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27
0
나는 ‘길’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길은 여러 면의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걸어 다니는 보도와 탈 것이 지나다니는 도로, 하늘길, 물길 등 물리적인 길이 있다. 또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윤리 도적적인 길이 있으며, 뜻을 향하는 마음의 길이 있다. 그래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속설이 있나 보다.
어렸을 때 신작로는 나의 호기심의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한없이 가다보면 또 다른 별천지 세계, 동화 속에서 있음직한 세상이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곤 했었다. 길을 나서야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고, 누구와도 만나며 뜻이 이뤄진다.
늦게나마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게 행복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꼭 가보고 싶었기에 그냥 돌고 돌아 지각생이었지만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동아리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해 주었고, 글 쓴다는 게 특정인들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도 하면 된다는 희망을 갖게 해 주었다.
금아 선생은 「수필」이란 글에서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했다.
나는 무엇을 쓰고 싶어 했을까? 정열도 감상도 무뎌진 나이임에도 삶의 길에서 행복했던 일, 마음 아팠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자랑도 특별할 것도 없는 사소한 살아온 애기를 귀담아 들어줄 누군가를 만났을 때 소곤소곤 푸념하듯이 글로 쓰고 싶었을 뿐이다. 그냥 가슴에 담아두면 찌끼기로 남을까 싶어 가슴 밖으로 끌어내어 뱉고 싶었다. 살다 보니 누구의 아내로 엄마란 의무 때문에 버거운 짐을 메고 산길도 넘고 물길도 건너며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어찌 그뿐이랴. 운명이란 길 위에서 엮어진 소중한 인연들과의 사랑의 이야기며, 계절 따라 변화하는 자연과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꽃들과도 교감하며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글로 쓰고 싶었다. 앞서간 선인들의 남기고 간 발자국도 손때 묻은 것에 대한 관심과 삶의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아름답고 거창한 것만이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아름답게 꾸미는 일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덜어냄이 없이 내가 살아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삶의 푸념들을 고작 몇 작품에 담았을 뿐인데, 그것으로 내 가슴앓이 병이 치유된 샘이다. 사소한 푸념이 내 자신의 가슴앓이 병에서 벗어나서 긍정적인 새사람이 된 것이다. 글쓰기는 그때 아니 갔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가장 잘한 선택의 길이 되었다.
또 하나의 길을 찾아 나섰기에 신앙생활이 지금 노후의 삶에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다. 친구의 권유로 종교에 귀의했지만 내 영혼 속에 서서히 스며들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핑계도 많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주춤거리다 겨우 자리를 잡았다. 그러기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인도하기 힘들었던 나를 두고 “볕에 두면 마를 것 같고 습지에 두면 상할 것 같은 뿌리내리기가 힘든 교도(敎徒)였다”라고 훗날 주무 교무님이 이렇게 술회하셨다.
방향을 찾지 못해 표류하던 조각배가 나침반을 얻은 듯 삶의 의미를 찾은 신앙인이 됐다. 나는 육신의 병과 마음까지 권태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신앙생활은 이런 나를 깨어나게 해 주었다. 먼지가 쌓여 어둠침침했던 전구의 먼지를 털어내고 밝아진 불빛으로 집안 분위기로 바꾸어 놓은 샘이라고나 할까.
글쓰기와 종교생활은 내 삶의 길을 바뀌어 놓았다. 그렇다고 우리 집 경제가 달라지고 생활이 더 윤택해지는 전환점이 온 것은 아니다. 이전의 삶은 고용된 정원사의 피동적인 따분한 직무 이행이었다면 지금은 우리 집 정원을 즐거운 마음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주인이 된 샘이다. 하루하루가 지루하게 여겨졌던 지난날의 주부가, 행복한 노래를 흥얼거리는 안주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나의 가슴의 품을 넓히며 좋은 습성으로 길들이는 수양의 길이 되었다.
내세워 자랑할 것도 부끄러워 감출 것도 없지만, 우리 집 울안의 잡초를 제거하고 필요 없는 가지치기를 하며 내 정원(삶)을 가꾸며 즐겁게 살고 있는 안주인이 된 것이다.
행복은 밖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고 내 마음에 있음을 알게 됐다. 이제는 굼뜬 손이지만 내게 주어진 일상을 흐르는 물처럼 받아들이며 여여자연(如如自然)하게 세월 따라 내게 주어진 인생길을 가고 있다.
비록 명작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긴 인생의 여로에서 얻어진 삶의 이야기를 글로 쓰며 살고 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