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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임양숙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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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닌 생전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셨을까. 곱고 맑은 수채화일까, 물감을 바르고 또 손질하며 완성하는 유화였을까. 묵향으로 심신이 안정되는 산수화였을까. 어느 것이건 자신만의 물감으로 삶을 그려내고 싶으셨을 게다. 분명한 건 검은 색으로 뒤범벅 난장판이 되고 만 아픔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진 않으셨을 테다.
난 어머니의 그림을 간직하고 있다. 어둡고 습기 찬 동굴 속 같은. 분명 어머니도 인생이라는 캔버스를 앞에 놓고 꿈꾸는 삶을 그려내고 싶었을 처녀였음에 분명한데. 머리를 길다랗게 땋아내린 어머니의 처녀적 사진 한 장, 수줍은 웃음 속에 눈만 살짝 치뜬 모습이다.
어머니의 감춰진 꿈을 찾고 싶다. 한없이 자애롭고 인자하시던 외할아버지와 달리 조용하고 매사에 조심스러웠던 외할머닌 어머니껜 잔소리꾼일 수밖에 없으셨으리라. 외할아버진 어머니가 가을 달처럼 곱다고 이름도 추월이라 지어주셨는데 추월이라는 이름이, 어른이 된 이후 내겐 가슴을 짓눌렀다. 평범함이 지나친 기생 이름이어서였다.
상상해 보건대 어머닌 얌전히 수를 놓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가을 달 같은 처녀는 아니었다. 시집와서 옷감을 짜고 시부모님 의복을 짓느라 밤에 잠도 못 자고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에 얼마나 한숨을 짓고.
붓에 물감을 묻혀 무엇을 그리기도 전, 사랑하고 자랑스럽던 남동생이 권총 오발로 세상을 뜨고 그로 인해 당신을 보석처럼 아끼시던 친가 아버지께서 상심 끝에 돌아가시자 세상을 놓아 버리고 싶었던 어머니. 거기에 6·25 동란, 남편은 경찰로 전쟁터로 나가고 홀로 타향 땅 서울에서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인민군 틈 사이로 피난을 다닐 때 어머니는 두려움과 굶주림으로 전쟁이 끝났을 땐 마음까지 가슴앓이로 초죽음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은 우리 두 딸을 데리고 피난 다니셨던 거기까지다. 그 후 어머닌, 세상의 문을 닫고 우리 딸들에겐 조금만 부딪치면 부러지는 마른 나뭇가지로 가셨다.
어머닌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했다. 시집올 때까지도 부잣집 따님이면서 사람이 좋아서 누구나 가까이하고 싶은 따뜻한 사람이었단다. 사람이 다정해서 누가 집에 찾아오면 금방 밥을 지어 반찬이 있건 없건 반갑게 맞아 주었다는데….
언니와 나는 어머니 이야길 자주 한다. 자매끼리만 나눌 수 있는 아픔의 이야기들. 어머니가 좀 더 건강하셨더라면… 언니는 어머니가 이기적이라지만 난 어려서인지 잘 모르겠다.

40여 년 전 딸아이가 어릴 때 할머니가 잠자리에서 들려준 이야기들을 듣고 자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할머닌 고구마를 튀겨 주고 나물을 볶아 밥을 먹이며 키워 주셨다. 직장 때문에 내가 해내지 못한 빈 자리를 할머니가 채워주신 것이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것 중에 나도 잘 몰라서 딸에게 해먹이지 못한 방앗잎 튀긴 것이 있다. 딸아인 미국에 살면서도 가끔 고구마순 나물무침과 방앗잎 튀긴 것을 그리워한다. 그것들은 그 아이에게 엄마, 나라, 고향, 그리고 할머니였다. 이제 나는 딸아이와 함께 어머니와 함께 먹었던 추억의 음식들을 만들어 먹고 싶다.

나는 어머니의 삶이 아프다. 이 땅에서 외롭게 살다간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의 삶을 다시 되돌려 겪게 해드리고 싶지 않다. 언니와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른이 되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날까지 어머닌 마음의 아픔 속에 사셨다. 어머니의 마음은 왜 그리 늘 무겁게 젖어 있었을까. 푸른 하늘도 사람들과의 소통도 딸 둘과도 사랑을 나누지 못하게 가로막힌 것. 그러나 어찌 외손녀인 내 딸에게는 어머니의 마음을 나누었는지. 나와 나누지 못한 사랑을 어머닌 내 딸과 나누었다.
이 다음 어머니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같은 여자로서 그리고 딸로서 마음을 열어놓고 속시원하게 듣고 싶다.
“엄마는 왜 그리 마음이 아팠어요?”
어머니는 아무도 모르는 고통을 품고 혼자만의 동굴 속에서 의욕도 희망도 없이… 누구나 세상을 뜨고 거기엔 아쉬움의 눈물이 담겨 있지만, 아픔이 있는 이별은 슬프다.
딸아이가 대학을 다닐 때, 할머니 손톱을 잘라주고 매니큐어를 칠해주는 걸 보았다. 딸아인 할머니와 친구를 했다. 대화도 작은 기쁨도 나누며 커피도 함께 마셨다. 난 왜 그러지 못했을까.

이추월, 어머니는 말이 없다. 부잣집 딸로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결혼에 실망이 컸을까. 4남매의 장녀로 귀염만 받다가 외할아버지와 전혀 다른 남편, 가난한 집 9남매가 사는 집에서 시어른 시아주버니 윗동서 시누 시동생들 줄줄이 한집에서 대가족의 구성원으로 사는 일이 힘에 겨웠을까? 또 하나의 남동생도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법관이 되어 아픔도 서서히 회복이 되고, 딸만 둘 낳은 어머니를 아버지는 얼마나 사랑하고 존중해주셨던가. 어쩌면 어머니는 공부하고 사회에서 일을 하고 살았더라면 좋았을까.
어머닌 인생을 평생 살아낸다는 게 그렇게 막막하고 고역이었을까. 난 어릴 때 엄마 잃은 아이들의 슬픈 동화책을 너무 많이 읽었나 보다. 지금도 엄마 없는 아이들이 가장 가슴 아프게 여겨진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늘 방에 누워 계셨지, 불러도 대답도 없이.
어머니. 이야기 책을 덮듯 이제는 다 끝났다고 당신은 나의 딸에게 마음을 다 쏟으셨으므로 이제 좀 쉬시라고 따뜻하게 어머니 손을 잡아드리고 싶다. 
어머니와 나와 딸 사이에 고리처럼, 내가 해준 옥가락지가 어머니의 손가락에 끼어 있다. 마치 구름에 가린 달빛 같은 어머니의 마음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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