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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을 싫어한 사람과 벚꽃이 싫어하는 것

한국문인협회 로고 장철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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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다가온다. 지난해 봄 어느 주말 전국이 핑크로 물들었을 때다. 집에서 한 발짝만 나가도 핑크빛 벚꽃이 만개했다. 유모차의 애기부터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까지 벚꽃이 핀 곳이면 어디든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만개한 벚꽃은 몸과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풀기에 딱 맞는 치료제인 것 같다. 꽃 속에 파묻히니 영혼까지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주말에 아무런 약속도 없으면서, 목적지도 없으면서 운전대를 잡고 시골길을 달리는 일이 일어난다. 어디를 갈지 계획 따윈 필요 없다. 그냥 나가면 꽃이다. 꽃을 보고 즐기는 방법은 그냥 꽃을 오랫동안 보면 된다. 내가 꽃이 되고 꽃이 내가 될 때까지. 그리고 꽃잎에 입맞춤하고 싶을 때까지.

밤에도 활짝 핀 벚꽃 구경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뿐이다. 꽃 같은 미소다. 시도 때도 없이 아내의 손을 잡고 벚꽃이 부르는 곳으로 가게 된다.

꽃은 보고 너나없이 우와∼ 하며 좋아한다. 이 소리는 인간의 아름다운 본심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최상의 멜로디이다. 사람에게는 꽃 같은 아름다움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벚꽃은 핑크빛의 아름다움을 꽃잎으로 설명하고 선물한다. 이 순수하고 깨끗한 벚꽃 그 누구 하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꽃 속에서는 잘남도 못남도 질투도 없어진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인 나도 벚꽃 속에서는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이런 벚꽃이 너무 싫어 도로변에 심어둔 벚나무 가지를 꺾어 버리기까지 한 사람이 있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필자의 외할머니이다. 어릴 때 외할머니께서 벚꽃을 싫어하는 이유를 눈물을 흘리시며 들려주셨다.

일제강점기 말 우리 어머니 나이 16살 때 일본이 우리나라 처녀들을 강제로 데리고 간다고 할 때다. 처녀가 있는 집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감언이설로 지원을 강요했고, 이에 응하지 않자 강제로 공출하듯 데리고 간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3남 1녀의 외동딸인 우리 어머니를 일본에 보내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지만 결국 공출대상이 된다는 말에 16살 어린 딸을 남편이 될 사람 얼굴도 보지 않고 외딴 섬으로 시집을 보냈다. 그때 맺힌 한은 찬 서리가 수천 번 내렸고, 흘린 눈물은 한강 보다 많았다.

외할머니는 일본이 너무 싫어 도로변의 벚꽃나무 가지를 꺾어 버렸다. 이렇게 해서라도 가슴에 맺힌 한을 조금이라도 풀었고, 일본에게 복수를 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하늘나라로 가실 때까지 벚꽃만은 일본의 꽃이라고 하면서 너무 싫어했다.

과연 활짝 핀 벚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외할머니도 어릴 때 벚꽃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린 딸을 억지로 시집보내고 난 후 일본의 꽃인 벚꽃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외할머니 발밑에 밟히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일본이란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였다. 그뿐 아니다. 일본 국기가 붉은 색이라고 가족에게는 붉은 색 무늬가 있는 옷도 입지 못하게 하셨다. 시골의 한 어머니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어린 딸을 어쩔 수 없이 시집보내면서 가슴에 맺힌 원한을 달래는 방법은 고작 이것뿐이었다. 그리고 끝없이 홀로 흘린 눈물이 전부이다.

하늘나라에서도 오늘같이 벚꽃이 활짝 핀 날은 벚꽃이 싫어 나들이를 하지 않으실 것이다. 필자도 어릴 때 벚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외할머니의 눈물을 보고 벚꽃을 좋아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때는 일본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웃에 놀러 가듯 가는 일본 여행을 지금까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어릴 때 우리 어머니와 관련된 외할머니의 한 맺힌 이야기 때문에 일본을 싫어하는 생각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 같다.

긴 세월이 흘렀다. 오늘의 나에게 벚꽃은 무슨 죄를 지었을까 싶다. 꽃 속에 파묻혀 있으면 외할머니의 원한도 내가 느낀 미움도 잊힌다. 이제 벚꽃의 아름다움만 보고 느낀다. 오로지 손녀딸 같이 순하고 예쁜 모습만 보면서.

사진으로 남길지 글로 남길지 마음속에만 담을지 모르면서 꽃을 찾아 시골길로 달렸다. 마음과 손이 약속이라도 한 것 같이 핸들을 조정한다. 온통 벚꽃이다. 빨리 달리면 속도에 꽃잎이 떨어질까 천천히 가게 된다. 뒤따르는 차가 클랙슨을 울리고 비상 라이트를 켠다. 지나가면서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하는 것 같다. 그들이 밉지 않다. 나에게도 욕을 들으면서까지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오히려 흐뭇했다. 모두 벚꽃 너 때문이다.

오늘따라 질투 많은 거센 봄바람이 분다. 꽃잎을 떨어뜨린다. 꽃이 아프다고 아우성친다. 벚꽃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거센 봄바람이다. 흰 눈이 쌓인 것 같다. 모두 치료하여 다시 붙여두고 싶다.

벚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우리 외할머니라면 벚꽃이 싫어하는 것은 거센 봄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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