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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구성요소와 상상력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철호

수필가 · 한국문인협회 고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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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구성 요소

한 편의 수필이 문학 작품으로 가치를 지니려면 몇 가지 필요한 구성 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흔히 수필은 그 형식이 자유롭고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만 생각해 수필에서는 구성 요건들이 필요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다. 물론 수필은 그 형식이 자유롭고 어떠한 제한이나 구속성이 적은 문학 장르이고 또 ‘수필은 무형식이 형식’이라고 할 만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수필 문학이 이처럼 형식이 자유롭고 어떠한 제한이나 구속성이 적다고 해서 수필로서의 갖추어야 할 구성 요건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즉 수필은 일정한 ‘형식의 틀’이 없다는 것이지, 구성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

이 필요불가결한 구성 요건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즉 주제와 제재, 구성, 그리고 묘사(또는 표현)의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다.

 

(1) 주제(主題)

주제는 그 수필을 통해서 작가가 나타내려고 하는 중심 사상을 말한다. 따라서 수필에서의 주제는 가장 핵심적인 사상이나 중심적 의미가 된다. 수필을 쓸 때 작가는 우선 어떤 사물이나 사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작품 전체를 통해서 나타내 보이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가장 핵심적이고도 우선적인 사상이나 의도가 있기 마련인데 이것이 곧 주제이다. 따라서 주제는 작가의 수필을 쓰는 동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어떤 것을 핵심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의도나 충동, 동기 등에 의해 그 작품의 주제가 설정되는 수가 많은 것이다.

또 그런 만큼 수필 작품 속에는 그것을 쓴 작가의 주제가 잘 담겨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수필을 읽으면서 주제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그 주제가 없거나 있더라도 불분명하고 흐릿하면 말을 많이 하기만 할 뿐 그 말에 조리가 없어 도대체 말하는 의도를 알 수 없는 것과도 같이 독자들을 아리송하게 만드는 잡문에 불과하다. 주제가 무엇이든 수필에는 그 주제가 명확히 담겨 있어야 한다.

이 주제에는 아름다운 인간애, 모순된 현실에 대한 가슴 아픔이나 분노심,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 사랑의 기쁨,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에서 오는 충격과 슬픔, 인간에 대한 미움이나 배신감, 종교적 믿음, 삶의 회의와 갈등 등 많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들은 대개 수필을 쓰는 사람의 평소 가치관이나 인생관, 지적 수준이나 교육 수준, 경험, 성품, 자라온 환경이나 가정 분위기, 직업, 인격 등에서 우러나온다. 또 평소에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이나 사물을 보는 태도 등이 작품 속에 스며들어 주제를 나타내는 수도 적지 않다.

따라서 수필에 있어서의 주제란 그 수필을 쓴 사람의 가치관이나 인생관, 인격, 지적 수준 등이 높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더욱 수준 높고 문학적 가치가 훌륭한 수필 작품을 쓸 수 있다. 상념의 폭이 넓고 이를 잘 정리할 수 있으며 관찰력이 훌륭한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인격 형성과 지적 수준의 향상, 풍부한 경험을 통해 사물과 사건에 대한 안목과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2) 제재(題材)

제재란 작가가 자신의 사상이나 의도 등을 나타내기 위해서 선택한 소재를 말한다. 다시 말해 수필을 비롯한 문학 작품이나 예술 작품 등이 바탕이 되는 재료와 제목 등이 제재인 것이다.

수필에서 제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많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수필의 제재가 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처럼 많은 제재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가시적(可視的)인 제재: 이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유형(有形)의 제재들을 말한다. 즉 꽃이나 나무, 바위, 강물, 들판, 호랑이, 풀잎, 기차, 비 등 그 모양이나 형체가 있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가리켜 ‘가시적인 제재’라고 한다.

② 불가시적(不可視的)인 제재: 이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무형(無形)의 제재들을 말한다. 즉 바람이나 햇빛, 기쁨, 슬픔, 아름다움, 사랑, 배고픔, 미움, 인격, 지식, 추위, 더위 등과 같이 그 모양이나 형체가 없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가리켜 ‘불가시적인 제재’라고 한다.

