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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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 무렵에 충청도 부여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어언 반세기나 지났다. 지금도 어렴풋이 고향의 강물은 동심으로 흐른다. 둥구나무와 시골길이 아득하여 소풍날처럼 설렌다. 나의 시심은 늘상 그렇게 고샅길을 지나 도시의 신작로에 닿았다.
이처럼 내 작은 문학의 언저리는 맨먼저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동심의 울 안에서 움을 틔운 새싹들의 떨림이다. 어느 날 굴레방다리를 지나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 왼쪽으로 돌아서 내려가면 신촌 로타리를 돌아 저만치 철교 다리가 보였다. 한참 나중에 가슴이 부풀 때 새삼 알게 된 지명들이다. 철길을 달리는 기차는 옆 동네를 거쳐 보이지 않게 지나가곤 했다. 몇 칸이나 매달고 가는지 한 칸 두 칸 수를 손꼽으며 해가 저무는 날이 많았다.
그때부터 보이질 않는 어떤 상상의 동네를 꿈꾸게 했다. 그것이 푸른 하늘의 구름을 보게 했으며 수채화 같은 외갓집 논두렁의 뜸북새를 알게 했고 뒷동산의 뻐꾸기도 생각나게 했다. 그러한 정경이 훗날 얼마나 그윽한 낭만의 판타지아로 울컥했는지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아마도 그러한 날들이 단발머리 소녀가 되어 무거운 가방을 들었을 때 비둘기의 울음소리를 언어로 받아 적을 줄 아는 신나는 글감의 소재가 된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어설픈 시와 시조를 쓰게 된 동기다. 그 재미를 터득한 것이 바로 동심의 세계를 회상하여 글을 엮는 어쩌면 내가 말하고 싶은 자랑거리이자 시창작의 습작기가 아니었을까.
일상적인 가정을 꾸리며 각박한 현실과도 때로는 부대끼고 타협하며 살았다. 그 희로애락의 세월을 다시금 불러내어 새삼스레 기억을 되살린다. 그 순간들이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아니 더러는 무거운 마음을 다독인다. 지나간 날들의 내 모습과 모양을 가감 없이 말한다. 그날의 동경하던 목가적 풍경은 도심의 불빛과 인조된 문명의 허사비와도 일상처럼 만나고 있다. 시시때때로 떠도는 시상을 채집하여 메모를 하고 그 위에 낭독으로 덧칠하여 추상하는 것이 삶의 과제가 됐다.
나를 두고‘낭송인’이라 불러주는 사람이 더러는 많다. 아마도 이러함이 지금의 시와 낭송에 이르게 한 밑거름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더 욕심을 부려 직조된 시의 너른 광목에 다시 목화꽃을 피워내며 더러는 목청의 색실로 수를 놓는 시인과 낭송인의 이데아를 향하여 줄달음쳤는지도 모른다.
그런저런 바람으로 낭송인이 시를 만나는 통로가 어디인가를 찾게 되었다. 등단이라는 그 길을 만나 어엿한 글문의 이름표를 달고 싶었다. 은근히 마음을 깨물며 갈망했다. 도자기는 장인이 흙을 주물러 요(窯)로 구워내지마는 문인은 언어를 가슴으로 달구고 두드려 글을 짓는다는 엄연한 이치에 도전하고 싶었다.
과연 등단이 무언가. 귀 너머로 들리던 시창작 시간에서의 막연했던 생각이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무심코 들었던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낭송의 목청을 연 지 한참 지난 뒤였다.
‘그래 한 번 문을 두들겨보자. 강둑이 터지면 물은 들판에 또 다른 줄기를 만들며 흐르지 않던가. 내 안에 고여서 가두었던 시심의 둑을 무너뜨리어 세상 속으로 흐르게 하자.’
얼마간 날이 지났다. 어느 지인의 귀띔으로 용기를 내어『제3의문학』의 신인문학상 시부문에 응모를 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신인상 당선을 축하합니다.’
마음 한구석에 얹히고 응어리졌던 핏덩이가 풀어지며 이윽고 서산의 노을이 내 옷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그날에 날아오르던 내 맘의 불꽃은 지금도 환하다. 결코 잊혀지지 않을 나만의 영원한 동그라미다.
