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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넘어선 아름다운 보쌈

한국문인협회 로고 하재준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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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고전을 읽다가 언뜻 요즘 점차 변해 가는 총각들의 결혼 의식이 떠오른다. 비록 기혼녀라 할지라도 정신이 건전하고 생활력이 있는 자라면 이를 개의치 않고 그녀를 선택하여 결혼하려는 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외적 의식세계보다 내면의 정신세계를 더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 아닐까. 아무튼 건전한 정신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존중받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신세계가 고독을 넘어선 아름다운 보쌈이 아닐까?

조선 제9대 임금 성종 때의 일이다. 당시는 유교사상이 지배해 왔기에 인(仁)과 예(禮)를 근본 이념으로 여겨 수신(修身)을 존중히 여겨 왔다. 그 하나의 예로 결혼했던 여자가 다른 가정으로 시집감을 법적으로 엄하게 금지하는 그 법이 재가금법(再嫁禁法)이다. 이 법을 철저히 지켰던 사대부 가정은 물론 평민들까지도 재가를 금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 법령을 잘 지키는 개인에게는 국가에서 열녀 칭호를 붙여 모범된 자로 높이 평가해주기도 했으니 당시 사회상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풍조에서 청상과부일지라도 가문의 체면 때문에 평생토록 홀로 살아야만 했다. 더욱이나 약혼한 남자가 결혼 전에 죽으면 약혼녀는 그 가문에 들어가 홀로 평생을 살아온 열녀도 있었다. 이런 법령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방법이 바로 보쌈 형태로 재가한 것이다.

한밤중에 장정 여러 명이 과부의 방에 몰래 들어가 얼굴을 가린 후 이불보를 씌워 업어다가 결혼하는 형태였다. 그런데 이 보쌈은 극비리에 양 본인 혹은 양가 부모의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조선 말 권중익의 문집 『악제집(樂齊集)』을 읽어보면 그 사례가 잘 드러난다.

또 조선 14대 임금 선조 때의 일이다. 만인이 우러러봤던 학자인 퇴계 선생의 가정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퇴계언행록』 제5권 「잡기편」을 보면 퇴계 선생의 심중이 잘 드러나 있다. 그분의 맏아들이 스물한 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의 죽음도 몹시 서러웠지만 그보다 새파란 젊은 며느리가 청상과부가 되어 남편도, 자식도 없이 한평생을 홀로 지낼 것을 생각하니 여간 염려스러웠다.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자기 집과 친정집 모두가 누가 될 것이기에 여간 조심스럽기에 한밤중이면 일어나 집안을 순찰하며 집단속도 철저히 했다.

어느 날 깊은 밤이다. 집 안을 둘러보고 있던 퇴계 선생은 깜짝 놀랐다. 며느리 방에 불이 켜져 있지 않는가. 가까이 가 들어보니 누구와 분명히 대화하고 있었다. 누굴까.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순간 얼어붙은 심정이었다. 누굴까. 점잖은 선비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살며시 며느리 방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젊은 며느리가 술상을 차려 놓고 “한 잔 잡수세요. 어서 잡수시라니까요” 하지 않는가. 그때였다. 짚으로 만든 선비 모양의 인형과 마주 앉아 있는 며느리를 보았다. 또다시 “여보, 어서 잡수시라니까요” 이렇게 권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지 않는가. 그간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못내 외로웠던 심정을 눈물로 쏟으며 소리 날까 봐 숨죽여 흐느끼는 며느리였다. 짚으로 만든 인형은 바로 자기 아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마터면 순찰하는 자기의 정체가 드러날 뻔했다. 퇴계 선생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윤리는 무엇이고, 도덕은 또 무엇인가. 젊은 며느리를 수절시켜야만 옳은가. 과연 그 길이 바른 것인가. 분명 옳은 일이 아니다. 너무도 가혹한 것이다. 인간을 처절하게 구속시키는 것이 어찌 윤리이고 도덕이겠는가.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자문자답하고는 이튿날 퇴계 선생은 사돈을 자기 집에 초청했다.

사돈인 친구는 영문도 모르고 찾아왔다. 술상을 차려 놓은 그 앞에서 친구인 사돈에게 “며느리가 너무 젊고 참하여 차마 볼 수 없네. 그러니 자네 딸 데려가게” 했다. 그러자 그 사돈은 “안 되네. 양반가문에서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딱 잡아떼었으나 퇴계 선생의 완강한 권유에 어찌할 수 없이 그는 딸을 데려오고 말았다.

물론 학문으로 터득한 인간 본연의 심리요, 고요한 내면의 세계까지 꿰뚫고 있는 그의 깊은 마음 때문에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친정에 온 그는 얼마 되지 않아 보쌈의 과정을 밝아서 재가를 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편의 사랑을 극진히 받아온 자가 갑자기 홀로 지내기란 너무도 어려울 것이다. 육체의 아픔은 약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고독으로 한밤을 지세우기란 무엇으로도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도 퇴계 선생과 같은 그런 분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의 입장과 편리만 내세우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깊은 내면의 세계까지 통찰해주는 고마운 마음이 얼마나 높고 귀한 정신인가. 남의 인생을 더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며 염려해주는 그런 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참으로 좋을 것이다. 나는 때때로 고전을 읽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귀한 시간을 가진다. 이럴 때 아름다운 상념이 끝없이 펼쳐진다. 너무도 보배로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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