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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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했었다 우리
해질녘 긴 그림자로 푸석푸석 다가오는 늙어 감
애써 삶에 어떤 의미 심고 싶었을까
당신은 나 위해 살아주기
나는 당신 위해 살아주기
왠지 모를 슬픔, 모른 척하며
장난기 섞어 새끼손가락 걸었다
함께 길 걷다가
또래의 사람 마주쳐 오면
“저 사람이 더 늙었어? 내가 더 늙었어?”
그토록 늙어 보임에 불편해 하던 사람
전직 대통령 구치소에서 나와
티비에 잠시 핼쑥한 모습 드러내던 날
“이명박이가 내 동갑인디
엇쪄 이명박이가 나보다 더 늙었지?”
손바닥 펴 자신의 얼굴 쓰윽 문지르며
의기양양해 하던
내 휴대폰 충전해 주겠다며
슬쩍슬쩍 카톡 훔쳐보다가
“여보, 뭘 봐?”
등 뒤에서 날아오는 내 서릿발에
“알았어. 알았어. 안 볼게.”
계면쩍게 웃으며 들고 있던 휴대폰
슬그머니 충전기에 꽂던
그 순하디 순한 얼굴
마을 큰길가 즐비하게 늘어선 맛집 간판들
갈비예찬, 고향산천, 스시광
식사는 늘 함께 하고서
계산은 의당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지갑 열던, 아 그랬던 사람
영원할 줄 알았네 따뜻한 날들
새끼손가락 걸며 함께 했던 약속들
아니었네 아니었네
그 사람 그 사랑 지금 없네
어디에도 어디에도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