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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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맘이라면 누구나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지고 있으리라. 일과 가정,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교육이냐 생존이냐 하는 지난한 이 문제 앞에서 한 번쯤은 동동거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십여 년 넘게 상담실장으로 근무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의 세태와 정서를 여느 엄마들보다는 좀 더 많이 알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아이들의 인생, 연애 상담 등을 해주느라 주 업무였던 학부모 상담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곤 했는데 이 때문인지 학원 퇴원율이 급격히 줄어들어 원장님께서도 은근히 동조해 주는 분위기였다.
사실 학원의 아이들보다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와 더 자주 얼굴을 보지 못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딸아이는 나보다 일찍 학교에 갔고, 아이가 들어와 잠이 들 때까지 겨우 한 시간 남짓 보거나 아니면 이삼일 만에 상봉을 하기도 했다. 학원 일이 자정을 넘길 때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틈새 대화를 즐겼다. 틈만 나면 서로 얘기하기를 좋아했고, 떨어져 있을 때는 카톡으로 대신했다. 가끔씩 같이 외출을 하는 날이면 꼭 빠지지 않는 코스가 바로 서점이었다.
독서만큼 값이 싸면서도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가 말했던가. 아이가 어렸을 때는 동화책을, 그리고 조금 자라서는 컬러판 만화를, 그다음은 판타지류의 소설책을, 그리고 이제는 제법 자기계발 도서처럼 교양서라 할 만한 책을 고르기 시작한 내 아이가 독서로 옛 현인을 벗 삼을 줄 아는 독서상우(讀書尙友)의 단계에 이르길 소원해 본다.
나는 한동안 프랑스의 천재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그와의 인연은 중학교 3학년인 혜진이란 친구의 권유로 시작되었는데 외고 준비를 하며 학업에 시달리면서도 책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친구였다. 그 아이에게서 자극을 받은 나는 사실상 모든 핑계를 뒷전으로 하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개미」 시리즈를 인터넷 서점에서 한꺼번에 구매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베르베르의 홍보대사가 되어 있었다. 학원 아이들은 내 책상에 쌓여 가는 베르베르의 책들을 보며 하나둘씩 책에 관한 이야기에 끼어들기 위해서라도 읽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나무」에서부터 『개미』, 『타나타노트』, 『뇌』, 『천사들의 제국』, 『아버지들의 아버지』 등 이 쌓여 갔고 학원 선생님들도 본인이 읽지 않은 책은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 책들을 읽느라 40분 걸리는 직장까지 내내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예전에는 잠이 오지 않아도 내내 눈을 감고 있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던 때를 생각하면 그렇게 허공에 쏟아버렸던 내 귀중한 시간들이 한없는 후회로 떠밀려 온다.
언제부터인가 남자아이들이 단체로 사라지면 으레 학원에서는 주변 게임방을 수색하는 일이 남자 선생님들의 업무 중 하나가 되었다. 아이들이 인터넷과 가까워지고 있는 사이 ‘독서’란 교과서만큼이나 따분한 외계어 공부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의 지향점이 인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 오래되었지만 현 교육 현장의 모습은 그것과는 사뭇 요원한 것이 사실이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 전형이 생기고 그 비중이 커가면서 우후죽순 생겨난 논술 학원에서 책을 읽히기는 하지만 그 본래의 의미는 퇴색되고 단지 대학 입시 제도의 한 도구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F. 베이컨이 독서는 완성된 사람을 만들고, 담론은 재치 있는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미래의 교육자나 학부모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무의미한 게임의 세상에서 벗어나 인간 존엄의 가치를 깨닫고 바른 인성을 갖춘 아이들로 올곧은 성장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독서>라는 비기(秘器)를 쥐어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책에는 수많은 현인들의 인생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깊이를 대신할 무엇이 또 있을까. 오늘도 나는 수불석권(手不釋卷) -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읽는 생활 습관을 기르려 부단히 노력 중이다. 소소한 나의 독서 운동이 넓게는 기성세대의 중요한 의무이자 책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