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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철호

수필가 · 한국문인협회 고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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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맨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이제부터 과연 무엇을 쓸 것인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수필을 처음 써보는 사람에게 뿐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수필을 많이 써온, 전문 수필가도 맨 먼저 부딪히는 문제이다.

다만 전문 수필가들은 그동안 수필을 써오면서 이러한 문제와 늘 부딪혀 왔기에 수필을 처음 써보는 사람들에 비해‘써야 할 것’을 좀 더 빨리 발견해 낼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 수필을 처음 써보는 사람이나 신인 수필가들은 자신이 이제부터‘써야 할 것’을 발견해 내는 데에 아무래도 서툴기 마련이고, 따라서 좀 더 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여기서‘써야 할 것’이란 다름 아닌 주제의 설정과 소재의 선택을 말한다.

어떤 주제와 소재를 설정하고 선택하여 이를 한 편의 수필 작품으로 빚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한 편의 수필(비단 수필뿐만이 아니라 다른 글도 마찬가지이지만)을 쓰게 될 때 먼저 그 글을 통해 자신의 의도나 목적의식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주제이다.

다시 말해 그 글을 통해 나타내 보이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의도나 중심사상이 바로 주제인 것이다.

글의 분량이 짧든 길든 한 편의 글 속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주제가 반드시 들어 있어야만 한다.

만일 주제가 들어 있지 않거나 뚜렷하지 못하면 그 글은 글로서의 가치가 상실된다.

그야말로 알맹이 빠진 껍데기뿐인 글이 되고 만다.

이에 비해 소재는 이러한 주제를 좀 더 명확히 밝혀주고 그 글의 밑바탕이 되는 재료를 말한다.

다시 말해 수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을 말하며, 우리의 삶의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 것, 또는 어떤 사물의 모습이나 상황 등은 모두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침에 출근이나 등교를 하다가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본 어떤 광경, 신문에 난 어떤 기사나 그것을 보고 느낀 감동, 야외에 나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들꽃,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문득 느낀 생각, 깊은 밤, 잠 못 이룰 때 떠오르던 상념, 친구의 죽음,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나 달, 심지어 버려진 몽당연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든지 발견해 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소재가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수필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해 단순히 그런 것들을 늘어놓기만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소재라고 할 수 없다.

또한 누구나 흔히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나름대로의 정제 과정이나 취사선택을 거치지 않고 되풀이해서 늘어놓는 것도 소재로서의 가치와 수필 작품으로서의 생명력이 상실된다.

비록 흔한 소재일지라도 그 속에서 남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발견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어 보다 새롭고 독특한 시각으로 그려내야만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와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또한 이런저런 소재만 나열해 놓았을 뿐 그것이 그 수필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없다거나 주제의 의미를 충분히 부각시켜 주지 못한다면, 이것도 역시 그 수필의 가치와 작품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물론 수필을 쓰는 데에 있어서 좋은 주제를 설정하고, 그 주제에 아주 걸맞은 소재를 발굴해 내어 훌륭한 수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어떤 소재 속에서 불현듯 좋은 주제를 발견해 내어, 이를 작품화시키는 것도 어렵다.

어쨌든 수필에서는 그 주제가 뚜렷하고 강하며, 신선함과 독창성이 있는 것이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반면에 주제가 약하거나 모호하며, 진부하고 참신함이 없는 것은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또한 주제를 너무 거창하게 잡거나 광범위하게 잡는 것도 좋지 않으며, 가급적 한 편의 수필에서 하나의 주제만을 밀도 있게 다루는 것이 좋다.

그리고 주제 설정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끌 수 있고 호소력이 강한 것이 좋으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을 주제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렇듯 좋은 주제와 그 주제에 적합한 소재 또는 어떤 소재 속에서 주제를 찾아내는 것은 수필 작품의 가치와 문학성을 높이는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래야만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이나 공감, 신선한 충격, 또는 수필을 읽는 기쁨을 안겨 줄 수 있다.

그래서 수필을 쓰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놓고 고뇌와 안타까움에 빠질 때가 많다.

특히 경수필을 주로 써온 수필가들은 보다 멋지고 참신한 주제나 소재를 찾기 위해 더욱 많이 고심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멋지고 기발한 주제와 소재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주제에는 어떤 소재가 좋을까?

