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5년 6월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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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잠에서 깬 나는 습관처럼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멍든 얼굴로 웅크려 누워 있었다. 아버지가 살림을 부수고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을 기웃거린 날이면, 나는 엄마가 어디론가 훌쩍 떠나지는 않을까 걱정하다 늦게 잠들고는 했다.
‘다행이야. 엄마가 집에 있어. 다행이다.’
안도감을 느낀 나는 엄마의 눈가를 살펴보았다. 엄마는 가끔 자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늘 미간을 찌푸리고 주무셨다. 나는 엄마의 눈썹 사이를 꾹 눌러 밀어내며 미간의 주름을 펴주었다. 하지만 주름은 다시 돌아왔다. 엄마의 고단한 하루처럼. 매일매일. 엄마의 눈썹 사이를 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나 또 전학 가?”
엄마는 말이 없었지만,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늘 화가 나 있는 아버지가 더 화가 났을 때마다 우리는 집을 옮겼다. 그리고 나는 전학을 가야 했다. 낯선 아이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려고 할 때면, 다시 그 학교를 떠나야 했다. 전학이 반복되면서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 점점 말하는 법을 잊게 되었다. 결국 마음의 문이 녹이 슬어, 아무리 열려고 애를 써도 삐걱대는 소리만 났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오래 다닐 수 있기를. 어쩌면 친구도 사귈 수 있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 보았다. 엄마는 처음으로 물려받은 신발이 아닌 새 운동화를 사주었다. 싸구려 신발이지만 발걸음은 날듯 가벼웠다. 새로운 학교에선 새로운 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새 학교로 등교하는 첫날.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다. 학교로 가는 길이 꽤 멀었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망미초등학교의 넓은 운동장과 건물이 보였다. 나는 4학년이지만 1학년처럼 보일 정도로 키와 덩치가 작았다. 그래서인지 내 옆을 우르르 지나가는 크고 말끔한 아이들을 보자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교실 앞에 다다라 나는 심호흡을 했다. 문을 여는 것이 두려웠다. 신발에 쇠추를 매단 것처럼 발걸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그래도 한 발 앞으로 내디뎌야 했다. 막 행정실에서 전학생이 온다는 전화를 받은 선생님께서 무심한 표정으로 가까이 오라고 하셨다.
“자, 오늘 전학생이 왔어요. 이름이 뭐라고?”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 선생님은 내가 대답 없이 고개만 숙이자 곤란한 표정으로 빈자리를 가리켰다. 선생님이 잠시 연구실에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우자 교실은 곧 소란스러워졌다. 겁먹은 얼굴로 자기 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내게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야! 너 벙어리야?”
입에도 쇠추가 달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겨우 고개만 도리도리 작게 흔들었다.
“근데 왜 말을 안 해? 바보야?”
내 고개는 더욱 내려갔고 어깨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바보 맞네. 야! 우리 반에 바보가 전학 왔다!”
장난기 많아 보이는 남학생이 대단한 놀이감을 발견한 듯 떠들고 다녔다. 몇몇 남자아이들이 킥킥 비웃었고, 여자아이들은 이상하다는 눈빛을 내게 보냈다. 숨고 싶었다. 알이나 고치가 있다면 그 속에 꽁꽁 숨고 싶었다. 다행히 잠시 후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아이들은 송사리 떼처럼 흩어졌다.
바보가 아니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한 나는 그때까지도 몰랐다. 그것이 시작이었다는 것을. 다음 날부터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아이들의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아니, 애초에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아이들은 나를 더럽다고 놀려대거나 어쩌다 근처로 가면 화를 내거나 티 나게 피했다. 여자아이들은 나를 지능이 떨어지는 애라고 말하며 도움반으로 보내야 한다고 수군댔다. 가끔 나를 불쌍하게 보는 아이들도 그런 괴롭힘을 그저 외면했다. 나를 괴롭히는 다수의 무리에 들지 못하면 자신도 따돌림을 당할까 봐 두려워했다. 그 공포는 자꾸자꾸 덩치를 키워 죄책감을 지우고 아이들 마음속에서 괴물로 자라났다.
