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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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가 건강에 도움 되는 것이야 익히 안다.
일본 저명 의사의 저서『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도 읽어 보았다.
살아온 햇수가 시렁에 올려놓은 이불처럼 수북하게 쌓이면서 알던 사람도 시나브로 멀어지고 가끔씩 주고받던 소식도 뜸해진다.
시간이 남아돌아 시작한 걷기가 이태나 된다.
일주일에 서너 번 꼴로 걷기 운동을 하는데 거리를 따져 하루에 3킬로미터 남짓 된다.
서천 가를 걸을 때도 있고 야트막한 뒷산 산책로도 걷기 코스이다.
그러다가 차량을 운전하여 좀 먼 곳을 찾아 발길을 넓혔다.
그날, 하늘은 곱고 푸르고 대기는 맑다.
여느 때처럼 소수서원 주차장에 차량을 세워 놓고 소백산 자락길을 따라 호반의 데크길로 들어섰다.
호수는 가을비가 내려 만수이다.
잠을 자듯 잔잔한 수면에는 철새 떼가 물무늬를 지으면서 떠다닌다.
한 놈이 조금 앞서고 무리가 뒤를 따르는 모양새이다.
벤치에 앉아 햇살에 온몸을 맡긴 채 바라보니 작은 놈은 작은 놈끼리, 큰 놈은 큰 놈끼리 모여 만추의 하오를 즐긴다.
가장자리에는 북녘에서 날아와 추위에는 이골이 났을 텐데도 부리를 날갯죽지에 감추고 미동하지 않는 새들도 있다.
가을 햇살에 낮잠에 빠져든 것일까.
무리를 저만큼 두고 떨어질세라 몸을 붙인 두 마리는 정담을 속삭이는 연인인 모양이다.
한 동네에서 자란 단짝 친구일지도 모른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갯짓을 하여 호수까지 왔을 텐데 먼 길을 날아온 기운이 신기하다.
해마다 길을 잃지 않고 용하게 남쪽 나라를 찾아오는 눈썰미가 신비롭다.
데크길 안쪽에 지은 전원주택을 지나 모롱이를 돌았을 때였다.
맞은편에 할머니가 오기에 한쪽으로 길을 터 주어 지나가려는데 걸음을 멈추고 “어디에서 오셨어요?” 하고 불쑥 물었다.
순간 의아스러웠다.
낯선 사람에게 온 곳을 묻는 것이다.
자그마한 체구의 칠십서너 살쯤의 할머니이다.
반백의 머리와 달리 볼 살이 오른 뺨이며 웃음기를 살짝 머금은 표정이 소녀 같은 인상이다.
“시내에서 왔어요”하는 대답에 이어 “서원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해 두고 호수가 끝나는 갈림길까지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아는 사람을 모처럼 만나 반갑다는 듯 미소 띤 표정으로 “풍기 알지요?” 하고 묻는다.
이 고장 사람으로서 이웃인 풍기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싶어 공연한 질문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나는 서울 토박이인데 풍기 태춘당약국이 시댁이에요.” 말하자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태춘당약국이라면 국민학교를 함께 다닌 화가라고 불리던 급우가 대뜸 생각난다.
화가는 대학을 마치고 잠시 풍기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그때 태춘당약국 집 아가씨를 사랑하여 결혼했다는 얘기를 소문으로 들었다.
교직을 그만두고 울산의 대기업 조선회사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화가 얘기를 듣지 못했다.
어릴 적의 기억이 있을 따름이다.
화가가 어떻게 살까 하는 궁금증이 일 때가 있었다.
체격이 우람하고 약간 불그스레한 안색이었다.
말씨가 느린 편이었다.
동갑 나이인데도 체격이 두어 살 많은 형아처럼 컸다.
공부도 잘했지만 교내에 이름을 알린 것은 그림 솜씨였다.
학교 사생대회에서 늘 입상을 했고 대외 행사에도 참가하여 상을 받았다.
급우들은 그를 화가라고 별명을 붙여 불렀다.
미대를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경북사대 부속중고를 나와 한양공대에 진학했다.
화가네 어머님과 내 큰누님은 육이오 때 남편을 잃은 이른바 미망인이었다.
화가네 어머님은 남매를, 누님은 딸 셋을 홀로서 바느질을 하여 키우는 처지였다.
이따금씩 누님의 심부름을 받아 화가네 집에 갔는데, 안방은 누님의 방처럼 알록달록한 옷감과 천 조각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화로에는 언제 보아도 인두가 꽂혀 있었다.
할머니가 한 교실에서 배우던 화가를 그려보는 나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똑같은 질문을 한다.
“시내 영주에서 왔다”고 조금 전에 한 말을 되풀이했다.
“뒤편 산골에 있는 집이 몇 해 전에 지은 우리 집인데 가자”면서 이끈다.
‘오늘 걷기는 별나게 되었네. 태춘당약국의 할머니를 만나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 한 분이 아치 모양으로 만든 대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에 흩어진 낙엽을 쓸어 청소를 한다.
할아버지에게 화가와 국민학교 동기라고 말하면서 인사를 올렸다.
많은 보수를 받는 좋은 일자리를 얻었으므로 서울에서 사려니 여겼는데 할아버지가 “오 서방은 퇴직한 후에도 울산에 산다”고 말한다.
옆에 선 할머니는 웃음기를 머금은 표정을 지으면서 또다시 “어디서 왔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제야 할머니가 기억력이 온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할아버지가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치매기가 약간 있다”고 할머니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조심스럽게 말한다.
할머니는 귀는 퍽도 밝은지 나를 보면서 “아닌 거 알지요?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 맞지요?” 묻는다.
내가 슬며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잠시 쳐다보다가 “치매기가 좀 있어도 척하면 삼천리라고 눈빛만 봐도 당신 속마음까지 알 수 있으니 신경쓰지 말아요. 아무런 불편도 없으니까요” 말하자 할머니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앞니가 드러나도록 빙그레 웃는다.
할아버지는 눈빛만 보아도 속마음을 훤히 알 수 있다고 말했지만 할머니가 호반을 산책하여 기억력을 온전히 회복하면 더욱 좋은 일이다.
한가로이 노는 철새들을 보면서 할머니가 한 말대로 ‘아무렇지도 않기’를 마음속으로 거듭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