이 소재 속에서 좀 더 참신한 주제를 찾아낼 수는 없을까?’

특히 수필에 대한 초보자들은 참신한 주제와 소재를 찾는 데에 더 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그래서 수필 초보자들이 써놓은 수필 작품을 보면 대개 비슷한 주제, 비슷한 소재로 쓰인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수필을 쓰는 사람이나 이제 새로 수필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이러한 평범한 발상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과감히‘발상법의 전환’이나‘사고(思考)의 변혁’또는‘고정관념의 탈피’를 모색해야 한다.

특히 사물을 보는 시각이나 관점, 착상이나 발상, 사고와 상상, 추리와 판단, 결합과 분석, 재치와 유머 감각 등에 있어서 평범함이나 고정관념에서 단호히 벗어나야 한다.

남들과 똑같은‘눈과 귀’, 또는 같은 생각으로는 참신하고 훌륭한 수필 작품을 쓰기가 어렵다.

뭔가 남들과 다르고 독창적인 면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참신한 주제 찾기에 대해 이유식(李洧植)은 그의 수필「수필의 벽과 그 극복의 길」이란 글 속에서 10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참고로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가설(假設)에 입각한 착상: 가령 석굴암을 둘러볼 때 동해를 바라다보고 있는 대불(大佛)의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다.

왜 대불의 체형(體刑)이 정신형의 가냘픈 심성질(心性質)이 아니고 비만형의 영양질(營養質)일까?

만약 심성질이라면?

이런 가설에서 우리는 상상력을 최대로 발휘해 볼 수 있다.

첫째, 그 당신의 유행적이고 전형적인 불상의 체형이 비만형이라면 후덕하고 인자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함에서인가?

둘째, 그것을 조각한 석공의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천민 계급이었던 석공이 가령 못 먹어서 빼빼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평소에 자기 체형이 비만형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수 있다면 그 욕구충족의 투영현상이 그 조각에 형상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해 이런 가설을 세워 상상과 추리를 해 나가다 보면 거기에 걸맞는 참신한 주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2) 유사(類似) 착상: 이른바 아나로지(Analogy)에 의한 착상법인데, 자연계를 잘 살펴보면 그럴 듯한 풍부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자연계 이외에도 습관이나 사고방식이 다른 유럽의 예 또는 다른 소재에서 유사성을 발견해 낼 수도 있다.

가령 공작과 노고지리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어떤 특성을 유추해 낼 수도 있다.

공작은 깃털은 아름답지만 날 수도 없고 노래도 할 수 없는 반면 노고지리는 깃털은 볼품없지만 하늘을 자유로이 나르면서 멋진 노래를 한다는 사실을 통해 사람도 신이 부여한 각자 나름의 능력의 한계와 그 장점이 한 가지씩 있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하겠다.

가령 문명의 한 현상을 맥루한이‘인체 확장설’로 설명하면서 눈 망원경, 다리 비행기, 귀 음파 탐지기 등으로 확장되었다고 했는데, 이 설도 결국은 유추 발상에서 나온 아이디어라 하겠다.

(3) 대비(對比) 착상: 가령 세계의 4대 성인들의 공통점을 비교법을 통해 찾아보아도 흥미로운 수필적 접근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대조법을 통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아시아에서는 톱을 당기면서 자르는데 미국에서는 톱니가 반대 방향으로 되어 있어 밀면서 자른다는 사실과 더불어 스푼 사용에 있어서도 미국에서는 밀어내면서 떠올리는데 우리는 앞으로 당기면서 떠먹는다는 사실을 통해 어떤 이치나 사고방식의 차이점을 도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14) 어떤 사실이나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어보는 착상: 가령 왜 예수의 제자는 12명인가라는 데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볼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는 유대민족의 12지파의 대표로 한정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 정(正)과 부(副)대표를 두었다면 24명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왜 여자는 한 사람도 없는가2라는 의문을 품어 본다면 그런 착상에서 한 편의 흥미로운 수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5) 역(逆)사고의 착상: 기존의 개념이나 가치를 정반대로 생각해 보는 착상법이다.