학교가 마치면 나는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피해 학교 뒷산으로 이어진 언덕길로 혼자 집에 가곤 했다. 언덕길에는 유난히 키가 큰 은사시나무들이 많았다. 집에 가도 혼자였기에 은사시나무 언덕에서 나무나 새, 곤충을 구경하며 오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바람이 불면 싸르르 싸르르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나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번 학교도 망했다고. 아니, 제일 최악이라고. 차라리 또 전학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왜 엄마는 항상 잠이 부족한지 왜 엄마는 항상 미간을 찌푸리고 자는지. 엄마가 어느 날 훌쩍 나를 떠날까 두렵다고 나무에게 한탄하고는 했다. 그러면 나무는 싸르르 싸르르 나뭇잎을 팔랑이며 내게 밝은 햇살로 답해주곤 하였다.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살랑대는 유난히 화창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수업 시간에는 흔정이가 연필로 내 등을 찔렀고, 급식 시간에는 여자아이들이 서로 내 옆자리에 앉지 않으려고 짜증을 냈다. 남자아이들은 “동영이는 바보 최연을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 라며 약한 친구를 놀렸다. 그럼 그 남자애는 아니라며 악을 쓰다 분을 못 이겨 엎드려 울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잘못한 것도 없는 내가 죄인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오늘도 그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오늘은 4분단이 청소할 차례지? 선생님 학년 회의가 있으니까 청소 다 하면 회장한테 검사받고 집에 가거라.”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 아이들도 우르르 교실 문을 나섰다. 4분단 아이들은 당연한 듯 책가방을 집어 들며 말했다.
“야! 최연! 제대로 해라∼ 우리는 운동장에서 경찰과 도둑 하자.”
결국 교실에는 나 혼자 남았다. 나는 오히려 혼자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교실 전체를 쓸고 책상 줄을 맞췄다. 문제는 선생님이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셨다는 점이다. 선생님은 혼자 청소하는 나를 보며 화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다른 녀석들은 다 어디로 가고 너 혼자야?”
내가 뭔가 잘못한 것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말없이 고개만 숙이자 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먼저 가보라고 하셨다. 다른 녀석들은 선생님이 단단히 혼을 내주신다며. 혼내준다는 그 말이 왠지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혼난 아이들이 나를 찾아내어 더 괴롭힐 것 같았다. 아이들이 복수를 위해 곧 따라올 것만 같아 내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나는 은사시나무 언덕으로 뛰어갔다. 거기에 숨으면 아이들이 날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은사시나무 언덕에서도 가장 몸통이 굵은 나무에게 다가가 나무를 힘껏 안았다.
조용히 나무를 안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을 때였다. 마음이 좀 가라앉자, 눈을 뜨고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팔랑거리는 나뭇잎이 하얀 빛을 내게 쏟아부어 주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예쁘다는 말이 나왔다.
“예쁘다아.”
오늘 처음으로 소리 내어 말한 단어였다. 바람과 나무가 만들어 준 그 빛의 파도를 보는데 나의 가슴에도 철렁 물결이 일며 눈물이 흘렀다. 너무 예쁜 것을 보면 슬퍼지나 보다.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반들반들한 나무줄기를 만져보았다. 이상했다. 내가 손을 댄 나무껍질에 흰빛이 감돌며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뽁, 톡톡, 토옥, 토도록, ㅃㅃ.’
어디선가 물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무에 귀를 대보았다. 언젠가 엄마 배를 베고 누웠을 때 들었던 ‘꼬르륵 뜨르륵 똑똑’ 같은, 물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더욱 선명히 귀에 울렸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알게 되었다. 말소리는 아니지만 지금 나무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물소리로 채워져 있지만 마치 외국어를 알아듣는 사람처럼 나는 나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음이 아프구나! 아이야. 내가 너에게 새 마음을 줄게.”
“내가 그걸 받아도 될까? 난…. 공부도 못하는 바보인데. 친구도 없는 왕따인데.”
“넌 이미 우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존재야.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가 깊어졌을 때 우리의 씨앗으로 새로운 마음을 키워낼 수 있단다.”
“새 마음을 받아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몰라.”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거란다. 내 몸통을 꼭 끌어안아 보렴. 그리고 눈을 감고 우리의 노래를 들어 봐!”
눈을 감고 나무에 귀를 대자, 여러 가지 물방울 소리가 들렸다. 물방울 소리는 내가 안고 있는 은사시나무를 시작으로 주변 나무들에서도 들리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고요한 숲속의 합창처럼 주변의 식물과 나무들이 물방울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나무의 노래를 가만히 들던 내가 말했다.
“그러면 나에게 용기와 편안한 꿈을 줄 수 있어?”
“그래, 나의 씨앗을 너에게 줄게. 불안하고 무섭고 용기가 안 날 때, 나쁜 꿈을 꿀 때 용기와 좋은 꿈의 씨앗을 심으렴.”
