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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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 중반 무렵 직업군인 시절의 일이다. 중대원들과 야외 주둔지 작업을 하면서 해안 초소 주변을 보수하던 날이었다. 여러 명이 구역을 나누어 톱과 낫으로 가지를 치고 지저분한 것을 솎아내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대원 한 명이 겁먹은 표정으로 내게 달려왔다. 작업장에 죽은 고양이가 있다는 것이다. 별로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확인차 가보니 눈을 뜬 채로 죽어 있는 어미 고양이와 몇 마리의 새끼들이 엉겨 붙어 있는 게 아닌가!
동물 사체들을 치우는 일이 가끔은 있었던 터라 또 그러려니 넘기려는데 순간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한 마리가 용하게도 살아 있었던 거다. 움직였던 놈을 한 손으로 잡아 올리자 눈도 뜨지 못한 핏덩이가 숨을 헐떡이며 용을 쓰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는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혹시나 또 살아 있는지 살펴보는데 상태가 이상했다. 어미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다리 하나가 무엇에 뭉개지고 깨져 버린 커다란 상처였다. 다른 동물과 싸우다가 물렸거나 실수로 떨어져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움직이는 차에 충격을 받은 ‘로드 킬’에 의한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모두 어미 젖을 물고 죽어 있으니 보통 신기한 노릇이 아니었다. 시간도 얼마 되지 않은 듯 흥건한 핏자국이 보이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현장을 건들지 말라고 당부한 후 살아 있는 새끼에게 손바닥으로 물을 주자 조금씩 핥아먹는다. 난 고양이들의 주검을 수습하기로 했다. 쓰레기 치우듯 대충 묻어 버리기엔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나 보다. 근처 양지 바른 곳을 골라 작은 구덩이를 파서 바닥에 모래주머니를 깔았다. 어미부터 눕히고 그 품속에 새끼들을 포갰다. 낙엽을 덮고 곱게 복토를 한 후에 예쁜 돌들을 쌓아 올리고 보니 세상에서 제일 작은 가족 무덤이 되었다. 낮에는 영일만의 바다가 수평선까지 펼쳐지고 밤에는 달빛이 제철소의 화려한 야경과 함께 물에 젖는다. 하늘과 땅이 만나고 산 새 소리, 파도 소리, 바람 소리가 머무는 곳, 아무리 경치 좋은 공원묘지라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운 보금자리다.
영일만 자락 깊숙한 곳에 있는 홍환리라는 곳이고 행정구역상 경북 포항시 동해면에 속한다. 잠시 머물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고민해보았다. 아니 내 나름 주관적인 추리라고 하면 더 정확하겠다.
어미 고양이는 어디서부터 피를 흘리며 왔고 왜 그런 모습으로 떠났을까? 차가 다니는 근처 도로까지는 이백여 미터가 넘는다. 고양이든 개든 걸어 다니는 모든 동물은 포유기에 먹이를 먹어야 한다. 사람들이 먹다 남긴 먹거리라도 구하기 위해서는 한참을 나가야 했을 것, 돌아오는 길에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마지막 사투를 벌인 것으로 보였다. 가슴 한구석에서는 지난 밤의 영상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기다리는 새끼들 생각에 몸이 찢겨나가고 다리가 뭉개져서 피가 흘러내리는 상처를 질질 끌고 왔겠구나. 너덜거리는 살점이 아스팔트 바닥에 짓이겨지는 쓰라린 고통을 참아가며 그들만의 작은 둥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내리고 기력은 잃어가고 있었을 것, 그 순간에도 어미 냄새를 맡은 새끼들은 망가진 품속으로 달려들었을 것이다. 눈은 점점 희미해지고 마지막 힘을 다해 젖을 물렸을 것 같다. 새끼들 몸이 피로 물들자 온 힘을 다해 핥아주다가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을 맞이한다. 무거운 눈꺼풀이 감겨올 즈음엔 품에 안긴 새끼들과 같이했던 짧은 시간을 떠올렸을 거다. 그 순간 홀로 남겨질 걱정에 눈을 감을 수도 없었을 게다.’
비록 상상이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새벽이 오고 있는데 현실을 모르는 새끼들은 식어 가는 어미의 몸속으로 파고들었겠지. 길어야 사나흘? 아니면 더 짧은 시간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끼치도록 숙연해졌다.
고교생 시절 교장선생님께서는 유명한 수필가였다. 직접 쓰신 「거룩한 본능」이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밀렵꾼의 총에 맞아 날 수가 없는 자기 짝을 두고 혼자서만 따뜻한 곳으로 갈 수 없었던 슬픈 새의 이야기다. 목을 감싸안은 채 얼어 죽은 두루미의 사랑은 그 영혼이나마 완벽하게 이루어짐으로써 몰인정한 인간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그것이 서로 사랑하는 철새 부부의 이야기라면 내가 본 것은 자식을 두고 먼저 갈 수밖에 없는 슬픈 어미의 눈물이었다.
어디서 들은 얘긴데 우주의 어딘가에는 수억 조개의 영혼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단다. 거기에는 사람뿐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모든 영혼이 다음 생의 만남을 기다린다고 들었다. 참 뜬구름 같은 이야기이고 누가 지어낸 소설이라 해도 그냥 믿고 싶어진다. 정말 그런 곳이 있다면 해안가 돌무덤에 잠든 어미 고양이도 같이 떠났던 새끼들을 품에 안고 있겠지. 너무나도 짧았던 이생의 인연이 아쉬워서 산과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그리운 고향으로 다시 가고자 멀고 긴 여행을 준비하고 있으리라. 꼭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