수필의 묘미가 역설에도 있는 만큼 이런 착상법의 훈련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자가용의 편리성 때문에 요즈음은 자가용 홍수 시대가 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고로 자가용의 불편성이나 위험성에다 초점을 맞추다 보면‘무자가용 상팔자’란 수필이 나올 수 있을 것이고 또‘돈이 많으면 좋다’라는 물질만능 시대의 병폐를 꼬집고 한편 떼강도들의 침입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역사고에서「돈 없음의 행복」이란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역사고법에 착안하여 흥부와 놀부를 두고 이미‘흥부 격하론’이나‘놀부 변호론’이 나왔으며, 나아가 소크라테스의 처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악처로 소문나게 된 크산티페3를 위해 역사고로‘크산티페 변호론’이 나왔던 것이다.

(6) 상식을 뒤엎어서 생각해 보는 착상: 이는 역사고의 착상과 비슷하다 하겠는데 상식선에서 노상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바라다보면 신선한 착상은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 법이니 상식을 뒤엎어서 다시 생각해 보는 노력도 열심히 해 보아야 한다.

(7)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보는 착상: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보면 새로운 것을 창안해 낼 수 없다.

가령‘가을’에 관한 수필을 쓴다고 하자.

고정관념에 매달려 있다 보면‘슬픈 계절’‘천고마비의 계절’‘결실의 계절’‘독서의 계절’중 그 어느 하나를 택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기쁨과 희망의 계절’에다 초점을 맞추어 보면 그런 대로 나마 참신한 착상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8) 시점(관점)을 바꾸어 보는 착상: 사물을 관찰할 때 정면관찰도 있을 것이고 측면·후면·수직·수평·입체 관찰이 있을 수 있듯이 어떤 소재를 택하여 합당한 주제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관점을 바꾸어서 다각적이고 다양한 관찰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런 착상 법은 한 우물을 계속 깊게 만 파고 들어가는‘수직적 사고’가 아니라 여러 개4의 우물을 동시에 파보는 것이 물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이른바‘수평적 사고’와도 통한다 하겠다.

(9)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착상: 낡은 지식이나 낡았다고 생각되는 전통 사고나 사상, 그리고 낡았다 싶은 민속이나 풍속 및 생활습관 등에다 깊은 통찰력과 창조력으로 그것을 새롭게 조명해 보면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가령 분만 시 총각의 붉은 댕기머리를 복부에 얹어 놓으면 순산한다는 속신을 단순히 속신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심리적 무통 분만설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는 해석이 그 예일 수도 있다.

(10) 하이브리드(Hybrid)에 의한 착상: 이런 사고법은 이것저것 서로 다른 이질의 것들을 서로 결합시켜 보는 사고법을 말한다.

발상의 전환을 위해서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다 전혀 관계가 없거나 혹은 인연이 먼 서로 다른 것들을 끌어들여 둘러맞추다 보면 새로운 착상이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5.

위에서 열거해 본 10가지의 착상 법으로 비록 참신하게 주제가 설정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너무 기발하거나 괴벽스러워 보편타당성을 얻지 못한다면 주제로서 가치성이 없다 하겠다.

참신한 주제일수록 가치성·시대(시기)적인 필요성·보편타당성·독창성·개성이 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겠다.

수필6가 염정임(廉貞任)은 그의「숨은 그림 찾기」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수필을 쓴다는 것은 일상에 숨어 있는 그림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고 듣는 사물들과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나의 의식이나 기억 속에 숨어서 밝혀지기를 기다리는 희미한 그림들을 찾아내려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가끔 잡지나 신문에 보면‘숨은 그림 찾기’라는 난이 나온다.

산이 있고 강이 있고 집과 사람들이 있는 바탕 그림에 숨겨진 조그만 그림을 찾는 게임이다.

잎이 무성한 나무속에 물고기도 숨어 있고, 기와지붕 골 사이에는 촛불도 켜져 있다.

여인의 치마 주름살을 잘 살펴보면 조그만 새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 우리가 무심코 스쳐 지나는 일상의 사막에도 우물이 있고, 다 허물어져 가는 빈집 어딘가에 보물 지도가 감춰져 있는 것을 알 수만 있다면….

때로는 많은 날들을 안절부절못하며 보낼 때도 있다.

