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5년 6월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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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불빛만 있을 뿐이다. 밤인지 새벽인지 모르겠다. 거실에 있는 슬리퍼를 물어 뜯으며 놀아도 보고,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물고기 인형을 가지고 놀아 보아도 혼자 있는 시간이 끝이 없다. 혼자 놀다 지쳐서 여느 때처럼 엄마를 불렀다. 계속해서 불렀다.
부스럭 부스럭, 방에 있던 엄마가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내 뱃속은 벌써 그렁그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내 이름은 오월이다. 우리 집에 5월에 와서 오월이라고 부른다. 나는 길냥이였다. 엄마 아빠는 동물 병원에서 보호하고 있던 태어난 지 일주일 정도 된 나를 그들의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나는 새로운 집에서 엄마, 아빠, 오빠라 부르며 한 식구가 되었다. 나는 대표적인 얼룩무늬 코리안 캣으로 다른 고양이보다 꽤 영리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특히 대답을 잘해서 말하는 고양이라고 엄마는 나를 엄청나게 대견해한다.
엄마가 거실로 나왔다. 엄마는 나오자마자 나를 온몸으로 안아 주고, 구석구석 만져 주고, 부드럽게 두드려 준다. 그러면 나의 온몸이 엄마의 손길에 반응한다. 눈은 반쯤 풀리고, 어느새 분홍 코는 빨강이 되고, 뱃속은 그렁그렁 소리가 민망할 정도로 우렁차다. 나는 엄마에게 머리를 살짝 기대어 이리저리 팔자로 몸을 비비면서 엄마의 손길에 답했다. 고요한 이 새벽 우리는 서로 마주하며 춤을 추는 <쉘 위 댄스> 영화 속 주인공이 되었다.
엄마는 나를 안아 준 이후 커피 물을 끓이고, 비타민 주스를 탄다. 그러는 동안 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엄마의 움직임을 살피며 기다린다.
나는 생후 5개월째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서 수술받은 후 온몸을 붕대로 감고 집으로 왔는데 얼마나 아팠던지 밤새도록 끙끙 앓았다. 식구들은 나보다 더 아파하고 걱정해 주었다. 누구보다 애틋하게 보살펴 주던 엄마가 정말 고마웠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에게 순종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를 따라다니며 엄마에게 자주 안겼다. 무엇보다 냥이들의 가장 친밀한 표현인 꾹꾹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집은 3층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비가 올 때 제일 먼저 엄마에게 알리는 일을 즐거워한다. 창밖의 나뭇가지에 서 있는 참새들과 야아 - 옹, 인사하는 것을 일과로 한다. 엄마는 나와 참새를 친구로 맺어 주었고, 우리는 참새를 ‘짹순이’라고 부른다. “짹순아! 놀자∼” 짹순이를 부르면 짹순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줄지어 온다. 고마운 짹순이들…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친구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엄마는 1층에서 북카페를 하고 있다. 북카페에는 번개라는 냥이가 있다. 번개는 길냥이다. 하지만 북카페에서 먹고, 쉬고, 손님들의 돌봄을 받는 자유로운 냥이다.
집냥이인 나는 저녁에 식구들이 오기까지 온종일 혼자 있다. 가끔은 식구들이 여행을 가는데 그럴 때 나는 혼자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아무리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고양이라고 하지만 외롭고 정말 심심하다. 그럴 때면 엄마가 운영하는 북카페에 있는 자유로운 길냥이 번개가 부럽다. 언제 만나게 된다면 번개에게 바깥세상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 어떤 친구들이 있는지, 누구랑 절친인지, 무엇을 하고 노는지 그리고 무엇이 가장 힘든지… 궁금한 게 너무 많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번개와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아빠와 1층 북카페로 내려온 나는 아빠 팔에 안겨 있었다. 낯선 번개를 보자마자 나는 긴장하여 온몸을 잔뜩 웅크렸다. 눈은 두 배로 커졌고, 분홍 코는 빨개지고 부풀어 올랐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내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반면 나를 본 번개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시큰둥하게 나를 쳐다본다. 아빠가 나를 번개와 가까이 대면하게 해 주었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표정으로 잠깐 바라볼 뿐이었다. 번개는 여전히 손님들에게 에워싸여 있다. 우리 냥이들은 어떤 삶이 행복할까? 사람들도 우리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까?
엄마한테 자주 듣는 이야기이다. 길냥이들이 길에서 자주 싸우고, 번개 몸에도 물어 뜯긴 상처가 자주 발견된다고. 한 번은 큰 개에게 쫓겨 다람쥐처럼 나무에 올라간 번개를 엄마가 안아서 내렸다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매일 일어나니 밤새 안녕이라고 엄마는 걱정 섞인 말을 자주 했다. 길냥이들은 로드킬도 많이 당하고, 오염된 물을 먹어 위험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수명이 길냥이는 3년, 집냥이는 15년이라고 한다. 엄마의 말을 들으며 자유롭고 친구도 많아서 부러웠던 번개가 나도 걱정이 되었다.
나는 요즘 아프다. 병명이 방광염 또는 요실금이라고 한다. 뛰어오르거나 흥분할 때 나도 모르게 오줌이 나온다. 여러 가지 검사도 하고 약을 바꿔 가며 먹고 있지만 병원에서도 정확한 진단을 못 내리고 있다. 그러면서 나에게 약을 먹이는 게 하루하루 우리 집의 전쟁이 되어 갔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아픈 이유를… 식구들이 여행 가고 혼자 있을 때 스트레스가 극에 올랐었다. 그때부터다. 식구들은 나의 발병 원인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드디어 엄마의 경건한 하루 시작 준비가 끝났다. 그리고 엄마는 늘상 그랬듯이 책이 놓여 있는 부엌 안쪽의 식탁에 앉았다. 우선 독서대에 책을 펼쳐 놓고 내 간식 통을 열어 간식 열 개 정도를 꺼내 놓는다. 나도 하나의 의식처럼 자연스럽게 엄마의 무릎에 발을 올려놓고 자세를 잡는다. 그러면 엄마는 나를 힘껏 안아서 내가 좋아하는 연어 맛 간식을 한 개씩 내 입 안에 넣어 준다. 오도독, 오도독 먹는 소리까지 울림이 있는 기막힌 시간이다.
그 이후 행복감으로 충족된 나는 발바닥에 사랑의 호르몬이 가득 차게 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엄마 무릎을 꾹꾹 누르며 내 마음의 표현을 한다. ‘꾹꾹 꾹꾹’ 10분, 20분… 지칠 새 없이 이어진 꾹꾹이는 나를 쓰다듬는 엄마의 다정한 손놀림과 하나가 된다.
나와 번개, 누가 더 행복할까? 정답은 없는 듯하다. 인간도 삶의 방식이 제각기 다르듯이 우리 냥이들도 그럴 것이다. 중요한 건 냥이들의 행복과 인간의 행복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하는 녹록하지 않은 세상에서 집냥이인 나도, 길냥이인 번개도 서로가 서로의 빈 곳을 채워 주는 게 아닐까?
내일도 어김없이 혼자 노는 어둠의 시간이 찾아오겠지만 언제나처럼 찾아오는 마법 같은 시간을 기대하며 오늘도 잘 지내보려고 한다. 오늘 밤엔 뭐하면서 놀아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