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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의 푯대 같은 묘법을 기대하며

한국문인협회 로고 심상옥

시인·국제PEN한국본부이사장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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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인간의 삶과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주 공간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창작의 출발점이라고 보면 죽음의 계곡은 자연계가 꾸며낸 창조물이다. 드넓은 사막이 그려내는 섬세한 곡선과 웅장한 산을 타고 흐르는 곡선을 보는 순간, 자연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와 거대한 흐름을 연출하는 광활한 무대가 두려움으로 밀려온다.
지난 겨울 나는 라스베이거스 주립공원 죽음의 계곡을 여행했었다. 붉은 바위들이 감탄을 자아낼 만큼 멋있게 펼쳐져 있는 그곳에서 자연의 웅대함을 경험했다. 어떻게 바위들이 저토록 붉을까? 끝없이 펼쳐진 사막 한가운데에서 존재의 시간이 어떻게 저리 처연할 수 있을까? 이런 시선의 끝에서 죽음을 볼 수 있었다. 계곡이 가지고 있는 우주의 신비 같은 잠재력이 순수에 닿아 새로운 형태의 사막이 그려낸 산이 탄생한다. 저 멀리 산 아래로 하얀 눈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이 황량한 사막 산에도 도마뱀이 살고 사막여우가 살고, 죽은 것 같은 사막에 생명체가 산다. 그들은 살기 위해 보호색으로 주위의 색들과 조화를 이루며 돌과 구별이 되지 않도록 변화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끝없이 늘어선 우주의 영혼이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억겁의 시간 동안 풍화에 깎이면서 연출된 절벽들이 신비로운 무늬들과 주름진 바위 모양들로 어울려 있는 이 진귀한 풍경이 신기했다.
지금 내 시야에 펼쳐진 저 사막과 모래산도 더러는 기억하고 흔들리겠지만 자연의 섭리에 저항하지 않는 그런 죽음의 계곡이 형성되고, 또 무너진다. 나는 그 위대함에 깊은 생각과 마주했다. 죽음의 계곡이 시였을까? 누군가 조율하던 것은 사랑이었을까?
달빛과 별빛이 머무는 시간, 불볕더위도 바람도 사라졌다. 두려웠다. 바위마다 서로 다른 빛이 떨리는 듯, 사막의 절벽도 활처럼 굽어진 붉은 능선까지 모두 바람이 되었다. 고대 글자 문양이 새겨져 있는 붉은 산이 물어왔지만,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다. 어디선가 갑자기 큰뿔양들이 서성거린다. 붉은 사막과 큰뿔양들의 노란색 대비가 생명의 존재를 보여주는 듯했다.
자연이나 인간으로부터 버려진 것들은, 무한의 풍요로움을 지닌 이 형상에서 내면의 실존을 속삭여 왔다. 죽음의 계곡에 바람이 사라진다. 하늘로 찌를 듯 솟아, 정원을 이룬 초록 잎사귀 틈새로 꽃들이 정열로 피어나 그리운 얼굴이 된다.
뜨거운 태양과 기울어지는 바위의 행진 속에서도 사막거북이가 몽환적으로 걸음을 옮길 때도 혼자였다. 바위 군락지들도 일상의 회전목마처럼 혼자였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섬기는 싱싱한 초여름이 계곡을 흐른다. 절경을 이룬 바위 군락지의 풍물, 깎이고 다듬어진 형상들이 가늘었다가 굵어졌거나, 짧았다가 긴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바위들은 신의 조각품이다. 그러나 내게 안겨오는 쪼개진 요철지형의 바위산이 너무나 슬프고 아팠다. 나는 영혼에 비친 멋진 일몰을 배경으로 인생 샷을 쥐고 속박에서 자유로워질 새 길을 보았다.
사막을 발길에 깔고 모래바람 하나씩 부를 때마다 그곳에선 구멍 뚫린 바위가 침묵하고 달빛보다 환한 덤불들이 시야에 들어와 박혔다. 벌거벗은 바위 군락지에 바람이 일고, 낯선 풍경이 이질감을 만든다. 더러는 구름도 흘러가다 멈춰 서서 대자연의 경관 속에 구도를 잡았다. 구불구불한 능선 따라 끝난 적 없는 암벽의 세계가 이야기한다.
칼로 잘라낸 듯 죽지 않는 거대한 바위산이 무지갯빛으로 이어졌다. ‘아티스트 팔레트’라는 팻말에서 녹색 흰색 갈색 분홍색으로 바위산이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처럼 신비롭고 화려하다. 풍요로움을 지닌 바위 언덕에는 무엇이 흐르고 있을까?
크림빛 붉은 암벽이 만든 시에서 비바람을 몰고 온다. 암벽 속에 숨 쉬는 내 아픔의 명암을 걷어내고 산바람이 그 줄기를 잘라낸다. 장엄하고도 신비스러운 암벽, 그 벽이 세운 시의 감동이 천국으로 들어가라는 시문을 귀에 걸고 붉은 귀를 연다. 하늘 위로 뻗어 오른 지층들이 파노라마처럼 길게 패인 자브리스키 협곡을 눈길 안에 잡아둔다. 뇌의 구릉처럼 단층이 능선에게 편지를 쓴다. 옛 그림자가 시를 읽으면서 거대한 숲을 거느린 산맥을 이끌고 저마다의 결로 궁금한 편지를 띄운다. 마침표가 있는 파노라마 계곡에 추억의 능선들이 웃음으로 가득 채워져 붉게 웃는다. 자연의 울림이 깊게 다가왔다.
나는 이 장엄한 풍경을 죽음과 맞닿은 삶을 조명해 보았다. 자브리스키 포인트는 침식과 퇴적이 반복되고 물에 잠겼다가 지각 변동이 일어나면서 사막의 미친 듯한 뜨거움과 다양한 모습들로 이루어진 지구의 역사다. 지난달 이곳에서 큰 폭우가 쏟아졌는데 1천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하는 규모였다고 한다. 물바다가 된 큰 호수처럼 푸른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미국 언론이 전했다.
그러나 그곳은 생명이 살고 있다. 꽃도 피고 나비도 날아다닌다. 도마뱀도 보였다. 해가 뜨고 지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다양하고 아름다운 빛의 각도에 따라 지층의 색이 희고 붉게 변하는 모습들이다. 황량한 땅의 생태계는 매우 독특하여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지혜가 있다. 그 지혜로 인해 여러 식물과 동물들이 그곳에 존재한다.
자브리스키 포인트는 변화로 오늘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변화는 새로운 시대의 모색이다. 우리나라도 그 변화를 거스를 수 없다. 한국도 세계를 향한 밀물 시대에 들어와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따라서 문학이 지닌 전통의 서정성과 현대적 감수성의 조화로 변화의 시대를 꾀해야 된다. 보편성을 통해 세계와 친밀한 대화를 촉구하고, 활발한 상상력과 신선함으로 특징을 모색해야 한다. 경건한 삶의 자세, 정갈한 사색으로 암벽의 푯대 같은 묘법을 구상해야 한다. 가장 과학적인 문학이 소통의 도구로 가꾸어져야 한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대 상황에 대한 풍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추고 이 시대를 가꾸어야 한다. 다채로운 한글로 전승되는 문학 시대를 펼쳐나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제적인 지위에 오르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러한 변모로 한국 문학이 세계로 통하는 허브로 새롭게 창조되는 세계 문화의 핵심으로 자리 잡기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지속적인 뒷받침으로 문화 민족의 자긍심을 갖도록 한국 문학의 지평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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