숨은 그림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바탕 그림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밑그림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무심히 스쳐볼 때 선명하게 떠오르는 윤곽을 포착할 수도 있으리라.

이 글은 누구나 겪으며 살아가는 삶의 일상에서, 평범한 소재 속에 감추어져 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찾아내어 독창적이고 가치 있는 글로 엮어 내는 것이 바로 수필임을 이해하기 쉽게, 또 상징적인 의미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숨은 그림 찾기’나‘일상에 숨어 있는 그림을 찾으려는 시도’가 바로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비결이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수필을 쓰는 사람의 당연한 자세임을 묵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바로 이 같은 자세와 시도, 부단한 노력이야말로 좋은 수필을 빚어낼 수 있는 원천이다.

‘숨은 그림 찾기’에서 세밀한 관찰력이 없이는‘숨은 그림’을 찾아낼 수 없듯이 예리한 작가적 시각과 세밀한 관찰력이 없이는 우리는 하루하루 비슷해 보이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평범한 사건 속에서 결코 좋은 소재를 발견해 낼 수 없다.

사실 누구나 흔히 볼 수 있고 생각해 낼 수 있는 소재나 이미 여러 사람이 자주 언급한 바 있는 문제나 생각들을 또다시 안이한 자세로, 비슷한 내용이나 생각으로 되풀이하는 건 수필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곤충학자 파브르는 곤충들의 신비한 세계를 탐구하고 그 비밀을 벗기기 위해 그의 일생을 거의 다 바쳐 곤충들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세밀한 관찰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저 유명한『파브르 곤충기』를 완성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파브르 곤충기』는 그 후 많은 사람, 특히 어린이들에게 신비한 곤충의 세계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만일 그에게 곤충들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정신과 세밀한 관찰력, 그리고 끈질긴 노력이 없었다면 이 불후의 명저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누구나 흔히 보면서도 이를 무심히 흘려버리는 곤충 세계를 그냥 대충 보아 넘기지 않고 세밀히 관찰하고 연구함으로써 훌륭한 업적을 이룩해 냈던 것이다.

한편 많은 사람이 어떤 대상이나 소재를 바라볼 때 그 대상이나 소재를 좀 더 축소시켜 세밀히 바라다보며 그 속에 담겨 있는 진실이나 가치를 찾기보다는 너무 시야를 넓혀 많은 것들을 바라보려 하고 그것들을 모두 수필 작품 속에 담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어항의 크기는 생각지 않고 작은 어항 속에 큰 고기들을 많이 담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흡사 작은 문구멍을 통해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 비록 작고 제한적인 세계이기는 하지만 그 진기롭고 신비한 세계, 무한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영혼을 뒤흔드는 감동이 담긴 세계,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들 자신 속의 심연深淵을 스스로 들여다보게 하는 세계가 바로 수필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라 할 수 있다.

‘작은 세계’와‘작은 이야기’들로부터 발견해 낸 삶의 진실과 인생의 의미, 끊임없는 탐구와 관찰을 통해 쓰인 수필.

이런 수필이야말로 보다 가치 있고 독자들에게 공감과‘읽는 기쁨’을 안겨주는 수필이 된다.

또한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보려고 하면 시야가 산만해지고 모든 것을 다 볼 수도 없다.

또 이렇게 되면 세밀한 관찰도 할 수 없으며, 문제의 핵심, 주제도 찾아내기 어렵다.

물론 때로는 멀찍감치 떨어져서, 즉 어떤 대상이나 소재를 너무 가까이에서만 바라다보지 말고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관조하는 자세로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그 전체의 모습이나 윤곽을 보다 확실히 파악하는 데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 전체를 역시 세밀히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필 창작에 있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은 좋은 수필 창작을 위한 작가로서의 깊은 사색과 창조를 위한 고뇌와 진통 과정이다.

작가로서의 깊은 사색과 창조를 위한 고뇌와 진통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결코 좋은 주제의 수필이 나올 수가 없다.

모든 문학활동이 다 그렇듯이 수필 역시 끊임없는 정신활동의 산물이다.

즉, 영혼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각성, 또는 자기성찰의 결과를 글으로써 표현해 놓은 것이 바로 수필이다.

그래서 수필을 흔히‘혼(魂)으로 쓰는 글’‘각성된 영혼의 표출’이라고 말한다.

