게 고개를 끄덕였다.
-A신문사 기자입니다. 인터뷰 요청을 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기자는 마치 김성갑의 모습을 빤히 보고 있다는 듯이 혼자 술술 말을 이어갔다.
-이번 구제역 사건에 투입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동료 몇 분과 함께 인터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간소하지만 취재비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숨죽이며 듣고 있던 김성갑은 누가 갑자기 옆구리를 발로 뻥 차기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서 불쑥 일어나서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회센터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내가 돈만 주면 다 하는 줄 알아요! 사람을 뭐로 보는 겁니까!”
갑작스러운 김성갑의 고함에 무하마드는 들고 있던 술잔을 떨어뜨리며 덩달아 같이 일어섰다. 핏발 선 눈알이 더욱 드러나게 눈을 커다랗게 뜨고 목에 핏대까지 굵게 세운 김성갑의 모습에 조금 겁이 난 무하마드는 자리에서 주춤 뒤로 물러났다. 카운터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식당 주인도 그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김성갑을 쳐다보았다. 한쪽 자리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던 경찰들도 놀라서 김성갑을 쳐다봤다. 그 고요 속에 김성갑의 외침만이 식당의 네 벽을 두드리며 울리고 있었다.
잠시 동안 씩씩 숨을 고르던 김성갑은 이내 멋쩍어져 괜히 경찰들을 힐끔거리며 더욱 언성을 높였다.
“전화하지 마쇼!”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는 김성갑을 따라 무하마드와 식당 주인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들의 자리에 앉았다.
“경찰 아저씨들. 별일 아닙니다.”
경찰들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잠시 고요한 적막만이 가득 찬 식당 안에는 사람들의 숨소리만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에요?”
무하마드는 말없이 소주를 넘기는 김성갑을 보며 물었다. 잠시 비어버린 소주잔만 쿡쿡 찔러대던 김성갑이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은 어디 있냐?”
뜬금없는 김성갑의 물음에 무하마드는 잠깐 그들을 그려보다 대답했다.
“내 나라예요.”
“그러냐.”
“아저씨는요?”
“난 혼자다.”
김성갑의 대답을 끝으로 꽤 오랜 시간 둘 사이에는 대화가 오고 가지 않았다. 다만 둘은 가끔은 잔을 부딪치며 각자의 생각에 빠져 남은 소주를 비워냈을 뿐이다. 온몸 가득 알코올 냄새가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코의 신경이 조금씩 무뎌지는 느낌이 무하마드는 좋았다. 몸에 배어 버린 것 같은 피 냄새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피로함에 핏발만 서 있던 그들의 눈에 다시 생기가 얼핏 보이는 것도 같았다. 무하마드는 잠시 허공에 자신의 가족들을 그렸다. 몇 년째 보지 못했고 연락도 자주 하지 않지만 매일 그리는 얼굴들이라 무하마드는 금방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다. 무하마드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두툼하게 잡히는 돈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그리고 빨리 그들의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무하마드는 다시 한 번 결심했다.
“아저씨는 이제 괜찮아요?”
한참을 망설인 끝에 묻는 무하마드의 질문에 김성갑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생각은 기억 저편 어느 곳엔가 닿아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처음 살처분 현장에 나갔던 날 김성갑은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오리가 우는 소리에 괴로워하다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오리가 울었고 다시 깨어나면 또 오리가 울었다. 그 끊임없는 악몽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성갑은 기를 쓰고 버텨냈다. 하지만 그런 일쯤은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김성갑은 생각했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아닌가, 어떻게 그 정도의 고통쯤 없을 수 있는가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시켜서 했던 일이 아니었다. 돈을 벌고 싶어 자신이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건 고스란히 자신의 몫인 것이다.
“나도 젊었을 때 사우디로 돈을 벌러 갔었다. 그런 고생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야. 너도 곧 괜찮아질 거다.”
김성갑은 무언가 더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지만 이내 다시 입을 다물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무하마드도 김성갑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아져야 했고, 괜찮을 리 없지만 괜찮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무하마드를 앞에 두고 김성갑은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일어섰다. 그리고 그대로 가게를 나서려다 뒤돌아 무하마드를 바라보았다.
