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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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엇국은 시원한 맛이 일품이라서 해장국으로서는 으뜸이다. 명태가 바다 속을 떼지어 다니듯, 무교동 입구에는 북엇국을 먹기 위해 때를 가리지 않고 손님들이 떼로 몰려드는 집이 있다. 무슨 기묘한 마법에라도 걸렸던지, 술꾼들은 그 집 가마솥에서 설설 끓는 북엇국의 허연 국물을 보기만 해도 속이 확 풀린단다.
명태는 본디 찬 바다를 좋아해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주로 살았었다. 지금은 지구 온난화로 뜨뜻미지근해진 동해바다를 떠나 베링해나 알래스카, 오호츠크해까지 올라가 버렸다. 그래도 일편단심 짝사랑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변함없이 명태를 좋아한다. 그래서였을까 북어, 생태, 동태, 황태, 백태, 먹태, 코다리, 노가리 등 명태의 이름은 무려 쉰 개가 넘는다. 그의 이름이 무엇인들 무슨 상관이랴, 담백한 맛은 언제나 그대로인걸.
명태의 내장을 빼고 말린 것이 북어다. 너무 먼 곳까지 붙잡혀 와서 마음이 상했나, 아니면 눈보라 휘몰아친 덕장이 모질게 추웠던지 북어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이다. 짜부라진 눈, 칼날처럼 빳빳한 지느러미, 딱딱해서 절대 바스러지지 않을 것 같은 머리, 막대기처럼 말라비틀어진 몸통, 불퉁스럽게도 윗입술보다 아랫입술이 툭 튀어나왔다. 세상을 향해 무엇을 외치고 싶었을까, 떡 벌린 입이 안쓰럽다. 북어는 못생겨도 여간 못생긴 게 아니다. 오죽하면 방망이로 두들겨 맞기까지 할까. 하지만 북어의 변신술은 참으로 오묘해서 시원한 맛을 내는 데는 제일이다.
이 각다분한 세상에서 북엇국처럼 깊고, 시원한 맛을 내는 사람도 있다. S수산의 P 사장이다. 그는 ‘앞으로 인류의 식량은 바다에서 나온다’는 한마디 말에 주저 없이 바닷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은 사나이였다. 그는 첩첩산중 충청도 산골짝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부산수산대학에 진학한 별난 청년이기도 했다. 바다만큼 푸른 꿈으로 어로학을 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개발 시대의 초기, 이 땅에서 그를 받아 줄 수산회사는 서넛뿐이었고 그마저도 고깃배는 몇 척 되지도 않는 작은 회사들이었다. 달리 선택의 길이 없었던 그와 동기생들은 종일토록 당구를 치고, 막걸리로 속을 달래며 허송세월하였다.
석 달을 놀고 나니, 놀아도 바다에 가서 노는 게 마땅할 것 같아서 사관으로 입사 원서를 냈던 회사를 찾아가 하급 선원으로라도 배를 타고 싶다고 했다. 군인으로 치자면 장교 계급장을 떼고 이등병으로 전장에 나가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어차피 바다와 고깃배 그리고 선원들과 함께 살아야 할 운명인데, 미리 배워두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에 용단을 내렸다고 했다. 북엇국만큼 시원한 발상이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를 향한 거대한 운명이 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그 뜻이 가상하다고 생각한 회사는 그를 바로 명태잡이 배에 태웠다. 신이 난 그는 배 안에서 기계를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얽힌 어구를 정리하는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서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알아서 척척 해대니 선장도, 기관장도, 어로장도 참 기특한 청년이라고 좋아했다. 명태가 떼를 지어 나타났을 때는 학교에서 배웠던 방법으로 어망을 던지고 당기기를 제안했고, 그리 새롭게 했더니 금방 만선이 되곤 했다. 그의 헌신 덕분에 선원들의 수입이 올라가고 일은 즐거워졌다. 그렇게 이 년여의 세월이 지나, 사관을 고수하던 동기생들이 배를 타기 시작할 즈음 그는 이미 선장이 되어 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바다도 마찬가지였던지, 그의 인생은 쾌속항진이었다. 과연 바다는 고기를 아무리 잡아 올려도 끊임없이 고기를 내놓는 보고였다. 그가 빨리 사장이 된 것도 너무나 당연했다.
P사장과 명태, 실속 있기로는 둘이 너무나 닮았다. 명태는 단백질, 미네랄 등 영양가가 높으면서도 저지방 저칼로리라서 다이어트에 좋은 인기 어종이다. P 사장도 인기라면 가히 신선의 경지에 올라가 있었다. 그는 자기처럼, 일을 즐길 만한 사람을 선원으로 뽑았고 그들을 흔쾌히 지원했다.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라는 성구 따라, 선원들이 애써 잡은 고기에 대해서는 그들의 몫을 흔쾌히 돌려주었다. 그는 어획량을 속이지도 않았고 고기 값도 제대로 쳐주었다. 선원들은 회사를 믿게 되었고 회사도 선원들의 성실성을 믿었다. 상호 신뢰의 결과는 다른 회사의 배가 한 번 만선할 동안 S수산의 배는 두세 번 만선을 했다. 북엇국같이 시원시원한 그의 일솜씨를 어찌 따르지 않았겠는가. 어느새 그는 상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 회사에는 경기가 좋거나 나쁘거나, 원양어선의 인기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 선원들이 차고 넘쳤다. 명태에 관한 한 추종 불허의 전문가가 된 그는 러시아와 명태의 쿼터 협상을 벌일 때마다 나라의 대표로 나서서 우리의 밥상을 굳건히 지켜주었다. ‘세상은 뜻을 가진 소수(Will Minority)가 이끌고 그들이 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는 경영 격언이 있다. 그가 과연 그랬다. 나도 그의 앞에 서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제 명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바닷물고기의 자리를 차지했다. 제사상에 올라서는 절도 받는다. 부산의 어느 수필가가 고등어를, 고등교육을 받은 생선이라고 알려왔다. 그렇다면 이 텁텁한 세상에 담백하고 시원한 맛을 선사하는 명태는 대학 교육을 받은 생선이라고 우겨도 되겠다. 명태여, 영원하여라!
*윤석철, 『프린시피아 메네지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