‘정신적 고통의 열매’라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수필 창작에 있어서의 깊은 사색과 창조를 위한 고뇌와 진통 과정은 중요하고도 꼭 필요한 것이다.

사실 사색이란 우리들의 삶과 정신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자성(自省)이다.

또한 우리는 이를 통해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펼치며, 그런 속에서 인생과 삶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자아(自我)의 실체를 다시금 발견하며 각성이나 반성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체득되고 각성한 것들을 글로써 표출한 것이 수필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각성과 반성이란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이요, 삶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또 인생과 인간 존재에 대한 재발견이며, 새로운 의미의 추구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갖가지 부조리한 현실과 모순에 대한 의식 있는 자로서의 갈등과 해결 모색이며,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아픔의 동참’이다.

좋은 수필, 진정한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안이한 자세를 버리고 기꺼이‘작가적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각오에서 주제에 맞는 좋은 수필 작품이 탄생될 수 있다.

수필을 쓰기 위해서 어떤 사물이나 현상, 또는 어느 인물이나 소재 등을 살펴볼 때 그것의 정면에서만 바라본다거나 어느 특정 부분만 바라보는 것은 결코 좋은 태도가 아니며 이러한 자세에서는 참신한 소재를 발견해 내기도 어렵다.

수필다운 수필, 보다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이나 현상, 소재 등을 누구나 흔히 보는 시각이나 한 가지 방향, 또는 정면이나 고정된 한 시각으로만 바라다보지 말고 가급적이면 그것을 사방에서, 또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내면의 모습이나 내면세계를 꿰뚫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때에도 평범하고 고정된 시각에서 탈피하여 다각적인 시선으로 한곳 한곳에 초점을 맞춰 깊이 있게 살피며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나 진실 같은 것들을 차근차근히 찾아내고, 그것들을 다시 깊이 고찰하고 음미한 후에 비로소 작품화시켜야 한다.

비록 어떤 사물이나 현상, 또는 소재 등이 평범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다양한 시각이나 독창적인 관조, 세밀한 관찰과 깊은 사고 등을 통해 바라다보면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미처 발견해 내지 못한, 그 무엇을 찾아낼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로서 수필을 써야 하는 것이 수필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회색의 하늘이 손바닥만 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고 그 아래 노란 타일의 뒷모습을 보이며 교회당 십자가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 있다.

도회지의 봄은 언제나 이렇게 왔다가 또 이렇게 시시껄렁하게 가버리고 마는 것인지….

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면 차라리 울긋불긋한 색상과 자꾸만 마주칠 수 있을 텐데, 책상 앞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왜 그렇게도 을씨년스러운지 모르겠다.

내가 있는 곳이 남의 머리 위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삐걱거리는 일식집의 낡은 계단을 많이 올라와 들어앉은 오두막한 공간, 이 공간 속에서 창밖을 보면 이웃집의 지붕과 굴뚝들이 보인다.

붕붕거리는 자동차 소리가 조금씩 들리고 붉은색의 벽돌담과 청회색의 시멘트 담벼락이 제일 많이 눈에 뜨이는 곳, 이곳에 지금 나는 앉아 있다.

밖에는 보이는 모습과는 또 다르게 집들의 맨 위를, 그것도 굽어 내려다보아야 하는 위치에서 묘한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칼과 그 가운데 동그랗게 자리 잡은 가리마를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지붕의 검정색 기와는 너무나 많이 깨어져 있고 또 그것도 모자라 하얀 석회로 그 구멍을 메우고 있다.

옆으로 거의 쓰러져 누워 있는 안테나를 과연 그 집 주인은 알지 모르겠다.

TV는 열심히 보지만 그 TV를 잘 나오게 해주는 안테나에게까지는 신경을 안 써 주는 주인네.

안방 천장의 도배는 열심히 하지만 그 천장을 유지시켜 주는 지붕 위까지는 미처 눈여겨 볼 수 없다는 마음.

교회당에서는 열심히 설교를 하고 기도를 올리고 십자가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 그 지붕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의 먼지는 채 발견하지 못하는 목사님, 교회 앞모습은 그런 대로 근엄하게 지었어도 뒷모습은 마치 가리려고 했던 치부를 드러낸 듯 지저분하고 너무 안이한, 표리의 부동.