“또 보자.”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멀어져 가는 김성갑을 보며 무하마드는 입술을 움찔거리다 이내 다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하마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물로 아주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싶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하얗게 불어 터질 때까지 무하마드는 자신을 씻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욕실을 나와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아주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무하마드와 김성갑이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어느 한가로운 평일 오후였다. A신문사 앞 카페의 한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무하마드는 김성갑이 입구로 들어오자 두 손을 들어 흔들었다. 계절에는 맞지 않는 얇은 코트 차림의 무하마드는 작업장에서의 어리숙한 모습을 벗어내고 제법 윤기가 도는 모습이었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는 무하마드 앞에 앉은 김성갑은 어색하다는 듯 카페를 둘러보았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덕분인지 카페 안에는 전구와 트리로 장식되어 있었고 아기자기한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잔잔한 크리스마스 캐럴이 무심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성갑은 삼삼오오 떼지어 앉아 있는 회사원들과 또래 친구들인 것처럼 보이는 무리를 바라보며 자리에 불편하게 앉아 무하마드를 바라봤다. 무하마드는 며칠 전보다 훨씬 생기 있는 얼굴로 아이스커피를 빨아 먹고 있었다.
“안 오실 줄 알았는데, 다시 봐서 기뻐요, 아저씨.”
무하마드의 말에 김성갑은 멋쩍은 듯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네가 하도 성화를 부려서 나온 거다.”
“성화가 뭐예요?”
“넌 왜 여기에 나오자고 한 거냐.”
“돈 준다잖아요. 돈 벌면 좋잖아요.”
김성갑은 말없이 이제 깁스를 빼고 운동화를 신은 무하마드의 발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김성갑도 타지에서 일을 할 때 험한 노동환경 탓에 몸을 여러 차례 다친 적이 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일도, 외국인이라고 차별을 받는 일도 몸이 다치는 것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약해졌다. 그 설움을 김성갑은 잘 알고 있었기에 괜찮다며 발을 까딱까딱해 보이는 무하마드를 보고 웃을 수가 없었다. 김성갑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허벅지를 주물렀다. 물컹거리는 재질의 낮은 소파 모양을 갖춘 의자가 몸에 맞지 않은 듯 다리가 조금씩 저리고 있었다.
“그동안 일은 좀 했어요?”
아무 말 없이 김성갑은 고개를 저었다. 매일 인력사무소를 찾았지만, 허탕을 치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국가에서 나오는 노령연금으로 월세와 각종 납부 고지서를 메꾸고 나면 김성갑의 손에 남는 돈은 몇 푼 되지 않았다. 무료 급식소와 자원봉사를 와주는 이들이 없었더라면 김성갑은 아마 지금쯤 굶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빠져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나을 것도 같았다.
“가족은 어디 있어요?”
무하마드가 카모마일 차를 받아와서 김성갑의 앞에 두며 또다시 물었다. 김성갑에게는 딸이 둘이나 있었지만 연락이 끊긴 지가 벌써 수년째였다. 김성갑은 정년퇴직을 하고 난 이후에도 계약직 형태로 다니던 회사를 몇 년은 더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의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해고자가 되었다. 내쫓겨지듯 회사에서 버림받은 이후로 대인기피증 비슷한 게 걸려서 사람들을 극도로 피하고 집에 숨어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근근이 연락을 이어가던 지인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식들과도 인연이 끊겼다. 김성갑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단칸방에서 초라하게 늙어가는 제 모습을 딸들이 보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짓게 될지 김성갑은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목이 조이는 것 같았다. 김성갑은 테이블에 놓여 있던 카모마일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입안 가득 쌉싸름하게 퍼졌다.
“저는 아이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해요. 아이가 아주 어릴 때 한국으로 왔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김성갑의 꾹 다물어진 입을 바라보던 무하마드가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추운 날씨에도 환하게 뜬 햇빛이 카페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이 무하마드의 어깨에서 나풀거리는 걸 보며 김성갑이 말했다.
“돌아가. 가족들하고 있어야지.”
“아저씨는 후회해요?”
담담하게 되묻는 무하마드의 말에 김성갑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도 잘 모르겠다.”
짧지 않은 침묵 끝에 김성갑이 말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기자가 그들의 테이블로 다가와 앉았다.
“안녕하세요. 잘 오셨습니다.”