그러나 가시적인 제재냐, 아니면 불가시적인 제재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어느 것이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쓰는 의도에 가장 적합하고 자신의 사상이나 주제를 잘 나타내는 데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제재를 선택해서 쓰면 된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수필 작품의 주제를 아주 효과적으로 살리고 전체적인 작품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재를 잘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수필에서의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그 주제에 꼭 맞는 제재의 선택이 꼭 필요하다.

맛있는 음식은 우선 싱싱한 재료에서 비롯되며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선 품질 좋은 합당한 재료들을 사용해야 하는 것과 같다. ‘문학 예술에 있어서의 제재는 그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재료’라는 말처럼 수필 작품에 있어서도 주제와 제재가 얼마만큼이나 잘 맞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패가 결정되는 경우도 흔히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와 제재를 설정하거나 선택할 때 어떠한 것부터 먼저 정하느냐 하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의 자유에 속한다. 즉 주제를 먼저 정하고 그에 적합한 제재를 선택하든, 이와는 반대로 제재를 먼저 선택한 후 거기에서 어떤 주제를 찾아내든 상관이 없다. 이것은 작가의 취향이나 작품 의도, 또는 그때그때의 상황 등에 따라 선택하면 그만이다.

 

(3) 구성(構成)

집이나 건물 등을 지으려면 우선 그 용도나 목적, 미관 등에 가장 적합한 설계도를 만든다. 그리고는 이에 따라 각종 필요한 건축 재료들을 마련하여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작업을 하며, 전기, 난방, 배관 등의 각종 시설 작업도 병행한다. 즉 미리 계획된 순서와 선택된 재료 등에 따라 체계적으로 얽어 짜는 작업이 바로 건축 행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필을 쓸 때에도 미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두고 이에 따라 적합한 제재들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 선택된 제재들을 치밀하게 얽어 짜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구성이다. 말하자면 수필을 쓰는 데에 있어서의 구성이란 건축에 있어서의 설계도에 해당되는 셈이다.

수필이 짧은 분량의 글이라고 구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 글이지만 구성을 통해 주제를 올바르게 드러내고 독자들에게 공감과 문학적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성이 뛰어나고 독자들에게 커다란 공감이나 감동을 안겨주는 훌륭한 수필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구성이 아주 치밀하게 잘 짜여 있다.

최승범(崔勝範)은 「수필의 형식」이라는 글을 통해 수필을 쓰는 데 있어서의 구성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문학 작품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질서 있는 표현 행위에 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비극을 말하며 그것은 ‘하나의 통합이 있는 극적 행동’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 통합에는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기 마련이라고 하겠다. 게오르그 폰 루카치도 ‘사물의 질서 없이는 어떠한 문예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거니와 비단 비극뿐만 아니라 시나 소설도 통합에의 질서를 잃는다면 작품으로서의 성립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수필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장자(莊子)의 비유마따나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아도 이어 주면 걱정할 것이요, 학의 다리가 비록 길어도 잘라 주면 슬퍼할 것이다.’

수필이 짧은 길이의 산문이라고 하여 통합에의 형식을 무시하여 좋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짧은 한 편의 수필이라도 ‘시작과 중간과 끝’에 이르는 통합에의 질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면서 그는 수필에서의 구성은 3단 구성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시작과 중간과 끝’의 질서는 이른바 구성(plot)이라는 것으로 글을 쓰기 전 미리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을 흔히 3단 구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가선 한시(漢詩)의 기, 승, 전, 결과 같은 4단 구성, 프라이타그가 말한 발단, 상승, 절정, 하강, 대단원에 이르는 5단 구성을 말하기도 한다. 수필에서도 4단, 5단의 구성을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보다도 3단 구성이면 족하리라는 생각이다. ‘미리 주어지는 질서는 질서화하는 정신을 오히려 마비시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수필의 자유분방성을 살리기 위해서도 3단 구성의 형식으로 수필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수필의 구성 방법을 단순구성과 복합구성의 두 가지로 나누어 보는 견해도 있다.

① 단순구성: 이는 단편소설에서 많이 쓰이는 구성 방법이지만 수필에도 적용된다. 말 그대로 단순한 이야기를 단순하게 이끌어가는 구성법을 말한다. 이 구성법의 장점은 하나의 이야기를 단일하게 나타내는 것이므로 주제를 파악하기 쉽고 누구나 쉽게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독자들의 시선을 한곳으로 모을 수 있으며 단순, 명료한 장점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법은 독자들에게 단조로운 느낌을 주기 쉽다.

