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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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아버지가 빨치산에게 변을 당한 슬픈 가족사가 있다. 참변은 1949년 어느 날 우리 집 마당에서 일어났고 한밤중이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살인극은 처참했고 충격은 강렬했다. 상처가 너무 커서 아직도 내 몸속 어딘가엔 아픔이 남아 있다. 나는 이 사건을 망각 속에 묻어버리기보다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소설로 쓰고 있다.
소설 제목은 ‘소두물의 밤’(가제)이고 길지 않은 장편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좌우대립과 6·25전쟁이 극한으로 치닫던 1950년 전후의 한국 사회이다. 이념의 광기에 휘말려 고통당한 소두물 사람들의 구겨진 삶이 줄거리를 이룬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어쩌다 역사의 제물이 되어 버렸지만 알고 보면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서러운 삶이 주제이다.
좌우가 충돌하는 아수라 속에서 거덜난 사람들, 그러나 그때의 소두물 사람들은 하나같이 난세와 맞서 싸운 신념의 인간이었다. 빨치산에게 학살당한 농파 노인이 특히 그랬다.
소설은 주인공 농파 노인이 빨치산과 대립하는 과정을 파헤친 다음 살해범 오상기를 전쟁터와 포로수용소로 보내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조명한다. 등장인물들이 전쟁을 냉소하고 풍자하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다.
소설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용서와 화해이다. 빨치산 토벌대장이 상기를 끌고 왔을 때 미망인 신부인이 한 말이 이를 함축하고 있다. 상기를 본 신부인은 할 말을 잃고 치를 떨지만 애써 분노를 삭이고 마침내 용서한다.
“세월 때무로.”
「소두물의 밤」 외에 나는 또 하나 장편을 쓰고 있다. 「하루꼬」라는 소설이다.
하루꼬는 출생이 별났다. 일본 순사 스즈끼 요시노부(鈴木吉田賢伸)와 술집 작부 박금녀(朴今女) 사이에서 태어난 서출반종이 하루꼬였다. 일본 남자와 한국 여자의 피가 섞인 출생, 이것이 하루꼬를 운명의 여인으로 만들었다는 게 소설의 모티브다.
스즈끼는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금녀와 하루꼬에게 말 한마디 않고 본국으로 가버렸다. 얼마 뒤에는 금녀도 하루꼬 몰래 사라졌다. 하루꼬가 갑자기 잔류고아가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잔류고아는 하루꼬처럼 태어나서 하루꼬처럼 버림받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말한다. 우리는 이들을 자코리안(JaKorean)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하루꼬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세우고 일제 잔류고아의 실존을 들여다보려 한다. 일제 36년 동안 일본 남자의 피를 받아 태어난 자코리안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일본군이 조선 땅에서 청일전쟁을 벌인 때(1894∼95)부터 따진다면 그 수는 훨씬 많다. 임진란 때(1592∼1598)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계산은 복잡해진다.
반일감정이 회오리치던 해방정국 속에서의 이들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느닷없는 봉변, 차별과 멸시, 따가운 시선과 조롱, 쑤군대는 비아냥거림, 언제 반일감정의 화살을 맞을지 모르는 불안감, 이런 것에 가슴 졸이며 살지 않았을까.
일본에 간 하루꼬가 아버지에게 한 말이 이를 말해준다.
“버릴 거면 왜 낳았어요? 엄마까지 떠나는 바람에 저는 고아처럼 살았다고요. 국밥집 부엌데기 노릇도 했다고요. 결혼도 했지만 강제로 떠밀려 했어요. 일본 순사 딸이라고 행패도 당했어요. 그때는 죽고 싶었다고요. 한때는 유엔군에 잡혀 포로 생활도 했어요. 살기 위해 술집에서 웃음도 팔았다고요. 이게 다 아빠가 저를 버렸기 때문이에요. 저는 아빠 딸이에요. 왜 제가 외삼촌 딸로 살아야 해요? 서출반종은 딸이 아니에요? ”
하루꼬는 일제 잔류고아의 마지막 세대랄 수 있다. 하루꼬가 지금 살아 있다면 90대 중반(2025년 현재)이 넘었다.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봐야 하나. 역사의 사생아라고 말하면 모독일까. 이들은 자신의 출생과 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자기를 한국 사람으로 인식했을까, 일본 사람으로 인식했을까. 이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을까, 그리워하며 살았을까. 이들에게 일본은 어떤 나라였을까.
하루꼬가 내 소설 속에서 그 답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