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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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던 땅에 아침부터 내리는 비가 그치질 않고 오후까지 계속 내립니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을 보며 아이들이 집에 갈 걱정을 합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걱정을 알고 전화합니다.
“우리 엄마다.”
“우리 엄마도 오셨다.”
아이들이 하나씩 집으로 돌아갑니다. 철이는 걱정입니다. 우산을 들고 마중 오실 엄마가 집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데 참고 있습니다.
“철이를 어떻게 하지?”
선생님께서도 걱정되시나 봅니다.
“철이야, 엄마가 몇 시에 집에 오시지?”
“오후 6시쯤이요.”
철이 어머니는 회사에 출근하십니다. 집 열쇠는 철이 목에 있습니다.
“엄마가 계시지 않아도 혼자 집에 있을 수 있지?”
“네, 엄마가 오실 때까지 늘 혼자 있었어요.”
“철이가 선생님보다 더 용감하구나. 선생님은 혼자 있으면 무서운데.”
선생님은 철이를 집에 데려다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립니다.
“선생님, 아빠가 오셨어요.”
준이가 소리치며 좋아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준이 아빠를 본 선생님, 너무 반가웠습니다.
“비가 많이 오지요?”
“네. 시원하게 쏟아지네요.”
“차 가지고 오셨지요?”
“네.”
“그럼 부탁할게요. 철이를 아파트 앞에 내려 주세요. 좀 돌아가시기는 하겠지만 혼자 남아 있어서요.”
“그러지요. 조금 돌아가면 됩니다.”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철이는 비를 맞지 않고 빨리 가게 됐습니다.
비가 창문을 때립니다.
“아빠, 아빠 몇 살이에요?”
“야 아들, 아직 아빠 나이를 몰라서 묻니?”
“아빠가 가르쳐 주지 않았잖아요.”
“아직 가르쳐 주지 않았나?”
철이는 앞자리 아빠 곁에 앉아 있는 준이가 참 부러웠습니다.
‘준이는 아빠가 있어서 참 좋겠다.’
“아빠, 아빠 나이를 두 살만 빌려주면 안 돼요?”
“두 살을 빌려 달라고? 왜?”
“아빠가 두 살을 빌려주면 내가 아홉 살이 되잖아.”
“그렇겠지. 아홉 살 되어서 어디다 쓰려고?”
“우리 아파트 앞에 슈퍼 있잖아요. 거기 사는 형이 여덟 살이라고 자꾸 때려요. 그런데 내가 아홉 살이 되면 그 형보다 내가 나이가 많으니 내가 이길 수 있어요.”
“그렇구나. 그러면 아빠가 세 살을 빌려줄게, 꼭 이겨라.”
아빠는 나이를 빌려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만 허락해 주십니다. 철이는 창밖을 보면서 작은 소리로 아빠를 불러봅니다.
준이 아빠가 아파트 앞에 멈추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데 준이가 창문을 열고 내일 만나자고 소리칩니다. 철이는 아무도 말없이 손을 흔듭니다.
엄마가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일어나, 빨리 따라와!”
철이는 아무 말 없이 엄마 발자국만 따라갑니다. 비가 왔다고는 하나 더위는 더합니다.
“빨리 따라오지 않고 뭐하고 있니?”
엄마의 큰소리에 더 빨리 걸어보지만, 마음은 도망가고 싶습니다. 철이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립니다.
“아이 더워. 엄마, 좀 쉬었다 가요.”
철이는 엄마의 마음을 풀어드리려고 말해보지만 엄마는 말없이 앞서 가십니다.
“엄마….”
“빨리 따라오기나 해.”
철이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엄마의 발자국을 따라갑니다. 엄마 발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철이가 고개를 들고 엄마를 찾습니다.
“여기서 쉬어 가자.”