② 복합구성: 이 구성 방법은 사건의 전개를 다양하게 얽어 짜서 구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장편소설에서 흔히 사용되는 수법이다.

물론 수필에서도 이러한 구성법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수필은 그 분량이 짧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이 따른다. 따라서 짤막한 수필 속에 복잡하고도 다양한 구성을 얽어 짜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문학적 압축 능력이 요구된다. 수필의 초보자보다는 원숙한 경지에 이른 수필가들이 쓰기에 적합한 구성법이다.

 

(4) 묘사(표현)

수필을 쓰는 데에 있어 주제의 선정과 제재의 선택, 그리고 치밀한 구성이 끝나면 이를 바탕으로 글을 써야 한다. 이때 어떤 이야기의 줄거리나 상황, 감정, 느낌, 생각, 사상, 의견, 의도 등을 잘 나타내야만 수필 작품으로서의 가치와 생명력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를 가장 적합하고도 효과적으로 묘사, 또는 표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또 이를 위해서는 뛰어난 문장력과 독특한 문체, 다양한 표현 능력, 풍부한 언어 지식 등이 반드시 요구된다. 즉 문학적인 표현 기교가 훌륭해야만 그 작품의 주제와 제재, 구성 등이 모두 선명하게 살아나며 문학적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흔히 여러 사람이 똑같은 꽃 하나를 놓고 그리더라도 그것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예술적 감각과 표현 능력이나 기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데, 수필에서의 묘사, 또는 표현이란 이 꽃을 얼마만큼 예술적으로 잘 그려내느냐 하는 능력이나 소질과도 같다.

수필에서의 상상과 상상력

문학이란 원래 상상력으로 일으켜 내는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문학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수필 또한 상상력으로 일으켜 세우는 건축이다. 혹 상상력이라고 하면 허구라는 말부터 떠올리며 상상력과 허구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필이 상상력으로 일으켜 세우는 건축이라면 소설처럼 허구를 수필에 써도 된다는 말인가’ 하고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상력과 허구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상상력과 허구는 어떻게 다른가? 허구란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얽어서 꾸며내는 것을 말한다. 문학에서 말할 때에는 실제로는 없었던 사건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구체적으로 작품 속에 반영되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상상력이란 어떤 것을 상상하는 힘을 말한다. 그리고 상상이란 어떤 것을 미루어 생각하는 것, 또는 이미 아는 사실이나 관념을 재료로 하여 새로운 사실과 관념을 만드는 작용을 말한다.

그런데 문학에 있어서 상상력이나 상상은 절대적이다. 상상력이나 상상을 통해 작품을 구상하고 작품의 흐름이나 윤곽을 잡고, 이에 따라 글로 써내기 때문에 상상력이나 상상이 없이 쓰일 수 있는 문학 작품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가나 예술가에게 있어서 풍부한 상상력은 곧 힘이다. 또한 문학가나 예술가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보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만일 풍부한 상상력이 없었더라면 문학가나 예술가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강한 힘’이 필수조건이요 무기라고 한다면, 문학가나 예술가에 있어서는 ‘풍부한 상상력’이 곧 필수조건이요 무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뛰어난 문학가나 예술가들을 보게 되면 천부적으로 풍부하고도 훌륭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문학이나 예술은 보다 새롭고 독특한 것을 창조해 내는 창작 행위이다. 때문에 창조와 창작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상상력은 더욱 많이 요구된다.

수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수필이 자신이 겪은 체험이나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그대로 표현하는 문학이라고 할지라도 풍부하면서도 독창적인 상상력이 있어야만 좋은 수필 작품을 써낼 수 있다.

