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비루한 골목

한국문인협회 로고 조성복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조회수13

좋아요0

산비탈 흙 골목에 푸른 볕이 내려앉았다.

 

가끔은 파란색 위생 차가 시커먼 숨을 토하고 또 가끔은 새벽잠 깨우는 콩두부 손수레가 힘에 겨운 듯 껌벅이는 가로등 아래서 쪽잠 드는 골목
무릎에 바람드는 겨울밤 싸리울 너머로 찹쌀떡 소리가 아련해지면 뒤미쳐 메밀묵 소리가 따라가는 골목
그곳에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재즈 음악 콧노래 부르다가도 뉘 볼세라 사금파리 주워내는 구레나룻 광수아비가 살고 근동에선 만나기 어렵다는 용하디용한 처녀 보살 선녀가 산다.

 

서릿바람 무서워 삐걱대는 문설주를 잡다가도 오월 훈풍이 골목을 찾아들면 모가지에 힘줄 튕기며 비석 치기 하는 아이들이 살고
소반에 팥 한 줌 흩뿌려 남 팔자 일러줘도 내 팔자 모르는 계룡 도사 외팔이가 콜록대는 몸으로 처녀 보살 집 넘나드는 골목엔
사흘이 멀다고 멱살잡이하다가도 돈 벌어 나가는 이웃에게 등 토닥이며 눈물 훔치는 맨발들이 산다.

 

비 오면 비 맞고 눈 오면 홑이불 뒤집어쓰는 주정뱅이 용철네가 세상에 대고 성토하듯 토역질 해대도 누구 하나 탓하지 않은 골목이지만
연두색 향이 온통 퍼지는 단옷날이면 느티고목 아래선 티 없이 환한 얼굴들이 그네를 탄다.

 

어떤 날엔 굶고 또 어떤 날엔 배 터져도 부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이 너나 모두 헐벗고 사는 비루한 골목엔
눈이 선하고 가슴이 덜 식은 사람들이 어제 같은 볕이 다시 들어오기만을 기다려 비질을 한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