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겨울호 2024년 12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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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장가들기 좋은 날
선명하게 첩첩 포개진 섬들을 멀리서부터 하얗게 지우며 달려옵니다
이렇게 쨍쨍한 날이라 더 황당하여 당황스럽습니다만 긴 기다림 끝
에 이렇게 잠시라도 그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벅찬 행운임을 압니다
기별도 없이 급히 왔듯이 금세 또 얼굴만 보여주고 떠나가겠지만
스쳐 가는 그대 뒷모습만이라도 족하기에 붙잡지 아니하였습니다
잠시 지나는 길에 들렀다는
그대 말도 믿기지 않는 빈말
아무 일도 없었듯 가까이서부터
섬들이 하나둘 또렷하게 다가오면 그대는 이미 떠나고 없는 빈자리에
다시 햇살이 내리쬐고 비에 젖은 건지 땀에 찌든 건지 후줄근한 일상
에서 잠시 분분했던 그대와의 한 때를
오래도록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