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유혜자 수필문학상 2025년 8월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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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의 아버지에게 보답하는 작은 선물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나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혀졌다. 겨우 일곱 살짜리가 무얼 알기나 했을까. 그런 꼬맹이를 붙들고 아버지는 글쓰기를 가르치려 들었으니, 내 기나긴 창작 인생은 그즈음부터 시작된 셈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읍내에서 글쓰기 경시대회가 열렸었다. 글제가 ‘가을 하늘’이었다. 만날 눈만 뜨면 보게 되는 가을 하늘, 뭐라도 쓰긴 써야 했지만 도무지 뾰족한 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감 시간이 임박해서야 “가을 하늘 뭉게구름이 어떻고 저떻고” 대강 이런 내용으로 얽어서 제출하고는 영 탐탁잖은 마음을 안은 채 귀갓길을 터덜거렸다.
저녁상 머리에서 어머니가 경시대회 이야기를 꺼냈다. 어떻게 적었는지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나는 예의 그 ‘가을 하늘 뭉게구름이∼’를 자신 없이 풀어놓으며 어머니의 반응을 살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어머니가 “얘야, 뭉게구름은 여름 하늘에 나타나는 구름인데 ‘가을 하늘 뭉게구름’이라고 적었다면 볼 것도 없이 낙방이다.” 이러는 게 아닌가. 평소 ‘가’ 자 뒷다리도 모른다며 정규 교육의 기초 과정도 채 마치지 못한 한스러움을 노래처럼 되뇌던 어머니의 입에서 썩 그런 소리가 튀어나오다니, 너무도 뜻밖이었다. 나는 당신 나름의 그 그럴싸해 보이는 예비 심사평에 폭삭 실망하여 결과를 전혀 기대하지 않은 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 한 달쯤 지났을까. 수상자 명단이 발표되었을 때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머니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나의 이름이 당당히 장원의 자리에 올랐으니, 당신으로서는 뒷머리를 긁적거려야 할 상황이 되고 만 게다. 어머니가 그때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 지금은 기억이 풍화되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얼굴 가득 잔잔한 미소가 번지던 모습만이 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정지된 장면으로 뇌리 깊숙이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평생토록 땅만 일구며 살아온 분들이기에 어찌 글쓰기의 ‘가나다’인들 제대로 깨치셨을까. 그렇지만 당신들은 설사 창작에는 문외한이었을지 몰라도,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들의 글쓰기에 나름의 방식으로 속 깊은 관심을 보이셨던 게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사랑과 응원이 자양분이 되었기에 내가 한평생 수필의 길을 가는 추동력을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수상 소식을 듣는 순간 불현듯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오랜 병고 끝에 우리 곁을 떠난 지 어언간 서른 해, 그동안 비파 없이 홀로 타는 거문고로 살아온 구순의 아버지는 지금 노환이 깊어 요양병원 신세를 지고 계신다. 이번 수상 소식이 외롭게 투병 생활을 이어가시는 아버지한테 보답하는 작은 선물이라도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쭙잖은 글에 날개를 달아 격려해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간에 수필이라는 화두 하나 붙안고 부단히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데 게으르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