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낡고 스러져 가는 것들의 흔적

한국문인협회 로고 정하정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조회수54

좋아요0

더그매를 바라본다.

창고의 지붕 아래 물건을 보관하는 조그만 다락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 쓰던 농기구들이 제 용도를 다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어지럽게 얽혀 있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 오셨다가 육신이 쇠하도록 농사를 짓던 흔적을 잠시나마 볼 수 있어 그리움을 달래는 곳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더그매 밖으로 길게 삐져나온 여남은 개의 장대다.

밤과 감 농사를 지은 흔적이다.

허옇게 바랜 것도 있지만 아직 쓸 만해 보인다.

9월 초가 되면 밤톨이 익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의 한 달 동안 일꾼을 얻어서 밤 줍기를 했다.

떨어지는 밤만 주워도 충분히 한 장거리가 되었다.

어느 정도 익어가면 줍는 게 아니라 따기 시작했다.

10월 초가 되어도 떨어지지 않은 밤은 대나무 세례를 맞고서 몽땅 땅으로 떨어져야 했다.

몇 개의 장대 끝에는 감나무 가지를 꺾을 수 있도록 깍지가 만들어져 있다.

장대 아래 싸리나무 채반 하나가 쭈그러진 채로 끼어 있다.

어머니가 산나물이나 야채를 말릴 때 햇볕으로 나앉던 물건이다.

주로 햇빛이 있어야 외출하는 날이 많은데 나무 고임새 위에 얹혀 물기를 말리고 미라가 되어 가는 채소들의 잠자리가 되어 주었다.

아버지는 겨울이면 싸리나무를 꺾어다가 채반과 마당을 쓸 빗자루를 만들곤 하셨다.

장대 위로 덕석 대여섯 장이 돌돌 말린 채로 쌓여 있다.

타작이 끝나고 나면 마당에 죽 펴놓고 나락을 널어 말리는 용이었다.

덕석 위의 나락을 말리고 호시탐탐 노리는 달구 새끼들로부터 나락을 지키는 일은 내 몫이었다.

마루에 앉아 긴 장대를 걸쳐 놓고 닭이 오면 장대를 흔들거나 들어서 위협을 하는 어린 파수꾼이었다.

닭들이 눈치를 봐야 하는 무서운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잠시 잠이 들면 덕석은 닭의 놀이터가 되었다.

닭의 파헤치며 먹는 습성 때문에 덕석 밖으로 나락이 흩어져 엉망이 되곤 했다.

나락을 빨리 말리기 위해서 시간마다 맨발로 까슬까슬한 나락을 골골이 지나가며 뒤집어야 했다.

왼발 오른발을 덕석 바닥에서 떼지 않고 밀고 다니며 마치 밭이랑을 만들어 놓듯 나락 골을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르면 또 쌓였던 두둑을 뒤집어 반대로 골을 만들어 골고루 마르도록 햇빛을 쐬어 주었다.

잊혔던 그 시간이 다시 떠오르며 나락의 가시랭이가 발을 찌르는 듯 작은 아픔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따뜻했던 그때의 햇살이 비쳐 들어온다.

덕석 옆으로 꼴망태 하나가 끼여 있다.

새끼를 엮어서 만든 망태는 방과 후에 꼴을 베거나 나뭇잎을 담아오는 용으로 주로 쓰였다.

내 등짝보다 조금 크게 만들어진 망태는 아버지가 나의 몸무게를 가늠하고 만든 맞춤 가방이었다.

내가 커가면서 망태의 크기도 커졌다.

욕심이 얼마나 컸던지 나는 늘 발로 꽉꽉 눌러 채워 무겁게 이고 왔다.

망태의 양 모서리가 머리 밑으로 처져 어깨가 망태를 이고 오는 모양새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칭찬 한마디 안 하셨다.