기자는 그들에게 미리 준비해 온 인터뷰 설문지를 한 장씩 주었다. 느슨하게 앉아 있던 무하마드가 긴장했는지 바짝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고, 김성갑은 무표정하게 질문지를 읽어 내려갔다.
“간단한 질문지입니다. 참고하시고 대답해 주시면 되고, 너무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돼요. 편안하게 느끼셨던 감정을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저는 살처분 현장에 투입되었던 노동자들의 트라우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기자는 그들에게 질문을 하고 답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다. 마음속 깊숙한 어떤 감정을 끌어내는 것에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기자는 알고 있었다. 무하마드는 얼마 전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다가 돼지 비계에 새겨져서 채 지워지지 못한 등급 판정이 찍힌 빨간 잉크를 봤다고 했다. 그 잉크를 보자마자 먹었던 것이 뿜어져 나왔다는 얘기를 할 때 미세하게 눈이 떨리기는 했지만 비교적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성갑은 인터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이야기를 많이 토해내면 토해낼수록 앉아 있는 자리만큼이나 가슴 깊숙한 곳이 답답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자의 질문이 계속해서 김성갑이 죽이고 짓밟았던 닭, 오리, 돼지 따위를 연상시키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김성갑은 입을 꾹 다물고 다 비어버린 카모마일 찻잔만 만지고 있었다. 기자의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을 이어 나가던 무하마드도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안 좋은 기억을 계속해서 떠올린다는 것은 기분이 썩 좋은 일이 아닌 것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주는 평온한 분위기가 한몫 보태어 주었을 거라고 무하마드는 생각했다. 이런 곳에 앉아 피를 뿜어대며 기계에 갈렸던 닭을 생각하고 있자니 마음이 빨래판 위에 올려진 채 쥐어짜지고 두들겨 맞고 있는 것 같았다.
기자가 마지막까지 미소를 유지하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사가 나가면 알려드릴게요. 가시는 길 조심히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되지만 교통비라고 생각해 주세요.”
김성갑과 무하마드에게 봉투를 하나씩 건넨 기자는 이내 큰 보폭으로 빠르게 카페를 빠져나갔다. 말없이 봉투를 보고 있던 무하마드는 불쑥 김성갑에게 물었다.
“다음번 일은 언제 할 수 있을까요?”
무하마드의 질문에 김성갑은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병이 터져야 또 일을 하지.”
“그러네요.”
무하마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만큼 많이 주는 일이 없어서요. 저도 빨리 돈 벌어 떠나고 싶어요.”
무하마드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편안하게 몸을 기대었다.
김성갑 역시 말없이 창밖만 주시했다. 김성갑은 여전히 앉은 자리가 불편해 빨리 일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뭔가가 빠르게 빠져나갔고, 그리고 그것이 다시 채워지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저녁이 되자 한적했던 카페가 북적이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무하마드와 김성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찻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앉아 있던 소파에는 오랫동안 닿아 있었던 그들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아직도 은은하게 남아 있는 카모마일 향을 뒤로하고 그들은 그렇게 카페를 나섰다.