눈을 뜨고 나무를 보자 흰 털이 날개처럼 달린 씨앗이 뱅그르르 돌며 나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두 개의 씨앗을 소중히 감싸고 나는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그날 밤,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일찍 잠든 나는 새벽녘에 눈을 떴다. 어제 있었던 일이 꼭 꿈을 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꿈이 아니라는 듯 호주머니에는 하얀 씨앗이 두 개가 진짜로 들어 있었다. 나는 오늘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잠든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오늘도 나쁜 꿈을 꾸나 보다. 엄마의 미간 주름을 눌러 펴 보았지만, 주름은 더욱 깊어졌다. 낮에 받은 씨앗이 생각났다. 씨앗 하나를 주먹에 꼭 쥐어 본 다음 엄마의 미간에 올려두었다. 잠시 후 하얀 빛을 내뿜는 씨앗이 엄마의 미간에 스며들었다.
“엄마는 어디 가지 말고 나랑 같이 살아야 해. 내가 매일 편안한 꿈을 선물할게.”
스르륵 엄마의 미간 주름이 펴졌다. 한결 편안해 보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니 연이의 마음도 떠오르는 해처럼 밝아졌다.
다음 날, 오늘따라 엄마가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웃는 얼굴을 얼마 만에 보는 것인지.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자 가슴 가득 힘이 충전되는 것 같았다. 학교로 가는 길도 두렵지 않았다. 교실에 도착하여 조용히 자기 자리에 앉은 나는 주먹 속에 씨앗을 꼭 움켜쥐었다.
‘나에게 용기를 줘! 제발 지지 않게 해줘.’
눈을 감고 간절히 외친 나는 웅크린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그런 나를 주변의 아이들이 낯설게 쳐다봤다.
“야 저 바보 오늘은 고개 안 숙이는데?”
평소 나를 제일 괴롭혔던 민용이가 가까이 와서 또 시비를 걸어왔다.
“야 바보, 최연 너 도움반 가야지 왜 우리 교실로 왔냐!”
내 책상다리를 툭툭 걷어차며 시비를 거는 민용이를 똑바로 쳐다보기 위해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주먹 속의 씨앗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고, 씨앗이 뜨거워지며 손바닥 속으로 스며들었다. 씨앗이 스며들자, 가슴속에서도 뜨거운 용기가 치솟았다.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리고 민용이를 쏘아보며 당당히 외쳤다.
“난 바보도 벙어리도 아니야! 저리 가!”
비록 목소리는 생각보다 작고 떨렸지만 반 아이들 모두가 내 말을 들었다. 민용이가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고 아이들 모두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어! 너 말할 수 있었냐? 와 씨. 깜짝이야.”
민용이가 멋쩍은 듯 순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 반 아이들도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은 오늘은 뭔가 좀 이상한 하루라고 생각하며 곧 나를 잊었겠지만, 나의 심장은 계속 쿵쿵 뛰고 있었다. 그렇게나 무서웠던 민용이가 내 말 한마디에 조용히 물러난 게 믿기지 않았다. 어쩌면 민용이도 괜히 폼만 잡는 시시한 악당일지도 모른다.
체육 시간, 줄을 서는데 흔정이가 오늘도 내 등을 쿡쿡 찔렀다. 나는 모른 척하는 대신 뒤돌아 흔정이를 마주 보았다.
“아파, 하지 마!”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에 흔정이가 픽 웃었다.
“너 오늘 건방지다. 이게.”
이번에는 내 팔뚝을 꼬집어 비틀었다. 나는 다시 숙여지려는 고개를 애써 들고 처음으로 선생님에게 가서 사실을 말했다. 선생님은 귀찮은 표정이었지만 흔정이를 불러 야단을 쳤고 흔정이는 선생님의 꾸지람을 듣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저만한 일로 울다니 어쩌면 흔정이도 나처럼 겁쟁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학교에서 혼자였지만 누군가 놀릴 때마다 “하지 마”라고 외치며 눈을 맞추자 아이들도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좀 더 용기를 끌어모아 수업 시간에 처음으로 스스로 손을 들고 발표를 했다. 내가 정답을 말하자 반 아이들 모두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더 이상 바보라고 놀리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날이 많아졌다. 그런 날 중 하루였다. 오늘도 은사시나무 언덕으로 오르는 나를 누군가 불렀다.
“야! 최연! 같이 가.”
깜짝 놀랐다. 나보다 뒤에 전학 온 싹싹한 구본혜였다. 나는 어색했지만 본혜를 기다려 주었다.
“난 처음에 너 정말 말 못하는 앤 줄 알았어. 어떻게 갑자기 말할 수 있게 됐어?”
나는 조금 부끄러웠지만 은사시나무의 비밀을 본혜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나는 가장 큰 은사시나무를 가리켰다.
“저기 비밀이 있어.”
그리고 본혜의 손을 잡았다. 나무를 향해 우리는 웃으며 달려갔다.
‘토톡, 톡톡’ 어디선가 물방울 터지는 나무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무들이 오늘도 말해 주었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