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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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울리는 말 한마디는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다. 세상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를 감싸고 안아주는 포용과 포옹의 말이다. 우리를 껴안아주는 진실한 말 한마디다. 진실한 말 한마디는 생명을 살리는 약이 되기도 한다.
시들지 않는 꽃다발을 걸어둔 것처럼
‘교수님 안녕히 계세요.’
‘교수님 잊지 않겠습니다.’
‘여성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행복하게 잘살겠습니다.’
‘교수님 대박나세요.’
이는 정든 캠퍼스를 떠나며 제자들이 내게 남겨준 메시지다. 졸업 시험지 끝자락에 남기고 간 이 글을 읽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지금도 이 메시지를 떠올릴 때면 가슴이 뭉클하다.
기후의 변화, 세태의 변화, 인심의 변화 속에서 이들이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지 적응해낼 것인지 염려와 안쓰러움으로 가슴 언저리가 아린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남긴 ‘대박나세요’라는 문구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때마다 내게 오는 대박이란 그들이 남기고 간 이 귀한 메시지 외에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산허리에 단풍 들고 찬바람 이는 이맘때면 갈대꽃이 바람에 서걱이듯 더욱 시린 가슴이 된다. 어디선가 세파에 시달리며 발돋움하고 있을 그들의 성공을 빈다.
사람을 보는 것은 시력뿐이 아니다
외아들에 손녀 하나를 본 나는 집 근처 동네 마트에 자주 드나들었다. 손녀를 등에 업고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즐거움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어느 날 멀리서 내 집을 찾아오는 후배가 이 마트에 들러 “손녀를 등에 업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다니는 분이 계시지요. 그 댁이 어디인가요”하고 묻자 그 마트 사장이 매우 의아해하면서 하는 말이 “뭐 그분이 교수라고요? 애기 보는 할머니예요”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마트 사장의 눈이 정확하고 판단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 말이 내게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손녀를 잘 돌보고 있는 할머니를 인정하는 말이다. 그때 나는 자랑스러운 내가 아닌가 하고 할머니로서 자부심을 가졌다.
다정스런 말이 주는 호감
봄볕이 내 등을 정겹게 간지럽히던 어느 날, 다리 건너 재래시장으로 봄나물을 사러 갔다. 치장 없이 몇 년 지난 원피스 하나 쉽게 걸치고 나선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봄바람에 날아갈 것만 같은 소탈한 차림새다. 그저 꾸밈없는 옷매무새가 홀가분할 뿐이다.
시장통에 들어서니 나물장수 할머니가 나를 부른다. “선생님! 이 달래와 씀바귀, 오늘 캐온 것입니다. 많이 드릴께요.”
어디를 보고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지 깜짝 놀랐다. 그저 평범한 나를 꿰뚫어보고 정겹게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왁자지껄 시장통 분위기에도 선생으로 알아보는 시력이 보통이 아니다. 순수한 노인네의 직감력이다. 나는 선생인 나를 선생님으로 볼 줄 아는 노인의 통찰력과 판단에 호감이 갔고 펼쳐 놓은 푸성귀를 어느 것 하나 남기지 않고 장바구니에 몽땅 담았다. 봄나물을 안고 돌아오는 길은 봄볕이 한없이 따스했고 발걸음도 마냥 가볍기만 했다.
겸손과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세상
내가 젊고 씩씩할 때는 노인 어르신들의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오늘따라 자신이 입는 옷마저 무겁고 힘들다고 하시던 어머님 말씀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느 때를 불문하고 어머니께서는 “가벼운 것이면 제일 편한 옷이다”하시며 무게감 있고 돋보이는 옷보다는 가벼운 옷만 골라 입으셨다. 어느덧 나도 그 말씀을 하시던 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었다.
나는 오늘 몇날을 두고 속 썩이는 무릎통증을 뒤로하고 콜택시를 불러 타고 안과에 가야 했다. 밤낮으로 혹사시켰던 눈이 제일 먼저 나이 듦을 인정케하더니만 금년 들어서는 무릎관절에 탈이 났다. 무릎통증보다도 흐린 눈을 먼저 치료해야 할 것 같아 단골 안과에 갔다. 출입처가 어디든 간에 복장을 단정히 해야 하는 것을 기본으로 여기며 살아왔지만 가는 세월은 이길 수가 없어 옷차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터라 헐겁게 입은 채로 안과에 달려갔다.
예나 다름없이 반겨주는 원장님의 응대가 있으리라고 믿었는데 웬걸 “아주머니! 약을 계속해서 먹었어야지 이제 왔으니 어쩌자는 거요.” 한다. 나는 그 원장의 말투가 엉망이다 싶어 “저! 원장님, 저예요”를 반복해도 여전히 아주머니로 호통친다. 교수님으로 불렀던 그가 환자를 푸대접하며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환자도 못 알아보는 흐린 눈으로 어떻게 진료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환자가 제 몸 고치고 건강을 지키는 일을 소홀히 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두려움과 외로움에 떨고 있는 환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의 눈이 하나만 더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전 골다공증 치료를 받아오고 있는 모 의원에 갔을 때도 원장이 하는 말이 의외였다.
“한 달 이상을 넘기고 오셨구만. 더 이상 우리 병원에 오지 마세요. 다른 병원으로 가세요.”
많은 환자들에게 시달리는 피로감을 모를 리 없지만 병의 증세나 정황을 물어줘야 할 의사가 아닌가. 아니면 이들의 말을 감지하지 못하는 눈치 없는 나이 탓인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애기 보는 할머니로 불러준 마트 사장, 선생님으로 볼 줄 아는 나물장수 할머니, 그리고 ‘대박나세요’를 남겨준 제자들, 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오늘도 엔돌핀이 돌고 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내 남동생댁이 남긴 말이 떠오른다. “맛있는 것이나 먹고 사시는 데까지 사세요”라고 말한 의사의 말이 “너무도 야속하고 야박하더라”고 전하며 내게 보인 그의 눈물과 좌절이 나를 아프고 슬프게 했다.
이혜연 선사 발원문에 “흉년드는 세상에는 쌀이 되어 구제하고 모든 질병 돌 적에는 약풀 되어 구제하리”라는 말이 있다. 지금 들녘에는 고개 숙인 벼이삭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은빛 갈대꽃이 손을 흔들며 오색 코스모스를 반기고 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우리 세상도 이처럼 겸손과 배려와 사랑이 넘실대는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겸손과 배려로 포용하는 말은 영원히 시들지 않을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