김성갑은 인터뷰를 하고 며칠이 지난 후 낯익은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그들의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주요 내용은 구제역 살처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였고, 일용직 노동자들이 투입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그들이 하는 일, 그들이 받는 정신적인, 또 신체적인 고통, 그리고 또 그 고통에 따르는 트라우마에 관한 내용이었다. 김성갑은 기사를 빠짐없이 천천히 읽었다. 기사는 주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심리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기사의 끄트머리에 달린 문구가 김성갑의 눈길을 잡았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그것이 트라우마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트라우마는 아주 오랜 시간 그들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이 문구를 마지막으로 기사는 끝이 났다. 그 문구를 김성갑은 천천히 그리고 자세하게 몇 번을 다시 읽었다. 김성갑은 자신의 손을 가만히 펴고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것임에도 낯설게 느껴지는 그 손으로 죽였던 많은 것들이 빠르게 기억을 스쳐 갔다. 곧게 펼쳐진 손바닥이 피로 얼룩져 가는 것 같은 느낌에 김성갑은 두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갑자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사람들 앞에 내밀린 것 같은 기분이 그를 덮쳤다. 불특정한 다수에게 자신의 가장 중요한 치부를 들킨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이었다. 김성갑은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서둘러서 생수 한 통을 다 들이켰지만, 김성갑은 그 울렁거림을 참지 못하고 결국 싱크대에 아침 식사를 모두 게워 내고 말았다. 아침으로 먹었던 김치찌개에 섞여 있던 고기 조각들이 김성갑의 눈에 거슬리게 들어왔다. 역겨운 비린내가 진동하는 싱크대를 물로 헹궈 내면서 김성갑은 렌더링 기계에 갈리며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 갔던 돼지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펄럭였던 귀가 또렷하게 어른거렸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큰 숨을 몰아쉬고 났을 때 김성갑은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그 공허함이 무서워 김성갑은 서둘러 외투를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무거웠던 정신을 한결 맑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그때 김성갑의 피부에 차갑고 작은 물체가 와 닿았다. 김성갑은 얼굴을 문대어 그것을 닦아내었다. 약간의 물기가 김성갑의 손가락 끝에 묻어났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작고 하얀 알갱이가 눈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오늘도 작업을 나가기에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자, 김성갑은 잠시 멈춰 서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익숙하게 늘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었다. 김성갑이 걷는 동안 눈발은 점점 세지고 있었고, 눈발이 세지는 만큼 김성갑의 발걸음 역시 빨라졌다. 들쑥날쑥하던 마음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일상이 주는 편안함이었다. 어제와 같고 내일도 같을 그런 하루가 김성갑에게 다시 활기를 주고 있었다.
인력사무소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내리는 눈을 한탄하며 거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곳에서 홀로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무하마드를 김성갑은 단번에 발견했다. 김성갑은 꺼질 대로 꺼져 제 수명을 다한 소파에 앉아 있는 무하마드의 앞에 섰다. 김성갑이 앞에 선지도 모르고 무하마드는 핸드폰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냐.”
김성갑의 말에 무하마드는 그제야 시선을 올려 김성갑을 바라보았다. 무하마드의 눈가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곤 김성갑에게 말없이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핸드폰에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법한 나이의 남자아이가 알아볼 수 없는 외국어가 적힌 스케치북을 들고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해요. ‘아빠, 보고 싶어’라고 적혀 있는 거예요. 저 이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김성갑은 무하마드의 옆에 앉아 아이의 사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하마드를 닮아 눈이 크고 맑은 아이였다. 고집스러운 입 모양새며 오똑하게 솟은 콧날까지 무하마드를 박아 넣은 것 같았다.
“가족들은 몰라요. 제가 그런 일을 했다는 거.”
무하마드는 덧붙였다. 김성갑은 할 말을 잠시 찾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다.”
무하마드는 느리게 입꼬리를 들어 싱긋 웃어 보였다.
“오늘 작업은 없습니다. 모두 돌아가세요.”
사무소장이 문을 두드리며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북적이던 사람들이 군소리를 하며 돌아갔다. 어떤 이들은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했고, 어떤 이들은 이른 시간부터 술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향했고, 어떤 이들은 갈 곳이 없어 그곳에 오래 남아 있다 무거운 발을 끌며 돌아갔다. 김성갑과 무하마드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조용한 사무실 안에 남은 두 사람은 말이 없었지만, 서로에게 인사를 하는 듯 아주 오래 낡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잘 가라.”
그것이 김성갑의 마지막 배웅이었다.
“감사합니다.”
무하마드가 인사했다. 김성갑은 자리에서 일어나 멈칫 무하마드를 한 번 돌아보고 사무소를 나섰다. 거세진 눈발이 김성갑의 얼굴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거리에는 목도리를 두르고 모자를 덮어쓴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제각기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김성갑은 그 틈에서 어디로도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무턱대고 행선지 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을 때 김성갑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서 무하마드가 반대편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김성갑은 무하마드가 작은 점이 되어 완전히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응시했다. 계속해서 내리는 눈발에 김성갑의 얼굴이 젖어 가고 있었다. 그 익숙한 감촉에 김성갑은 다시 렌더링 기계 앞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 착각이 혼란스러워 김성갑은 떨리는 손으로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려 물기를 닦아내었다. 그리곤 점점 더 짙게 스며드는 추위에 옷깃을 여미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김성갑은 급히 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처럼 쉬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