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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혜정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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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할아버지 세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이 낚시 도구를 챙기셨다. 그를 본 다른 할아버지가 “낚시 가나?” 묻자 “아니, 낚시 가” 대답했고, 그 대화를 듣던 다른 한 분이 “나는 낚시 가는 줄 알았지” 하고 말했다. 그때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런데 요즘 어떤 학부모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선생님, 너무 슬퍼요” 한다. ‘이 뜻밖에 반응은 뭐지?’
나이가 들을수록 귀가 어두워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얼마 전에도 한인슈퍼 앞 벤치에서 할아버지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낚시 가는 할아버지들의 이야기처럼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 대화를 하고 계셨단다. 어떤 분이 이 광경을 보고 “참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나도 이제는 저음의 작은 목소리나 똑똑하게 들리지 않는 내용들은 다시 묻지 않고 중요한 것이 아니면 흘려듣게 된다.
이민 와서 처음 만난 분들이 한참 활동하시다가 이제는 이민 온 지 25년 정도가 지나다 보니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하셨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모습이 예전과는 다르겠지만, 그분들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과 사회활동을 내려놓는 모습은 나를 슬프게 한다.
얼마 전에는 옷을 수선하러 갔었는데 나이가 드신 분들이 옆에 있는 지퍼를 앞으로 옮겨 달라고 하신다는 말을 듣고 ‘왜 멋지게 만든 지퍼 위치를 바꾸어 달라고 할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오십견처럼 어깨가 아팠을 때 그 또한 이해가 되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도구가 왜 효자손인지도 알게 되었다.
동문회에서 수고하신 분들께 공로패를 수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이 드신 선배가 상패 대신 슈퍼마켓의 기프트카드로 달라고 하셨다. ‘상패가 길이길이 남아서 좋은데 왜 한 번 사용하면 없어지는 것으로 달라고 하실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아버지가 받으신 상패들은 종이가 아니라 태울 수도 없고 처치가 곤란했다. 갑자기 처리하지는 않아도 언젠가는 버려야 할 텐데…. 그래서 짐스러운 상패보다는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더 좋으셨던 것 같았다. 내게는 소중한 것들이지만 자식들에게는 의미가 없어서 결국은 버려지고 소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마음은 좋지 않다.
아직은 하루가 바쁘고 여전히 일이 많지만, 젊었을 때는 일이 너무 많아서 손오공처럼 머리카락을 뽑아 변신술을 써서 ‘내가 여러 명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은 캐나다에 이민 와서 살고, 또 희망적인 미래가 있는 청소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잘 되어서 캐나다 사회를 이끌고 가는 한인을 대표하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지랖도 많이 떨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몇 년 전에 디스크로 엄청 아픈 이후에는 너무 바쁘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고 오지랖도 조금만 부리려고 한다. 하지만 잘 될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나이가 들면서 작은 통증이나 불편함도 걱정이 된다. 어릴 때는 건강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당연하게 여겼던 건강이, 이제는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진정한 가치를 알게 해 준다.
아시는 분의 어머님께서 엉덩이관절이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그때 연세가 98세여서 아들이 “어머니, 쇠를 박아야 하는데 10년과 20년 사용하는 것이 있다는데 10년 것으로 선택하면 되겠지요?” 묻자 “말도 안 되는 소리. 20년 것으로 사용해야지” 했단다. 어머님 이야기를 들으니 3대 거짓말이 있다는데 그중 하나가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것이 생각났다. 그 어머님은 건강하셔서 며칠 전에 105세 생일 잔치를 하셨다. 또 그분을 휠체어로 모시고 근처의 식당으로 가는데 휠체어에 발을 얹어 놓는 부분을 잊고 그냥 나왔다. 그런데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다리를 들고 오셨다. ‘와! 코어 힘이 정말 대단하시구나!’ 아마 젊었을 때 무용을 열심히 하셨다더니 아직도 그 힘이 남아 있나 보다. 
결국은 늙어지고 외로워지겠지만, 그런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건강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는 젊어서 만들어 놓은 넓적다리 근육으로 버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운동을 해야한다. 요즘에는 휴대폰이나 휴대폰과 연결된 시계에서 목표한 걸음 수가 넘으면 폭죽이 터지고 난리이다. 그래서 시계나 휴대폰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라도 목표한 걸음 수를 넘기려고 더 열심히 운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어릴 때는 많은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했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며 살아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으로 나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관계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 친구를 만드는 것에도 정성을 들여야 될 것 같다.
나의 경우, 젊었을 때는 젊음만 믿고 꾸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화장도 특별할 때만 했고, 거기에다 악기를 연주하다 보니 장신구들이 방해가 되어 더욱 멀리 한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젠 옷도 밝은색으로 좀 더 화사하게 입고 귀찮아하던 장신구도 점점 해 보려 한다. 105살 되신 분은 지금까지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르시는데 활기차 보이신다.
그리고 이루어야 하는 큰 꿈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려 한다. 요즘 줄임말로 많이 사용하는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일상의 작은 기쁨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한다.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친구와 나누는 진심 어린 대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그런 순간들이 나에게 큰 행복을 안겨준다. 더 이상 거창한 꿈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그 안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이 나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다.
하이킹 클럽에서 나이 드시고 은퇴하신 분들께 ‘뚜렷한 직업이 없이 은퇴 후에는 어떤 생각을 하시며 심심하지 않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궁금한 마음에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지내세요?” 여쭈었더니 “감사한 마음으로 지냅니다” 하신다. 하루하루 아침에 눈을 뜨면 감사하다는 분들.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하루가 매일 매일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나이가 들면서, 앞에 이야기했듯이 점점 더 많은 것들에 공감하게 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그 배우는 것들이 내 삶에 의미를 더해준다. 비록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변화 속에서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관한 생각이 많아지게 되는 것 같다. 멋지게 나이를 먹으려면 외모도 가꾸어야 하지만 매력적인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기술 등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격에 따라 다르다고 하겠지만, 이것이 바로 경륜으로 나이가 듦에 따른 지혜와 여유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무기로 한다면 유행가 가사처럼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면에서 노후를 준비하고, 대비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살아간다면, 매력적인 노후, 평안한 노후, 정말 익어 가도록 노력하는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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