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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은 선물이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남복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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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은 온기가 있다.

포목 도매업으로 열 명이 넘는 대가족 생활이 큰소리 없이 살아가는 데는 외할머니의 미소와 희생으로 생각된다.

외할머니는 여름이면 찹쌀미숫가루 준비하시느라 고두밥을 짓고 채반에 말려서 방앗간에 가서 미숫가루 준비하여 서울로 유학 간 넷째 외삼촌 간식을 만드시고 수박 철이 오면 수돗가에 만든 네모진 물통에 참외, 수박을 담가 놓으시고 얼음 띄운 수박을 먹는 날은 여름 잔치다.

참외 속이 주홍빛인 개구리참외도 별나게 맛있고 샛노란 참외는 도시에서 온 말쑥한 오빠 같은 느낌이었다.

한 살 적은 막내 외삼촌과 국민학교 다닐 때다.

소풍날이면 네모진 나무 찬합에 새우튀김 등 별난 반찬들을 준비하는 소풍날 아침은 외갓집 잔치 같았다.

1950년대 국민학교 다닌 막내아들과 첫 외손녀의 학교 행사는 귀중했다.

국민학교 소풍, 가을 운동회 날은 동네 잔치다.

만국기가 펄럭이고 학생들이 만든 세모난 깃발을 들고 덧버선과 블루머스를 입고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학교 운동장에 들어갈 때는 행복감이 가득 찬 설레는 소년소녀가 된다.

오자미로 상대편 바구니 터뜨리기와 매스게임, 청백군 이어달리기는 가슴을 졸이면서 관람하는 경기다.

어깨동무하고 청군 백군 이겨라 외칠 때는 온몸으로 승리를 기원하는 병사가 된다.

지금도 기억나는 가을 운동회에 찐 밤 목걸이, 곱슬머리 오징어채 마른 반찬은 오래도록 좋아한다.

유년의 추억이 오래 감은 무슨 연유일까.

외갓집에서 가을이면 메주콩 삶는 냄새가 집 안에 퍼진다.

노오란 콩이 가득 까만 가마솥에서 웃고 있다.

다음은 도구통에 넣고서 외삼촌이 치고 외할머니가 도구통 가장자리로 나온 콩을 안으로 밀어넣으시면 메주콩은 부서지면서 뭉쳐진다.

다 되어 가는데 순간 박자가 안 맞아 외할머니의 손을 다치셨다.

온 가족의 걱정은 컸다.

다행히 빠른 치료로 회복이 되셨다.

부드러운 콩이 곱게 찧어져서 대청마루에 돗자리를 펴고 벽돌 2개쯤 크기로 모양을 잡고 자연 통풍으로 간수한다.

장난으로 구멍도 낸 막내 외삼촌은 웃으며 야단을 맞는다.

외할머니가 만드신 팥죽도 별미다.

동지가 돌아오면 큰 솥에 붉은 팥을 삶고 아이들과 여인네들은 새알심을 만든다.

작은 구슬처럼 예쁘게 동글동글 빚어 쌀가루 뿌린 상 위에 던진다.

경쟁하듯 몇 개씩 욕심부리면 큰 구슬 작은 구슬이 손 안에서 섞여 모양이 없다.

즐거운 풍경이 끝나고 펄펄 끓는 팥 국물에 새알심 넣고 한소끔 끓이면 어우러진 붉은 팥죽이 탄생한다.

대청마루에 차려놓고 아이들은 나이 수대로 그릇에 떠준다.

지금 생각하면 가족 행사 중 감사의 마음이 들어간 의식이다.

쉽게 사 먹는 팥죽과는 의미도 맛도 다르다.

바쁜 세상이 되어 시간상 노력 대비 경제 대비 등을 따지면 사 먹는 게 맞다.

늦게 철들어서인지 이번 동지에는 적은 양이라도 직접 준비해야겠다.

붉은 팥죽을 아니 뜨거운 사랑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지 팥죽을 만들어주셨던 외할머니를 떠올리고 싶다.

외갓집에는 학독도 있었다.

키가 작고 펑퍼짐한 야무진 아낙 같은 돌 절구다.

씻은 쌀과 흑임자를 넣고 갈면 회색이 된다.

몸이 아플 때 또는 별식으로 먹는 흑임자죽은 외할머니의 특별한 솜씨다.

작은 유기그릇에 담긴 흑임자죽의 추억도 귀하다.

조용하고 잔잔한 미소의 외할머니 음식 솜씨를 물려받은 이모가 계셨다.

내가 어릴 적엔 책을 많이 보던 이모다.

중학교 다닐 때 집에 『현대문학』이 있었다.

내용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으나 삽화가 좋았다.

글 내용을 표현하는 삽화 그중에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작가의 작품이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는데 근래에 김종영 미술관에서 전시된 작품을 구경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화가이면서 조각가이신 그분의 작품이 있어 감회가 컸다.

작은 씨앗이 뿌려지는 유년기가 이렇게 중요함을 새삼 느끼고 있다.

어릴 적 그림일기 쓰기 친척집 방문 할아버지 댁 방문 등의 추억이 쌓여 훗날 어른이 되면서 글쓰기 그림 감상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나를 키운 것의 팔 할은 외갓집이고 그중에서도 외할머니의 잔잔한 미소와 손에 물 마를 틈이 없이 가족에게 별난 음식을 준비하셨던 외할머니가 계셨기 때문이다.

종이책을 좋아하는 내게 보물이 있다면 빠르게 음식을 만드는 막내딸, 곰국을 정성스럽게 끓이는 큰아이, 파스타집을 운영 중인 아들이 있어 외할머니의 음식 솜씨가 조금은 전수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이 또한 외갓집에서 받은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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