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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엘리베이터 설치 소망

한국문인협회 로고 신승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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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서연구회의 창립(1982년) 회원으로 책에 대해 관심이 많다. 대구에 살기 때문에 서울에서 열리는 한국고서회 매월 모임에는 참석하기 어렵지만 연말 정기총회에는 참석한다. 회원 모두들 책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고, 각자 저마다 책 수집 성향이 다르다.
나는 방언학 분야의 책을 주로 수집한다. 방언사전, 방언 책, 방언 논문에 많은 관심이 있다. 대구에서 한국방언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모은 책이 너무 많아 관리하기가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연구소를 옮길 때마다 이삿짐센터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책은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수만 권의 책이 되니 한 번 이동할 때마다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다.
올 6월에 한국고서연구회 회원 한 분이 900여 권의 책을 보내주었다. 본인이 박물관을 세우려다가 포기하고 귀한 책을 나한테 보낸 것이다. 한국방언연구소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아파트 3층에 있다. 18박스가 택배로 오니, 택배 아저씨는 연구소가 있는 아파트 경비실에 보관해 두겠다고 한다. 3층까지 무거운 책박스를 옮겨줄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연구소에도 책이 가득,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책이 가득, 늘 책을 많이 구입하니 집사람도 책이 많이 오면 신경이 예민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연구소가 있는 경비실 옆에 보관해 두기로 했다. 경비실 옆 모서리에, 비에 젖지 않게 비닐 매트로 책박스를 덮어 두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며칠 동안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책박스를 들고 계단을 오르려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두 박스면 시도를 해 보겠는데, 18박스나 되니 자신이 없었다. 나는 집에 가서 집사람에게 사정 얘기를 했다. “서울에서 책을 18박스나 보내왔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3층 연구소에 보관하려고 옮기려 하니, 책박스가 무거워서 도저히 옮길 수가 없어서 집에 보관하겠다”고 했다. 집사람은 산더미같이 책이 많은데 또 책을 가져오느냐고 인상을 쓰고 마지못해 집에 보관하라고 허락을 해 주었다.
싼타페로 무거운 책을 두 번 날랐다. 집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9층까지 쉽게 이동했으나, 서재에 틈을 벌려 9박스씩 두 번 옮길 때는 힘이 많이 들었다. 900권의 책을 다 옮기고 나니 엘리베이터가 이렇게 고마운 줄 새삼 느꼈다. 젊었을 때는 아무리 큰 책박스라도 번쩍 들어 어깨에 메고 잘 이동했는데, 지하철에서 경로석을 타는 나이가 되니 책박스를 옮기는데 힘이 달렸다.
또 하나의 진한 사건이 있다. 나는 한국전통창조박물관에 예비학예사로 근무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행하는 예비학예사 자격시험을 2023년 말에 통과했다. 나는 시험에 통과하면 박물관을 세울 수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1년 이상 1,000시간 이상 국립중앙박물관이 인정하는 박물관에 가서 연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습 관련 서류와 증거 사진, 그리고 박사학위 졸업증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제출하면 심사를 한 후 3급 학예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대학 외래교수와 고등학교에서 퇴임을 한 내가 실습을 할 수 있는 박물관을 찾기란 무척 어려웠다. 대구에 있는 몇몇 대학박물관에 실습하려고 문의해 보니 어림도 없었다. 국사과, 문화인류학과, 민속학과, 고고미술사학과 대학원 석사·박사 졸업생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박물관장의 말이, “선생님은 퇴직을 하고 학예사 연수를 하려고 하시지만, 우리 젊은 제자들은 취직도 못해 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박물관 연수를 해야 합니다. 선생님께서 양보해 주셔야 합니다.” 나이 어린 박물관장의 말에 나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몇몇 대학박물관 문을 나서야만 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예비학예사 시험을 치지 않아도 바로 앞에서 언급한 4개 과 졸업생들은 박물관에 실습을 하면 학위에 따라 근무 기간을 달리하여 3급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온갖 노력 끝에 마침 고향 의성에 있는 한국전통창조박물관에서 예비학예사 연수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한국방언박물관’을 세우고 싶다고 관장에게 간절히 호소한 것이 먹혀들었다. 많은 연수 희망자가 있었지만, 한국전통창조박물관 관장이 나에게 연수 기회를 주었다. 이 박물관은 경북 의성군 단북면에 소재하고 있다. 폐교된 단북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서 세운 민속박물관의 성격을 지닌 박물관이다. 교실 14칸과 부속건물 4칸에 민속자료가 가득하다. 농기구 자료, 가구 자료, 시청각 자료, 탈곡기 자료, 생활사 자료 등이 아주 많다.
나는 연수 기간 중 3번의 기획전을 열었는데, 2번은 보조원으로 참여하였고 1번은 주무자로 참여하였다. 기획 전시를 할 때도 힘이 들었지만 외부 건물 별실에 있는 수장고 유물을 전시실로 옮길 때는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시청각 전시실을 꾸밀 때는 2층으로 옮겨야 했다. 중고 물품 창고처럼 높이 쌓인 비디오·오디오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끄집어내어 먼지를 털고 깨끗하게 걸레질한 후, 2층 전시장으로 옮길 때는 그야말로 막노동꾼이었다. 무거운 노래방 기기나 인켈 전축 세트 같은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여러 명이 들었고, 복도 중간 계단으로 올라갈 때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해서 올랐다.
근무가 없는 날에 국립대구박물관에 자주 관람하러 간다. 큰 엘리베이터가 놓여 있다. 보통 때는 관람객을 위한 엘리베이터로 알았는데, 시골 박물관에서 근무를 하니 그 용도를 이젠 확실히 알았다. 무거운 자료를 옮기기 위해 설치된 것임을. 대구박물관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고향 의성에 있는 한국전통창조박물관에도 이런 엘리베이터가 놓여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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