그 모습들은 지금의 내 위치에서만이 정확히 잘 보인다.

누구도 그것들은 보지 못하고, 또 굳이 볼 필요가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회색빛 하늘은 그러한 모습과 어울려, 뭐랄까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참 우습기도 하다.

이 글은 필자가 쓴「봄의 뒷모습」이란 수필의 일부이다.

흔히 봄을 묘사하는 수필에 있어 봄의 아름답고 화사한 모습이나 희망과 설레임에 찬 모습이나 느낌, 또는 지난날의 봄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나 향수, 청춘과 낭만 등과 같은 것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누구나 흔히 보고 느끼는, 봄에 대한 이미지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에서 이러한 봄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나 느낌, 이미지 등과는 완전히 상반된 회색의 봄을 그려놓음으로써 그 흔한 봄의 모습과는 다른 봄의 모습, 탈출하고 싶은 봄을, 우수의 봄을, 서글프기까지 한 봄의 모습을 묘사해 놓았다.

봄을 일상적인 것, 또는 앞면에서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뒷면에서 보아버린 데에서 오는 일종의 우울과 고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앞모습이나 겉모습, 또는 남의 눈에 잘 띄는 모습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좀 더 잘 보이기 위해 애쓰면서도 그 뒷모습이나 속 모습, 또는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모습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인간의 이기적이고도 역설적인 마음과 행동을 지적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뒷모습이나 감추어져 있는 모습, 또는 바쁜 일상에 쫓겨 미처 살펴보지 못한 자신의 내면세계를 한번쯤 되돌아보고 뭔가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더욱이 이 수필을 쓸 무렵의 우리나라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 현실은 어둡고 암울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나의 개인적인 고뇌와 갈등과 연계되어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따라서 그 당시의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나의 심리상태가 봄을 봄 같지 않은 봄으로 느끼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가 바라보는 봄의 모습은 아무래도 어둡고 음울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봄의 모습을 밝고 아름다우며 희망찬 모습이 아닌, 어둡고 암울하며 지저분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그리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봄을 일상적인 각도에서가 아니라 좀 다른 시각, 즉 가려져 있고 남들이 무심히 여기는 봄의 뒷모습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는 개나리나 진달래, 개구리, 아지랑이, 봄바람, 시냇물 흐르는 소리, 따사로운 봄볕, 봄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 새싹, 소담스럽게 피어난 하얀 목련꽃, 설레는 여심, 희망과 기쁨 등과 같은, 봄에 관한 글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가 쓰이지 않고 그와는 정반대 격이고 엉뚱한 모습이기까지 한 회색의 하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 있는 교회당 십자가, 지저분한 모습의 지붕과 굴뚝, 지붕 위의 깨어진 기왓장 모습, 볼품없는 모습의 TV 안테나, 붉은색의 벽돌담과 청회색의 시멘트 담벼락, 암울한 모습의 봄 풍경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우수와 고독 등과 같은 소재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만일 여기에 내가 봄의 일상적인 모습만 그려놓았다면 그것은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수필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또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나의 우울한 마음과 고뇌 등과도 잘 맞지 않는 모습이 수필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그것을 한쪽에서만 바라다보면 그 사물의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필을 쓸 때의 시야도 보다 폭넓고 다각적이지 않으면 완전한 모습의 작품의 실체를 그려낼 수 없다.

위에서 언급했던 수필의 참신한 주제 설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참신하고도 뚜렷한 주제를 설정한다.

② 개성적이며 독창적인 주제를 설정한다.

③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고, 호소력이 강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설정한다.

④ 주제는 너무 거창하거나 광범위하게 설정하지 않는다.

⑤ 가급적 한 편의 수필에서 하나의 주제만을 밀도 있게 다룬다.

⑥ 주제의 의미를 충분히 부각시키고 주제와의 연관성이 밀접한, 소재를 선택한다.

⑦ 즉흥적으로 주제를 설정하지 말고 충분한 사고(思考)를 거친 후에 주제를 설정한다.

⑧ 그 시대나 상황, 분위기 등에 맞거나 그에 대한 경종이 될 수 있는 주제를 설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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