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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김호진

소설가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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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산실은 조그만 서재이다. 나는 아침 다섯 시경에 일어나서 양치를 하고 온수 한 잔을 마신 다음 몸을 가볍게 푼다. 그러고는 서재에 박혀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일곱 시에 산책을 나갔다가 여덟 시에 아침을 먹고 열한 시까지 또 쓰거나 읽다가 외출한다. 귀가 시간은 오후 네 시 경이다. 컨디션이 좋으면 몇 자 긁적이다 여섯 시에 저녁을 먹고 또 산책을 나간다. 산책이 끝나면 TV를 보다 열 시쯤에 잠을 잔다. 
밤에는 글을 쓰지 않으려 애쓴다. 어쩌다 빠져들면 컨디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한때는 무리했다가 119에 실려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그게 새벽 두 시였다. 그러나 지금도 식사하다 말고 컴퓨터를 두드리는 버릇을 못 고치고 있다. 아내가 그러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열정만은 인정하는 것 같아 동기부여가 된다.
솔직히 내가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내의 내조 덕이다. 나는 근 50년째 잡곡밥을 먹고 있다. 현미와 기장과 콩과 팥 같은 것을 섞은 밥이다. 아내가 지어주는 이 밥힘으로 나는 버티고 있다.
나의 전직은 대학 교수였다. 전공은 문학이 아닌 정치학이었다. 그런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2004년에 정년퇴직하니까 문학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서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커피숍에 앉아 예사롭지 않았던 아버지의 죽음과 다른 여러 소재를 주제로 작품을 쓰고는 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최초의 창작산실은 커피숍이었다.
딱딱한 학술 논문만 쓰다가 문학작품을 쓰는 게 쉽지 않았지만 문학적 표현에 묘미를 느껴 계속 썼다. 이때 쓴 「어머니의 초롱」이라는 에세이를 조선일보에 보냈더니 실어주어 재미를 붙였다. 그 사이에 직장이 생겨 5년가량 쉬었지만 그래도 족히 10년은 습작과정을 거친 셈이다.
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책도 꽤 읽었다. 그 중에도 『황석영의 한국명단편101선』은 1960년대 때 읽은 작품이 많아 감회가 컸다. 소설작법에 관한 책도 몇 권 읽었다. 그 덕에 소설은 첫 문장에서 승부가 난다는 말 정도는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2015년 가을에 계간지 『문학과의식』의 신인상을 받고 문단 뒷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이때 나이가 일흔일곱이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다닐 때였다. 동아일보에 연재 중인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를 읽고 독후감을 보냈더니 실어 주었다. 며칠 뒤에는 이호철 작가와 다른 한 분과 내가 동아일보에서 좌담을 했다. 이런 경험도 내가 지금 소설을 쓰게 만든 자극제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반세기 동안 우이동에 붙박이로 살고 있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 이 지역 작가들과 교류하고 싶었지만 문학단체가 없었다. 곧바로 몇몇 작가들과 한국문인협회 강북지회(약칭 강북문협)를 창립(2018년)하고 회장을 맡아 4년 넘게 봉사했다.
나는 내 책과 원고를 읽어주는 독서클럽이 있다. ‘하루꼬독서클럽’인데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본 딴 것이다. 나의 창작집 『문경의 새벽』을 읽은 독자들이 스스로 만든 팬클럽 같은 것이다. 회원들이 원고 교정도 봐주고 기발한 코멘트로 내 상상력을 일깨워주어 많은 자극과 영감을 받고 있다.
『문학과의식』을 통해 등단한 동인 모임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얻는다. 한 달에 한 번 동료 작가의 작품을 합평하는 모임이다. 내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아시아포럼도 빼놓을 수 없는 창작산실이다. 정치와 문학을 주제로 세미나를 하는데 발제자의 발표를 듣고 토론도 하고 시낭송을 듣기도 한다.
나는 나를 딜레탕트 작가라고 말한다. 남들이 그렇게 부르면 서운할지 모르지만 나는 딜레탕트 작가인 게 좋다. 내가 나를 딜레탕트 작가라고 부르는 까닭은 늘그막에 등단한 늦깎이 지각생이기 때문이다. 나는 딜레탕트 작가답게 소설 쓰기를 취미 활동처럼 즐긴다. 그렇다고 자투리 여가를 이용하여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상이 쓰기에 무게를 싣고 있다는 점에서는 전업 작가와 진배없다.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가고 삶이 따분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한국문인협회가 주는 서울시문학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딜레탕트 작가인 나에게는 뜻밖의 일이었고, 망구의 나를 힘이 나게 하는 고마운 상이었다.

널리 읽히고 길이 남는 작품을 쓰고 싶은 욕구는 모든 소설가의 한결같은 열망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나. 이에 대해서는 많은 지침서가 나와 있지만 나는 니체의 이 말을 좋아한다. “피로 써라.”
나는 80대 후반이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나이와의 싸움이기도 하고 시간과의 경쟁이기도 하다. 멈출 줄 모르는 시간은 줄곧 옥죄어 대고, 나는 해질녘에 길을 떠난 나그네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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