그러나 수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실과는 다른 상상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그대로 쓸 수는 없다. 즉 허구는 일반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쨌든 상상력이나 상상은 허구와 분명히 다를 뿐만 아니라 수필의 문학적 가치를 높이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이다. 게다가 독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안겨 주고 문학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데에 있어서도 상상력이나 상상은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흔히 수필에서는 소설에서와 같은 클라이막스나 극적인 효과가 없거나 있더라도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수필에서도 작가의 풍부하고도 독창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굳이 허구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문학적 클라이막스나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또 어떤 사물이나 사물를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하려고 할 때나 과거를 회고할 때, 또는 어떤 사실을 재현하고자 할 때 등 많은 경우 풍부하고도 독창적인 상상력은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글을 쓰는 데에 있어서의 상상력이나 상상은 단순히 어떤 것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함께 수없이 떠오르는 상념이나 소재들 중에서 필요한 것들만 골라내고, 이것들을 서로 얽고 구성하여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나 줄거리로 만드는 작업도 된다. 즉 머리 속에 산재(散在)해 있던 갖가지 상념이나 소재들을 솎아내고 정리하고 서로 결합하여 가시적이고도 통일된 형상으로 만들어 내는 작업. 이것이 바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상상력과 상상인 것이다.

수없이 떠오르는 상념이나 소재들을 아무렇게나 방치하거나 그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모아서 엮는 것은 결코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상력이나 상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잡념이나 망상일 뿐이다.

김시헌(金時憲)은 「허구와 체험의 사이」를 통해 상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상상에는 생산적인 상상이 있고 소비적인 상상이 있다. 생산적인 상상은 유용하고 유익한 결과를 낳지만 소비적인 상상은 상상에 그칠 뿐 어떤 결과도 낳지 않는다.

소비적인 상상을 공상(空想), 환상(幻想), 망상(妄想)이라고도 한다. 소비적인 상상이 지나칠 때 사람은 정신적인 피로를 가져오고 신경이 쇠약해지며 더욱 심해지면 정신에 이상이 오기도 한다. 그러나 생산적인 상상은 과학자일 때 새로운 발명과 발전을 낳고 예술가일 때 작품을 낳는다. 철학가, 종교인도 많은 상상을 하지만 그것은 상상이라기보다 사색이라고 할까, 유형(有形)의 물체를 생산하기 위한 상상이 아니고 진리와 진실을 얻기 위한 상상이다. …

그러나 예술가는 작품을 자기의 분신으로 생각한다. 자기 안에 있는 정신의 정수를 최대한으로 작품에 옮기려 한다.

그러자면 수없는 사색을 해야 하고 사색한 결과를 작품에 넣기 위해서 구상을 해야 한다. 사색과 구상의 과정이 상상에 의해서 진행되고 설계가 이루어지면 또한 상상을 통해서 실물화 한다. 예술작품이 얼마나 우수하냐는 작자의 철학이 얼마나 높은 곳에 가 있고 그 철학이 미학적(美學的)인 여과를 어떻게 거쳤으며 그것을 의도대로 실물에 옮겼느냐에 달려 있다.

그의 이런 말처럼 수필도 따지고 보면 상상을 통해서 실물화 하는 작업이다. 또한 수필이 보다 문학적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색과 구상, 작품설계 등과 같은 상상의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상상력은 훌륭한 수필을 창작해 내는 힘이다. 머릿속에서 많은 것들을 그려보고 사색하고 구상하는 완벽한 설계를 마친 후에 비로소 글을 써야 한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상상력이나 상상을 허구와 같은 것으로 여겨, ‘수필에서는 허구가 용납되지 않으므로 상상력이나 상상도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 수필을 쓰는 데에 있어서 폭넓고도 체계적인 상상이나 훌륭한 상상력이 반드시 요구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주제와 소재 등을 대충 머릿속에 그려본 채 곧장 펜부터 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태도는 결코 올바른 수필작법이라고 할 수 없다. 특히 수필을 새로 써 보고자 하는 사람이나 수필가 지망생은 더욱 이러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사실 수필 한 편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소설 한 편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에 비한다면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수필 한 편을 쓰고자 한다면 펜으로 직접 글을 쓰는 시간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창작적 상상으로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상상력을 모두 동원해서 정말 좋은 수필 한 편을 탄생시키기 위한, 고뇌가 깃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마치 카피라이터가 한 줄의 멋진 광고 문안을 쓰기 위해 고뇌하며 온갖 상상을 다해 보는 것과도 같다. 또 시인이 멋진 시구 하나를 잡기 위해 수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과도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수필 한 편은 짧지만, 좋은 수필 한 편이 태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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