나는 당연히 해야 하는 숙제를 빨리 해치우고 저녁 무렵에야 신작로로 나가 아이들과 놀곤 했다.

깊게 팬 나무절구와 공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옆으로 누워 있다.

절구의 아가리에는 두들겨 맞아 닳고 팬 자욱이 있고 속에는 마치 멍이 든 듯 붉은색이 남아 있다.

고추를 빻았던 흔적일 것이다.

몸통은 갈라지고 바래어 허연 버짐이 올라온 듯 메말랐다.

어머니는 갈아야 하는 것들을 이 나무절구나 샘물가에 있는 돌절구를 이용해서 분쇄를 했다.

벽 쪽으로 기대선 바지게 두 개는 아버지와 함께한 날이 가장 많은 친구다.

지게에서 벗어나 접힌 채로 쉬고 있다.

싸리나무의 색은 잘 변하지 않는지 갈색이 그대로 보인다.

바지게는 아버지의 지게에 얹혀 매일 들로 나갔다.

무거운 짐을 져서 나른 아버지는 어깨와 등이 아프면서도 지게를 놓지 못했을 것이다.

구순의 나이에도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일을 했다.

저녁이면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균형을 잡아 엎드린 아버지의 등 위에서 걸어 다녀야 했다.

나의 조그만 발이 아버지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위로했을까.

오른편으로 쟁기와 쓰레가 기대어 서 있다.

굵은 새끼줄을 뜯어냈는지 몸채만 남아 있다.

혼자는 똑바로 설 수 없는 물건들이다.

아버지가 손잡이를 잡고 소가 이끌어야 바로 서서 땅을 팔 수 있었다.

쟁기가 먼저 논을 갈고 쓰레는 모가 잘 심어지도록 물속에서 흙을 펴는 일을 했다.

쟁기는 물이 없는 논과 밭을 갈지만 쓰레는 물이 있는 곳에서만 일한다.

바위라도 들어 올릴 것 같던 쟁기의 기세가 다 꺾이고 흙을 뜨는 삽날에 쇠꽃이 피었다.

손잡이는 나무여서 벌써 달아나고 없고 갈색 쇠꽃으로 몸을 감싼 채 생을 다해가는 모습이 애잔하다.

그 뒤로 물지게가 양팔을 벌린 채 쇠고리를 늘어뜨리고 서 있다.

등판에 닿는 세 개의 사다리꼴 나무판에 목리가 보인다.

수도가 없던 시절, 새벽마다 언니는 냇물을 퍼날라 부엌의 물두멍을 채워야 했다.

언니는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북청 물장수처럼 아침마다 두어 번 물을 져 날랐다.

아마 언니도 이 무늬를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새벽마다 물 담긴 무거운 양철통 두 개를 걸고 다녀야 했을 언니에겐 짐이었고 고달픔이었을 테니까.

양쪽 어깨끈이 푸른색과 하얀색으로 어긋난 짝을 이루어 가난한 시절 아껴쓰던 아버지의 성품을 보여준다.

더그매 아래 벽에는 쥐덫 하나가 걸려 있다.

나락을 퍼 옮기는 짚으로 만든 삼태기도 매달려 있다.

시간이 흘러 낡고 스러져가는 것들 앞에서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더듬는다.

어린 시절 겨울 저녁, 식구들이 모여 가마니를 짜던 아랫방 풍경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아버지는 미리 가마니의 씨줄을 엮어 놓았다.

어머니는 짚을 몇 닢씩 추려 아버지에게 준다.

아버지는 씨줄 사이로 짚을 매겨 넣으며 바디를 친다.

가마니의 몸이 점점 늘어나고 조금 있으면 아버지가 내게 외친다.

더그매에 가서 깨끗한 짚을 가져오라는 명령이다.

나는 얼른 소마구 위 더그매로 달려간다.

곧 차가운 바람과 함께 짚을 안은 어린 내가 쏜살같이 방문을 닫으며 들어간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