이렇게 유년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세상을 더러는 터득할 나이에 비로소 내 문학의 꿈이 부화된 것이다. 알아도 모르는 긴 여정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시는 낭송에 기대며 낭송은 시를 붙잡고 세상의 풍경 속으로 침목을 놓으리라 다짐하는 맘으로 시간이 벅찼다. 시는 낭송을 초대하고 낭송은 시에게 가락을 선물하며 서로서로 낭송문학의 페스타가 이 땅에 뿌리내려지기를 이상을 품고 행진해야만 한다.
등단의 문턱을 넘어선 지도 강산이 변할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야 조금씩 시가 보이고 시낭송이 귓전에 닿는 것 같다. 시는 글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정신으로 짓는 것이라는 크나큰 명제가 무게로 다가온다. 그저 끼와 사명만 가지고 글이 세상과 살아지지 않는다는 엄연한 이치와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 문학이 어찌 저만의 고집과 개성으로만 서겠는가.
시가 인간의 아름다운 꿈이라면 시낭송은 시의 언어이자 노래다. 시의 화신이며 언어의 편지다. 적어도 나에게 시낭송은 시의 꽃을 가꾸고 피우는 소박한 마당의 화단이다.
과연 문학과 시낭송이란 어떻게 화친해지는가. 얕고도 깊은 고뇌와 갈등이 글 쓰는 밤잠을 설치게 할 때도 많다.
문학을 거꾸로 읽으면 학문이다. 오늘날 대중이 바라보는 문학의 보편적 가치는 학문이라기보다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문화적 비타민으로 여기는가 싶기도 하다.
나의 시창작과 낭송을 품는 전적인 지론은 짓기와 소리로 감동하는 시간의 리듬이며 더 나은 삶의 의미에 봉사하는 몸짓이라 여긴다. 시와 시낭송은 대중과 호흡하는 정신적 화음이자 양분이 아닐까.
‘즐기지 못하는 시가 무슨 의미로 사람 간의 화친을 도모한단 말인가.’ 이 말을 전적으로 공유한다.
그렇다. 시에서 시를 만나기보다는 시 안에 숨은 착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어디 한번 시를 가슴으로 읽고 낭송으로 불러보라. 숨은 사람이 걸어 나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낭송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시낭송은 시의 심부름이 아니다. 시와 함께 삶의 의미를 공유하여 서로 마주 드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시와 낭송의 향수이자 작은 바람이기도 하다.
바로 시와 낭송의 샹그릴라(Shangri-la)는 여기에 있다. 그래 시와 낭송이 화친하며 문화적인 삶의 질을 높이고 인간의 다정다감한 어깨동무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므로 채워지지 않는 현실적 욕망의 갈등과 부대끼며 사는 것이 보편적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비상구를 통하여 용기있게 벗어난 지점에서 문학적 감성이 지시하는 팻말을 꾸준히 만나야 할 일이다.
나아가 문학과 낭송이 내포하는 성품을 북돋워 주고 싶다. 어느덧 멀미를 모르고 시와 낭송의 호기심으로 색종이를 꽤 많이도 접었다. 하늘에 날리고 강물에 띄운 것도 많다. 그러기에 그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와 시낭송이 내 삶의 든든한 파수꾼이 되어주고 있으니 참으로 반갑고 대견하다. 나의 시와 시낭송은 아침의 창문이 되었고 소박한 바람의 종소리는 목청의 깃발로 나부낀다.
제 이야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께 안부를 전하며 자작시 한 편을 낭송해 올린다.
창가의 햇살을
떼어 놓고
현관문 열쇠를 챙긴다
칭얼대던 시간을
속으로 달래며
지하철 계단을 접으면
정류장마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여물어 가고
내 신발도 철이 든다
- 이은다,「 출강하면서」전문
주저리주저리 수다를 떤 것 같다. 문단에 오름은 가슴에 명찰을 다는 일이며 작품 속의 제 이름을 불러보는 것이다. 내내 문인의 길이 화창하길 소망하며 창작의 숲에 고마운 마음을 여민다.
내일은 고향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