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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간이 맞아야

한국문인협회 로고 최진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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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석 선생은 “세상이 흔들어댈 때는 중용을 지켰고 진리는 반대편에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작법이 있다는 건 가짜야. 스스로 나오는 것이지. 전라도 음식은 먼저 소금으로 간을 하고, 그다음에야 설탕을 써요. 통조림 파인애플의 단맛도 설탕이 아니라 소금으로 맛을 냅니다. 인생도 간이 맞아야 해”라고 지적했던 사실이 가슴에 훈훈하게 다가선다.
여기서 간이란 음식의 기본 조미료인 바로 소금이라는 우리 천일염을 말한다. 바다에서 3도짜리 바닷물을 저수지로 끌어들여 가두어 두고 증발지를 몇 차례 거치는 동안 바람과 햇볕의 작용으로 25도까지 염도가 높아진 바닷물로서 함수(鹹水)가 되는데, 이 함수는 해주 창고에 넣어 보관한다.
해주 창고에서 나온 함수가 천일염을 만드는 결정지에 들어가서 바람과 햇볕이 내려쬐면 염도가 28도의 함수로 변하면서 소금이 석출하기 시작하고, 30도까지 올라가면 염부가 고무래질을 하면 백설같이 새하얀 천일염이 고고성의 갯바람 소리에 뽀송뽀송한 소금으로 세상에 태어난다.
지난해 7월 18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제시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우리 천일염의 염화나트륨 함량이 가장 낮아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천일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천일염이 가장 나쁜 것처럼 폄하하는 보도자료가 나가면서 전국 1,385개 염업 종사자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빈축을 산 적이 있다. 그래서 먹거리사랑시민연합(상임대표 최진호)이 연합뉴스 보도자료를 통해 “식약청은 우리 천일염을 폄하하는 것을 즉각 중지하라”고 강력 경고했다.
이번에는 세계일보가 우리 천일염 중의 환경호르몬이란 독성 물질의 유입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 특별취재팀까지 구성하여 지난해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전남 해남군과 신안군, 영광군의 염전 8곳의 현장을 찾아가서 취재한 결과, “모두 농약을 친 흔적을 확인했다”고 강조하면서 그 근거로서 “쓰고 버린 것으로 보이는 농약병과 농약봉지가 발견됐다”는 내용을 3일 동안 보도했다.
본 연합이 지난해 8월 19일 자 연합뉴스 보도자료를 통해 “농약 빈병을 빌미로 우리 천일염을 더 이상 폄하하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공개적으로 항의했고, 여기에 전남도와 신안군청, 그리고 생산자 단체들의 빗발친 항의를 받고 세계일보가 “자기들의 보도 내용을 수정하고 정정하며 삭제했다”고 했다. 그래도 양식 있는 신문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훈훈하다. 이처럼 검증되지 않는 언론 보도가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바로 언론의 사회적 책임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온도 변화가 적은 바다에서 진화하여 육지로 이동했기 때문에 소금과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생리식염수는 우리 몸의 체액과 같은 0.9% 염화나트륨 용액으로서 거의 1%의 소금물이라는 사실도 소금이 우리 몸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래서 생리식염수란 체액과 농도를 동일하게 조정하여 제조한 등장액이 병원에서 환자가 수분의 섭취가 용이하지 않거나 심한 탈수 증세가 나타났을 때, 식염수를 링거에 꽂아 환자에게 수분을 공급할 때 사용하는 등 인체에는 매우 중요하다.
염부의 고무래질은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이루어진다고 하니 그 작업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딱딱하게 굳어버린 손과 무쇠 같은 팔뚝, 까맣게 그을린 염부의 얼굴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땀조차 말라버린 소금밭에서 가끔씩 염부의 절규 같은 노랫소리가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얀 물소금이 거둬 달라고 소금밭 바닥에 드러누워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처럼 물소금의 말을 듣는 사람이 염부다. 고무래로 밀고 곰배로 긁고 부삽으로 퍼 담는 짜디짠 노동이 뙤약볕 아래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오늘따라 “인간도 간이 맞아야 한다”고 했던 희곡작가 차범석 선생이 생각난다. 변변치 못한 덜된 사람을 얼간이라고 하고, 구두쇠처럼 인색한 사람을 짠돌이라고 부른다. 부정부패 방지에 소금이 자주 인용하듯이 모든 음식의 맛을 내는 기본 조미료가 바로 소금이다.
하루 종일 땀범벅 속에서 염부들이 생산하는 천일염이 우리나라 소금 수급량의 14.6%밖에 안 된다고 하니 정말, 안타깝고 걱정스럽다(먹거리연합 보도자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소금조차 자급할 수 없다고 하니 ‘정부가 정말, 간이 맞는지’ 묻고 싶다.
여기서 최진호 시인은 「간이 맞아야」라는 시에서 “숨탄 것들은/ 하나같이 짠맛에/ 길들여진 기대의 맛으로서/ 생리적 기호로구나// 얼간이들도/ 하나같이 못 말리는/ 어지러운 이 세상에/ ‘인생도 간이 맞아야 해’라고/ 지적했던 그 한 말씀/ 더욱더 또렷하게/ 메아리치는 것은 어인 일인고”라고 읊고 나니 “우리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여!”라고 했던 어느 노배우의 대사가 더욱 환한 가슴으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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