엄마가 나이를 많이 먹은 나무 아래서 철이를 부릅니다. 철이가 나무 그늘에서 큰 숨을 쉬며 땀을 닦습니다.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댑니다. 엄마가 한숨을 길게 내쉽니다. 철이는 엄마의 마음을 압니다.
아침에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얼굴을 보면서 철이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또 친구와 싸웠니?”
“네….”
철이는 할 말이 없습니다. 엄마가 싸우지 말라고 아침마다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가져갔어요.”
“친구하고 같이 놀아야지 혼자 가지고 놀려고 하니 그렇지.”
“아닌데요. 내가 가지고 노는 것을 영창이가 무조건 가져갔어요.”
엄마는 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지만 싸우는 아들 때문에 걱정이 됩니다.
“그래도 네가 참아야지….”
“그리고 또….”
철이가 말을 하려다 말을 멈춥니다. 그리고 먼 하늘만 바라봅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싸우던 영창이가 철이를 때리며 말합니다.
“우리 아빠에게 말한다.”
“말하려면 해!”
“정말?”
“그래, 정말이다.”
“우리 아빠 정말 힘이 세다. 넌 한 대 맞으면 죽는다.”
“나도 힘세다. 너희 아빠하고 싸울 수 있어.”
“야, 우리 아빠를 이긴다고? 정말 웃긴다.”
“이게 까불고 있어, 너 죽을래?”
“바보, 넌 아빠도 없잖아. 아빠도 없는 게 까불어?”
철이 손이 영창이의 얼굴을 덮쳤습니다. 영창이 코에서 피가 납니다.
“아빠도 없는 게 바보같이 힘만….”
영창이의 말이 끝나기 전에 철이의 손이 또 날아갑니다. 아이들이 몰려와 철이를 붙잡고 밀어냅니다. 영창이는 피를 흘리며 웁니다.
“철이가 또 친구와 싸웠구나. 엄마를 생각해서 참아야지, 그렇지? 철이 저쪽으로 가서 두 손을 들고 서 있어야겠다.”
선생님 말씀에 고개를 숙입니다. 화난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엄마, 미안해요.”
철이는 두 손을 들고 벌을 받았습니다. 친구들이 지나가며 조롱하고 웃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울던 매미가 깜짝 놀라 날아갑니다. 철이가 나무를 올려다봅니다. 나무 속이 까맣게 썩어 비어 있었습니다.
“엄마, 왜 나무가 속이 비어 있지요?”
엄마가 말없이 나무를 쳐다봅니다. 철이는 엄마 기분을 바꾸어 보려고 다시 물어봅니다.
“엄마, 나무가 속이 왜 비었어요?”
한참이나 말이 없던 엄마가 일어서서 가시면서 대답합니다.
“아기 나무가 엄마 나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해서 까맣게 타버린 거야.”
철이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기 나무가 마음을 아프게 해서?”
철이는 놀라서 엄마 얼굴을 봅니다. 엄마는 말없이 친구 집을 향해 갑니다.
‘내가 아기 나무처럼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면 엄마 속은 까맣게 타버릴 거야. 그러면 엄마는 죽을 거야.’
철이가 엄마를 따라가다 멈추어 서서 생각합니다.
‘그럼 친구들이 엄마도 아빠도 없는 바보라고 놀릴 거야. 엄마도 아빠도 없는 바보 철이….’
아이들의 비웃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철이는 고개를 흔듭니다.
“아니야. 아니야….”
철이는 숨을 크게 쉬고 엄마를 따라갑니다.
“엄마, 이제는 절대 싸우지 않을래요. 엄마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할래요. 엄마를 생각하고 피가 나서 아파도 참을래요. 엄마 약속해요.”
철이가 엄마를 부릅니다. 철이의 부르는 소리에 엄마가 돌아봅니다.
“엄마!”
철이가 엄마 품에 안깁니다. 더운 여름이지만 엄마 품은 포근합니다. 영창이의 집이 보입니다. 그래도 철이의 마음은 행복합니다.